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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전선 ─ 파시즘에 맞서려면 반드시 필요한 연합인가?

파시스트를 비롯한 유럽 극우가 — 프랑스의 마린 르펜, 독일의 독일을위한대안(AfD),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의 이탈리아형제당 등 — 얼마 전 유럽의회 선거에서 무려 900만 표를 얻으며 전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와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도 극우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과 전 세계의 극우가 환호하며 기세가 오를 것이다.

기성 보수 정당 내에서도 우파가 전진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수엘라 브래버먼,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등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민의힘이 매우 우익적이기는 하지만 파시즘 정당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정치적 경험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한다면, 국힘이나 그 일파도 마치 미국 공화당이 트럼프에 의해 장악되기를 거듭하고 있듯이 극우에 의해 지도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파시스트 성장의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공화당이 파시즘 정당은 아니다. 극우가 주도하고 있기는 해도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얼마 전 우리는 프랑스 총선 결선 투표 결과를 보고 기뻐하며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신나치가 두터운 간부층을 이루고 있는 RN, 즉 국민연합이 1등을 해서 집권한다면 국가의 최고위 공무원들, 즉 국가 관료 수백 명을 자르고 새로 임명할 권한을 갖게 된다. 경찰을 통제하게 된다. 교육 분야도 그들 수중에 넘어가게 된다.

무슬림들과 흑인들, 이민자들은 더욱 억압받게 된다. 성소수자들도 더욱 억압받고 천대받게 된다. 투쟁적인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탄압을 받게 될 것이다. 거리에서 소수 인종들을 향한 파시스트들의 집단 구타도 늘어날 것이다.

인접국 독일의 AfD, 즉 독일을위한대안과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 미국의 트럼프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파시스트들과 극우들이 기세가 올라 노동자 등 각종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위협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일들을 생각해 본다면, 국민연합이 패배한 것을 기뻐하지 않고 ‘뭐, 별것 아닌 일 갖고 왜 그러냐’ 하며 둔감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참 딱한 사람들이다.

기뻐하고 안도해야 마땅하다. 이역만리 한국에 사는 우리조차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좌파는 절대 경계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 그리고 신나치 퇴치를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에 맡길 일이 결코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7월 7일 총선 2차투표 결과에 기뻐하는 프랑스 좌파 지지자들 ⓒ출처 La France insoumise

파시즘의 독특한 성격

파시즘 등 극우가 계속 전진하고 있는데, 파시즘은 여느 극우와 다르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좌파들은 대부분 파시즘을 그저 독재 정권의 하나로 봤다. 그 바람에 파시즘의 진정한 특성을 간과했다.

파시즘은 모든 좌파 조직과 모든 독립적 노동자 조직을 깡그리 분쇄할 목적을 갖고 있는 운동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권리들도 철폐할 목적을 갖고 있다.

이것은 박정희도, 전두환도 하지 못했던 일이고 윤석열은 더더욱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비록 매우 우익적인 막된 자들이기는 해도 파시즘 정부라면 본지가 이렇게 공공연히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논조의 기사를 발행할 수 없을 것이다.

파시즘 국가가 좌파 단체와 자주적 노동단체, 민주적 권리를 그처럼 여지없이, 효과적으로 공격해서 없애 버릴 수 있는 것은 파시즘이 대중 운동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중간계급 대중의 운동이다. 즉, 중소 상공인과 소자본가, 의사·변호사, 각종 기관의 중·하급 관리자, 자영 농민 등이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대중 운동이다.

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노동계급 운동이 별로 강력한 대안으로 비쳐지지 않으면 중간계급은 절망감을 느끼며 기성 주류 정당들의 배신에 격노한다. 그리고 옛 질서를 회복할 철권 통치를 갈망한다. 바로 이런 일이 1920년대 초·중반 이탈리아와 1930년대 초·중반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한 지난 몇 년 사이에 세계 여러 곳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때(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노동계급 운동이 별로 강력한 대안으로 비쳐지지 않는 시기) 흔히 중간계급은 노동계급 조직들과 좌파 조직들이 자신의 불행에 책임 있는 것으로 오인하게 된다. 그때 파시스트들은 자기네가 대자본과 노동계급 모두에 반대한다며 중간계급 대중을 동원하고 조직할 수 있다. 중간계급 사람들은 평상시에 개인으로 원자화돼 있으므로 파시스트들이 대규모 거리 집회와 행진으로 그들을 동원하면 엄청난 자신감을 얻게 된다.

가령 히틀러의 나치당은 당명 자체가 데마고기였다: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 그러나 사회주의 정당도 아니고 노동자 정당도 아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대문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아는가? “노동은 우리를 해방시킨다.”

