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의대 증원과 집단 휴진:
강경한 보수적 저항에 밀려 한발 한발 물러서는 윤석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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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로 예정됐던 대학병원 교수들의 집단 휴진은 동력을 크게 잃었다.
사회적 여론이 교수들에게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료 공백으로 인한 불편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의대 증원을 지지한다. 환자 단체들은 집단 휴진에 항의하는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대개 정부·병원 측과 전공의 사이 중간관리자로서, 의사 수 증가의 영향을 당장 받는 처지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정부와 전공의 양측 모두 물러설 조짐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무기한 전면 휴진 같은 행동이 운신의 폭을 좁힐 수 있다고 여겼을 법하다.
중소병의원 개원의들이 주축인 의협도 하루 휴진 이상의 행동은 벌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의협 회장 임현택은 합의되지 않은 ‘무기한 휴진’을 예고했다가 내부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결국 대정부 협상을 담당하기로 한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에서도 밀려났다.
그럼에도 지금의 교착 상태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의 압도 다수가 복귀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 반대 요구는 지지받을 수 없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설사 최종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하더라도 파업을 이어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득이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증원 규모는 이미 2000명에서 1500여 명으로 줄었다. 또, 사태 초기의 강경한 언사와 달리 정부는 이제 사실상 ‘2025년도 의대 정원’을 제외한 모든 문제에서 협의할 의지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슬금슬금 타협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관 조규홍은 전공의들에게 내렸던 행정처분을 중단한 데 이어 복귀 여부와 관계없이 그 행정처분 기간의 위반도 처벌하지 않겠다고 했다. ‘복귀’를 처벌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협박했지만 정작 복귀한 전공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의대 교수들이나 의협 측의 절충 시도도 거부하고 완강히 버티자 대학병원 교수들과 의협도 다시 ‘전공의·의대생의 요구를 수용하라’ 하며 전공의들의 뒤를 좇는 형국이다.
개원의들과 대학병원 교수들이 참여하는 올특위는 7월 26일 하루 휴진을 예고했다. 여름 휴가 철이라 일년 중 환자가 가장 적을 때다.
국회 청문회가 보여 준 것
6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는 큰 기대를 불러모으지는 못했지만 현 사태의 몇 가지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첫째, 정부는 환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기는커녕 공감도 못 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6월 20일까지 접수된 상담 건수만 3603건, 피해신고도 812건이나 됐다. 수술 지연이 475건, 진료 거절이 120건이나 됐고, 성남시에서는 수술 날짜를 잡지 못해 대기하던 환자가 6월 25일 사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 조규홍은 병원 문부터 열어야 한다는 지적에 “지금 닫은 병원이 없고요. 최소한의 진료를 다 하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답했다.
정부가 처음 대책이라고 내놓은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는 의료적 지원이 아니라 환자들이 의사들을 형사고소하도록 법률 지원을 해 주는 곳이었다. 환자들더러 자기를 진료해 온 의사를 하루아침에 고소하라니 실효성도 없고 오히려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반면, 대학병원 측에는 지금까지 1조 원 가까운 건강보험 재정을 지급해 손실을 벌충해 주고 있다.
둘째, 윤석열의 2000명 증원 발표는 총선을 염두에 둔 졸속 조처였다.
윤석열은 2월 6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오후에 구체적 계획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는 같은 날 오후 2시였지만 기자들은 3시에 브리핑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대기중이었다. 심지어 〈문화일보〉는 회의가 열리기 두 시간 전에 2000명 증원 계획을 확정적으로 보도했다. 이날 전까지 2000명이라는 숫자는 한 차례도 거론된 적이 없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개입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물음이 반복되자 조규홍은 당일 오전에 자신이 처음으로 2000명이라는 수를 결정해 대통령실에 통보하고 오후에 열린 보정심 회의에도 상정했다고 주장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다. 그 전까지 한 번도 언급이 없었던 이유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면서도 ‘당사자들과의 논의는 충분히 했다’고 한다.
‘과학적 결론’이라는 거창한 표현에 어울리지 않게 계산은 단순했다. 부족한 인원이 1만여 명인데, 의대가 6년제이니 5년 동안 2000명씩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증원에 필요한 재원 마련 계획도 아직 없다. ‘의대’ 증원이므로 교육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이다.
셋째, 의협 회장 임현택은 노동자 등 서민층의 불만과 요구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는 “멀쩡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시스템”을 정부가 망가뜨리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시장화된 의료 시스템에서 혜택을 잔뜩 누리는 수혜자들에게만 현 의료 시스템이 “멀쩡하다”고 여길 것이다.
민주당, 수가 인상이 대안?
민주당 의원들은 의대 증원을 지지하면서도 윤석열 정부의 졸속 추진을 꼬집는다.
그러면서 일부 의원은 건강보험 수가 불균형 해결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했다. “2010~2020년 사이에 건강보험 수가 정확도는 3퍼센트밖에 개선되지 않았다.”(김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수가 인상이라는 당근을 의사들에게 줘서 타협하자는 얘기다. 각 분과의 수가가 제로섬 게임처럼 결정되는 현행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대개 전체 수가가 인상되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보험료 인상의 명분으로 삼아 왔다.
건강보험 수가 인상이 의협 달래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의료 불균형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실제로 김윤 의원이 언급한 기간의 3분의 1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기였고, 이 시기 건강보험 보장성은 미미하게 상승한 반면, 건강보험료는 크게 인상됐다. 필수·지역 의료 불균형은 더 심화됐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파업에 참가한 의사를 진료 거부 혐의로 고발하고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임금노동자들인 전공의들의 파업을 처벌하는 것은 우리가 지지할 수 없는 문제다.
게다가 간호사 등 다른 병원노동자들이 쟁의에 나설 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막말 제조기’ 임현택
의협 회장 임현택은 ‘막말 제조기’로도 유명하다.
과거 강선우 민주당 의원이 의사협회의 성추행 의사 경징계를 비판하자, 임현택은 강선우 의원을 향해 “미친 여자”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창원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가 항구토제를 잘못 처방한 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상 유죄를 판결하자, 해당 판사(여성)를 지칭해 “이 여자 제정신이냐”고 막말을 해댔다. 임현택은 “교도소행 무릅쓸 중요한 환자 없다, 구토 환자에 어떤 약도 쓰지 말자”고도 말했다.
청문회에서 강선우 의원이 자신에게 사과할 생각 없냐고 압박하자 “유감”이라며 물러섰지만, 다른 막말들은 “표현의 자유”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표현의 자유는 노동자들과 천대받는 사람들이 지난한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지, 임현택 같은 시스템의 수혜자이자 극렬 우익 분자가 여성 차별적 막말을 할 자유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의사들이 환자들을 경멸조로 협박할 자유는 더더욱 아니다.
이런 자들일수록 자신의 기득권에 대한 비판은 참지 못한다. 〈조선일보〉조차 그를 ‘고소왕’이라고 부를 지경인데, 상당수가 의사들에 대한 비판을 입막음하려는 것이었다.
임현택은 올해 1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살해 미수 테러 당시 이재명 대표를 형사고발했는데, 테러 피해자가 살려고 응급 헬기를 탄 게 업무방해죄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