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의 선거연합으로 급속히 기운 노동계급 정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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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부터 총선 국면 분위기가 완연했다. 한동훈의 등장에도 여권 인사들의 표정에 그늘이 짙다.
정권 심판 정서가 완화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4월 총선에서 정권 심판 투표를 위해 야당에 투표하겠다는 정서가 다수다. 주요 언론들이 발표하는 신년 여론조사 결과들도 대동소이하다.
윤석열은 1월 1일 발표한 2024년 신년사에서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지난해 신년사에 이어) 다시 강조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다. 주요 개악 의제에 가시적인 진전이 없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윤석열의 노골적인 부자 대변 행보와 우익 본색, 친미·친일 일변도 외교가 대중의 반감을 키웠는데, 정작 윤석열의 친기업주 개악은 더딘 것이다.
청년들의 불만이 실제로는 크다는 것은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망 여파 속 교사 운동에서도 드러났다. 대선 때 윤석열을 지지했다가 등 돌린 것도 대부분 청년층이다.
윤석열의 우익 본색도 전임 우파 정부들과 비교해 별로 공포를 자아내고 있지 못하다.
한편, 이낙연의 신당론이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민주당 지지층 안에서조차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도 그가 개혁 염원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개혁 염원과 기업주들의 이윤 보호 사이에서 눈치 보며 줄타기를 하기 때문에 개혁 염원 대중 속에서도 민주당을 못 미더워한다. 물론 이들도 더 나은 대안이 보이지 않으면 선거에선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다. 좌파의 정치적 존재감은 최근 더 약해졌다.
정치적 위기 속에도 윤석열은 경제 위기 고통 전가를 위한 각종 개악과, 안보 위기에 대응하는 정치적 억압을 늘릴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윤석열 정부와 만만찮은 격돌을 벌여야 한다. 윤석열에게 불리한 상황을 이용해 대담하게 싸워야 한다.
선거제와 민주당
12월 28일 “진보 4당”(정의당·진보당·녹색당·노동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과 진보정치의 도약을 위한 22대 총선 공동 대응을 선언했다.
이 네 당 사이에서 선거연합 방안이 두 개나 경쟁하고 있고 4인4색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얼마나 다급했는지, 4당은 이미 서로 거절한 상대의 선거연합 방안에 대해서도 열어 놓고 재론하자고 말했다.
22대 총선에 적용될 선거제도 때문이다. 현재 의석이 소수이거나 없는 좌파 정당들은 연동형 비례제를 바라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비공개로 ‘권역별 병립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으로 하면, 정의당조차 3석 확보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반정부 정서가 큰데도 진보·좌파 측이 약진은커녕 의회 진출이 사상 최악으로 축소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진보 4당은 필사적으로 연합을 모색하고 있다. 혼자로는 민주당을 압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보 4당의 공동 대응은 일단 민주당을 압박해 진보 4당과 협상에 나서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더 ‘앞서는’ 얘기도 나왔다. 사실상 지역구와 비례 모두 국민의힘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역구는 협상으로 단일화하고, 비례 연합 정당을 창당해 민주당과 진보정당 모두 참가하자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4년 전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을 확대한 버전이다.
주로 진보당 계열이나 진보계 원로들에게서 나오는 얘기다.
선거제 결정의 키를 쥐고 있는 민주당이 병립제에 미련을 두는 게 의석 상실에 대한 걱정 때문이므로, 민주당이 의석을 잃지 않으면서 진보정당들도 의석을 늘릴 방안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현재 개혁 염원 대중의 기대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많이 쏠려 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안보 위기 국면에서 민주당이 지배계급의 눈치를 보면서, 특히 진보당과 선거연합하는 것은 피하려고 할 것이므로 진보당 측의 기회주의가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정의당은 비례연합에 반대하고 있지만, 지역구 연합은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결국 좌파 전반에서 ‘전략적 야권연대(계급을 가로질러 형성되는 국민 연합)’로 총선을 치르자는 주장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 과정에서 선거제 대응 말고는 어떤 투쟁적 의제나 가치 또는 운동 건설 과제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역학 관계
민주당과의 선거연합(민중전선)이 윤석열을 패퇴시키고 좌파 정당들에 더 많은 의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면 개혁 염원 대중의 사기가 오를 수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해 좌파도 선거연합(정당)에 투표할 수 있다.
그러나 표와 의석은 진정한 대안이 될 급진적 대중 운동 건설 과제를 대신할 수 없다.
2016년 총선에서 암묵적 연대를 한 민주당과 반박근혜 야당들에게 박근혜 정부는 참패했다. 박근혜 정부와 지배계급 사이에 균열이 생겨났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공공부문부터 시작된 노동개악 저지 투쟁들이 확산돼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민주당’이라는 동맹을 의식해 당시의 반정부 투쟁이 너무 커지고 급진화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제한했던 점도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계급투쟁과 만날까 봐,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철도 파업을 3번의 설득 실패 끝에 종료시켰다. 그 압력은 우파(새누리당 소속 탄핵 지지 의원들)가 민주당에게, 민주당 주류가 당내 개혁파에게, 민주당 개혁파가 정의당에게, 정의당이 철도노조 집행부와 민주노총 집행부에게 전달했다.
이런 민중주의(진보 포퓰리즘) 전략은 문재인 정부로 이어졌다. 박근혜를 대체한 문재인 정부는 속히 정치 안정을 이루고 적폐 청산 등을 적당히 해 대중을 달래고(그래서 중단시키고), 박근혜가 실패한 임금체계 개편이나 경쟁력 강화 정책들을 재추진하라는 압박을 사용자들에게서 받고 있었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문재인과 민주당의 배신에 맞서 정부에 맞선 대중 저항을 건설하지 않았다. 정부를 엄호하거나, 개별 투쟁들이 부문의 장벽을 넘어서 전면화되지 못하게 제한했다.
그 결과, 대중의 자체 행동이 줄고, 실용주의가 득세하고, 지난 2년여간 운동 안에서 민주당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좌파의 정치적 존재감이 하강했다. 대중의 자체 운동이 활발하지 않으면, 정권 교체만으로 개혁이 이뤄지는 게 아닌 것이다. 지금도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대정부 연대 투쟁을 의욕적으로 건설하지 않고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위기이고, 대중의 개혁 염원은 선거를 기다리며 수동적 상태이긴 해도 식지 않았다. 그러나 좌파는 취약하고, 민주당이 그 반사이익을 얻을 공산이 크다.
이런 세력관계 속에선 어쩌면 민주당과 좌파 간 선거연합이 표를 많이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복합 위기의 심각성 때문에 민주당은 곧 운동을 단속하라는 지배계급의 압력을 개혁주의 지도자들에게 전달하는 통로 구실을 할 것이다.
결국 최대 연합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노동계급을 일정 수준 밑으로 자제시키려 들 것이다.
선거도 무시할 순 없지만 아래로부터의 운동들을 우선적으로 건설하고 연대를 투쟁 목적으로 보편화하는 것이 비할 데 없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