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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증보
미국 등 서방이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에 불을 붙이다

후반부에서 예멘 상황에 대한 서술을 개정·증보했다. 2011년 당시의 부패한 예멘 대통령 살레를 격퇴한 것은 후티가 아니라 예멘에서의 대중 반란과 혁명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미국과 영국이 중동에서 더 광범한 전쟁을 촉발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보다도 더 끔찍한 제국주의적 살육을 벌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지난 1월 1일 월요일 영국 보수당 국방장관 그랜트 섑스는 영국이 예멘의 후티를 향한 공습 등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홍해에서는 화물선들이 후티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전쟁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150년 전 영국 제국의 살인마들과 마찬가지로, 섑스는 영국이 “항행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군함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섑스는 영국 군함이 12월 홍해에서 공격용 드론으로 의심되는 것을 격추시켰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는 추가 행동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12월 31일]에 미 해군은 후티 측 배 세 척을 파괴했고, 홍해에서 화물선에 오르려 하던 이들을 최소 10명 살해했다.

미군 등의 후티 공격은 끔찍한 대규모 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 ⓒ출처 미 해군

인근의 미군 군함에서 출동한 헬기가 작은 배들을 향해 발포했다. 그 배들이 화물선 ‘머스크 항저우’를 공격했다고 미국은 주장했다. 미국은 그 일대에서 선박을 운항하는 거대 해운회사들의 이윤을 지키려고 12월 국제 해상 작전을 개시했다.

후티가 행동에 나서고 있는 지역은 홍해와 인도양 사이에 있는 바브엘만데브다. 이 좁은 해협은 세계 석유 해운망에서 세 번째로 물동량이 많은 병목이다. 매일 600만 배럴 이상의 석유가 이곳을 지나고, 주되게 유럽을 향한다.

평균적인 배의 경우, 바브엘만데브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아프리카를 돌아서 가는 항로를 택할 때보다 9일 정도 단축된다. 더 저렴하기도 하다. 해운 전문가들은 짧은 항로를 택할 경우 운송비를 최소 15퍼센트 줄일 수 있다고 추산한다.

제국주의자들의 전쟁 위협도 후티를 겁먹게 하지 못했다. 후티의 지도자인 압둘말릭 바드룻딘 알후티는 예멘이 조금이라도 공격받으면 미 군함을 겨냥하겠다고 위협했다. 지난주 연설에서 알후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만약 미국이 사태를 고조시키고 우리 나라를 겨냥하는 아둔함을 실천할 경향을 보인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1월, 후티는 이스라엘이 소유하거나 운용 중인 선박이 홍해에 들어오면 모두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봉쇄된 가자지구로 이스라엘이 식량과 연료 반입을 허용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알후티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점령군이 잔혹한 봉쇄와 기아 사태를 이어 가고, 의약품이 민간인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만행을 벌이는 데서 미국이 “시온주의 지지자들”로서 능동적 구실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후티는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인 바 있다. 지난주 이스라엘은 시리아 알레포에 있는 이란 군사 거점에 공습을 퍼부었다. 또한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있는 헤즈볼라 거점들을 계속 공격하고 있다.

한편, 영국 외무장관 데이비드 캐머런은 서방 군대의 대변자가 되려고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그가 “지속가능한 휴전”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있다.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캐머런이 대변하는 것은 대량 학살이다.

후티가 싸우는 상대는 누구인가?

후티는 자이디파라고 불리는 예멘의 시아파 소수 교파 무슬림에서 비롯한 단체다. 후티라는 그들의 명칭은 그 운동의 창립자 후세인 알후티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단체는 1990년대에 당시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의 부패에 맞서기 위해 창립됐다.

비록 최근에 후티 지도부는 전술적으로 이란과 정치적·군사적 동맹을 맺었지만, 후티가 정치적 정통성을 내세우는 바탕에는 예멘 사회 깊숙이 내린 사회적·정치적 뿌리가 있다.

