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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쉬운 수능’ 발언과 교육부의 일제고사 추진:
각급(초·중·고·대) 교육 서열화 강화 위한 밑밥 깔기

2024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을 약 150일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수능 관련 대책들이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6월 16일 윤석열은 수능의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을 겨냥해, “약자인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또, 윤석열은 수능의 킬러 문항이 사교육 업계와 교육 당국 간의 “이권 카르텔”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며, 이를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결국 교육부 대학입시 담당 국장이 경질됐고, 수능 주관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이규민 원장이 자진 사임했다.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킬러 문항’ 삭제만으로 입시 경쟁 부담이 완화될 수 없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이 수능 난이도와 사교육 업계를 문제 삼자, 정부·여당과 보수 언론들도 일제히 사교육 업계를 비난하고 나섰다. 연봉이 수백억 원에 이르는 ‘일타 강사’들을 비난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전직 수능 출제자가 문제집을 만들어 파는 일이 폭로됐다.

또, 정부는 7월 초까지 “사교육 이권 카르텔, 허위과장광고 등 학원의 부조리에 대해 2주간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6월 26일에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어지간한 교사나 전문가들도 쉽게 풀지 못하는 킬러 문항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다. 수백만 원씩 받고 킬러 문항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명문대와 의대 진학을 돕는다는 입시 학원의 광고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발언은 대다수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서 당연히 큰 불만을 사고 있다.

수능에서 초고난도 문제 몇 개를 삭제한다고 해서 늘어나는 사교육비와 격화되는 입시 경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의 발언 후에 수능이 쉬워지면서 변별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이를 극구 부인하고 나섰다.

교육부 장관 이주호는 “킬러 문항을 과감하게 제거한다는 게 ‘물수능’이 되는 건 결코 아니다”라며, “출제 기법을 고도화”해 변별력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하게 말해, ‘아주 어려운’ 문제 한두 개 대신 ‘어려운’ 문제 개수를 크게 늘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킬러 문항을 위한 사교육 대신에 어려운 문제를 빨리 풀기 위한 사교육이 유행할 것이 뻔하다.

사교육비 감소?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입시 제도를 이리저리 바꾸는 것으로는 입시 경쟁 완화와 사교육비 경감 효과가 거의 없었다.

2010년 정부는 EBS 교재와 수능의 연계율을 70퍼센트 이상으로 올려 사교육 수요를 줄이겠다고 했다. 실제로 시행 직후에는 사교육비 총액이 조금 줄었다. 그러나 2013년부터 다시 사교육비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최근에는 EBS 교재 연계율이 50퍼센트로 줄어들었다.

2014년 정부가 수능 영어 영역을 절대평가로 전환한 것도 사교육비 감소를 노린 정책이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2015년부터 매해 고등학생 1인당 월평균 영어 사교육비는 증가했다.

영어뿐 아니라 전체 사교육비 부담도 갈수록 커졌다. 정부가 발표하는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사교육비는 2007년 20조 400억 원에서 지난해 25조 9538억 원으로 29.5퍼센트 증가했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07년 월 22만 2000원에서 지난해 41만 원으로 그 증가세가 더욱 가파르다.

이처럼 입시 제도 변경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은 한국의 입시 경쟁이 명문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상대평가 경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능을 쉽게 내면 내신과 수시의 비중이 늘어나는 식으로, 여기를 누르면 저기가 튀어나오는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타 강사’들의 ‘돈 자랑’이 꼴불견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의 산물이지 입시 경쟁의 원인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일타 강사’들을 비난하고 수능 난이도를 문제 삼는 것은 데마고기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의 진정한 목적은 윤석열의 발언 직후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사교육비 경감, 공교육 강화 대책에서 드러난다.

교육부 장관 이주호는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존치해 공교육 내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에 이들 학교를 폐지하기로 한 계획을 뒤엎은 것이다.

이주호는 지난해 10월 인사청문회에서 자사고 정책이 “서열화로 이어진 부작용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주호 본인이 이명박 정부 시절 자사고 늘리기 정책의 주역이었다.

또, 정부는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의 전국 일제고사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과거 일제고사는 학교 간 경쟁을 과열시켜 학교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되게 만들었고, 학생 간 경쟁을 심화시켜 사교육을 조장한 바 있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정책이라는 것은 ‘명문’ 대학에 진학할 ‘정예’와 평범한 노동계급에 속하게 될 아이들을 더 어린 나이에 가르자는 것인 듯하다. 고고 서열화를 더욱 강화하고, 초·중학생 때부터 줄 세우기 시험을 강요하니 말이다.

이런 줄 세우기가 부유층 자녀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학이 촘촘하게 서열화돼 있고, 조금이라도 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해야만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입시 경쟁은 완화되지 못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고교 서열화 정책과 일제고사 추진에 반대할 뿐 아니라, 입시 폐지와 대학 평준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좌파적 대중 운동으로 커져야 치열한 입시 경쟁 문제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