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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국 경제의 위기와 구조조정, 대안(1):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최근 경제 위기 때문에 대우조선 매각이나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같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노동자들이 피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글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다음에는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와 구조조정 대안을 둘러싼 논의들을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

  1.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2.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
  3. 산업정책 참여가 구조조정 대안인가?
  4. 경제 위기 시기 대안을 둘러싼 논쟁

기업인, 정치인, 주류 언론들은 한국 자본주의가 지금 같은 방식을 답습하면 미래가 어둡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경제성장률이 지속 하락해 저성장 기조가 고착됐고, 제조업 수익성이 2011년 이후 하락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주력산업*들의 성장세가 낮아지고 국제 경쟁력이 하락한 것은 그들의 큰 시름거리다. 한국 경제가 첨단기술 산업부문들로 전환한 다른 선진 자본주의 경제를 따라잡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 경제를 바짝 추격해 오고 있다. 나라별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를 보면, 2005년 각각 6위와 17위이던 한국과 중국의 순위는 2015년 각각 5위와 3위로 역전됐다(유엔공업개발기구).1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2011년 이후 하락하고 있는데, 1997년 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2018년 통계청). 설비투자는 제조업 전 분야에서 감소하고 있고 이런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한국은행 통계와 산업은행 전망치).

일명 ‘좀비기업’인 한계기업들도 크게 늘고 있다. 2018년 상장기업의 7곳 중 1곳(14.8퍼센트)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다. 이 중 65퍼센트가 제조업에 속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지적대로, 금리가 매우 낮은데도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 증가한 것은 기업의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은 기존 성장 방식이 한계에 이르면서 한국 경제가 정체에 빠져들었음을 보여 준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엄청나게 높은 투자 수준을 유지해 왔다. GDP에서 총고정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이후에도 내내 30~35퍼센트 수준을 유지했다. 이것은 영국(16.9), 미국(19.8), 독일(20.6), 일본(23.4) 등 선진국들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었고(2015년 기준, OECD 통계), 대중 소비의 억제(저임금)를 통해 유지됐다. 그런데도 한국 경제성장률은 선진국들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로 설명하면, 축적 수준이 너무 높은 나머지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축적 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 잉여를 추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 즉 이윤율 위기이다.

이에 더해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 상황, 그로 인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증대가 한국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경제는 소수 주력산업의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로 수요가 줄면서, 한국 조선업이 입은 타격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주로 미국과 중국으로의 수출에 크게 의존해 온 한국의 주요 산업들은 미국과 중국 경제 모두의 둔화, 또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세계·한국 경제 성장률 / 설비투자 증가율 추이

덫에 빠진 체제, 정치 위기의 심화

이런 상황에서 너도나도 기업과 산업의 ‘구조조정’을 주문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과 사업 부문을 퇴출시키거나 개편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도태돼야 할 좀비기업들을 계속 살려 주니까, 그것이 한국 경제 전체를 물귀신처럼 잡아 끄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시장 질서를 왜곡해 혁신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해소해야 할 과잉 부문이 제조업에서만 무려 30퍼센트라는 주장도 있다.2 한국 경제의 효율과 역동성을 끌어올리려면, 고통스럽겠지만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말이 쉽지,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지연되고 있다,’ ‘미흡하다,’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최근에 경제 상황의 악화 속에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이 대두하고 있지만, 이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나타난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국내 제조업 평균 가동률 추이

서울대 경제연구소 김세직 교수는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6년 당시 1997년 위기 이후 20년 가까이 구조조정이 없었다는 비판을 내놨다. 그렇게 구조개혁 없이 경기부양에만 의존한 결과 과잉 투자의 부작용이 성장률 추락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한다.3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한계기업의 파산이 다른 기업에 이롭다’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설파했을지라도, 그들의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하에서도, 정부가 구조조정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던 이유다.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핵심 이유는 무엇보다 소수 대기업들이 산업과 경제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들, 특히 민주당 정부들은 벤처기업, 중소기업 육성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도도한 게 현실이었다. 〈2018 OECD 한국 경제 보고서〉도 한국에서 소수 대기업의 지배력이 점점 확대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런 대기업이 파산하면 나머지 경제 전체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게 된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의 기관들은 대우조선이 파산하도록 내버려두면 경제에 끼칠 피해액이 무려 59조 원(금융위원회) 또는 17조 원(산업통상자원부)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이런 기업들이 위기에 처하면 두려움에 떨면서 돈을 쏟아부어 살려 주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른바 ‘대마불사’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의 거대화 때문에 경제 위기를 통한 구조조정으로 이윤율을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구조조정은 또한 그것을 둘러싼 이해관계 상충 때문에 심각한 갈등을 부른다. 부실과 과잉을 도려내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일반론에는 다들 동의하지만, 그 칼이 자신을 겨누면 얘기는 확 달라진다. 자본과 국가의 유착 때문에 구조조정을 둘러싼 분란은 정치 위기로 이어진다. 어떤 기업/산업을 살리고 어떤 기업/산업을 죽일 것인가, 어떤 방식과 속도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인가, 그 비용과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등을 둘러싸고 암투와 때때로 난타전이 벌어진다.

