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독재자를 퇴진시켰지만 핵심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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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학생 시위대가 커다란 승리를 거뒀다. 총리 셰이크 하시나가 5일 월요일에 사퇴하고 헬리콥터를 타고 인도로 도망간 것이다.
통행금지령을 무시하고 거리에서 군경과의 유혈 전투를 준비 중이던 수만 명은 총리 퇴진 소식을 아주 기쁘게 맞이했다.
경찰과 병사들은 가장 최근 학살이 자행된 4일 일요일 전에도 학생 시위대 수백 명을 살해했고, 4일에는 사망자가 100명 더 늘었다.
그런 만큼 총리가 달아났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우렁차게 환호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위 참가자 타우피쿠르 라만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학생들의 승리이자 민중의 승리입니다. 한참 만에 독재 정권에서 벗어나서 행복합니다.”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결국 그 분노는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의기양양한 시위대는 수도 다카에 있는 하시나의 사저로 몰려가 내부 물건들을 손에 닿는 대로 부쉈다.
일부는 하시나의 사치스러운 가구를 거리로 끌고 나와 사진을 찍었고, 또 다른 이들은 하시나의 사리[방글라데시 등지의 여성 의상]를 입었다. 일부 시위대는 독재자의 특별한 닭들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하시나가 이끌던 아와미연맹 정부의 지도자들을 포함해 그의 동료들의 집과 사무실도 마찬가지로 약탈당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시위대는 하시나의 금융 자문가의 집에도 들이닥쳤다. 그는 하시나 일당이 방글라데시를 약탈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도록 도왔다.
그 영상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엇이든 가져가세요. 모두 가져가세요. … 훌륭한 일을 하는 겁니다. 아주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월요일 저녁이 되자 군부와, 오랫동안 억압받은 야당 방글라데시국민당(BNP)이 회담을 갖고 임시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했다.
거리 운동과 전국적 불안정이 계속될까 봐 두려웠던 이들은 재빨리 운동에 양보했다. 군부는 석 달 안에 자유 선거를 실시하고, 또 체포된 시위대를 모두 석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대가로 학생 지도자들은 시민 불복종을 멈출 권한을 달라는 군부의 요구에 동의했다. 군부가 BNP 의장 칼레다 지아를 석방하기로 합의하자, BNP도 군부의 요구에 동의했다.
그러나 화요일 오후가 되도록 군부는 소수의 시위대만 풀어 줬고, 석방되지 않은 활동가들의 가족과 동지들은 그들이 심각하게 고문당했을지 모른다고 불안해 하고 있다.
석방 지연은 지금이 반정부 운동에게 가장 위험한 때라는 것을 보여 주는 조짐이다.
군부는 거리 운동이 잦아들고 학생들이 거리를 떠나 다시 문을 연 대학가로 돌아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 된다면 군부에 가해지는 압력도 완화될 것이다. 그러면 군부는 약속한 선거를 계속 연기해도 된다고 여기게 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아와미연맹은 수익성 좋은 정부 계약과 부패 거래로 장성들의 배를 채워 줬다. 또, 군인들을 위해 정부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UN “평화유지군” 임무를 찾아다녔는데, 여기에 참가하면 짭짤한 임금과 해외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수년 동안 방글라데시 경제 성장률이 평균 6퍼센트를 웃돌았기에 정부는 돈으로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키울 재력이 있었다.
그런 부 중에서 빈민과 중간계급의 수중에 들어간 것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그들은 수년 동안 생활비 위기를 감내해야만 했다.
군부는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려고 노심초사하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새로 수립될 정부에 자신들 몫을 요구할 수도 있고, 어쩌면 민주주의 자체를 내던지려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유일한 대비책은 학생 운동이 계속해서 동원 상태를 유지하고, 공장과 항만의 노동자들을 참가시키기 위해 요구를 확대하는 것이다.
자유 선거 실시는 시작일 뿐이다. 인구 1억 7000만 명인 방글라데시에서 노동자와 빈민은 상층의 약탈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운영되는 사회를 새로 건설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