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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의대 증원:
팬데믹 이후 새로운 이윤 축적 기회를 잡기 위한 시도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지 다섯 달이 지났다.

환자들의 고통은 어마어마하다. 수술이 크게 줄어 올해 6월 적십자사의 혈액 보유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퍼센트나 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환자들의 고통 경감보다 대형 병원들의 적자 해소에 맞춰져 있다.

빅5를 포함한 대학병원들은 지금까지 각각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1000억 원이 넘는 적자가 생겼다. 정부는 이 손해를 메우려고 지금까지 건강보험 재정만 1조 원 넘게 쏟아부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정작 의대 증원 규모를 애초 발표에서 4분의 1이나 줄였다. 내년 이후 증원 규모에 관해서는 의사들과 협의하겠다고 밝히는 등 추가 양보도 암시했다.

다만 정부와 전공의들의 강대강 대치는 한동안 더 이어질 듯하다.

정부는 7월 15일 자로 미복귀 전공의를 전부 사직 처리하고 9월에 새로 모집하라고 각 병원들에 지시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여전히 복귀를 거부했다. 9월에 모집에 응할 가능성도 작아 보인다.

전공의들이 강경하게 저항하는 이유는 누구나 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이토록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전통적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말이다. 국민의힘은 4년 전 문재인 정부 시절 의대 증원 400명도 “불요불급”하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단지 총선용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회 청문회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그랬다.

총선을 코앞에 둔 때 발표했다는 점에서 선거용이라는 지적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이 선거에서 누구의 지지를 얻고자 했는지가 중요하다.

자본주의 국가의 일상적 집행권을 맡고 있는 정부 수장으로서 윤석열은 대자본가들의 지지에 의존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데 압도적인 이해관계가 있다.

단지 표를 얻겠다는 생각으로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들을 추진하려 한 것이라면 적잖은 자본가들이 크게 우려했을 것이다. 재정 지출을 줄여 경쟁력을 높이겠다던 정부가 엄청난 지출을 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니 말이다. 예컨대 정부는 의대 증원으로 필요해진 국립대 의대 교수를 1000여 명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국내 대자본과 보수 언론은 대체로 이 정책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의대 증원이 설사 대규모 재정 지출을 수반할지라도 그럴 만한 투자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의 대자본가들은 의료 체계를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수준에 맞도록 재편할 것을 요구해 왔다 ⓒ출처 대통령실

사실 한국의 대자본은 적어도 1990년대부터는 한국 의료 시스템에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해 왔다. 훌쩍 성장한 자본의 규모에 비해 기존의 법체계 등이 낡은 족쇄로 작용한다고 여긴 것이다.

2000년대 초 삼성생명이 ‘민영건강보험의 현단계와 발전과제’에서 제시한 민간보험 활성화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 보고서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의료 영리화의 청사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 들어서는 덩치가 커진 IT산업 자본가들도 가세했다. 원격의료, 보건의료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각종 규제 폐지를 요구했다.

의사들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된 병의원 개설 권한도 손봐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영리병원 허용 정책이 그런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삼성바이오 등 제약산업의 대자본가들도 임상시험 규제 완화와 더불어 연구·개발에 참여할 의사 인력을 요구했다. 이들이 보기에 의사들의 수익이 지금처럼 높게 유지되는 것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인력 수급에 차질을 일으키고 있다고 여길 법하다.

자본가들은 의료비(수가) 책정의 합리성에 대해서도 줄곧 문제를 제기해 왔다. 처음 의료보험이 도입될 당시 만든 수가체계가 의사들에게 너무 큰 권한을 줬다는 문제의식이다. 당시에는 극도로 부족했던 의사들을 회유하기 위해 불가피했을지라도 말이다.

요컨대,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에 발맞춰 더 많은 시장이 형성되고 자본가들이 그 속에서 기회를 잡으려면 의료 부문에도 시장 논리가 더 철저하게 관철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이런 정책들은 의료비 폭등과 안전 규제 약화를 우려하는 좌파의 반대에 부딪혀 일부만 관철됐다.

의사들의 다수는 전혀 다른 이유로 그런 정책들 중 일부에 저항했지만 어쨌든 정책을 좌절시키는 데에 적지 않은 구실을 했다. 특히 대형병원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중소 개원의들은 경쟁을 격화시킬 시장주의적 조처들에 저항했다. 원격의료 전면 도입에 반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재앙이었지만, 자본가들은 새로운 백신이 보여 준 천문학적 이윤 획득 가능성과 비대면 진료 기회 확대, 인공지능, 의료관광 등에서 커다란 기회가 열렸다고 봤다.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삼은 한 보고서도 이 점을 강조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망산업을 조사한 결과, 바이오·헬스케어 분야가 유망하다는 응답이 31.9퍼센트를 차지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 2020년)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은 의사 공급을 늘려 의료 부문에서 시장 경쟁을 강화함으로써 한국 의료체계 ‘개혁’을 추진하려 하는 듯하다. 의대 증원은 자본가들뿐 아니라 의사 부족으로 고통받아 온 광범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계산했을 법하다.

그리고 의료 부문 내 시장 경쟁 강화는 의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거나 서민층 진료에 만족하거나, 연구·개발 분야로 진출하게 하는 등 분화 압력을 가할 것이다.

“전체적인 의사들의 소득은 지금보다 절대 줄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의료산업 발전에 따라 바이오, 신약, 의료 기기 등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시장도 엄청나게 커질 것입니다. 의료서비스의 수출과 의료 바이오의 해외 시장 개척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더 크고,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윤석열, 4월 1일 대국민담화)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자본가들을 위한 윤석열의 의대 증원은 의료 공백을 충분히 해소하지도 못하고 새로운 문제들을 많이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이 의대 증원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의사 증원은 노동자 등 서민층 환자와 보호자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진료를 받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데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어느 정도 실현될 것인지는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에 달려있을 것이다. 새로운 문제들이 낳는 폐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도 마찬가지다.

전공의들은 어떻게 버티나?

노동자는 정의상 ‘생계를 유지하려면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전공의들은 노동계급의 일부이지만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기간이 특별히 긴 것 같다. 전공의 대부분의 연령대는 아직 부양가족이 없고, 일부 전공의 부모들이 이번 사태 초기부터 목소리를 내 온 것에서 보듯 학생처럼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도 상대적 고소득층인 경우가 많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대물림되는 입시 제도 탓이 크다. 2020년 현재 전국 의대생의 소득 상위 가정 소속 비율(소득분위 8~10)이 전국 대학 평균(36.5퍼센트)보다 높은 62퍼센트로 알려졌다.

신용제도의 도움도 있다. 은행들은 이들의 미래 소득이 상대적으로 보장돼 있다고 여겨 대출에 관대하다. 졸업 이전에도 3000만 원가량의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고 전공의들은 그 이상이다. 이번 사태 초기에 정부가 이를 틀어막으려 한 듯하지만, 아직은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들이 전공의들의 계급적 지위를 객관적으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의식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 상태가 영영 지속되리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