독자편지
우크라이나 전쟁 중 단행된 핀란드와 폴란드의 국경 봉쇄,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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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이 전쟁으로 30만~40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전쟁을 피해 나라를 떠난 난민이 1000만 명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런 끔찍한 전쟁이 발발한 후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침공을 저지하고 우크라이나인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무려 10차에 걸쳐 대(對)러시아 제재를 부과했다. 우크라이나 군대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서방의 대규모 군사 지원도 줄이어, 전차, 포격 무기, 대공 무기 등 수많은 살상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됐다.
하지만 1년 전과 비교해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전선에서는 무고한 우크라이나·러시아 노동계급의 자녀들이 희생되고 있고, 무자비한 폭격은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빼앗고 있다.
서방의 제재와 무기 지원은 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런 조처들이 러시아의 야욕을 막기에 충분히 강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이런 조처들이 러시아를 약화시킨다는 제국주의적 야욕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배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목적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
그 맥락에서, 서방 지배자들이 전쟁 발발 이후 단행한 조처 중 하나인 국경 봉쇄와 국경 장벽 건설 역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 ─ 핀란드의 국경 봉쇄와 국경 장벽
러시아와 가장 넓은 국경선을 공유하는 핀란드는, 이미 전쟁 초기부터 여행 비자를 이용한 러시아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징집을 피해 여행 비자로 핀란드에 입국하는 러시아인들을 받아들이면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돼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연구 비자나 업무 비자로 핀란드에 입국하는 러시아 출신 고급 인력은 받아들였다.
러시아-핀란드 관계는 핀란드가 러시아인 난민을 받아들여서 파탄 나는 것이 아니라, 핀란드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토 가입 의사를 밝힌 것 때문에, 러시아에 적대적인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에 따라 자연스럽게 악화될 것이었다.
요컨대, 핀란드 정부의 속내는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 동원돼 살육의 장으로 끌려갈 수 있는 평범한 러시아인들 중 핀란드에 경제적으로 득이 되는 자들만 받아들이고, 경제적으로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평범한 노동자들은 전쟁터로 끌려가든 러시아에서 목숨 걸고 반전(反戰) 운동을 하든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핀란드 정부는 1340킬로미터에 이르는 핀란드-러시아 국경 중 약 200킬로미터에 3미터 높이의 철조망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 계획에는 무려 3억 8000만 유로(약 5300억 원)가 투입된다.
이 계획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1000킬로미터가 넘는 국경 중 일부만 봉쇄한다고 징집을 피해 도망쳐나온 사람들의 유입이 차단되지 않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 장벽으로 난민의 유입을 성공적으로 차단한다 해도 문제다. 징집을 피해 나라를 떠나려다 러시아에 발이 묶인 선량한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죽거나 우크라이나인을 죽이는 살인자가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서방이 그토록 외치는 러시아 침공 저지와 우크라이나 수호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핀란드 정부가 강행한 이런 조처들은 핀란드 내 반(反)러시아 감정을 자극해 정권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출된 러시아 고급 인력들을 선별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진심으로 전쟁을 멈추고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국경 장벽을 짓는 데에 쓸 5300억 원을 전쟁을 피해 러시아를 떠나는 난민을 ─ 선별하고 내치는 것이 아니라 ─ 모두 수용하고 생필품을 지원하는 데에 쓸 수도 있다. 그것이 서방이 그토록 외치는 ‘인권’과 ‘평화’를 위한 길 아니겠는가.
유럽 최고(最古)의 숲을 가로지르는 장벽 ─ 폴란드 국경 장벽
러시아의 침공을 간접 지원하고 있는 벨라루스는 폴란드와 가장 넓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폴란드 정부는 철조망을 이용해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전쟁 전부터 폴란드 정부는 벨라루스를 거쳐 폴란드로 오려는 중동·아프리카 난민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국경 장벽 건설에 착수했다. 그리고 전쟁 발발 후에는 이 장벽으로 러시아 난민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해졌다.
폴란드가 건설하는 국경 장벽은 환경 파괴의 온상이다. 폴란드-벨라루스 국경 지대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1만 2000년 동안 보존된 원시림 벨로베즈스카야 숲이 있다.
이 숲에 사는 유럽 들소는 겨울이 오면 벨라루스 쪽(동쪽)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데, 폴란드가 세운 장벽에 막혀 수많은 들소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계절 이동을 하는 엘크·무스 같은 동물들도 철조망에 찔려 상처를 입고 과다출혈로 죽고 있다.
이렇듯 이 장벽은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피난민들의 자유로운 이동 역시 가로막는다.
벨라루스의 경우, 수십 년간 이어진 독재자 루카셴코의 폭정을 피해 수많은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망명을 떠나는데, 그 대부분이 벨라루스 측 국경 검문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을 넘는다. 폴란드 정부가 그런 사람들의 입국을 차단하면 이들은 루카셴코 독재 정권의 탄압에 의해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벨라루스 국경을 출입국 심사 없이 넘을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전쟁 발발 이후 전쟁의 위협과 푸틴의 억압을 피하고자 하는 러시아인들이 폴란드로 넘어오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폴란드가 국경을 봉쇄하고 국경 장벽을 건설하면 그들의 시도는 좌절될 것이다. 난민들이 전쟁터로 끌려나가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역할
서방 지배자들은 언제나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행동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탐욕과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들이다.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중 외쳐 온 인권·자유·평화·환경 등의 어젠다가 그저 지배계급이 이익을 노리고 치는 연막일 뿐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런 지배계급의 기만을 폭로하고, 각국 노동자들의 연대로 전쟁 반대를 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