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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민주노총의 진보연합당 제안에 대해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에 맞서는 “투쟁의 힘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자고 강조했다.

“지긋지긋한 기득권 양당정치를 끝장내기 위해 우리가 나섭시다. 단결을 위해 차이를 극복합시다. 8월까지 치열한 토론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 직접 정치, 광장 정치를 실현해 나갑시다.”

민주노총 상임 집행부의 ‘노동 중심 진보대연합 정당’ 창당 안을 재차 제안한 것이다.

좌파 정당들이 “각개약진(분열) 방식으로 선거 대응하는 것으로는 대안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길에서 희망이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특정 정당만 지지할 수도 없으니 연합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기존 좌파 정당들이 선거(그리고 의회) 면에서나 투쟁 면에서나 그다지 충족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노동자 운동에 필요한 것은 계급 투쟁에 진심이고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 ⓒ이미진

그런데 민주노총 안에서 진보연합당 창당을 추진하는 세력은 진보당계 간부들이다. 연합 대상으로 거론된 4당(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 중 진보당만이 창당 안에 찬성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진보연합당 창당론은 진보당계가 노동조합 안에서 지금보다 기반을 더 확장한 정당을 만들려는 프로젝트이다. 즉, 민주노총의 상근간부층과 공식적이고 더 긴밀한 관계를 맺는 정당이다.

진보당계가 민주노총 의결 기구에서 이 안을 다수결로 관철시키지 않고 있는 것은 새 정당의 힘(세력)과 관련된 듯하다. 이 당이 안정되게 출범하려면 민주노총 상근간부층에 대한 설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상근간부층 내에선 좌파 정당들의 정치적 분화가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켰다고 보는 견해가 만만찮다. “[복수 정당들로의] 분열과 경쟁에 대한 냉소, 혐오, 패배주의와 무기력감의 확산으로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권영길 민주노총 초대위원장(이자 민주노동당 초대 당대표),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등이 진보연합당 안에 찬성하고 있다.

좌파 정당들의 득표력이 꽤 있는 울산과 창원 등 영남 노동벨트의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그런 기류가 읽힌다.

좌파적 개혁주의

지금 좌파 정당들의 취약함과 비교하면, 민주노총이 뒷받침하고 진보당계가 주도하는 진보연합당은 좌파적 지향성 면에서 조금은 더 나을 수 있다.

진보당은 다른 정당들, 특히 정의당과 비교해 택배노조·건설노조 등 노조 투쟁에 좀 더 적극적으로 연대해 왔고, 미국 제국주의와 윤석열 정부의 친미 외교 노선에 대해서도 정의당보다 비판적이다.

진보연합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존 진보정당들을 의회주의, 대리주의라고 비판하고 “직접 정치”와 “광장 정치”를 주장한다.

그러나 진보연합당이 표방하는 노동 중심성은 현장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노동조합(민주노총) 상근간부층 중심성이다.

노사 간 협상과 중재를 전담하는 노조 상근간부층은 실천에서 투쟁의 자기제한성을 드러낸다. 이들에 기반한 정당은 체제 내 개혁을 추구하는 개혁주의 정당일 수밖에 없다.

이런 자기제한성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동반 상승효과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조장하는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의 상대적 분리를 받아들이며 더 심화된다.

실천에서 이런 정치는 결국 선거에서 이기고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는 문제로 한정된다.

진보연합당이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으로 제안된 것도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이 정당의 “직접 정치”는 노조 상층간부층 출신자들이 선거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뜻하기 십상이다.

물론 노조 상근간부층이 현장 노동자들과 맺는 특별한 관계 때문에 그런 정당은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진지하게 노동을 향하지 않았던(최근에 그 방향을 조정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를 못 내고 있다) 정의당보다 조직 노동계급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층의 개혁주의적 성격 때문에 진보연합 정당은 좌파적이지만 결국은 체제 내 개혁에 머무르는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이 될 것이다.

특히,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어 개혁을 성취할 여지가 적어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선거적 성공을 거두는 즉시 그 정당의 좌파성도 스스로 제약할 공산이 있다.

경험 그리고 달라진 맥락

이런 정당을 노동자들이 경험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2000년대 민주노동당이 그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에 기반해 창당했고 강령에서 스탈린주의와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모두 극복하겠다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하지만 주요 계기마다 개혁주의 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한 것은 진일보였다. 독자적 노동자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민주노동당을 이미 경험했고, 10년 넘도록 복수 좌파 정당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새 진보연합당이 창당된다면 그것은 기존 좌파 정치 지형에 조금은 더 좌파적인 개혁주의 정당이 하나 추가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연합당의 창당을 이럭저럭 반길 만하지만 그 정당의 창당에 큰 기대감을 갖기도 어렵다. 촛불 운동 성공 이래 지난 6년 간의 경험과 최근의 경제와 제국주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지금 노동자 운동에 필요한 것은 계급 투쟁(계급 타협이 아니라)에 진심이고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