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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파시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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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무장한 깡패들이 거리낌없이 소수자들과 정치적 반대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가? 그렇다. “민족의 위대함을 되찾겠다”는 국수주의적 약속이 난무하는가? 그렇다. 노골적인 제국주의 침략과 영토 강탈을 벌이는가? 그렇다.
이것은 1930년대 독일에 대한 얘기일 수도, 오늘날 미국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파시스트 국가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도 “그렇다”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파시즘의 주요 특징들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파시스트들은 인종차별과 여성차별 등 각종 심각한 편견을 이데올로기적 접착제로 사용해 자신들의 기반을 결속시킨다.
그러나 파시즘은 권위주의적 우파 이상의 것이다. 그리고 실존적 위협이다. 파시즘은 “반혁명”의 한 형태로 모든 노동계급 조직과 민주주의 기구, 시민사회 단체들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33년 집권 후 나치는 모든 정당, 노동조합, 시민사회 조직 들을 금지했다. 그들은 노동계급 민주주의 기구들을 “그 기초까지 완전히 파괴”했다.
파시즘은 제1차세계대전의 여파로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혁명의 가능성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부상했다.
이처럼 위기에 직면하면 지배계급은 더 권위주의적 수단들로 눈을 돌린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여의치 않으면, 민주주의를 모두 내팽개치고 파시즘에 기대를 걸 수 있다.
그러나 파시즘은 결코 기존 국가의 통치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파시즘은 대중운동으로써 세력화하고, 소규모 자영업자, 전문직, 관리자 같은 중간계급을 핵심 기반으로 삼는다. 파시즘은 지배계급 및 그들의 국가와 협력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나치는 1930년에 18퍼센트의 득표로 2위로 도약하며 의회에서 돌파구를 냈다. 이미 그들의 준군사 조직 ‘갈색셔츠단’(SA 또는 ‘돌격대’)은 10만 명 규모로 성장해 거리에서 테러와 살인을 일삼고 있었다.
1932년에 그 폭력배들의 규모는 40만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1933년 갈색셔츠단은 200만에 달했다. 국가 산하 억압 기구인 군대와 경찰보다도 더 큰 규모였다.
미국은 파시즘 국가가 됐는가?
이런 패턴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얼마나 부합하는가? 어떤 사람은 이미 미국이 파시스트 국가이고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도널드 트럼프의 갈색셔츠단이라고 본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시작된 후 파시스트들이 미국 국가의 지도적 지위를 차지해 왔다.
미니애폴리스, 로스앤젤레스 등의 도시들에서 ICE의 테러를 기획한 스티븐 밀러는 단지 한 예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은 모든 민주주의 조직,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조직들을 파괴한 기반 위에 세워진 파시스트 국가는 아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 레온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한 국가가 파시스트 국가가 된다는 것은 단지 정부의 형태나 정책이 변한다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리고 대체로 노동자 조직들이 궤멸되고 노동계급이 원자화된 상태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파시스트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위험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시각에서는 트럼프는 1920년대와 1930년대 파시즘의 주요 특징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또한 ICE가 나치의 갈색셔츠단과 달리 트럼프 이전부터 존재한 오래된 억압 기구이며 국가로부터 독립된 거리 부대는 아니라고 지적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들은 모종의 ‘체크리스트’ 접근법으로 파시즘을 다룬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그보다는 파시즘을 하나의 ‘동역학’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낳는 사회적 조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시즘은 대중운동을 동원해 적대 세력을 공포에 떨게 하려는 ‘아래로부터의 반혁명’이다. 그러나 현실의 파시즘은 독일에서 나타났던 ‘순수한’ 형태보다 언제나 더 변칙적이었다.
때때로 파시스트들은 국가로부터 독립적이면서도 반혁명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다른 경우에는, 파시스트가 아닌 극우 세력들이 파시스트로 발전하거나 그렇게 발전하는 세력들을 배양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역사 속 파시즘의 모습과 변칙
제2차세계대전 기간 나치의 꼭두각시가 된 몇몇 나라들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헝가리가 가장 중요한 사례다.
헝가리에서 일어난 일은 위로부터의 국가 탄압과 아래로부터의 파시스트 폭력 간에 역동적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제1차세계대전에서의 군사적 패배, 대중 파업, 병사 반란을 배경으로,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손에 의해 해체되면서 갈가리 뜯겼다.
혼란 속에서 1919년 3월 21일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이 수립됐다. 불과 133일 뒤, 공산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끌던 새 공화국은 피의 강물에 수장됐다.
