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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개원의 집단 휴진:
시장 의료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는지 보여 주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6월 17일부터 집단 휴진에 나섰다. 다른 빅5 병원 교수들도 순차적으로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한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수술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고, 이미 적지 않은 환자들의 진료 예약이 취소됐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계속 가동한다지만, 언제든 병원을 다시 찾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환자들의 불안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의사협회(의협)도 18일 집단 휴진에 나설 예정이다. 주로 경증 환자를 담당하는 동네 병·의원이지만, 매일 약을 먹거나 상처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 아이·노인이 아플까 봐 전전긍긍하는 보호자들은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의협 등은 의대 증원 재논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수정·보완, 전공의와 의대생에 대한 행정명령 소급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의대 증원은 필요한 일이다. 윤석열의 사이비 의료 개혁에 일말의 기대조차 없는 사람들도 이에 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의사협회는 자기 편한 대로 시장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가령 의협 회장이자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의사인 임현택은 소청과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소청과의 수가가 낮아 의사들이 기피하니 의사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뿐이라는 것이다. 의사 수를 줄이고 수가를 올려 수입을 대폭 늘리면 소청과 의사 부족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 10여 년 사이 소청과 의사 소득이 다른 의사보다 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저출생의 영향이 가장 크고,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소청과 전문의들은 더 많은 소득을 얻는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사들 사이의 소득 차이와 그로 인한 쏠림 현상은 시장에 내맡겨진 의료의 불평등과 불균등성을 보여 줄 뿐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나 의협이나 대중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모든 소청과 의사의 소득이 감소하는 것도 아니다. 대학병원 소청과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2억 원이 넘는 연봉으로도 소청과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병원들이 있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지금처럼 취업난과 실질소득 감소가 심각한 불황기에 필수 사회 서비스 부문에서 노동자 평균임금의 4~5배씩이나 주고도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 알 수 있다.(더 고되게 장기간 훈련을 받아야 하는 직업에 대한 보상 필요성을 감안해도 말이다.)

한국의 의사 소득은 OECD 중 최고 수준인 반면 의사 수는 꼴찌 수준이다. 의사들이 증원에 반대하며 수가 인상 운운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지금처럼 의료를 시장에 내맡겨서는 안 되고 민주적 계획과 배치,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임현택은 시장주의자로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요구하는 헌법소원도 제출한 바 있다. 규제는 거부하고 정부 지원은 늘리라고 요구하니 도무지 집단이기주의가 따로 없다.

건강보험

개원의들의 휴업이 하루 이상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자영업자인 개원의들은 노동계급의 일부인 전공의들과 달리 휴진이 곧바로 소득 감소로 직결된다. 의협 회원들은 의료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임현택의 말과 달리, 의사들이 의협을 중심으로 단결해 있는 것도 아니다. 박단 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임현택을 공개 비판하면서, 의사협회와 아무런 합의도 한 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의협이 16일에서야 내놓은 3대 요구도 전공의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전공의 처우 개선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고, 의대 증원에서도 절충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협 측의 요구는 전공의들과는 다른 개원의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의협의 3대 요구는 비급여 진료 제한 조처 폐지와 수가 인상을 목표로 삼는 듯하다.

노동계급의 일부인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더 강경하게 반대하는 것은 그중 다수가 아직 계급의식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를 상대로 이토록 단호하고 강경하게 싸울 수 있는 것도 그들의 계급적 조건 덕분이다.

윤석열 정부는 5월 16일 서울고등법원 판결 이후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등 유예된 행정처분을 집행하겠다고 협박했다.

명목상으로는 행정명령을 중단하겠다며 퇴로를 열어 주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정부 자신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정부가 업무유지명령과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등을 내린 상태에서 면허정지 처분을 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부의 강공을 보며 전공의들 사이에 동요가 없지는 않았던 듯하지만, 대다수는 투쟁을 이어 가기로 한 듯하다.

전공의들이 파업을 이어 나가자 개원의들과 대학병원 교수 일부도 ‘전공의들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투쟁에 가세하는 상황이다.

정부로서는 대부분의 의료 기관을 민간에 내맡겨 둔 상황에서 이들에게 할 수 있는 행정 조처에도 한계가 있다. 구상권 청구 등을 고려한다지만 즉각적인 효과는 별로 없고, 가뜩이나 의사가 부족한 마당에 병원 측이 그런 선택을 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진료 공백을 해소할 대안도 없으면서 제재 협박만 앞세운 정부는 대중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의사들의 저항이 더 커지고 길어지면 예전처럼 수가를 인상하(고 보험료도 인상하)는 방식으로 개원의들과 일부 전공의들을 회유하려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법원 판결도 남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노동계급 등 서민층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의료 시장화를 추구하는 한은 의사가 늘어나도 의료공백을 메우는 데에 명백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시장에 내맡겨진 의료는 노동계급 등 서민층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해 왔는데, 이제 그나마 있는 기능조차 정부의 사이비 ‘개혁’과 다수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에 속수무책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