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해방을! ─ “무슨 수를 써서라도”라고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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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지배에 맞선 저항은 폭력을 수반한다.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가 본성적으로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종차별적 테러 국가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일체의 죽음과 공포, 파괴, 그 모든 것의 뿌리는 이스라엘의 폭력적 점령과 강탈에 있다.
그리고 이는 팔레스타인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폭력이 뒤따랐다.
식민 점령이란 점령국이 자신의 지배를 강제하고, 자원을 강탈하고, 식민국 사람들을 끔찍한 불평등과 공포 정치 하에 두는 것이다.
인도에서 영국의 식민 지배 탓에 1770~1943년 사이 여러 차례 대기근으로 48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도 그런 폭력의 한 형태였다. 아일랜드에서도 영국이 조장한 기근 때문에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과 영국의 폭력적 식민 강점이 원주민을 아예 절멸시킨 경우도 있었다. 유럽 국가들이 탐욕과 지배를 위해 아프리카를 분할하고 수탈한 것도 폭력적 식민 점령의 사례다.
그런 폭력에 직면해,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폭력으로 되갚았다. 하지만 저항 세력의 폭력은 제국주의자들의 학살에 견주면 새 발의 피였다.
제국주의에 맞서는 이들의 폭력은, 고문과 살해로 점철된 체제에서 사회를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따라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폭력은 억압하는 자들의 폭력과 전혀 같지 않다.
노예주를 살해하고, 노예주의 집을 불태우고, 어쩌면 노예주의 “민간인” 가족과 하인들까지 살해하는 노예의 행위는 완전히 정당하다.
사상 처음으로 가자지구의 천장 없는 감옥을 무너뜨린 팔레스타인들은 그 감옥을 지키던 시오니스트와 제국주의자들에 맞선 해방 투쟁에 참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난
하지만 억압받는 사람들이 체제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반격할 때면, 그들을 향해 비판과 도덕적 비난이 쏟아졌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항은 어떤 경우에도 평화적이어야지 유혈이 동반돼선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억압하는 자들의 폭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억압받는 사람들이 이런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왜 억압받는 사람들은, 억압하는 자들이 내키는 대로 휘두르는 폭력을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가? 프랑스가 1830년에 알제리를 침공해 알제리의 존엄을 학살과 강간으로 짓밟을 때 알제리인들은 계속 평화적으로 있어야 했을까?
프랑스인들은 30년 동안 알제리인 300만 명을 살해했다. 1951년까지 프랑스 군인 전사자는 고작 3336명에 불과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식민지 해방 운동이 성장해 1945년에 식민 점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을 때, 프랑스 당국은 [알제리 북동부 도시] 세티프에서 약 4만 명을 살해했다.
이 참상 이후 무장 저항이 시작됐고, 9년 후에는 알제리 독립 전쟁을 촉발했다.
독립 투쟁 단체 알제리해방전선(FLN)은 프랑스 국가와 중간계급 정착민 ‘피에 누아르’에 속한 군인과 민간인 모두를 공격했다.
프랑스와 연관된 사람은 모조리 공격받았다. 프랑스가 고문, 폭격, 네이팜탄 투하로 폭력의 강도를 높이면서 더 많은 알제리인들이 독립 투사들의 편을 들었다.
알제리해방전선과 그 지지자들은 폭력 혁명을 옹호했다. 독립 투사 프란츠 파농은 식민 사회가 전적으로 폭력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라고 묘사했다.
파농은 이렇게 썼다. “식민 점령은 이성이 있는 기구가 아니다. 식민 점령의 본성은 폭력에 있고, 이를 무릎 꿇릴 방법은 오직 더 큰 폭력뿐이다.”
우리는 승리를 쟁취할 수단이 “오직 더 큰 폭력뿐”이라는 대목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봉기에서 조직 노동자, 파업, 노동자 민병대의 구실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식민 점령의 본질에 대한 파농의 지적은 옳았다.
알제리해방전선의 무작위 습격, 총격, 폭탄 공격에 프랑스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955년 필립빌[알제리 북동부 항구 도시 스키크다의 옛 이름]에서 유럽인 정착민 ‘피에 누아르’를 학살한 일은 알제리해방전선이 군인도 정부 기관도 아닌 대상을 상대로 전개한 첫 대규모 공격이었다. 이때 정착민은 123명이 살해됐고 이후 프랑스는 알제리인 1273명을 살해했다.
1956년이 되면 알제리에 프랑스군 50만 명이 주둔했다. 알제리해방전선 병력은 2만 명이었고 무기도 적었다.
1956년 6월 프랑스가 알제에서 알제리해방전선 투사 두 명을 단두대에서 처형하자 그 보복으로 알제리해방전선은 나흘 동안 유럽인 49명을 거리에서 사살했다.
이 모든 일들은 알제리인들의 정당한 투쟁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 대다수 사람은 이것이 정당한 투쟁이었다고 인정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도 똑같이 대우해야 마땅하다.
