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안드레아스 말름, 두번째테제, 2025):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화석연료 제국”에 맞선 투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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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서방은 인종학살 국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기후 위기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좌파는 민간인 납치·살해를 이유로 팔레스타인 무장 투쟁 지지를 삼가야 할까?
안드레아스 말름의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2024년 4월에 한 연설과 후속 논쟁을 엮은 것이다)는 이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말름은 기후 운동 내 저명 인사다. 그의 책 《화석 자본》은 이 체제가 화석연료에 중독된 것은 자본가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보여 줘 기후 운동 내 급진파를 크게 고무한 바 있다.
이 책에서 말름은 “화석 자본”이 “화석 제국”으로 탈바꿈하면서 화석연료의 세계화를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식민화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1917년과 그 이후, 영국의 팔레스타인 점령은 중동의 석유 자원을 이용해 중동을 화석 자본의 기초로 변형시키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1947년과 그 이후에 서방이 신생 시온주의 국가를 지원한 것은 그 질서를 완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1967년과 그 이후에 시온주의 국가를 지원한 것은 그 질서를 방어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파괴해 온 단계들은 곧 지구를 파괴해 온 단계들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말름은 미국 등 서방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로비 때문이라는 협소한 주장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이스라엘 로비가 아니라, 미국 등 서방이 화석연료와 관련된 이해관계를 추구한 것이 핵심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부분 하나는, 서방의 화석연료 갈망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1917년 밸푸어 선언보다 훨씬 더 이른 184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1840년은 영국 해군이 처음으로 증기력을 군함에 도입한 해다. 화석연료에 의지한 증기 함정은 종래의 범선보다 탁월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당시 영국 해군이 증기 함정을 이용해 쑥대밭으로 만든 첫 도시는 다름 아닌 역사적 팔레스타인에 위치한 도시 아크레였다.
말름은 그 사건이 갖는 중요성이 결코 작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증기력이 영국 내부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절대로 기후에 흔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증기력 세계화 … 의 핵심은 전쟁에 증기 함정을 투입한 것이었다.”
증기 함정의 위력을 확인한 열강은 앞다퉈 화석연료를 손에 넣으려 했다. 이것이 바로 “화석 자본”이 영국을 넘어 “화석 제국”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었다.
한편, 말름은 같은 시기 영국의 일부 지배자들 사이에서 일부 유대인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하는 구상이 처음 거론됐음을 보여 준다. 수십 년 동안 만만찮게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화석연료의 관련성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먼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이런 주장을 말름은 흥미롭게 풀어낸다.
2023년 10월 7일
그러나 말름의 주장이 서방 좌파들 사이에서 적잖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말름이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 단체들과 그들의 2023년 10월 7일 공격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이런 입장은 본지의 입장과 일치한다.)
“10월 7일에 사망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면 이스라엘의 대응이 지금보다 덜 격렬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을 잘 모르는 것이다.”
“나는 좌파가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에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그 투쟁을 선명하게 지지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서구의 진정한 불명예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크게 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지지하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흔히 비난받는 하마스 등 무장 투쟁 조직들의 이스라엘 민간인 납치·살해 문제에 대해 말름은 정면 돌파한다. 우선, 이스라엘이 정착민 식민주의 프로젝트라고 규정짓는다. 그리고 그런 조건 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해방 투쟁을 수행했던 넬슨 만델라의 말을 인용해, “군사적 투쟁에 착수한다는 결정의 불가피한 결과”로 민간인 살해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설득한다.
그는 하마스를 광신도 집단쯤으로 여기는 좌파를 향해 “공포와 환상이 부추긴 심리적 착각”에서 깨어나라고 일침을 놓는다. 그는 하마스에 대한 만만찮은 연구들을 소개하며, “하마스의 투쟁은 종교적인 영역에서 정치적인 영역으로 급격하게 이행”해 왔음을 보인다. 비종교적 저항 단체보다 열등하다고 여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말름은 ‘이스라엘이 잔혹하게 대응할 것이 익히 예상됐으므로 10월 7일 공격은 실수였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펴는 질베르 아슈카르의 글이 국내에서도 번역·출판된 바 있다. 그에 대해 말름은 이렇게 반박한다.
“이와 동일한 논리대로라면 파리 코뮌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 또한 볼셰비키는 권력을 장악하면 안 됐다. … 또한 이집트 사람들이 호스니 무바라크의 통치에 그냥 굴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지배를 유지하려는 광란의 시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마스 공격 문제는 국내에서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분열시킨 핵심 쟁점이었다. 하마스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일명 팔연사)’ 운동의 참가자들은 말름의 메시지가 반가울 것이다.
이 책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말름은 팔레스타인해방민중전선(PFLP)을 반복적으로 추켜세운다. 그 탓에 실제로는 주변적인 PFLP의 영향력을 과장한다.
말름은 PFLP가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을 중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PFLP의 ‘마르크스주의’는 마오쩌둥주의이다. 그래서 그들은 중동의 이러저러한 “진보적” 지배자들과 자본가들을 동맹으로 여기고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그에 종속시켜 왔다. 또한 PFLP는 부패한 PLO의 자금에 의존해 온 탓에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등을 돌렸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그저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저항을 지지하는 것이 지구를 파괴하는 이 체제에 맞서는 것과 연결돼 있다고 말름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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