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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논란:
누가 더 시장 지향적인지 줄다리기하는 의·정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 파업이 8주째 이어지고 있다.

많은 대학병원이 일부 과와 저녁 시간대 응급실 진료를 제한하고 있다.

진료와 수술이 미뤄져 불안에 시달리던 환자와 보호자들은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를 내고 진료를 축소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의대 정원 확대를 찬성하는 여론은 여전히 높지만, 의료 공백 장기화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자 정부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전공의 투쟁이 완강하자 마침내 윤석열 정부는 증원 규모를 축소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의대 증원 자체를 반대하는 전공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박단 전공의 비대위원장은 윤석열과의 면담 뒤 실망스럽다는 메시지를 냈다.

심지어 신임 의사협회장 임현택은 내부의 적 운운하며 박단이 면담한 것조차 비난했다. 임현택은 정원을 오히려 500~1000명 줄여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강경파다.

임현택은 의협비대위와도 마찰을 빚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박단과 윤석열의 만남에 대해 “의미 있는 만남”이라고 평가했다.

의대생들도 집단 휴학을 이어 가고 있다. 이대로 집단 유급이 확정되면 내년 신입생은 지금의 2.6배나 되는 8000명이 함께 수업을 받아야 한다.

의대들은 수업 자료를 다운받기만 해도 출석으로 인정하는 등 편법을 쓰고 있지만 출석하는 학생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더한층의 의료 시장화가 우려된다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정부의 (‘필수의료 강화’ 대책에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의대 증원 방침을 지지한 까닭은 이것을 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건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굳이 통계를 살펴보지 않아도 소아과 앞에 늘어선 줄, 피로에 찌든 전공의와 교수들의 얼굴, 3분 진료, 응급실 뺑뺑이 소식 등 의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윤석열은 증원으로 늘어날 의사 인력을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게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는 증원 규모를 줄이려 한다. 의대 증원 발표가 순전히 총선용이었다는 의심을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4월 4일 대국민담화에서도 윤석열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정원을 늘리겠다는 것인지, 의료 ‘산업’ 육성을 위해 의사를 늘리겠다는 것인지 모호하게 말했다.

“의료산업 발전에 따라 바이오, 신약, 의료 기기 등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시장도 엄청나게 커질 것입니다. 의료서비스의 수출과 의료 바이오의 해외 시장 개척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더 크고,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반면, 지역·필수 의료 강화에 투입하겠다는 “막대한 재정”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지금껏 건강보험 재정에만 의존한 게 문제였다”지만 정작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는 정책을 펴 왔다. 추가 재정 투입이 아니라 건강보험을 약화시키고 시장 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얘기로 들리는 이유다.

의대 증원은 필요하지만, 윤석열의 의료 ‘개혁’에는 한 치의 기대도 걸어서는 안 된다.

의대 증원은 필요하지만, 윤석열의 의료 시장화는 필수의료 강화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다 ⓒ출처 대통령실

어부지리 노리는 기회주의자 민주당

한편, 민주당은 전공의 파업 내내 어부지리 얻겠다는 태도로 일관하더니 최근 윤석열 정부가 물러설 조짐을 보이자 의대 증원 규모 축소에 힘을 싣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이 대국민담화를 한 직후 SNS를 통해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한 집착부터 버리”라며, 총선 이후 “국회에 ‘(가칭)보건의료개혁을 위한 공론화 특위’를 구성하고 의료 공백과 혼란을 종식시키겠다”고 밝혔다.

중재자인 양하겠다는 것인데,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수준으로 증원 규모를 줄이려는 것인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의대 정원을 400명 늘리려다 전공의 파업에 부딪혀 좌절한 바 있다. 그 조처는 필수의료 공백을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공공의료 강화 계획도 거의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정부·여당은 국회 논의를 통해 결정하겠다며 물러섰는데, 당시 민주당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직후(현 21대 국회)였는데도 그랬다. 이후 국회에서 해당 논의는 전혀 진척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팬데믹 때도 공공병원 추가 증설 계획을 내놓지 않을 만큼 공공의료 강화에 인색했다.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노동계급에 이로운 진정한 의료 개혁을 이들에게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필수’의료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

필수의료와 비필수의료의 구분은 현재 자의적이다.

당연히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분만실 등은 꼭 필요하다. 팬데믹 등에 대처할 수 있는 감염내과, 예방의학, 산재 예방과 치료를 담당하는 산업의학도 필수의료다.

치과, 안과(백내장 등), 이비인후과(난청 등), 정형외과(관절염 등), 재활의학과 등도 필수적이고 특히 노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가임기 여성의 출산 관련 지원뿐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필수적인 부인과 진료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트랜스젠더에게 필수적인 의료 비용과 자본주의하에서 급증해 온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

심지어 피부과나 성형외과도 단순히 비필수 분야가 아니다. 피부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외상으로 인한 손상을 복원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의대 증원만으로 이 모든 분야의 공백이 메워질 리 없다. 그러나 정부 계획에는 이에 대한 지원 계획은 없거나 기껏해야 흔적 수준으로만 있다.

필수의료만 (자의적으로) 골라내 지원할 것이 아니라 의료 자체를 필수 서비스로 여겨 국가가 직접 운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