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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녹색정의당의 총선 부진 요인을 살펴보다

녹색정의당이 2012년 진보정의당 창당 이후 처음으로 원외 정당이 됐다. 보건 노동자들, 파리바게뜨 노동자들, 발전 노동자들, 한국GM 노동자 등의 절박한 지지 선언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녹색정의당의 강점이던 정당 득표가 4년 전 총선(270만 표)의 거의 5분의 1 수준(60만 표, 2.14퍼센트)으로 줄었다. 2년 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저조했던 득표(90만 표)에서 더 추락한 것이다. 그것만 유지했어도 1석은 건졌을 것이다.

심상정·여영국 전 정의당 대표들도 3위로 탈락했다. 두 곳 모두 지난 총선보다 투표자가 더 늘었는데, 득표는 수만 표 줄었다.

10여 년 동안, 선거에서 대표 좌파 정당으로 진보 염원층의 표를 독식해 온 녹색정의당의 추락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거연합정당 녹색정의당이 2월 3일 국회에서 ‘녹색정의당 창당대회’를 열고 있다 ⓒ출처 녹색정의당

이번엔 주류 양당의 ‘위성정당’ 설립을 이유로 대기가 어렵다. 득표 자체가 의석 확보 최소치에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국혁신당은 제3당으로 독자 출마했지만, 정당 비례에서 686만 표나 받아 12석을 얻었다. 윤석열 정부 심판을 위해 차선책이라도 선택하겠다는 표를 조국혁신당이 민주당과 양분한 것이다(민주당 756만여 표).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정의당·열린민주당·진보당 등이 얻은 표가 1400만 표가량이다. 녹색정의당은 대부분 조국혁신당에게 표를 빼앗긴 셈이다.

그런데 정의당이 민주당과 거리를 둬서 표를 잃었다는 일각의 평가는 맞지 않다.

정의당은 태생부터 민주당 개혁파와의 연립정부를 추구하는 노선을 추구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아직 개혁 염원층의 기대를 받고 있을 (처음 절반 임기) 때는 민주당과의 협력이 선거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이 환멸로 이어질 때도 민주당과의 공조를 지속하자 정의당은 지난 2년 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큰 추락을 겪고, 당세도 위축됐다. 이번 총선 지역구 출마자는 4년 전 75명에서 17명으로 줄었다.

한편, 윤석열 정부 2년간 생계비 위기의 고조, 친서방 외교로 인한 불안감, 정치적 반대파 탄압에 대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반사이익을 얻어 되살아났다. 조국혁신당은 물론이고 진보당도 이번 선거에선 민주당과 공조해 그 반사이익을 나눠가진 것이다.

(진보당이 민중전선체인 민주연합을 민주당과 결성한 것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진보당은 독자적 노동 기반이 있기 때문에 민주당에 일방 종속되진 않았겠지만, 전략적 공조의 체결 때문에 노동자 투쟁 지원과 반제국주의 방침에 크게 제약이 생길 것이다. 선거에서 득을 봤지만, 새로운 모순에 직면할 것이다.)

반면, 최근 2년 동안 정의당은 조급해져서 좌충우돌했다. 가령 몇몇 개혁입법 통과를 위해 민주당에 무비판적으로 공조했지만, 윤석열 퇴진 운동을 비아냥대고, 정적 제거용이 명백했던 이재명 체포동의안에 두 번이나 찬성했다.

요컨대, 녹색정의당의 추락은 민주당과의 거리 문제로 설명될 수 없다. 녹색정의당의 추락은 윤석열 정권 심판 (차선 또는 차악) 투표를 하려던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지에서 녹색정의당이 빠진 결과다. 왜 그렇게 됐을까?

계급투쟁

이번 총선에서도 좌파는 개혁 염원 대중에게 가시적 대안으로 보이지 않았다. 계급투쟁이 파편화돼 좌파가 주변화돼 있고, 대중의 정치의식이 좌경화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수동화돼 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심판 차선/차악 투표로 기운 이유다.

문제는 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 등 주요 개혁주의 좌파 단체들의 노선이 이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개혁주의 지도부들은 노동자 투쟁의 파편화를 조장하거나 방치했고, 다중 위기에 대응할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길 회피했다.

정의당 지도부의 정치와 실천은 이런 과정에 큰 책임을 지고 있다.