‘백색 테러’가 뒤따랐다. 2년에 걸쳐 헝가리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을 파괴하기 위한 체계적 탄압이 자행됐다.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앞서 헝가리의 구 지배계급은 사회주의 혁명의 여파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도망쳤다.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체제 위기에 직면해 오른쪽으로 급진화하며 더 극단적 해결책을 모색했다.
헝가리 남부에서 지주, 자본가, 보수주의자들이 돌아와 카로이 미하이 백작의 지도 하에 반혁명 정부를 수립했다.
카로이는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에게 헝가리를 재정복하기 위한 국민군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통적 보수파 장교는 위로부터 반혁명을 대표하는 인물이 돼 이후 독재자로서 헝가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호르티에게는 자체적으로 반혁명적 테러를 밀어붙일 강력한 국가가 없었다.
이때 파시스트 남작 프로나이 팔이 등장했다. 그는 장교들로 구성된 여러 특수부대 중 하나를 결성했다. 그 장교들 중 적어도 4분의 1이 귀족 출신이었고 테러의 선봉장들이 됐다.
반동적 급진파들은 ‘헝가리국가방위연맹’(헝가리어 약칭 MOVE)을 통해 조직화했다. 그 지도자인 굄뵈시 줄러 대위는 일찌기 1919년에 스스로를 “국가사회주의자”라 칭했으며, 베니토 무솔리니, 아돌프 히틀러와 관계를 맺었다.
프로나이와 굄뵈시 사이의 내분으로 그들은 끝내 지배적 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프로나이의 부대는 별동대처럼 활동했고 더 전통적인 보수파들과 충돌했다. “그러나, 세게드에서 그리고 이후 시오포크와 부다페스트에서 그 부대는 정치경찰의 기능을 대체했다”고 한 역사가는 썼다.
프로나이는 이렇게 말했다. “호르티는 나라 곳곳에서 발견된 많은 유대인 시체들에 대해 나를 질책했다. 이것이 외국 언론이 우리를 공격할 특별한 빌미를 더해 준다는 것이었다.
호르티는 그에게 “조무래기 유대인들을 괴롭히는 건 그만두고,” 대신 헝가리 소비에트 정부 내의 “거물급 유대인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호르티는 1920년에 스스로를 헝가리 왕국의 ‘섭정’이라 선언하고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독재를 펼쳤다.
그렇다고 1920년에 국가 바깥의 모든 조직들이 파괴되고 파시스트 지배가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프로나이와 같은 세력들은 쓸모를 다한 다음 20년 동안 주변화됐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었다. 백색 테러를 자행한 극우 민병대원들은 파시스트 정당 화살십자당의 기반이 됐고, 이 당은 나치 정권을 모방하고 싶어했다.
호르티 정권은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었지만 국내에서는 파시스트 조직들을 탄압했다. 그러나 1944년,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호르티와 히틀러가 충돌했을 때, 나치는 화살십자당을 권좌에 앉혔다. 다시 한 번, 프로나이가 복귀해 헝가리 유대인들을 상대로 광란의 살육을 저질렀다.
이것은 국가가 지도하는 준군사 조직과 태동기의 파시스트 조직 사이에 강력한 연관성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히틀러의 갈색셔츠단은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 이전에 ‘자유군단’이 있었고, 이들은 1918~1923년 독일 혁명에서 수많은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살해했다.
자유군단은 참전 군인들로 이뤄진 준군사 집단으로 많은 수의 중간 간부급 중간 계급 출신 장교들이 많았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민주당(SPD)은 이 극우 민병대를 이용해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분쇄했다. SPD 정치인 구스타프 노스케의 지휘 아래, 베를린에서 “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해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했던 자들이 바로 자유군단이었다.
혁명의 위협이 진정되자 지배계급에게 자유군단은 쓸모가 없어졌다.
자유군단 자체는 파시스트 조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대원들 중 많은 수는 나치당과 갈색셔츠단에 가입하게 된다. 예컨대, 갈색셔츠단 창립 멤버 에른스트 룀은 바이에른에서 [좌파에 맞서] 자유군단과 나란히 싸웠던 인물이다.
1920년대와 2020년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오늘날 지배계급은 노동계급 운동이 국가와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을 직면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세계대전도 겪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남성들이 대규모로 징집돼 그중 수백만 명이 전투 경험으로 다져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자본주의 국가는 20세기 초의 국가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거대한 기구다.
오늘날 파시즘은 1920년대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예컨대, 파시스트들이 집권에 성공한 경우 위로부터의 국가 탄압과 아래로부터의 폭력을 결합해 모든 민주주의를 분쇄하려 할 수 있다. 그 조합의 구체적 양상은 여러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트럼프로 대표되는 단절과 연속성
미국에는 파시즘의 발전을 추동하는 강력한 정치 세력들과 사회적 역학이 존재한다.
