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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경감 대책 발표:
입시 경쟁 강화하면서도 사교육 업체 비난하는 위선

6월 26일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동시에 최근 3년간의 수능 시험과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킬러 문항’ 사례 26개를 발표했다.

윤석열이 수능의 킬러 문항을 사교육비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사교육 업계와 교육 당국 간의 “이권 카르텔”을 비난한 뒤,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예상됐다시피 정부가 내놓은 사교육 대책은 별 볼 일 없다. 수능 출제진과 수능 문제 검토에 현직 교사의 비중을 높여 수능에서 ‘킬러문항’을 걸러내고, 논술·구술 등 대학별고사와 학교 수행·지필평가가 교육 과정 내에서 출제될 수 있도록 지도한다는 게 거의 전부이다.

EBS와 방과 후 교실 등을 이용해 사교육 수요를 흡수한다고 하지만, 역대 정부들이 수능 문제와 EBS 교재의 연계율을 이리저리 바꿨는데도 사교육비 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면 실패한 정책의 재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고등학교 서열화까지 강화하려 하기 때문에,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출처 서울시

특히, 올해 수능 난이도를 판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정부의 킬러 문항 사례 발표는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학생 상당수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은 빠지고, 보통의 어려운 수준이라고 본 문제들이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올해 수능이 150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런 혼란은 윤석열 정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들은 초고난도 문제인 킬러 문항을 비난했지만, 수능의 변별력을 유지한다고 밝혔기 때문에 계속 어려운 문제들이 출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사교육 카르텔’을 뿌리 뽑는다며 6월 28일에는 메가스터디·종로학원·시대인재와 같은 대형 입시학원과 연봉이 수백억 원에 이르는 ‘일타 강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정부의 공세에 서울 강남의 대형 학원들은 입시설명회를 취소하고, 광고 문구에서 ‘킬러’를 삭제하는 등 몸을 사리고 있다.

그러나 올해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능 난이도가 논란이 되고 있으므로, 사교육 수요는 여전할 것이다.

설사 수능 관련 사교육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내신과 수시 등을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이 커질 것이다.

거대한 사교육 시장은 치열한 입시 경쟁의 산물이지 입시 경쟁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과 초등 의대 입시반도 실태 점검을 하기로 했다. 고등학생뿐 아니라 유아와 초등학생까지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것을 해결하겠다며 말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국제중학교와 국제고·외고·자사고 등을 확대하며 초등학생·중학생 입시 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으니 이런 정책에 순진하게 기대감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연일 사교육 업체들을 공격하며 급등하는 사교육비와 치열한 입시 경쟁 완화에 나선 것처럼 보이려 애쓰지만, 이는 데마고기일 뿐이다.

입시 경쟁의 진정한 원인인 대학 서열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 데다 오히려 중·고등학교 서열 체제를 강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학교 서열화 강화에 길을 터 준 민주당

정부의 수능 정책이 큰 불만을 자아내자 민주당 등 야당은 연일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 교육의 최대 리스크는 윤 대통령”이라며, 수능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비판이 큰 호응을 얻고 있지는 못하다.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당분간 현 입시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과 급등하는 사교육비로 이미 수십 년간 고통 받아 온 사람들에게 이런 주장이 매력적으로 보일 리 없다.

특히, 역대 민주당 정부도 입시 경쟁을 강화시키거나 온존시켜 왔다. 외고를 대폭 늘리고 자사고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정부가 바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이다.

문재인도 2017년 대선 전에는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를 만들고, 공영형 사립대학을 통합 네트워크에 포함시켜 대학 서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집권한 뒤에 한 일은 전혀 없다.

민주당은 국제고·외고·자사고를 유지하기로 한 윤석열 정부를 비난한다. 하지만 고교 서열화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국제고·외고·자사고 폐지를 2025년으로 미루는 바람에 윤석열 정부가 특목고·자사고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을 터 준 것이 문재인 정부다.

민주당 정부의 이런 배신 때문에 2018년에 19조 5000억 원이던 사교육비는 지난해에 26조 원으로 늘어났다. 1인당 사교육비는 더욱 급증해 2018년에 월 평균 29만 1000원에서 지난해에는 41만 원이 됐다. 문재인 정부는 고교무상화 정책으로 생색을 냈지만, 사교육비로 그 이상을 지출하게 만든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대선 공약도 문재인 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대학 서열 체계는 건드리지도 않았고, 입시 경쟁 완화 정책은커녕 ‘공정한 입시 경쟁 관리’에 공약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이러니 윤석열 정부가 수능 정책으로 큰 불만을 사고 있는데도 정책 시행을 미루라는 별 볼 일 없는 비판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의 비판은 민주당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정의당도 대학 서열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상정 의원은 대선 공약에서 “대학 네트워크”와 “공동 학위제”에 관해 말하긴 했지만 여기에 강조점이 있지는 않았다. 지방 국립대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서울대 수준으로 늘린다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런 정책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 체계를 완화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 교육을 망가뜨리고 있는 입시 경쟁의 폐해를 없애려면 서열화돼 있는 대학 서열 체계 자체를 없애야 한다. 교육운동 단체들이 대학 평준화, 입시 폐지, 수능 자격고사화 등을 주장해 온 까닭이다.

덧붙이자면, 대학 서열 체제는 경쟁적이고 위계적으로 조직된 자본주의 체제에 그 뿌리가 있기 때문에, 체제에 맞선 저항이 커져야 한다.

그런데 정의당 같은 진보 정당도 당장의 실현 가능성을 중시하며 대학 서열 폐지 요구를 점점 소홀히 했다. 그러나 실현 가능한 방안을 우선시해 진정한 대안을 회피한다면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학생·학부모들의 좌절감을 부채질할 것이다.

대학 평준화와 입시 제도 폐지가 없다면 윤석열 정부의 소동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