정의당은 주류 사회민주주의의 정치투쟁·경제투쟁 분업 논리에 충실해 ‘운동’과 ‘정치’를 예리하게 구별하는 엘리트주의적 정치를 실천해 왔다. 정치란 ‘함께 비를 맞는 것(투쟁과 연대)’이 아니라 ‘우산(개혁 입법)’을 쥐어주는 것이라는 식이다.

정치 활동의 주 무대가 국회와 언론 노출로 옮겨지면, 선거에서 표를 많이 얻어 선출직 공직자가 되고, 의회 안에서 협상과 정치적 중재를 잘 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 된다. 대중 투쟁(특히 노동계급의)은 부차적인 일이 되거나 심지어 거추장스러운 일이 된다.

기층에서 운동을 건설하는 것은 종종 상식과 충돌하며 참을성 있게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반면, 자본주의 선거에서 표 얻기는 언제나 상식에 부합해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모로 가든 개혁입법만 통과되면 장땡이라는 식이면 결국 결정적 키는 민주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때의 ‘현실정치’란 개혁 요구나 행동 수위를 민주당이 용인할 수준으로 제한하고 (민주당과의, 또는 때로 국힘 일부와의) 거래를 위한 책략을 부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민주당 개혁파가 아니라 정의당을 굳이 지지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 투쟁과의 관계

정의당이 노동자 투쟁의 유기적 일부가 되는 것을 회피한 결과는 노동계급의 생활상의 요구조차 제대로 대변하지 않게 된 것이다.

최근 정의당의 기후 정치는 유가인상, 금리와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생계비 위기에 빠진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유류세와 전기요금 인상을 감내하라고 훈계하는 것이었다.

생계비 저항을 정치화시켜서 언감생심 노동계급의 보편적 운동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2022년말 화물연대 투쟁에 당원들을 적극 동원해 연대하기는커녕 의원단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정의당이 지난해 국민의힘·민주당과 합의해 통과시킨 전세사기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자 공동대표 등이 정의당을 지지하며 입당했지만) 결코 개혁이라고 할 수 없었다.(당시 그 법에 기본소득당과 진보당은 반대했다.)

노동운동에 뿌리 내리기를 소홀히 해 왔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반윤석열 정서에도 정의당은 민감하지 않았다.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 사망 이후에조차 윤석열 퇴진 투쟁에 함께하지 않았다. 양회동 열사는 유서에서 민주당과 범진보 야당 대표들에게 윤석열 퇴진 투쟁을 호소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자신들이 노조 건립에 일조한 SPC그룹(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 회장 허영인의 노조 탈퇴 강요 혐의가 총선 기간에 쟁점이 됐는데도 (대변인 브리핑만 했을 뿐) 구속 촉구 대중 집회나 집중 유세 방식을 쓰지 않았다. 성평등과 기후 문제를 소재로 서울 마포 선거구에서 중앙당 집중 유세를 두 번이나 벌인 것과도 대조된다.

요컨대, 녹색정의당이 많은 노동자들의 신뢰를 잃은 것은 노동자 투쟁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 “한결같이 내 편인” 정당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이 가장 크게 표를 잃은 곳도 울산, 창원, 수도권의 노동자 밀집 주거지역에서다. 당을 대표하던 정치인들도 이곳들에서 수만 표를 잃고 낙선했다.

정의당은 노동조합 관료(고위 간부층) 안에서조차 기반이 축소돼 왔다.

최근 정의당은 노동중심성 회복을 말했지만, 관성 때문에 좌선회가 극도로 소폭이었고, 그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기존 노선의 수혜자였던 정의당 정치인들 일부(류호정, 박원석, 조성주, 배복주 등)가 그런 제한적 좌선회에 반발하다가 탈당해 흩어졌는데, 모두 정의당보다 오른쪽 정당들로 향했다. 당 지도자들의 이런 좀스러운 행태가 지지층 안에서 혼란과 불신을 낳고 있었는데도 심상정 전 대표 등 핵심 지도자들은 침묵했다.

결국 정의당 본체는 녹색당과 선거연합을 했다. 녹색정의당은 총선에서 기후정치와 노동정치를 부각시키겠다고 했다. 비례 후보 명단을 보면, 녹색당 몫 후보가 2번이고, 1번인 나순자 전 보건노조 위원장 등 1·3·4번을 노동운동 출신 후보들로 채웠다. 여러 친노동 공약들을 내놨다. 그러나 실천을 인상으로 대체하기가 통하지 않았다.