나치당을 지배한 히틀러. 파시즘은 그 목적과 효과 면에서 여느 극우와 다르다

오래지 않아 한국에서도 파시스트들이 부상한다면, 그자들은 ‘재벌’을 비난하고 ‘민중의 정당’을 표방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재벌들의 미움을 살까 봐 그럴 용기가 없다면 한국에서 파시스트 정당은 성공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북한을 의식해 ‘자유’나 ‘민주주의’나 ‘민족’ 등은 기본으로 표방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자본에도 반대하고 노동계급에도 반대한다며 활동하다가 집권 가능성이 보이게 되면 난처한 일이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파시스트들이 인수하려는 기존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이므로 대자본가 계급, 즉 지배계급이 궁극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파시스트들의 중간계급 기반은 더욱 모순에 처하고 결국 내부 갈등을 빚게 된다. (카를 마르크스는 중간계급과 그 소속 인물들의 핵심 특징이 모순과 좌우로 왔다갔다하기라고 지적했다.)

중간계급 기반의 이런 모순과 내부 갈등 때문에 히틀러는 1934년 6월 말 친위대 SS를 시켜 정규군으로의 통합을 거부하는 돌격대 SA의 에른스트 룀 등 간부 수백 명을 살해했다.

이런 규모의 숙청은 아니지만, 프랑스의 파시즘 정당 국민연합의 실질적 지도자 마린 르펜은 2015년 국민연합의 창립자인 아버지 장마리 르펜과 (그가 홀로코스트 입장 드러낸 문제를 두고) 싸우고 (정상적인 선거 정당으로 보이기 위해) 그를 당에서 내쫓았다.

독일을위한대안 AfD의 핵심 간부들은 파시스트들인데 AfD는 지난 5월 당의 유럽의회 의원 막시밀리안 크라의 히틀러 친위대 변호 입장을 놓고 예리하게 내분을 겪고 있다.

이런 사회적 기반의 모순 때문에 파시스트 운동은 엄청난 대규모 거리 집회와 행진을 조직하는 등 막강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매우 약체일 수 있다.

그러나 파시즘의 실체가 약체라는 점은 누군가가 들춰 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것이므로, 좌파는 드러내어 입증해야 한다. 그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방법은 파시스트들에 맞서 그들보다 훨씬 더 큰 거리 집회와 행진, 대규모 파업을 조직하는 것이다.

파시즘은 토론과 논쟁으로 물리칠 수 없다. 절망과 격노, 비탄에 빠진 중간계급 대중의 운동으로서 거리 행진과 폭력을 무기로 삼기 때문이다.

법을 개정해 정당을 강제 해산시켜도, 선거에서 패배시켜도, 파시즘은 좀비처럼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경제·정치 위기가 질질 끌고 되풀이되는 한은 좀비 자본주의의 필연적 부산물인 파시즘도 좀비처럼 죽지 않고 틈날 때마다 공세를 재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중전선의 본질

이제 파시즘에 맞서는 마치 거의 유일한 방법처럼 알려진 민중전선에 대해 살펴보겠다. 마침 파시즘이 가장 전진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신민중전선이라는 반파시즘 선거 연합이 결성됐다. 프랑스 신민중전선은 (1930년대 중반의) 옛 민중전선을 모델로 결성된 것이다.

혁명적 좌파의 일부(가령 이언 버철, 크리스 뱀버리 등)는 프랑스의 신민중전선에 과거 급진당 같은 정당이 주요하게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신민중전선이 옛 민중전선과는 다른 순전한 좌파 연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당(과 그 계열 단체들)은 1930년대의 사회당과 다르다. 사회당은 자타가 공인한 ‘(사회적)자유주의’ 중도좌파 정당이고, 올랑드를 비롯한 그들은 1990년대 말 이후 오랫동안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시행해 오다 ‘극단적 중도’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들으며 몰락했다. 게다가 이민·난민·무슬림·흑인 등에 대한 인종차별을 자행해 왔다. 바로 사회당 노선이 마크롱 정치를 낳았고, 마크롱 정치가 국민연합의 성장에 일조했다.

옛 민중전선의 진화를 살펴보면 그런 정치의 내재적 논리를 알 수 있다.

옛 민중전선은 독일 나치즘의 해외 확산을 막겠다며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스탈린주의자들(소련 공산당을 비롯한 국제 공산당들의 지도부들)이 채택한 전략이었다.