1962년 이전까지 북부 예멘은 시아파 이맘[이슬람 지도자]이 이끄는 자이드 왕국이 통치했지만, 1962년에 민족주의 장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후티 운동의 기원은 1980~1990년대에 그 자이드의 종교 전통을 국가의 후원을 받은 수니파 종교 지도자들과의 경쟁에서 지켜내던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 살레는 사우디아라비아 군대의 지원을 받아 2003년 후티 반군을 분쇄하려 했지만, 후티는 둘 모두를 물리쳤다. 그러나 2011년에 살레의 권위주의 정권을 타도한 것은 대중 반란이었다. 이 대중 반란이 패배한 것 때문에 2015년에 후티가 북부 예멘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수도 사나를 차지할 길이 열렸다.

2011년 예멘 혁명은, 튀니지·이집트에서 독재자를 타도하는 등 중동 전역에서 일렁인 반란의 물결에 직접 영향 받아 벌어졌다. 수십만 명이 대중 시위에 참여했고, 아덴 등 도시에서는 경제 핵심 부문의 작업장들에서 파업이 분출했다.

그러나 이 아래로부터의 운동은 충분히 강력하지 못했고, 그래서 예멘이 내전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예멘 지배계급 내 상이한 분파들이 국가 권력과 예멘의 자원을 둘러싸고 서로 쟁투에 나섰는데,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같은 지역 강국들의 지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를 지원했는데, 하디는 2011년 살레 퇴진 이후의 대통령으로서 서방 강대국들의 충실한 지원을 받고 있던 자였다.

살레 자신은 2015년에 수도 사나를 손에 넣으려고 [수도를 차지한] 후티와 손잡았다.

사우디와 UAE는 후티를 상대로 잔혹한 공중 폭격에 나섰고 수단의 신속지원군 수만 명을 용병으로 동원하며 하디의 통치력을 회복시키려 했다.

살레도, 사우디-UAE 연합도 그런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2년이 채 안 돼 옛 독재자[살레]는 다시 편을 바꿨고 후티와 결별했다. 한편, 사우디-UAE가 후티를 꺾으려고 벌인 전쟁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후티는 사나와 북부 예멘 대부분에 대한 군사적·정치적 지배를 확립했다.

그러나 이 서방이 지원한 전쟁에서 예멘인들은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유엔의 추산에 따르면 2022년 초까지 그 전쟁으로 37만 7000명이 사망하고 400만 명이 피란민이 됐다. ‘무기 거래 반대 캠페인’(CAAT)은 이렇게 지적한다. “영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나라의 하나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멘을 폭격 중인 연합군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가담하고 있는데, 영국은 UAE의 주요 무기 공급처이기도 합니다.”

예멘에서 쓰이는 무기 중 영국이 만든 것에는 타이푼 전투기와 토네이도 전투기, 페이브웨이 유도 폭탄, 브림스톤 미사일, 스톰 섀도 미사일 등이 있다고 ‘무기 거래 반대 캠페인’은 덧붙였다.

2015년 3월 폭격이 시작된 이래, 사우디 주도 연합군에 수출 허가가 난 무기의 가치는 97억 파운드[약 16조 원]로 공표됐다.

이 중 사우디아라비아로 간 것만 82억 파운드[14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무기 거래 반대 캠페인’은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한 무기의 실제 가치가 거의 270억 파운드[45조 원]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서방이 공세를 강화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계획과도 부합한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전선이 여럿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일곱 전선에서 공격받고 있다. 가자, 레바논, 시리아, 유다·사마리아[서안지구], 이라크, 예멘, 이란에서다.

“제한적 충돌의 시대는 끝났다. 수년간 우리는 제한적 충돌이 관리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움직여 왔는데, 이제 그런 현상은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여러 전장이 수렴하는 현상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끔찍한 대규모 전쟁이 지금 어른거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추동하는 세력은 미국과 영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