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 촉구:
고유가와 물자 부족으로 커지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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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산별노조 대표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민주노총 지도부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했다.
간담회 열흘 뒤인 20일에는 김지형 경사노위 위원장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다시금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민주노총을 경사노위에 참여시키는 데에 다시 공을 들이는 것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 여파로 한국 경제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물론 지방선거를 앞둔 표 다지기 목적도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4월 14일 “당분간은 글로벌 에너지·원자재 공급망의 어려움, 그리고 고유가가 계속될 것”이라며 “이를 상수로 두고 현재의 비상대응체계를 더욱 확고하게 다져 나가야겠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고유가와 석유 부족 위기가 산업 전반으로 전이되고 있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당장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고환율 충격은 곳곳에서 원자재 부족과 물류비 상승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나프타 공급 부족으로 쓰레기 봉투부터 배달 용기, 식료품 포장지, 농가용 비닐과 비료, 심지어 주사기와 수액 튜브 품귀와 가격 급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임금 감소와 물자 부족은 안 그래도 팍팍한 노동계급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
건설업과 일부 제조업에서는 ‘5월 셧다운’ 위기설도 나오고 있다. 국내 정유·화학 업체들은 석유와 나프타 부족으로 설비 가동률이 50~6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 설비가 완전히 멈출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레미콘에 들어가는 첨가제 부족과 방수재와 페인트 가격 폭등으로 곳곳에서 건설 공사가 중단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항공유가 가장 먼저 바닥을 드러내며 항공사들의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저비용 항공사인 티웨이항공은 전체 객실 승무원을 대상으로 5~6월 무급휴직을 실시했다.
자동차 업계도 차 한 대에 들어가는 수십 킬로그램의 고무·플라스틱 부족과 중동산 알루미늄 공급 부족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최근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하면 중동산 헬륨과 특수가스 등의 공급 부족으로 설비가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유가와 석유 부족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풀려도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은 “파괴된 원유 생산·정유 시설이 정상화되는 데는 일러도 수개월, 길게는 수년까지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이란 전쟁의 여파로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휴업·휴직·해고 등이 벌어지고 물가가 급등하면서, 생존권 차원에서 임금 인상과 일자리 보호를 요구하는 노동자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 정부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만나 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하며 그들을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대우하는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계급 간 평화 분위기를 만들고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하려고 하는 것이다.
“국정 파트너”?
그런데 최근 민주노총 집행부의 행보는 시나브로 사회적 대화 참여로 기울고 있다. 지난해 양경수 위원장은 국회 사회적 대화 참여 안건이 중집에서 합의되지 않았는데도 직권으로 중앙위원회에 상정해 통과시킨 바 있다. 최근에는 정부 주최 노동절 기념식 참석을 두고 민주노총 중집 내에서 반대 의견이 꽤 나왔는데도 참석 여부는 위원장의 판단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더해 진보당은 4월 10일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간담회를 두고 “민주노총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라며 만남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노총에게 ‘국정 파트너’ 구실을 하라고 촉구한 셈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자를 노동부 장관에 임명하고 민주노총과 몇 차례 만난 것 정도로 민주노총이 “국정 파트너”로 대우받고 있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그러나 “국정 파트너” 구실을 실질적으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큰 문제다. 지금의 거대한 경제적·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경제 살리기(자본 축적)에 매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주요국 순방 때마다 꼬박꼬박 재계 총수들과 동행하고, 수시로 그들과 경제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최근 인도를 국빈 방문했을 때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등과 동행했다.
정부나 재계가 노동계급에 양보할 의사가 없다는 점은 3월 30일 끝난 국회 사회적 대화가 공식 합의문도 없이 ‘결과 보고서’만 내고 끝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국회와 재계는 공식 합의문에 노동자들의 양보를 촉구하는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키워드를 넣으려 하다가 민주노총의 반발을 샀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노총에 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하면서 ‘고용 유연성’을 다시금 강조한 것을 봐도 경사노위의 주요 의제들이 기업에 유리한 사안일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민주노총 집행부가 고유가와 지정학적 갈등 격화 속에서 ‘국익’을 지켜야 한다고 보는 것도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사회적 대화 참여로 이끌리는 요인인 듯하다.
그러나 ‘국익’ 논리를 받아들이면 세계적 위기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길로 빠지게 되고, 따라서 국가 경제(자본 축적)를 위해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 희생과 양보를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에 취약해진다.
이재명 정부는 기업 이윤을 지켜 주기 위해 더 억압적인 정책을 쓰려는 유혹도 받고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지혜복 교사 복직을 요구하는 고공 농성에 함께한 고진수 세종호텔 지부장을 구속하고, CU 화물 노동자들의 물품 배송 저지 투쟁을 강경하게 탄압하다가 화물연대 서광석 조합원을 죽음에 이르게 한 참사를 초래한 것도 일찌감치 노동자 투쟁의 싹을 짓밟으려고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세계적인 경제 불안정과 지정학적 충돌 위험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대규모 투쟁을 벌여야만 일자리와 생활수준을 지킬 수 있다. 지금은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며 위로부터의 개혁만 수동적으로 — 그리고 헛되이! — 기다리게 하는 분위기를 조장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