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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반정부 시위 배후가 미국이라는 주장은 조잡한 음모론

8월 5일 방글라데시 총리 셰이크 하시나가 사퇴하고 헬리콥터를 타고 인도로 도망가면서, 수많은 방글라데시 민중이 기뻐했다.

그런데 하시나는 자신을 쫓아낸 시위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가 [벵골만의 방글라데시 섬인] 세인트 마틴 섬과 벵골만을 미국에 넘겼다면 권좌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세인트 마틴 섬을 미국 공군 기지로 넘기지 않자 미국이 배후에서 자신의 축출을 추진했다는 주장이다.

총리 하시나의 퇴진을 기뻐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 ⓒ출처 Nahid Sultan / Wikicommons

그러나 하시나의 ‘미국 배후론’은 음모론일 뿐이다. 거리로 쏟아진 그 수많은 민중은 미국 대사관이나 정보기관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간 누적된 불만을 스스로 터뜨린 것이었다.

지난 20년간 방글라데시 경제는 연평균 6퍼센트씩 성장해 왔다. 하지만 그 과실은 노동자와 서민층 다수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최근 수년간 생계비 위기로 고통받았다.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빈곤층이 크게 증대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하시나 정부는 수출 위주의 성장 전략을 유지하며, 간접세 비중을 늘리고 법인세 인하와 부자 감세를 단행해 민중의 고통과 불만을 키웠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번 시위 전부터 생계비 위기에 대한 민중의 불만을 강경하게 단속해 왔다. 파업을 탄압하고 반정부 활동가 수만 명을 투옥했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 등 서민이 학생들이 주도한 이번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 것이다.

“색깔 혁명?”

그렇지만 반미주의 좌파 언론 〈민플러스〉는 하시나의 주장을 지지한다. 8월 12일 〈민플러스〉는 러시아 국영 통신 〈스푸트니크〉 보도 등을 인용해 반정부 시위를 “미국 대사관과 소로스 NGO의 흔한 갱단이 조직한 매수 시위를 이용한 고전적인 색깔 혁명”이라고 비난했다.

하시나 퇴진 이후 “미국의 사랑을 받고 있는” 무함마드 유누스가 임시 정부 지도자가 돼, 나토가 세인트 마틴 섬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전에도 〈민플러스〉를 비롯한 반미주의 좌파들은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2019년 홍콩 항쟁, 2021년 미얀마 쿠데타에 저항한 대중 항쟁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 나라들의 독재 정부들을 ‘반제국주의’ 세력으로 오해해서다. 서방 제국주의와 경쟁 관계에 있는 국가라면, 그 국가의 권력자들이 아무리 부패하고 억압적이고 착취적이어도, 그에 항의하는 노동계급 대중보다 진보적인 구실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조야한 흑백 논리이자 엘리트주의적 음모론이다. 대중 자신의 경험과 의식적인 활동, 사회세력들 간의 관계와 맥락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최근 수년간 하시나 정부는 방글라데시의 부정부패와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 바이든 정부와 불편한 관계이긴 했다.

그러나 〈민플러스〉가 보는 것과는 달리, 그것이 그림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런 불협화음 속에도 안보 협정 체결을 논의하는 등 미국과 방글라데시의 외교 관계는 유지되고 있었다.

8월 15일 〈워싱턴 포스트〉는 1년 전 하시나를 지지하는 인도 모디 정부가 하시나 정부에 대한 압박을 멈춰 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하시나가 권력을 잃으면 방글라데시에서 인도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이슬람주의 운동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결국 바이든 정부는 방글라데시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면서 하시나 정부에 대한 비판을 상당히 완화하고 추가 제재 위협을 보류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대적하는 파트너인 인도의 요청을 방글라데시 인권 향상보다 중시한 것이다.

그래서, 방글라데시에서 근무했던 미국의 한 전직 외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뉴델리와 워싱턴은 방글라데시 국민과 그들의 민주적 열망을 편들지 않음으로써 방글라데시를 잘못 이해했음을 인정하고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워싱턴 포스트〉 8월 15일 자)

지난 2월 안보 협력을 위해 미국 외교 사절단을 만난 하시나 정부의 외무장관(가운데 남성) ⓒ출처 주방글라데시 미국 대사관 (페이스북)

무엇보다, 방글라데시 반정부 항쟁을 색깔 혁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의 발로다. 수백만 대중을 서방 정보기관과 언론의 선동에 놀아나는 사람들로 여길 뿐, 그들이 투쟁 과정에서 자기 조직과 의식을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시나는 소수의 음모가 아니라, 대통령 관저 앞까지 몰려간 거대한 대중 운동에 의해 축출된 것이다. 현지 좌파 활동가와 노동자들이 이 시위를 지지하고 동참했다.

군부는 거리 운동이 지속되고 더 급진화될 것이 두려운 나머지 하시나를 퇴진시키고 서둘러 정치적 양보를 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 임시 정부를 이끄는 유누스는 군부 등 기존 권력자들과 거리 시위를 이끈 민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다.

방글라데시 반정부 시위는 진정한 변화를 이룰 가능성을 힐끗 보여 준다. 가령 경찰이 도망가자, 학생과 지역사회 단체들이 민주적 조직을 꾸려서 교통과 치안을 맡고 있다.

〈민플러스〉와 같은 관점은 이렇게 대중 자신의 투쟁이 창조한 가능성을 무시하기 쉽다.

방글라데시에서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가 쟁취되기를 바란다면, 좌파는 방글라데시 학생과 민중의 저항을 지지하고 방글라데시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위선을 폭로해야 한다.


방글라데시의 ‘질서’ 회복을 바라는 주변 강대국들

방글라데시는 미국, 중국, 인도 등이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쟁투를 벌이는 국가 중 한 곳이다. 하시나는 자신이 이런 쟁투의 부당한 희생양이라고 선전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 한다.

인도에게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과의 경쟁과 중국의 남아시아 진출 견제에 꼭 필요한 국가이다. 그래서 인도 모디 정부는 하시나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이어 왔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방글라데시에 많은 대출을 제공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 7월 하시나는 시진핑을 만나 중국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기도 했다. 하시나는 라이벌인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군사적·경제적 이익을 챙기려 해 왔다.

중국·인도·미국은 (하시나 집권 시절에도 그랬듯이) 하시나가 도망간 방글라데시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세 국가 모두 중요 국가기구가 붕괴된 방글라데시에서 기성 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라며, 이후 상황이 자국에 불리하지 않도록 대비하고자 할 뿐이다.

하시나가 물러난 다음 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조속히 사회 안정이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인도 모디 정부도 방글라데시의 “안정”을 바란다고 밝히며, 방글라데시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독재자가 물러났어도 방글라데시에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수두룩하다. 이 와중에 방글라데시의 ‘질서 회복’은 민중 항쟁을 종식시키고 부패하고 억압적인 엘리트들이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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