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을 예리하게 분석한 명저
〈노동자 연대〉 구독
유럽에서 파시스트 정당들이 성장하고 있다.
프랑스의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은 지난 총선 1차 투표에서 33퍼센트를 득표해 1위에 올랐다. 이는 1932년 히틀러의 득표율에 가까운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를 계승하는 이탈리아형제당의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에 앉아 있다. 독일에서는 파시스트들이 점점 지배적이 돼 가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 8월 파시스트들이 난민 거주 숙소에 불을 지르는 테러를 감행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10월 6일에는 유럽의 파시스트들이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 폰티다에 집결해 소름 끼치는 위력 시위를 했다.
이 와중에 트럼프는 미국 내 극우·파시스트뿐 아니라 전 세계의 파시스트들을 고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다행히 아직까지는 파시스트 세력이 눈에 띄게 존재하지 않지만, 파시즘의 부상이 오늘날 국제적 현상인 만큼 안심할 수는 없다. 정치적 대비와 무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파시즘 개념은 흔히 오남용돼 왔다. 대다수 좌파도 파시즘 개념을 모호하고 느슨하게 사용한다. 예컨대 권위주의 독재나 우파 정부의 통치를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윤석열을 ‘검찰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좌파들이 있다.
그런 부정확한 설명은 파시즘의 진정한 기반과 성격, 특별한 위험성을 오히려 흐리고 파시즘에 맞서는 데서 잘못된 대안을 좇게 만든다. 파시즘에 제대로 맞서려면 파시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게다가 오늘날 파시스트 정당들이 자신의 추악한 실체를 감추려고 가면을 쓴다는 문제도 있다.
예컨대 프랑스 국민연합이나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공식 정치에서 용인될 만한 정상적 정당으로 보이려 애쓴다. 선거에 출마하고 주류 언론에 얼굴을 비치며 정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세를 확장하려는 것이다.
한편, 파시스트들은 자신이 반자본주의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인 세력인 양 행세한다. 주류 정당들과 체제에 대한 불만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흡수하려는 것이다.
파시즘에 제대로 맞서려면 파시스트 정당들의 가면을 벗겨 내고 그 실체를 꿰뚫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파시즘을 절망에 빠진 중간계급에 기반을 둔 반동적 대중 운동이라고 봤다. 트로츠키는 파시즘에 맞설 전술로 공동전선 투쟁을 강력히 촉구했고, 파시즘을 완전히 뿌리뽑으려면 파시즘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에도 맞서야 함을 강조했다.(관련 기사: 본지 447호, ‘트로츠키의 파시즘 분석과 대안’)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은 이런 파시즘을 이해하도록 돕는 훌륭한 참고서가 돼 줄 것이다. 현대사 연구와 파시즘 연구의 권위자인 로버트 팩스턴은 1970년대에 프랑스 비시 정부 연구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그는 나치의 피해자로만 여겨지던 프랑스 국가가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음을 입증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04년에 팩스턴은 40년에 걸친 파시즘 연구를 집대성해 이 책을 출간했다. 파시즘에 대한 그의 풍부한 설명은 트로츠키의 파시즘 분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살아 움직이는 파시즘
흔히 지도자나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두고 파시즘을 설명한다. 예컨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개인사, 괴벨스의 연설, 나치당의 강령을 살펴보는 식이다.
그러나 팩스턴은 파시스트들의 말보다 실천을 중심에 두고 파시즘을 설명한다.
특히, 역사적 맥락과 다른 사회 세력들과의 관계 속에서 파시즘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한다.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파시즘을 봐야 한다. 탄생 순간부터 격변을 맞으며 생을 마치는 마지막 단계까지 파시즘과 사회가 형성한 복잡하게 얽힌 상호관계 속에서 파시즘을 봐야 한다.”
팩스턴은 파시즘의 일대기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파시즘의 탄생, 뿌리내리기, 권력 장악, 권력 행사, 급진화와 정상화 사이의 갈등.
팩스턴은 “파시즘 운동이 다섯 단계를 다 밟으라는 법도 없고, 꼭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라는 법도 없다”고 하면서, 다섯 단계에 따른 분석이 “정태적 관점에서 벗어나 파시즘이 과정과 선택의 연속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한다.
이런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은 파시즘이 어떻게 생겨나고 작동하는지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결정론적 설명을 지양하는 것도 팩스턴의 장점이다.
팩스턴은 제1차세계대전과 대공황 등 사회 위기가 파시즘 부상의 배경이었다고 옳게 지적한다. 그러면서 히틀러·무솔리니의 집권은 필연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파시즘 지도자들이 어떻게 정부의 우두머리가 됐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곧 반(反)결정론을 연습해 보는 것이다.”
