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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위기와 민주노총의 진보연합당 제안

이 글은 7월 19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이 증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서가 윤석열 퇴진 운동이 커지는 것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9개월 뒤 열릴 총선의 투표 선택 기준으로 정권 심판론이 정권 안정론보다 우세해지는 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정권 심판 정서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혁 염원 대중이 민주당을 재신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도 당의 결속을 위해 친문계와 타협하느라 벌써부터 지지자들, 특히 팬덤의 불만을 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당이 득을 보는 것도 아닙니다. 정의당의 지지율은 4~5퍼센트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한 지 오래됐습니다. 사회개혁 염원 대중이 정의당을 정권 심판을 위한 현실적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소폭 좌향좌에 대한 정의당 내 우경적 반발

이런 슬럼프에서 벗어나고자 정의당은 ‘노동·녹색·제3의 정치세력과 신당 추진’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특히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지지를 얻어 내려 합니다. 하지만 전망이 매우 불투명합니다.

겨우 반 발짝 왼쪽으로 가자는 결정인데도 그마저도 내부 반발이 심합니다. 주로 오른쪽으로의 반발입니다.

먼저 참여계인 ‘새로운 진보’가 이 결정에 반발해 탈당했습니다. 그들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지향합니다. 사실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는 창당 이래 견지돼 온 정의당의 공식 노선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보’ 측은 정의당의 소폭 좌회전에 반발해 분리해 나간 것입니다.

정의당에는 또 다른 우경적 반발이 있습니다. 장혜영·류호정 의원과 조성주 전 정책위 의장이 주축인 ‘세 번째 권력’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정의당을 해체하고 금태섭 신당(가칭 ‘새로운당’)과 통합하자고 주장합니다. 좌파적 정당은 주류 정치의 일부가 될 가망이 없으니 아예 정의당을 청산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의 요구는 관철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7월 17일 정의당은 ‘신당추진사업단’을 발족시켰는데, 신당추진사업단장인 박종현 사무총장은 금태섭 신당과의 “통합은 많이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금태섭 신당과의 선거 연합 가능성은 열어 놨습니다. 제한적이나마 좌회전을 하면서도 ‘세 번째 권력’ 측을 무마하겠다는 생각인 듯합니다.

‘세 번째 권력’의 공동위원장 3인(조성주·장혜영·류호정) 중 두 사람은 현역 의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대표적인 청년 진보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신진 정치인들인 것이죠.

따라서 ‘세 번째 권력’의 반발을 이겨내며 ‘반(半)좌향좌 앞으로 가’를 하려면 공공연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투쟁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 없이는 새 노선이 효과적이고 명확하게 실행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공식 정치의 상황은 정의당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습니다. 여권이 강경 우익화하고 있고 민주당이 좌경화하지는 않은 채 그에 강력히 저항하면서, 공식 정치가 양극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에 공식 정치에서 정의당이 설 자리는 여전히 좁습니다.

그러나 정의당의 지지 감소는 최근 일이 아니고 문재인 재임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문재인이 개혁 염원을 배신해 실망과 환멸을 사기 시작했을 때 정의당의 개혁주의가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정의당은 자신의 선거 중심주의, 의회 중심주의를 두고 ‘진보의 세속화’ 또는 ‘진보 정치의 현대화’라고 불렀습니다.

자신들이 ‘진보의 세속화’라고 부른 개혁주의 때문에 정의당은 문재인의 개혁 배신에 맞선 노동운동의 정치적 표현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과의 연합 정치’에 매달린 대가

사실 정의당은 2017년 대선에서는 심상정 후보가 200만 표를 득표하면서 화려하게 부각됐었습니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일어난 박근혜 퇴진 운동 덕분이었습니다.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데서 노동운동이 방아쇠이자 견인차 구실을 했습니다. 물론 당시에 노동운동은 수많은 경제 투쟁들의 광범한 분출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퇴진 운동은 성공한 덕분에 노동계급의 의식과 조직의 성장이라는 퇴적물을 남겼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급증했습니다. 정의당이 대선에서 200만 표를 얻은 일은 방금 언급했습니다. 강제해산을 당했던 진보당은 조직을 복구했습니다.

문재인은 노동계급 운동 덕분에 집권했지만 그의 개혁은 구두선에 그치거나 심지어 개혁을 도로 빼앗아 가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맞서는 민주노총과 좌파 정당들의 저항은 완전히 미온적이었습니다. 노동운동의 개혁주의적 지도부들은 대중의 불만과 염원을 기탄없이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민주당 정부를 방어했습니다. 때로는 비판을 가미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지켜 준다는 자세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문재인의 배신에 환멸을 느끼며 사기 저하하고 있던 동안에 좌파는 민주당의 대안으로 인식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정의당은 소위 “민주당과의 연합 정치”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에게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로 비쳤을 만합니다.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에 협력해 개혁을 성취한다는 포퓰리즘 전략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정의당은 여러 차례 잘못된 줄서기를 했습니다.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된 가장 두드러진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2019년 7월 한일갈등이 크게 불거졌을 때 정의당은 (진보당, 민주노총 등과 함께) 노골적인 계급 협조 선동을 했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소위 “국란”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적 단결”에 힘을 싣자고 호소한 것입니다.

불과 대여섯 달 전인 그해 1월 말에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대화’(경사노위 참여) 반대가 결정됐는데도 민주노총 집행부와 정의당은 이를 단순히 무시했습니다.

또, 정의당은 2019년 8월 중순부터 66일 동안 벌어진 소위 “조국대전”에서 조국과 문재인 정부를 방어했습니다. 조국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의 위선에 환멸을 느낀 두드러진 사건이었습니다.