트럼프가 자신의 약속을 이루지 못하면 극우가 더한층 급진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세력을 동원하려는 자들이 등장할 잠재력도 있다.
미국 국가는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종 위기에 직면하고 있지만 사회 최상층에 있는 자들에게는 해법이 없다. 그리고 정당성의 위기 속에서 국가의 권위주의화 경향이 핵심적으로 굳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이전 것과의 단절이자 연속이다. 최근 30년간 지속된 미국 국가의 두 가지 중요한 추세가 있다. 바로 군사화와 민영화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미국 안보 기구들은 민간 군사 기업에 대한 외주화에 크게 의존해 왔다.
또한, 해외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과 동시에 미국은 시민적 자유를 탄압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국토안보부를 창설했다.
이것은 경찰 등 국내를 대상으로 하는 안보 기관들의 군사화라는 더 커다란 변화의 일부였다.(국내 반대자들을 상대로 “대테러” 전술을 펼치는 것이 그런 경우다.) ICE와 국경순찰대가 국토안보부 휘하에 있다. 그 과정의 일부로 미국-멕시코 국경이 오랫동안 군사화돼 왔다.
트럼프는 군대를 끌어들임으로써 그러한 군사화 추세를 심화시켰다. 오랫동안 국경에서의 이런 전쟁은 감시와 탄압 기술의 시험장 역할을 해 왔고, 정부는 이를 이용해 더 광범한 추방 기구를 다시 더 강화했다.
트럼프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이 익숙한 국경 단속 부대들을 주요 다인종 도심 지역으로 투입하고 있다. 그 결과로 미니애폴리스 거리에서 주민들이 테러를 당하고 러네이 굿과 알렉스 프레티가 살해됐다.
그러나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이런 추세의 질적인 변화를 보여 준다. 미국이 파시스트 국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많은 국가들처럼) 권위주의가 더 강해지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도 않다.
지금, ICE와 국경순찰대는 별동대처럼 기능하며 극우 세력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밀러는 트럼프의 첫 임기 동안 이민 담당 관료들과 충돌했다. 밀러는 그들이 “트럼프가 국경 문제에서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단속 기구를 충분히 공격적으로 가동하고 있지 않다”고 믿었다고 한 전직 관리가 말했다.
극우 세력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있던 더 전통적인 보수 인사들에게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의 사람들로 국가 기구의 핵심 부분들을 채우기로 굳게 결심했다.
ICE는 채용 과정에서 특별히 극우 세력을 겨냥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더 일찍 시작됐고 위로부터 추동된 것만도 아니다.
작가 마이클 마커는 어떻게 “ICE 내의 호전적 인사들이 국토안보부 내에서 자신들의 자원과 자율성, 권력을 증대시키려 싸워 왔는지” 설명한다.
ICE와 국경순찰대 요원들의 직능협회들이 중심적 구실을 했고, 이 협회들은 트럼프 이전에 이미 “극우 프로젝트의 배양소가 됐다.”
ICE와, 거리에 기반을 둔 파시스트 집단들 간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한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ICE에 의해 구금됐던 한 미국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 요원들이 ‘프라우드 보이스’ 지지를 표현하는 문신을 하고 있었다.” 프라우드 보이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파시스트 집단 중 하나다.
유출된 4,500명의 ICE와 국경순찰대 명단에는 한때 ‘프라우드 보이스’의 우두머리였던 엔리케 타리오도 있었다.
하지만 ICE를 이끄는 이데올로그들이 늘 원하는 바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ICE가 미국 국가 내의 유일한 세력도 아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두 번째 살인이 벌어지고 대규모 저항이 터져 나오자 트럼프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국가 내 더 광범위한 세력이 ICE에 대한 우위를 재천명한 것을 반영했다. 그 세력은 미국 도시들에서 그런 정도의 혼란이 벌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나치는 독일 자본가 계급의 우선적 선택지가 아니었다. 지배계급은 그전부터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었다. 1930년 이래, 독일은 우익 정치인들과 장성들로 이뤄진 “남작들의 내각”이 대통령 긴급명령에 기대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의회에서조차 거의 지지받지 못했다. 그리고 대규모 노동계급 운동에 맞닥뜨렸다.
위기가 심화하면서 자본가 계급의 일부가 파시즘이라는 발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히틀러를 정부에 끌어들일 방법을 모색했다.
때때로, 트로츠키는 이 정권을 “반쯤 파시스트”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때조차 트로츠키는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저항으로 파시즘을 막을 시간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대응을 촉구했다.
우리가 미니애폴리스에서 보았던 그런 저항이 미국에서 심화하고 확산된다면, 미국을 더 우경화시키는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