‘전선’이라는 말은 상이한 정치 조직들의 연합을 뜻한다. 그러므로 민중전선은 민중 연합 또는 좌파 연합으로 바꿔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계급 동맹을 위해 좌파 정당들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당들의 (연립 정부 수립 목적의) 선거 연합이 민중전선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민중전선은 계급 협력 기구이다. 그리고 이 연합을 지배하는 정치는 중도적(대개 중도좌파) 정치이다.

1936년 민중전선 지도자들. 사회당 레옹 블룸(왼쪽 두 번째)과 공산당 모리스 토레즈(왼쪽 세 번째)

1935~38년 프랑스 민중전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프랑스 공산당이었지만, 당시에 공산당은 중도좌파 정당으로 행동했다. 지금 프랑스의 신민중전선을 지배하는 것도 사회당과 그 계열 단체들의 중도좌파 정치다. 장뤼크 멜랑숑은 신민중전선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1930년대 중엽 민중전선 안에서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의 주도와 의회 공화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본가들의 위신을 존중했다.

또, 애국주의를 받아들여 스스로 프랑스 민족주의를 자처하며 자코뱅을 미화했다. 군 장교가 되는 것을 찬양·고무했고,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찬양했다. 노동자들의 조건을 희생시켜 추진하는 군비 증강을 지지했다.

또한 결혼과 어머니 됨을 찬양했고, 성별에 따른 공적 행동을 찬양했다.

민중전선이 알제리 무슬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겠다고 공약했다가 지키지 않았을 때 프랑스 공산당은 침묵했다.

1930년대 중엽 프랑스 민중전선 문제를 놓고 소련 출신 혁명적 사회주의자 트로츠키가 소련과 국제 공산당들의 기회주의를 비판한 것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옛 민중전선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자들의 종파주의적 회피(사회민주당을 파시즘의 일종으로 보고 반나치 공동전선 구축을 거부했다) 덕분에 1933년 히틀러가 무사히 집권한 것을 보고 공산당들의 역할이 반혁명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1936년 민중전선 집권 당시 프랑스는 혁명 일보직전 상황이었으므로, ‘반혁명적’이라는 성격 규정은 과장이 아니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가 “파시즘의 좌파적 변형”이므로 사실상 노동계급의 ‘주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1931년 여름 독일 프로이센 주에서 나치가 사회민주당 주정부에 대한 불신임 국민투표를 발의했을 때 공산당은 나치 편을 들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의 ‘분석’인즉, 사회민주주의가 파시즘의 방어벽 구실을 하고 있으므로 먼저 사회민주주의를 패퇴시켜야만 비로소 파시즘을 패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히틀러가 저항을 받지 않고 너무도 손쉽게 집권했다. 이제 트로츠키는 공산당들 안에서 좌파적 분파를 만들려던 노력을 포기하고 새로운 공산주의 정당을 창건하기로 마음먹었다.

트로츠키는 반파시즘 공동전선의 필요성과 사활적 중요성을 주장했다.

공동전선은 민중전선과 전혀 다르다. 민중전선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당과의 공동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 연합이다. 반면 공동전선은 제한된 구체적 쟁점을 둘러싸고 기층에서 공동 행동을 벌이기 위한 투쟁 기구이다.

1934년 여름까지 스탈린주의자들은 초좌파적 종파주의 노선(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사회파시즘’론에 따른)을 고수했다. 그러나 1934년 가을 그 범죄적 노선을 버리고 정반대로 계급 협력 노선으로 돌아섰다. 그런 방침이 바로 민중전선이었다.

민중전선에는 사회주의적 정당들뿐 아니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당들도 참여했다. 후자는 특히 급진당이 중요했다. 급진당은 중간계급에 기반을 두었고, 당명과 달리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당이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민중전선을 민중의 연합, 즉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연합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하는 동시에 잠재적인 파시즘 동조자들(중간계급 사람들)을 끌어당긴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대해 트로츠키는 자본주의 정당과의 협약에 의해서는 중간계급을 노동계급 편으로 끌어당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간계급이 노동계급의 적이 아님을 전제하면서, 그들을 끌어당기려면 그들이 지지하는 자본주의적 정당들과 오히려 비타협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로츠키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겠다.

“중간계급은 극단주의에 놀라 뒤로 나가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강력하고 가장 결연한 지도를 제공하는 사회 세력에게 끌린다. 그러므로 중간계급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파시스트들보다 강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계급이 자기 자신의 힘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약화시키는 것은 중간계급을 반동 쪽으로 넘겨주는 것이다.”

프랑스 민중전선의 결정적 시험대는 1936년 5월 총선에서 민중전선이 승리해 정부를 구성하면서였다. 민중전선 정부는 반파시즘과 사회 개혁을 강령으로 제시했고, 사회당과 급진당이 주축을 이뤘다. 공산당은 연립 정부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그 바깥에서 의회의 한 다수 정당으로서 실질적으로 민중전선을 지지했다.