이렇듯 정의당이 문재인 정부와 싸우지는 않고 지지하거나 타협하자 문재인 정부에 대한 광범한 대중의 환멸이 정의당에도 덮친 것입니다.

그 결과 정의당의 2020년 대선 득표는 5년 전에 비해 반토막도 되지 못했습니다. 심상정 후보는 겨우 80만 표를 얻었습니다.

노동자들과 서민 대중이 정의당에 느낀 실망과 관련해 다음 사실을 추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2017년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정의당 안에서 노동은 실제로는 홀대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정의당의 민주노총 기반은 진보당계에 밀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밀렸습니다.

요컨대, 정의당은 민주당의 왼쪽 대안이 되려 하지 않은 대가를 지금까지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성찰로 정의당은 최근에 민주당과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다 이재명 체포 동의안에 찬성하는 등 잠깐 분별없이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전세사기특별법 등에서는 다시 민주당에 거듭 타협했습니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진보연합당 제안

존재감 부진은 단지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좌파 정당 모두가 직면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각자도생 방식”으로는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다며 진보연합당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진보연합당 안을 놓고 갈려 있습니다. 진보당계 지도자들과 한상균 전 위원장 등은 진보연합당이 노동운동의 공식 정치 참여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찬성합니다. 그러나 다른 계파의 지도자들은 좌파 조직들 사이의 기존의 차이와 불신을 이유로 진보연합당 설립을 반대합니다.

그래서 진보연합당 안은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합의되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임시 대의원대회에도 민주노총 위원장의 안으로 상정돼 토론됐습니다.

연합 대상으로 거론된 4당(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 중에서 진보당만이 창당안에 찬성합니다.

정의당은 당 대표가 아예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시절 갈등과 충돌의 경험, 게다가 북한을 둘러싼 입장 차이 때문에 정의당 안에는 진보당과의 통합에 거부감을 가지는 간부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정의당은 진보연합당이 득표와 의석 수를 조금이라도 늘려 줄 거라는 확신이 없습니다. 오히려 연합했다가 그나마 작은 선거 파이를 나누게 될까 봐 우려하는 듯합니다.

이는 2011년과 대조되는 점입니다. 당시에 진보당계가 주도하던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 탈당파(노회찬·심상정 등) 및 참여계(유시민)와 통합해 통합진보당을 창당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선거 연합을 했습니다.

반면 이번에 정의당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진보연합당 설립은 그 이름과는 달리 그저 진보당계가 민주노총 안에서 지금보다 기반을 더 확장한 정당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민주노총이 뒷받침하고 진보당계가 주도하는 진보연합당은 정의당보다는 조금 더 좌파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보당의 이런 상대적 좌파성 이면에는 기회주의도 있습니다. 가령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지만 지금까지 윤석열 퇴진 요구를 공개적으로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공식 정치권 안에서 인정받는 정당이 되겠다는 의지의 반영일 것입니다.

이런 지향점 때문에 또한 보안법 폐지를 주장하지만 간첩 혐의로 탄압받는 보안법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방어하기를 회피할 때가 있습니다.

또,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을 지지했지만 민주노총 지도부에 부담을 줄 연대 파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근래에 진보당계는 정의당이 상층 정치를 지향하면서 방치한 노동조합 기층(택배·건설·학비 등)에서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총연맹과 몇몇 산별연맹의 집행권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러한 노동조합 기반을 디딤돌 삼아 공식 정치 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주을 선거에서 당선된 강성희 의원이 그런 사례입니다.

물론 전주을 선거 결과를 총선 같은 전국 선거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일 겁니다. 특히, 북한 핵무기가 문제 되는 상황에서 진보당의 친북 이미지는 지배계급뿐 아니라 다수 유권자들의 의구심도 유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보당계는 민주노총의 공식적 지지를 받는 정당을 창당해 기반 확장뿐 아니라 이런 이미지를 씻어내고도 싶어 할 것입니다.

노동계급 투쟁 중심 전략과 그것을 현실화할 당

그런데 진보연합당이 표방하는 노동 중심성은 현장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민주노총 상근간부층 중심성입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정당을 설립하거나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산업에서 하는 구실을 정치에서도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을 정치적으로 중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에 기반을 둔 정당은 자본주의 내 개혁을 추구하는 개혁주의 정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진보연합당은 정의당보다 좀 더 좌파적이 될지라도 결국 개혁주의 정당일 것입니다.

따라서 진보연합당의 창당을 그런대로 지지할 만하지만 큰 기대감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난 10년 새 유럽에서 좌파 개혁주의가 어떻게 실패해 왔는지를 봤습니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는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좌파적 대안을 자처하며 부상했지만, 실패하고 지난 몇 년 새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끊임없이 노동계급을 공격하라고 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타협하면서 그들이 약속한 개혁을 실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좌파적 개혁주의의 실패를 유럽에 국한된 문제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 기존 국가기구들을 통해 개혁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 개혁주의가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중립적 기구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 계급이 노동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그들의 무기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자본주의의 복합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 많은 나라들에서 공식 정치 전체가 우경화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존 국가가 (작은 개혁일지라도) 변화에 더욱 완강하게 저항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회주의적 길이 겉보기로는 현실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노동계급의 대규모 투쟁과 근본적 사회변혁에 희망을 거는 것이 의회에 기대를 거는 것보다 현실적입니다.

실질적 개혁은 언제나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산물입니다. 특히 노동자 계급투쟁의 산물입니다. 일상적 시기에 노동자 투쟁들은 구체적이고 제한된 목표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이런 구체적 목표를 위한 투쟁이 때로 전면화되고 급진화되어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따라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노동계급 투쟁을 중심에 두는 진정으로 급진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전략을 현실화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정당을 건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