더구나 퇴출이든 부양이든 무엇을 선택해도 그것이 새로운 성장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게 된다. 국가가 부양에 나서면, 세금 낭비인 데다 경제 전체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실제로 국가가 개별 자본의 손해를 떠안으면 결국 그 비용은 다른 곳(세금, 자본의 이윤, 노동자의 임금)에서 충당해야 한다. 그래서 위기에서 살아남은 자본들이 얻는 이득이 제한된다. 그렇다고 해서 한계기업 퇴출이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경제 수축과 연쇄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 한 국가의 정책은 더 큰 혼란을 부를 수도 있다.

한진해운 파산은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을 잘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으로 부실기업들을 지원한다는 비난을 받던 박근혜 정부는 2016년 8월 한진해운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추진 과정은 물론 결과를 놓고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진해운을 퇴출시킨 해운업 구조조정의 결과 한국의 북미항로 점유율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운 국제 해운사들에게 밀려, 북미항로 물량을 현대상선이 흡수하려던 야심찬 계획이 좌절된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를 추락케 한 심각한 정치 위기의 근원에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심화와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놓여 있었다. 2016년에는 집권 세력 내부의 쟁투가 상호 폭로전을 부르면서 위기를 증폭시켰다. 기업과 산업 구조조정 추진은 노동개혁 정책과도 맞물려 있었으므로 노동계급의 반감과 저항도 불렀다.

결국 촛불 저항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문재인 정부가 구조조정의 새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이유에서 그것이 구조조정의 난제들을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래에서 이 점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문재인 정부 구조조정 ‘새’ 방안의 모순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채권단 중심 구조조정’이 금융 논리에 치우쳐 문제였다면서, 산업적 관점을 고려한 ‘시장 중심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한다(2017년 12월 발표). 존속가치가 높으냐 청산가치가 높으냐만 따지면, 산업의 장래에 대한 판단 없이 기업을 죽이거나 살려,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새롭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다. ‘시장 중심 구조조정’은 이미 박근혜 정부도 추진했던 것으로, 자본시장을 활용한 인수합병 등으로 상시 구조조정을 활성화한다는 방안이다. 2016년 ‘원샷법’(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은 이런 맥락에서 추진됐다. 문재인 정부는 사모펀드 운용사 요건 완화 등 자본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돈 버는 자본을 활용하는 구조조정이 도대체 채권단보다 뭐가 더 나은가?

‘산업적 관점’이라는 것도 일각의 기대와 달리 결코 진보적인 내용이 못 된다. 무엇보다,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방안이 노동자 보호가 아니라 희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는 조선업을 살리겠다고 했지만, “공급능력 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조선업 발전전략〉(2018. 4)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STX조선에 대해 “현장직 70퍼센트를 해고하는 조건으로 존속”시키는 내용의 구조조정 안(2018. 3)을 제시했다. 대우조선에 대해서는 현대중공업 측에 매각(민영화)하는 방침을 결정(2019. 1)했고, “공급물량 축소와 구조조정”을 시사했다. 이미 2014~2017년 동안 조선업 인력 규모가 20만 명에서 11만 명으로 반토막이 난 상황인데도 말이다. 조선소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가 시간 끌다가 노동자들의 등에 칼을 꽂았다”고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이런 ‘새’ 구조조정 방안은 문재인 정부 자신이 표방하는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과도 정면 배치된다. J노믹스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라더니 대우조선을 민영화(매각)하는 것이나, 재벌 독식을 막고 “상생 생태계”를 만들겠다더니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것이 그런 사례다. 내수 진작으로 (수출 의존의) 경제 체질을 개선하겠다더니, 인력을 감축하고 임금을 삭감해 도리어 수요 위축을 초래하는 것은 또 다른 사례다.

문재인 정부의 새 구조조정 방안은 결코 “포용적 성장”(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가져오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가 “금융 논리” 대신 “산업적 관점”을 구조조정의 기준으로 제시한다고 해서 일정한 진보이고 협력의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이 점은 2008년 위기 이후 국제 좌파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당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경제 위기에 대응하려고 개입하자 일부 좌파들은 케인스주의와 복지 정책의 부활이라고 보면서 반겼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였음이 곧 드러났다. 각국 정부들은 단기적인 경기부양 비용을 장기적인 복지지출 삭감(긴축)으로, 즉 노동계급 등 서민층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서 메우려 했다. 크리스 하먼이 지적했듯이, ‘새 케인스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연장선에 있었고 자본을 위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구조조정도 이전 정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본의 거대화 등 위에서 살펴본 문제들 때문에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할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을 효율화하기 위한 개편이 어렵사리 진행될 텐데, 그로부터 득을 얻는 것은 결국 대기업들일 것이다. ‘대마’와 달리 경제 위기 속에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파산에 내몰리면, 국가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들이 제한적이나마 이익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본이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없애고 임금 삭감 같은 조건 악화를 강요함으로써 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금호타이어 해외매각, 조선업 자구 노력 등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대우조선 매각과 현대중공업 합병에도 이런 노력이 뒤따를 것임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투쟁하지 않고는 생활수준을 지킬 수 없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상당 기간 대단한 투쟁을 벌이지 않고도 그럭저럭 소득을 거둬 왔다. 그런 결과 마치 ‘특권층’이나 되는 양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제 일부는 구조조정에 직면해 투쟁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떠밀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구조조정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할까?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내세운 조건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가?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참고 견디는 것 말고 대안이 있는가? 다음 호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1. 〈한국 주력산업의 위기와 활로〉, 현대경제연구원(2018. 4. 6)
  2. 유병규, 세 가지 산업구조조정 추진하라, 서울경제(2017. 5. 9)
  3. 김세직, ‘한국경제: 성장위기와 구조개혁’(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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