마우마우단
중요한 사례들은 더 많이 있다. 1888~1895년 영국군이 케냐를 침공해 동아프리카 보호령을 수립했다. 1920년에 영국은 이를 식민지로 전환했다. 영국은 비옥한 구릉지 700만 에이커[대략 서울, 경기, 강원도를 합친 면적]를 차지하고 그 산출물로 부를 축재했다.
1952년에 마우마우단, 일명 ‘케냐의 토지와 자유 군대’가 정착민들을 상대로 전투를 개시했다. 마우마우단은 피억압인들을 대변하며 부상하던 정치 운동의 군사 부문이었다.
마우마우단 게릴라는 임시방편으로 만든 무기와 탈취한 무기를 들고 야음을 틈타 공격을 벌였다. 마우마우단은 1952년 10월 첫 번째 살상에 성공했다.
인종차별적 영국 지배자들은 마우마우단을 야만인 무리로 여겼지 자신들의 지배에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독립 운동으로 여기지 않았다.
영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동자라며 180명을 체포했다.
인종차별적인 영국인들은 마우마우단의 민간인 공격을 내세워 그들의 투쟁을 인간 이하의 것으로 폄훼했다. 당시 영국이 적대 세력을 가리켜 사용했던 표현은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일컬은] “인간 짐승”과 유사했다.
이후 18개월 만에 영국은 100만 명 넘는 키쿠유 부족민을 참호와 철조망으로 둘러싼 ‘보호구역’으로 몰아넣었다.
도합 32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마우마우단 용의자 약 1090명이 사형당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채찍질, 불고문, 성폭행, 거세, 전기 고문을 당했다.
케냐 식민 점령은 1963년 12월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마우마우단의 저항은 식민 점령자들을 뼛속까지 떨게 만들었다.
무조건적인, 그러나 무비판적이지는 않은
혁명가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억압하는 자들에 맞서는 저항을 언제나 지지해야 한다.
제국주의 식민 지배가 자행하는 폭력에 맞서 그 희생자들이 용맹하게 저항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굴하지 않았고 해방을 위해 투쟁할 주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그런 이들을 지지하며 취하는 태도는 “무조건적인, 그러나 무비판적이지는 않은 지지”로 요약된다.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계급 정치, 여성·성소수자 권리 등 많은 사안에서 하마스와 이견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마스가 그런 사안에서 사회주의적 입장을 채택해야만 시오니즘과 제국주의에 맞선 하마스의 투쟁을 지지하겠다는 식으로 조건을 걸지 않는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언제 어디서 저항을 벌이든 그 저항을 지지하고, 설령 그들이 다른 쟁점에서 우리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 해도 지지한다. 이로부터 한 발짝이라도 후퇴하는 다른 모든 입장은 친제국주의로 미끄러지는 것이다.
오늘날 [서방의] 상당수 좌파들은 하마스가 “후진적”이라거나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저항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정확하게 이와 똑같은 주장을 1916년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이 영국 식민 지배에 맞서 들고 일어났을 때 접했다.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은 무장 투쟁을 벌였고, 무장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종교의 영향과 계급 분단을 흐리는 민족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하지만 레닌은 이렇게 지적했다. “식민지와 유럽에서 소국들의 반란 없이, 오만 가지 편견을 가진 프티부르주아 부위의 혁명적 분출 없이 사회 혁명이 가능하다고 여긴다면 이는 사회 혁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대로라면, 양편 군대가 늘어서서는 한쪽 군대는 ‘우리는 사회주의 지지한다’고 하고 다른쪽 군대는 ‘우리는 제국주의 지지한다’고 하는 것, 그런 것이 사회 혁명이라는 것이다!
“‘순수한’ 사회 혁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생전에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혁명이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혁명을 떠드는 것이다.”
우리는 반제국주의 항쟁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지금의 몇몇 상황처럼 그러기 쉽지 않을 때조차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 또한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지지 분위기 일변도일 때조차도 비판을 삼가지 않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넬슨 만델라와 아프리카국민회의(ANC)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조차, ANC의 다계급 연합 정치가 재앙을 낳을 것임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의 비판은 회색지대에 서서 훈계하는 관찰자들의 비판과는 다르다. 우리가 비판을 제기하는 이유는, 저항 세력이 제국주의와 이를 낳는 자본주의에 맞서 진정한 승리를 거두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같은 국가들이 휘두르는 제국주의 폭력을 타도하려면 군사적 저항이나 게릴라 전술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폭력에 뿌리내린 체제를 박살낼 더 폭넓은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전략의 핵심에는 계급 투쟁이 있어야 한다.
저항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시켜, 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잔혹함과 폭력을 낳는 체제를 뒤엎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변화를 쟁취할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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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의 저항을 좌고우면 말고 지지해야 한다
성명
하마스 지도자 야흐야 신와르 피살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서평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현대의 혁명적 고전 반열에 들 반제국주의 저작
8월 3일 서울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행진:
이스라엘의 학살과 특히 암살 테러에 분노하다
—
저항은 굽힘 없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12:
착취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자기방어 권리를 지지하는 이유
팔레스타인 무장저항이 이스라엘 내각을 분열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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