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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서평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상처 입은 남성과 극우의 탄생》:
극우 정치에 이끌리는 청년 남성을 통찰력 있게 파헤치다

신간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는 자본주의 위기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일부 청년 남성들을 극우 정치에 이끌리게 하는지에 대한 과정과 동학을 분석한 책이다. 오늘날 청년 남성들이 겪는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급진적 해법을 모색하는 데 영감을 준다.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상처 입은 남성과 극우의 탄생》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 지음, 바다출판사, 352쪽, 19,800원

저자인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는 성차별을 조장하는 남성 커뮤니티인 ‘매노스피어’(manosphere)를 심층 연구해 온 진보적 사회학자이다.

우선 저자는 청년 남성들을 싸잡아 극우화하고 있다고 단정짓는 견해를 거부한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내세우는 “유해한 남성성론”에도 정면으로 도전한다. “유해한 남성성론”은 남성성에 내재된 폭력성과 지배 욕구가 사회적 요인과 결합해 극우적 적대와 혐오로 발현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12·3 윤석열의 쿠데타와 이후 가시화된 극우까지 모두 “남성성과 남성 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책도 최근 발간됐다.

저자는 이런 관점을 이렇게 비판한다. “공론장에서 이 용어[유해한 남성성을 가리킴]가 사용되는 방식은 마치 남성의 유해한 특질이 본래부터 내재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 이로 인해 ‘문제적 남성성’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마치 인간 본성의 산물처럼 여겨진다. ... 유해한 남성성을 사회 전반의 문제를 일으키는 유일한 동인으로 간주[하게 한다.]”(26쪽)

또한 이런 관점은 국가 단속에 의존하거나 ‘나쁜 남성’을 분리하는 잘못된 해법으로 이어지기 쉽다고도 지적한다.

고통의 근원

이 책은 매노스피어에 모인 청년 남성들이 사회 문제(여성차별 등)의 원인이 아니라 자본주의 산물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마르크스의 소외론과 접목해 청년 남성들이 비틀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전반적인 위기에 직면한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내던져진 채 그저 표류하고 있는 듯한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일부 청년 남성들은 불행의 원인을 “복잡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 시스템 탓”으로 돌리기보다 여성, 페미니즘, 소수자 탓으로 돌리는 것이 더 명쾌하다고 여긴다.

또한 불안정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청년들은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연애, 사랑, 섹스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저자는 매노스피어의 청년 남성들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과 나아가 인간 존재의 본질에서 소외된다고 보았다. ... 사랑은 현대인에게 자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고 그 자체로 하나의 유적 존재가 되었다. ... [매노스피어는] 그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다는 감각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88쪽)

청년 남성들은 사랑과 섹스에 좌절하면서도 집착하게 되는 모순과 혼란 속에 놓이게 된다. 연애와 사랑에 대한 기대가 반복해서 무너지고 좌절감이 누적되면 ‘페미니즘 지배 사회가 원흉’이라거나 “남성 역차별론”과 같은 극우의 데마고기가 먹히게 되는 토양이 형성된다.

상처받은 청년 남성들은 매노스피어에서 불만을 쏟아 내며 서로 동질감을 느끼지만 고통을 전혀 해소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부는 극단적 폭력으로 폭발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허무와 비관에 빠져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저자는 매노스피어에 올라오는 수많은 “자살 유서”를 보며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청년 남성의 불만을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고통의 근원인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도전해야 한다는 저자의 호소가 절절하게 와닿는다.

맞불 시위

매노스피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저자는 상처받은 청년 남성들을 포용한다는 것이 남성 역차별론이나 안티페미니즘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매노스피어에 자리잡은 여성혐오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국가의 검열이나 금지 조처에도 옳게 반대한다. 앤드루 테이트 같은 극우 선동가를 통제하기 위해 ‘반테러법’을 도입하자는 일각의 제안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는 국가 검열과 단속, 그리고 소셜미디어 기업의 자체 검열 등이 낳은 폐해가 잘 소개되어 있다. 예컨대 9.11 테러 발생 직후 제정된 미국의 ‘애국자법’(반테러법)은 유색인종과 무슬림에 대한 억압을 강화해 인종차별적 정서를 부추겼다. 또한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혐오 표현 규제를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지지 목소리를 검열하고 차단했다.

저자는 국가기구나 이윤만 좇는 기업에 기대지 말고 활동가들과 사회운동이 “극우 운동 리더들을 퇴출시키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가 소개한 2017년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극우에 맞선 맞불 시위의 경험은 유용하다. “이런 시위는 극우 세력과 매노스피어 구성원의 사기를 꺾고 새로운 가입을 주저하게 만든다. 따라서 지도자를 표적으로 삼는 전략은 그들의 사상이 뿌리내리기 전에 확산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275쪽)

해결책

저자는 매노스피어의 해결책으로 진보 세력이 청년 남성에게 안정된 일자리와 건강하고 협력적인 공동체를 제공하고, 그들을 “성평등과 경제 정의를 위한 운동”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청년 남성을 지하실에 틀어박힌 패배자로 낙인찍는 대신, 공동의 문제를 중심으로 연대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분노의 초점은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무분별한 자본주의 체제에 맞춰야 한다.”(299쪽)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저자의 분석은 유물론적이지만 다소 기계적이다. 청년 남성들이 고통과 좌절을 겪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극우 정치에 이끌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는 매개가 필요하다.

극우가 성장한 데에는 국제적으로 중도 정치 세력의 개혁 배신과 그에 대한 환멸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저자가 미국 민주당 등 주류 정치 세력들이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려고 청년 남성 극우화론을 들먹이는 것에는 비판하지만, 이런 비판이 너무 불충분하다.

또한, 해결책에서 투쟁의 구실이 충분히 강조되진 않는다. 오늘날 한국의 청년들은 대체로 사기가 높지 못하다. 그래도 청년 여성들이 지난 10여 년간 페미니즘 리부트 속에서 차별 반대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온 것과 달리, 청년 남성들은 이렇다 할 투쟁 경험이 더 적다.

청년 남성을 포섭하려는 극우를 저지하고 청년 남성들을 왼쪽으로 견인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라는 해독제가 필요하다. 그런 투쟁은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극우의 토양인 자본주의 체제까지 겨냥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분석과 대안은 유용한 점이 많고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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