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위기, 직접적 원인과 근본적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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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이 우여곡절 끝에 ‘반(半) 좌향좌’하는 (신당 방식의) 혁신 재창당을 결정했지만, 당의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총선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7월 7일 정의당 내 의견그룹 ‘새로운 진보’ 소속 전·현직 당직자 60여 명이 탈당했다.
그들은 정의당의 실패한 노선과 자신의 노선을 대비시켰다.
“구 진보 세력 연합 vs 시민 참여 정당”
“고립되고 배타적인 독자 노선 vs 더 넓은 진보 집권 노선”
“반민주-비국힘 노선 vs 반국힘-비민주 노선”
탈당의 변에서도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의 임무는 4년 후 진보 집권과 좋은 정부의 탄생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그들이 노동 중심성을 말하는 노선과는 오히려 더 거리를 두는 노선을 추구할 것임을 드러낸다. 사실상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는 그 그룹 핵심 구성원들의 뿌리가 유시민·천호선 등이 이끌던 친노무현계인 옛 국민참여당에 있음을 반영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들이 표방한 ‘유능하고 유연한 진보’란, 국회 내 입법 협상과 선거 당선, 타협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노선이다. 물론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통해 집권당의 하나가 돼 개혁을 시도하겠다는 노선이다.
이 노선은 정의당 창당시 심상정·노회찬·유시민·천호선·이정미 등 핵심 지도자들 간에 합의된 것이었고, 이후에도 줄곧 공식 노선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가지 상황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의 득표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내년 총선 전망도 비관적이다.
이 위기를 벗어나려고 정의당은 소폭 좌선회를 결정하고 이를 혁신 재창당의 방향으로 잡았다. 노동조합 지도층을 재창당의 핵심 포섭 대상으로 삼고, (현재의 위기 수준에는 부족하지만) 기존보다 조금 좌파적인 강령을 내걸고, 민주노총과의 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아마도 ‘새로운 진보’ 측은 민주노총과의 조직적 연대를 껄끄럽게 여기고 특히 진보당 등 자민통 경향과의 연대 가능성을 경계한 듯하다.
한편, 류호정·장혜영 의원과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가 이끄는 ‘세번째권력’ 그룹이 등장했다. 한때 ‘심상정 키드’로 불렸던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지금은 정의당을 해체하고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만드는 중도 신당에 합류해야 한다는 편에 서 있다.
최근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차별화라는 명목으로 이재명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새로운 진보’ 측은 이런 일들을 정의당 창당 노선(민주당과의 연립정부 지향)을 깨는 걸로 본 듯하다.
‘새로운 진보’ 측이 노무현 정신과 함께 노회찬 정신의 진정한 계승을 말하면서 현 당내 실세인 심상정 의원에 대해 특별히 배신감을 토로한 이유일 것이다.
“분명한 좌표가 없는 중도 노선으로, 정치적 냉소를 부추겨 오로지 국회의원 배지를 달겠다는 세력이 ... 진보정당의 역사를 함부로 무시하고 해체하겠다고 [해도] ... 심상정 의원을 비롯 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세번째권력 같은 이들을 키우고 방조[했고] ... 신당 창당에는 결국 이들도 함께하는 것입니다.”
결국 ‘새로운 진보’든 ‘세번째권력’이든 분열을 실행(또는 위협)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혁신 재창당 결정에 포함된 소폭의 좌선회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원심력
그러나 ‘새로운 진보’ 측이 현 지도부와 ‘세번째권력’을 한통속으로 싸잡아 비판한 것은 부정확하거나 부정직한 것이다.
‘세번째권력’의 청년 정치인들은 최근 이정미 대표, 심상정 의원과 공개적으로 갈등했다. 이정미 지도부는 반윤석열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세번째권력’은 탈당을 위협하며 정의당의 소폭 좌선회 결정에 저항하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더 우경적인 노선을 밟자고 주장한다.
사실 정의당의 노선 미세 조정이 90도 좌선회도 아닐뿐더러,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노선을 명확히 폐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반발이 탈당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당의 내년 총선 전망이 너무 어두워서이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것이 불과 1년 전인데, 최근 정당 지지도에서도 정의당 지지율은 5퍼센트 수준을 넘지 못하고 반등의 기미도 없다.
그래서 최근 정의당 지도부는 기존과 달리 정치투쟁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반대 투쟁에서 이정미 대표가 보름 넘게 단식하며, 거리 집회로 당원을 동원하려고 한다.
이정미 대표는 7월 13일 심지어 민주노총 보건노조 파업 결의대회에도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참가해 지지 연설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단기간에 존재감 부진을 해소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니 노선 조정이 구심점 강화 효과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 노선의 산물들인 신진 정치인들의 반발을 사며 원심력이 커진 것이다. 반발의 동기는 정의당 간판을 달고 의원직을 유지하거나 획득할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이다.
좌파 전반의 부진
그런데 존재감 부진은 단지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된 민주노총 집행부의 진보대연합당 건설 제안도 각자도생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이는 체제의 복합 위기를 배경으로 한 정치 양극화에서 좌파가 왼쪽 축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주변화되고, 분열 행태까지 보이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래서 개혁 염원 대중에게 가시적 대안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가 강경 우익화 기조를 노골적으로 표방하고, 민주당 이재명 지도부가 이에 맞서 대여 강경 기조를 표방하면서 공식 정치에서 오히려 양당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좌파 정치 세력들의 존재감 없음이 더 강화됐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성공으로 좌파가 성장했지만, 문재인 정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해 개혁을 성취한다는 포퓰리즘 전략 때문에 개혁주의 좌파들은 수년간 소심하고 온건하게 행동했다.
특히 문재인의 개혁 배신에 대한 불만을 대변하기는커녕 그런 불만이 정부 자체에 대한 전면적 항의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려다 보니 투쟁이 파편화됐다.
게다가 미·중 제국주의 갈등 심화가 야기한 지정학적 위기와 경제 침체에서 비롯한 많은 첨예한 쟁점들에서 개혁주의 좌파는 위기의 깊이에 걸맞은 급진적 대안을 구축하길 회피했다.
이 때문에 지난 수년 동안 대중의 정치 의식이 좌경화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것이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좌파 전반이 부진했던 직접적 원인이다.
개혁주의 좌파는 윤석열 정부 들어선 뒤로도 안일한 실천을 해 왔다. 정의당 정치인들이 윤석열 퇴진 운동을 경멸적으로 비난한 것이 그 한 사례다. 그중 일부가 금태섭 중도신당에 접근하고 있다. 그에 반발한 일부는 더 분명한 야권연대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본질적으로, 문재인 정부 후반기부터 좌파에게 불리해진 정치 상황이 아직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개혁주의 노선이 이 상황을 자초한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 전가와 강경 우익화 행보에 맞선 전 계급적인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야 변화의 계기가 생길 수 있다. 선거주의적 조급함이 아니라 참을성을 갖고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전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