그보다 두 달 반 전인 1936년 2월에 스페인 민중전선이 총선에서 승리해 취임한 여파 속에서 등장했으므로 프랑스 민중전선 정부에 대한 노동계급의 기대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1936년 파업과 작업장 점거가 분출했으나, 공산당이 그 기세를 꺾는 결정적 구실을 했다

노동자들은 민중전선 정부 출범 직후인 6월 광범한 파업과 작업장 점거에 들어갔다. 주로 경제적 요구들을 내놓았지만 경제적 요구들만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파시즘 척결 등 사회 변화와 직결된, 정치적 요구들도 내놓았다.

민중전선 정부는 6월 7일 노사정 협약인 마티뇽 협약으로 노동자들을 달래려 했다. 노동자들은 주 5일제 등 일정한 양보를 얻었지만, 파시즘의 위협을 분쇄하고 사회 자체를 변화시키려 하는 등 훨씬 더 나아가려 했다.

당시에 트로츠키는 프랑스 상황이 혁명적이라고 규정하고 상황이 ‘파시즘이냐 노동자 혁명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들의 작업장 점거 파업이 노동자 소비에트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민중전선은 내부적으로 너무 불균등해서 파시즘에 맞서는 효과적인 세력이 못 되고 오히려 노동자들을 사용자들에게 예속시켜 혁명적 상황 전개에 장애물 노릇을 한다고 트로츠키는 지적했다.

실제로 민중전선 정부는 사용자들이 마티뇽 협정을 지키지 않고 심지어 뒤집는 것을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공산당은 공산당대로 파시즘과 나치 독일에 반대하는 정부에 충성하고자 사용자들의 반격에 실질적 저항으로 대응하기를 기피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전투성과 기세를 꺾는 데 오히려 결정적 역할을 했다.

노동자 투쟁의 힘이 약화되자 1938년 11월경 민중전선은 내부의 우파가 득세하는 상태가 됐다. 그래서 민중전선 정부는 주 6일 노동의 부활을 입안하고 그밖에도 다른 여러 반노동적 조처들을 시행했다. 공산당이 주도하는 노동조합총연맹 CGT는 이제 효과적 저항은 전혀 일으키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1939년 공산당은 그나마 민중전선의 동맹들이 주도하는 의회에 의해 불법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40년 독일의 침공 후, 공산당이 빠진 민중전선이 지배하는 의회는 나치 꼭두각시인 비시 정부의 수립을 찬성했다.


공동전선이야말로 필요하고 중요하다

프랑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스페인에서도 민중전선 정부가 들어섰지만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거기서는 무수한 희생과 더 참혹한 비극을 낳았다. 당시 스페인 상황은 이중권력과 내전이라는 물리적이며 더 첨예한 충돌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970~73년 칠레 민중전선(민중연합이 정식 명칭이었다)의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리카국민회의라는 남아공 민중전선의 정부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민중에게 조금씩 신자유주의 독약을 먹였다. 그 결과 올해 총선에서 과반 득표에 크게 못 미치며 단독 집권에 실패했다. 흑인 노동계급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현재 프랑스의 신민중전선은 승리를 거머쥐어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중도파가 복귀하고 새 정부가 자본주의의 안정에 기여하려 애쓴다면 신민중전선은 파시즘의 재기를 막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파시즘의 재기에 의도치 않게 일조하는 셈이 될 것이다.

파시즘은 좌파들의 선거 연합으로는 분쇄할 수 없다. 물론 프랑스의 혁명적 좌파는 선거에서 신민중전선에 투표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근래에 극우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두는 영역이 선거이므로 프랑스의 혁명적 좌파는 선거에서도 극우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훨씬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거리의 대중 운동이니만큼 그들에 반대하는 거대한 거리 시위와 행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파업이 수반되면 더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대규모 거리 시위·행진, 파업이 파시즘에 맞선 효과적 수단. 6월 15일 파리의 국민연합 반대 시위 ⓒ출처 Photothèque Rouge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리와 일터에서의 투쟁이다. 국민연합에 맞서 동료 노조 활동가들, 좌파 정치단체들, 지역 단체 등을 단결시켜 극우의 공세를 저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폭넓은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 해야 한다.

이것이 공동전선이고 바로 민중전선의 대안이다. 좌파적이고 투쟁적인 대안. 그리고 결국엔 지지자들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 주게 마련인 민중전선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근본적 사회 변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도울 수 있는 공동전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