정의당은 2년 전 불거진 노동과 페미니즘 등을 둘러싼 정치적 정체성 논쟁을 얼버무리면서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흘려 보냈다 ⓒ출처 녹색정의당

젠더 갈등 유발형 페미니즘

정의당은 수 년간 젠더 갈등 유발형 페미니즘을 추수했는데, 이것은 노동자 운동 거리두기와 부정적 시너지를 일으키고, 계급투쟁의 파편화 조장에 일조했다.

노동계급 남녀의 단결 투쟁은커녕 여성 노동자들의 중요 현안이자 계급 문제인 임금 인상, 정규직화, 고용 안정, 임신중지권 등을 위한 투쟁에도 당은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정의당 페미니즘을 대표했던 류호정 전 의원, 장혜영 의원, 배복주 전 부대표, 오현주 전 대변인 등은 주로 미투 지지와 정치적 올바름, 피해자 중심주의에 불필요하리만큼 급진적으로 경도돼, 훈계나 하는 태도를 자주 드러냈다.(가끔은 우파가 그 과도함으로 인한 일방성과 허점을 이용했다.)

급진 페미니즘은 여성 차별을 남성 일반의 낙후한 의식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볼 뿐 아니라, 또한 남성이 여성 차별에서 득을 본다고 흔히 여긴다. 심지어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반면, 여성들은 계급과 좌우를 넘어 단결할 수 있다고 보는 (정체성) 정치로 흔히 이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그런 접근법은 여성 할당제를 늘려 국가와 정당의 고위직에 여성이 늘어나는 것을 대단한 진보로 여기고 매우 중시한다.

이런 방식이 분별력을 잃으면 심지어 우파(이준석)와의 연대에 이를 수도 있음을 류 전 의원, 배 전 부대표, 오 전 부대변인 등이 보여 줬다.

당 지지층 상당수의 부정적 인식, 당내 주요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의 탈당 등 속에서 정의당은 급진 페미니즘적 주장들을 누그러뜨렸었다. 그런데 여성계에서 이번 총선을 ‘백래시 총선’이라고 규정한 뒤로 급진 페미니즘적 주장이 선거운동에서 다시 부각됐다. 진정한 반성은 없었던 것이다.

근본적 사회 변화

정의당의 위기는 체제의 다중적 위기 심화에서 비롯한 정치 양극화 속에서 개혁주의가 겪는 모순을 보여 준다.

지배계급이 우경화하면서 협상과 중재로 개혁을 얻어내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개혁을 얻어내려면 노동자 투쟁은 더 커지고 보편화돼야 한다.

그런데 정의당이 추구한 예리한 정경 분업은 노동자들이 가진 잠재력(이윤을 멈출 수 있는 힘)을 정치 권력을 목표로 하는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이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형태 국가의 규칙에 충실한 결과다.

정의당 개혁주의도 노동자 투쟁을 한껏 고무하는 걸 스스로 제한하고, 한국 국가의 친서방 안보 노선을 위협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정의당 일각에선 진보당을 배제하고 노동당, 민주노총 일부와 함께 더 좌파적인 개혁주의 정당을 만드는 것을 고민하는 듯하다.

정치가 경제의 단순 반영물이 아니므로, 개혁을 제공할 경제적 여지가 크게 축소된다고 해서 개혁주의의 영향력이 자동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새 리더를 내세워 세력간 연합을 하면 지금의 정의당보다는 조금 더 좌파적인 개혁주의 정당을 만들 수 있고, 일정한 선거 지지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사회 변화의 전망에 대한 노선 문제를 회피할 순 없다.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 계급투쟁 중심성, 개혁을 쟁취할 효과적 방법, 노동계급과 피억압자 운동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개혁으로 충분한가, 정치 권력을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한 토론은 결국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체제 전환”이라는 모호한 기치 아래선 이런 물음이 흔히 회피될 것이다.

이런 쟁점은 변화 염원 대중에게 필요한 정당이 어떤 것인지 묻게 한다. 노동자 대중의 자주적 행동을 고무하고 서로 연결시키고 정치화시켜 근본적 변화에 앞장설 진정한 좌파 정당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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