또, 팩스턴은 파시스트, 주류 우파, 좌파 등 역사 속 행위 주체들이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 사회 위기에 대응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살펴본다.
예컨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주류 지배자들에 의해 “끌어올려졌”던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 및 경제 체제의 위기가 파시즘이 들어설 틈을 열어 주기는 했지만, 파시스트들을 실제로 그 틈 안에 넣어 준 것은 일부 강력한 기득권 지도자들의 불행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팩스턴은 파시즘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와 정보들을 바로잡고, 파시즘의 진정한 실체를 차근차근 밝혀 나간다.
또한, 파시스트들이 스스로 표방했던 것과 그들이 실제로 실천한 것을 비교하며 파시즘의 참모습을 폭로하기도 한다.
예컨대 파시즘의 반자본주의 수사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파시즘의 본질적 특성으로 여겨지는 것 중에는 반자본주의, 반부르주아 경향이 있다. … 하지만 권력을 잡은 파시스트당이 이러한 반자본주의적 위협을 실현하기 위해 정책을 실행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극도의 폭력과 철저함으로 무장하고 사회주의를 겨냥한 위협적 정책을 실시했다.”
파시스트들이 내세우는 반체제 이미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꼬집는다.
“어떤 파시즘 정권도 위계질서를 바꾸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가가 시장을 대신하여 경제를 주도했을 뿐이었다.”
팩스턴의 지적은 반자본주의·반체제 수사를 사용하고 있는 오늘날의 파시스트들에게도 적용된다.
팩스턴은 집권한 파시즘 운동이 “나라를 다스리려면 군, 경찰, 사법기관 등 통치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기구들과 강력한 사회·경제적 세력의 협조 내지는 (적어도) 묵인을 얻어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권력을 찬탈한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에 의해 “끌어올려졌다.”
팩스턴은 파시즘이 집권한 통치 체제를 ‘이중 국가’로 부르며, 파시스트 정당과 지배계급 사이에 협력과 긴장이 공존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파시즘 통치를 이렇게 요약한다. “파시즘 정권들은 마치 하나의 분자구조물과도 같았다. 다시 말해, 파시즘 세력과 보수적 질서라는 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물질이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두 가지 공통점을 매개로 결합하여 탄생한 합성물이 바로 파시즘 정권이었던 것이다.”
팩스턴은 파시즘 운동 내부의 긴장을 간파해 내기도 했다. 파시스트 정당의 성장 과정에서 주류 엘리트와 “지배를 위한 타협”을 하려는 지도자들과 “순결주의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파시즘 정당들은 새로운 동맹 세력[주류 엘리트들]과 더 깊이 공조하게 됐으며 그 결과 당을 분열시키고 일부 순결주의자들을 소외시키는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파시스트 정당이 “급진화”와 “정상화”(용인될 만한 공당으로 보이기) 사이에서 동요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파시스트 정당이 ‘정상적 정당’ 가면을 쓰는 것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잘 맞서 싸운다면 이질적 사람들이 모인 파시스트 정당을 능히 깨부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파시즘을 다섯 단계로 나눠 살펴본 뒤, 팩스턴은 파시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피해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에너지·순수성의 숭배가 두드러진 특징인 정치 행동의 한 형태이자, 대중적 기반을 가진 열성적 민족주의 투사들의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적 자유를 포기하고 윤리적·법률적 제약 없이 ‘구원하는 폭력’을 휘두르며 내부 정화와 외부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 행동의 한 형태다.”
이는 트로츠키의 파시즘 규정과 일맥상통한다.
팩스턴의 파시즘 설명은 매우 훌륭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팩스턴은 스탈린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동일시한다. 예컨대 스탈린주의적 파시즘 해석을 정통 마르크스주의 해석으로 본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이므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던 스탈린주의 공산당은 사회파시즘론 같은 초좌파적 종파주의 노선과 민중전선 같은 계급 협력 노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반파시즘 투쟁을 패배로 이끌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파시즘 분석과 반파시즘 투쟁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기여해 온 바가 있다.
오늘날 재부상하는 파시즘에 맞서는 데서도 트로츠키의 파시즘 분석은 중요한 무기가 된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 위에 서서 트로츠키의 파시즘 분석과 공동전선 전술을 계승한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영국과 그리스에서 효과적인 반파시즘 투쟁을 건설해 왔다.
그럼에도 이 책은 꼭 읽어 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