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징집 피해 한국 온 러시아인, 난민 심사 기회 요구하며 단식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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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인 난민 안드레이 씨(가명, 30세)가 3월 21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한국 정부가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현재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이하 ‘영종도 센터’)에 갇혀 있는 안드레이 씨와 연락이 닿았다.
안드레이 씨는 러시아 정부의 징집령을 피해 지난해 9월 인천공항에 와 난민 신청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기 전 푸틴 정부의 부패에 항의하는 활동을 했고 반정부 시위에 여러 번 참가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경찰에게 수차례 구금과 폭행도 당했다. 그래서 징집되면 틀림없이 위험한 전선으로 보내져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우려해 러시아를 떠났다.
그러나 법무부는 그에게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를 주지 않기로 결정하고 입국을 막았다. 이 때문에 그는 5개월 동안 인천공항에 억류됐다.
“제가 러시아에서 위험에 처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음에도 출입국 당국이 저를 [난민 심사 대상자로] 분류하지 않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드레이 씨는 인천공항에 억류돼 있는 동안에도 러시아 정부가 보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로부터 위협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2월 7일경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계를 차고, 똑같은 여행 가방을 든 러시아인 4명이 더 이상 [언론] 인터뷰를 하지 말고 러시아로 돌아가라고 저를 위협했습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인천공항에 와 난민 심사 자격을 얻지 못하고 억류된 러시아인 난민이 총 5명에 이른다. 이들은 난민 지원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법무부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5명 중 3명에 대한 판결이 나왔고 2명이 승소했다. 안타깝게도 1명은 패소해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해야 했다. 나머지 2명은 3월 28일로 예정된 선고를 기다리며 여전히 인천공항에 억류돼 있다.
안드레이 씨는 승소한 두 명 중 한 명이다.
그런데 2월 28일에 법무부는 승소한 2명에 대해 항소했다. 그리고 입국은 허가하되 거주지를 영종도 센터로 제한했다.
물론 인천공항에 억류돼 있는 것보다는 낫지만, 영종도 센터는 외진 곳에 있는데다 허가를 받아야 외출·외박이 가능하다. 외부인의 방문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법무부는 재판 기간 중 난민 신청을 하지 말라는 조건도 달았다. 일단 난민 신청을 하면 강제송환 금지 원칙이 적용돼 쫓아내기 어려워진다.
감옥
안드레이 씨는 재판에서 이겨 무려 5개월만에 인천공항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는데, 법무부가 항소하고 또다시 영종도 센터에 자신을 기약 없이 가둔 것에 분통을 터뜨렸다.
“영종도 센터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내 의지에 반해 여기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사실상 감옥입니다. 걷고, 자고, 다시 걷는 게 일과의 전부입니다.
“우리는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감옥에 갇혀야 하고 자유를 제한당해야 하나요? 우리는 단지 도움을 요청했을 뿐입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과 러시아 모두 수많은 인명 피해도 아랑곳 않고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시키고 확전 위험을 키우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여기서 서방 제국주의 강대국들을 지원해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확전에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희생자인 난민의 유입은 경제적·정치적 부담으로 여기며 억누르려 한다. 법무부가 “향후 징집을 피해 난민 신청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고 항소 이유를 밝힌 것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안드레이 씨는 이 점이 자신이 겪는 고통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법무부는 러시아의 동원령에 의한 두 번째 [난민] 물결이 오는 것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난민 심사] 절차를 가능한 한 지연시키려는 거예요. 이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어요. 법무부는 우리를 정치적 인질로 삼고 있습니다.
“내가 단식을 시작하자 출입국 직원들은 처음에 비웃었습니다. 둘째 날이 되자 요구사항이 뭔지 묻더니, 2심에서 져도 3심까지 또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여기에 최대한 오래 붙잡아 둘 계획인 것입니다. 우리 사건이 선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그는 한국 정부가 자신을 외면하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무턱대고 믿었습니다. 한국에서 [전직] 대통령이 수감됐다는 사실은 저에게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건 사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미 매우 지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아무 죄도 없는 나를 6개월이나 감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연대와 가치외교” 운운하는 게 얼마나 위선적인지 보여 준다.
안드레이 씨는 “문제가 해결되거나 죽을 때까지 단식할 것”이라며 법무부에 항소를 철회하거나 적어도 고의로 항소심 진행 과정을 지연시키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우리 문제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한국인들에게 호소했다.
법무부는 안드레이 씨에 대한 항소를 즉각 철회하고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또한 한국에서 자유롭고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