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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사회적 대화와 노정 교섭보다 더 중요한 것

11월 초 정부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새 위원장에 친민주당 법조인인 김지형 전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사회적 대화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

11월 25일 김지형 위원장은 양경수 위원장을 방문해 26년 만에 정부와 민주노총 위원장의 공식 상견례를 실행했다. 그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사회적 난제 해결을 위해 민주노총과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며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제안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11월 16일 삼성·현대차·SK·엘지 등 재계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회적 대화의 운을 띄웠다. 이 대통령은 다시 “고용 유연성”(자유로운 해고)을 꺼내 들었는데, 그 대가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며 그 재원 조달 문제를 놓고 노사정 대화를 하자고 했다.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라는 맥락에서 대화는 부차적이어야 한다 ⓒ출처 민주노총

그런데 정부는 한미 무역 협상처럼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놓고 사용자 대표들과는 대화를 하면서 노동자 대표들과는 대화도 숙의도 하지 않는다.

이런 행보만 봐도 사회적 대화의 주요 의제가 기업에 유리할 사안일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회안전망의 비용 중에서 사용자 부담을 늘리자고 말했지만, AI 등 세계적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임금·복지를 절감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가 이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부자 감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나 사용자 측은 노동자 임금 수준이 올라갈 수 있다며 노동자들을 이간시키려고 할 테지만, 설사 노동자 일부의 임금이 오르더라도 고용이 유연화되면 총 노동비용은 줄어들 수 있다.

이재명 정부를 믿어선 안 된다

현재까지 양경수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 복귀보다는 노정 교섭에 중점을 두고 있다. 동시에 국회 주도의 사회적 대화에는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노사정위원회(경사노위의 옛 명칭)가 1998년에 정리해고법을 통과시킨 강렬한 기억 때문에 민주노총은 여전히 경사노위에 복귀하길 꺼리고 있다.

2019년 김명환 집행부가 경사노위 참여를 추진하다가 노동자연대·노동전선이 주도해 좌파가 공조한 부결 캠페인 때문에 대의원대회에서 좌절됐었다. 그러자 김명환 집행부는 2020년 4월 민주노총 중집에서 다시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를 확정했고, 동시에 노동자연대와의 연대 단절도 결정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가까스로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 참여했지만, 그 최종 합의문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할 게 하나도 없어서 대의원대회에서 또다시 부결됐고 집행부가 총사퇴하기까지 했다.

당시 김명환 위원장이 경사노위 참가 건이 부결됐는데도 사회적 대화 참여를 다시 밀어붙인 것은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크게 이겼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부와 협상만 잘 한다면 개혁 입법을 추진할 수 있다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 재난기에 25만 원 지원금조차 반대하며 생난리를 친 자유한국당 덕분에 운 좋게 총선에서 이겼을 뿐이지 문재인 정부는 개혁 배신을 이미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팬데믹 위기를 노동자 투쟁 억제에 활용했다.

양경수 집행부는 지금 이재명 정부가 국회 다수당인 조건에서 사회적 대화와 노정 교섭으로 개혁을 얻어 낼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지금 기업 경제 살리기라는 국가의 목표에 더없이 충실하다.

11월 24일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노조법 시행령은 그런 기대가 허망할 것임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정부는 원청 직접 교섭이란 간단한 해법(정부와 여당이 애초 노조법 개정 취지로 약속한 것) 대신에 복잡한 교섭 창구 단일화 강제 방침을 제시했다. 양대 노총 모두 사용자에게만 유리한 것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사용자 단체들과 노동부는 사용자가 이 하청사, 저 하청사 노동자들과 모두 복잡하게 교섭하게 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에 해가 된다고 말하지만, 비용과 책임을 절감하려고 복잡한 하청 구조를 만든 건 원청 사용자들 자신이다.

사용자의 책임에 따른 문제 때문에 왜 애먼 노조들끼리 경쟁하고 조율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가. 그 시간과 에너지는 투쟁을 조직하는 데 쓰여야 한다.

협상이 우선인가, 투쟁이 우선인가

자본주의의 다중 위기 속에서 사회적 대화, 즉 협상을 주된 개혁 쟁취 수단으로 보고 투쟁을 그 보조 수단으로 한정해서는 실질적인 개혁을 쟁취하기가 불가능하다. 노조법 시행령에서 보듯이, 설사 개혁을 조금 얻어 내더라도 금세 철회될 수 있다.

물론 노동조합이 협상을 원칙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쟁이 성장해 정부와 사용자들이 지금 5를 양보하지 않으면 10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 때 협상을 해야 한다.

투쟁이 성공적으로 건설되면, 어느 시점에서 저들의 양보를 받아들이는 협상을 할지 투쟁을 더 밀어붙일지를 우리 편이 주도할 수 있다. 그러려면 협상이 아니라 투쟁 건설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데 일상 시기에 불가피한 협상을 전문으로 하며 성장한 노조 지도층은 자신들이 자리잡은 구조물인 조직과 재정의 안정성을 우선하고, 그런 것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전투적 투쟁을 기피하는 보수성, 갈수록 협상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는 타성에 점차 젖게 된다.

그럼에도 늘 노조 지도자들이 조합원들의 투지보다 우위에 서는 것은 아니어서 아래로부터의 투쟁 압력이 만만찮을 때는 지도자들은 흔히 ‘투쟁과 협상의 결합’을 말한다. 가령 지금도 민주노총은 개혁 요구와 노정 교섭 요구를 병렬로 제기한다. 하지만 막상 교섭 구조가 확보되면 그 요구의 실현 동력을 교섭장으로 쏠리게 하려고 한다.

대화와 교섭을 우선시하면, 싸우기도 전에 양보할 것들부터 생각하게 된다 ⓒ출처 경사노위

그러나 대화와 협상의 성공 여부는 언제나 서로 주고 받기에 달려 있다. 대화와 교섭을 우선시하면, 싸우기도 전에 양보할 것들부터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론자들이 정규직 양보론 같은 공상적 아이디어에 친화적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들이 사회 주류에게 ‘대화(=양보) 가능’한 ‘합리적’인 인물로 보이는 것이 개혁을 위한 설득력을 높일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노조 지도층의 개혁주의는 언론을 통한 우호적 여론 조성을 현장 노동자들의 각성과 투지, 단결을 고취시키는 것보다 갈수록 중시한다.

그러나 백 년 넘게 계급 지배의 국제적 경험을 서로 공유하는 자본가들은 그런 ‘설득’에 휘둘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대선 전 이재명 대통령의 ‘우클릭’을 영리한 책략이라고 했지만, 지금 이재명 정부는 우파의 지지를 받기로 선택한 대가를 착실히 지불하고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는 화해불가능하다. 지금 같은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위기 시기엔 좀체 양보하지 않고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수익성을 만회하려 한다.

경제 침체 속에서 경제적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과 훨씬 더 융합된 지금, ‘부분적인’ 계급 이익에 몰두하지 말고 국가적 이익에 협력해야 한다는 압력이 훨씬 더 커지고 있다. 게다가 더 억압적인 정책을 쓰라는 극우의 압력도 다시 커지고 있다.

결국 계급과 국민을 조화시켜 공통의 이익을 찾아 보려는 좌파적 국익론은 모순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계급투쟁이 활발해지고 확산돼야 한다. 애국주의적 압력에 맞서 노동자들이 제국주의와 극우에 반대해 싸우고, 생계비 위기에 저항해야 한다. 교섭보다 투쟁을 우선순위에 둬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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