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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자본가들 사이의 갈등 격화로 정치적 갈등도 더 격화될 것

한국의 주요 기간산업 중 하나인 석유화학 산업이 수년간 지속된 불황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그러면서 구조조정에 내몰리고 있다.

특히 8월 들어 주요 석유화학 기업인 여천NCC가 부도 위험에 빠졌다. 그러자 산업 위기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천NCC는 이미 올해 3월 공동 주주인 한화그룹과 DL그룹에게서 2,000억 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 추가로 3,000억 원 지원을 요청했다.

8월에도 한화와 DL이 자금을 지원해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지만, 앞으로도 추가로 자금이 들어갈 가능성이 커 공동 주주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누가 먼저 생산 설비를 줄여야 하는지를 두고 자본가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출처 여천NCC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는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 석유화학 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이미 3~4년 동안 지속됐다.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대중국 수출을 늘리며 급성장해 왔다. 한국산 에틸렌의 40~50퍼센트가 중국으로 수출됐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액은 약 500억 달러로, 반도체·자동차·일반기계에 이어 4위였다. 한국 석유화학 ‘빅4’인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은 2021년 9조 원대 영업이익을 낼 정도로 호황이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중국과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화학 설비를 대규모로 늘리면서 과잉 축적 문제가 심각해졌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설비 가동률은 수익성 확보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70퍼센트대 아래로 떨어졌고, 일부 기업들에서는 60퍼센트대까지 추락했다.

이 때문에 한국 석유화학 ‘빅4’의 지난해 영업 손실은 8,784억 원에 달한다. 올해에는 이미 상반기에만 적자가 5,000억 원에 육박해 지난해 적자 기록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 산업 위기는 한국 경제 전반을 뒤흔들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 10대 대기업 그룹 중 6곳이 석유화학 기업을 핵심 계열사로 두고 있다. 게다가 석유화학 관련 기업이 2만 7,000여 곳에, 고용 인원도 43만 명이나 된다.

각 대기업 그룹은 자산을 매각하고 담보를 맡겨 석유화학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위기가 그룹 전체로 번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말 롯데그룹 위기의 주요 요인 하나는 롯데케미칼의 유동성(자금) 위기였다. 롯데그룹은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 위기를 겨우 넘겼지만, 세계적인 과잉 축적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 수 없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현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 석유화학 기업 중 절반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결국 8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관계 부처는 석유화학 사업 재편 종합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이달 중으로 구조 개편에 대한 정부 방침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석유화학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몇 차례나 지연된 바 있다. 각 기업들은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도 같다.

석유화학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누구부터 생산을 줄일까’ 조율하는 게 핵심인데, 먼저 나설 민간 기업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에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업계가 설비 조정 등 자발적인 사업 재편에 참여해야 한다. 무임승차 하는 기업은 범부처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지역별 이해 다툼도 구조조정을 어렵게 한다. 석유화학 설비들은 주로 울산·여수·서산에 집중돼 있어 현지 정치인들은 각자 자기 지역에 더 많은 설비를 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울산·여수·서산의 올해 세금 수입이 30퍼센트 넘게 감소했다고 한다.

향후 석유화학 산업뿐 아니라 철강·건설·이차전지·유통 등에서도 구조조정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지배계급(자본가 계급과 국가 관료, 중견 정치인 등) 내 쟁투를 격화시킬 것이고, 이는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 추가 하락뿐 아니라 정치 위기도 가중시킬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한진해운 부도를 결정하면서 부산·경남 지역 지배자들 다수가 돌아섰고, 이는 총선 패배 등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한층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박근혜의 레임덕이 심화되는 속에서 철도 파업 등 노동자 투쟁이 벌어졌고 이는 곧이어 거대한 박근혜 퇴진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향후 구조조정을 두고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이 불거질 공산이 크지만, 지배자들은 노동자 공격에 대해서는 하나가 돼 나설 것이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고, 관세·무역 전쟁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계속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하고, 중소 석유화학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다. 석유화학 설비를 건설·보수하는 플랜트건설 노동자들, 설비를 실어 나르는 화물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석유화학 기업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면서도 재정 지출 삭감을 위해 공공기관 통폐합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기업주 단체들과 우파 언론들은 노란봉투법과 상법 추가 개정, 법인세 인상 등을 추진하는 민주당을 비판하며 ‘기업 옥죄기’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조건을 지키려면 저항과 연대가 확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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