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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고용 유연화” 꺼내 놓는 이재명 정부

이재명 정부가 사회적 대화 추진에 나섰다. 9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노총·민주노총 위원장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에게 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했다.

정부가 9월 4일에 오찬을 잡은 것은 분명 바로 전날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서 ‘국회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좌파들의 반발 때문에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아 온 민주노총이 26년 만에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해 꽤나 애써 왔다. 집권하자마자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고,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발탁해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8.15 특별사면 때는 윤석열 정권의 대표적인 노조 탄압 피해자들인 건설 노동자들을 석방했고, 김영훈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장기 투쟁 사업장들의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된 후 김영훈 장관은 다음 과제가 “초기업교섭” 도입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중앙뿐 아니라 각 산별이나 지역 노조도 초기업 교섭에 참여하게 해 여러 수준의 사회적 대화 기조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국회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하자마자 이재명 대통령은 고용 유연화를 요구했다 ⓒ출처 대통령실

오찬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사회 안전망과 기업의 부담 문제, 고용의 안정성과 유연성 문제를 한 번쯤은 터놓고 논의해야 한다.” 이미 6월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시장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을 교환하는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사회적 대화를 추진해 온 역대 정부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대통령은 비정규직·외주화 확대가 정규직 탓이라고 주장한다. 정규직의 고용 경직성 때문에 기업들이 “정규직을 뽑지 않고 비정규직화 해서 외주를 준다”며 말이다.

이처럼,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로 끌어들여 고용유연성 확대 같은 노동 개악을 추진하려고 한다.

이는 성장률이 점차 낮아지는 한국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다. 특히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1퍼센트가 채 되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의 지배계급에게 더 큰 걱정거리는 한국의 ‘잠재성장력’이 계속 떨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2010년대 한국 성장률은 3퍼센트 내외를 기록했지만, 2020년대에는 2퍼센트 내외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세계경제 전망도 점차 악화되고 있다. 미국·프랑스·영국·일본 등 주요국의 국가 부채 위기, 한국의 건설 경기 침체와 이에 따른 금융 부실 확대, 석유화학·철강·디스플레이·배터리 등의 과잉 축적,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른 수출 악영향 등은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공산이 크다.

여기에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경제적 경쟁뿐 아니라 지정학적 갈등도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 적절히 줄타기를 하려 하지만, 미·중간 제국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어 줄타기를 할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극우들은 제국주의 문제로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며 세를 키우고 있다.

“고용 유연성”

이처럼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둔화하고 지정학적 갈등도 커지자 이재명 정부는 ‘국가경쟁력’을 위해 노동생산성(마르크스가 말한 착취율)을 높이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출범 이후 이재명 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재명이 “국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성장”(마르크스가 말한 자본 축적)이었다.

대선 때부터 이재명 당시 후보가 가장 강조한 것은 AI, 에너지, 방위 산업 등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기업을 지원하는 것에 우선순위가 있다. 특히 정부 재정과 민간 투자를 결합해 AI 산업을 대거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AI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서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정책이 정말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특히 AI 투자는 거품 논란이 있을 만큼 불확실하고, AI의 확대가 노동생산성을 높일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처럼 경제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들이 만족할 만한 개혁을 제공하기 어렵고 그럴 의지도 없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는 자본가 계급의 강력한 압박을 받고 있다. 자본가들은 이미 추진되고 있는 노란봉투법 적용과 산업재해 엄벌뿐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 노동시간 단축, 산재보상 국가 책임제,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계획에 분노하고 있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는 기업주들을 자주 만나 그들을 달래려 하는 동시에, 개혁 입법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을 얘기하며 추진 속도를 늦추려고 한다.

집권 첫해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은 이재명 정부 임금 정책이 인상률 억제라는 점을 보여 준다 ⓒ조승진

또한 이재명 정부는 “격차 해소”를 거듭 얘기하는데, 사회 양극화(계급간 양극화)를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 문제로 치환하면서, 저임금 해소, 비정규직 감축, 복지 확대 등의 재원 마련을 명분으로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강요하려 한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의 임금 정책은 인상률 억제에 맞춰져 있다. 역대 정부 첫해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에서 보았듯 말이다.

또, 이재명 정부는 직무급제 도입으로 임금 인상을 더한층 억제하려 한다. 정부는 법정 정년연장이나 초기업교섭 도입 등을 얘기할 때마다 근로기준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그 전제 조건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대안으로 얘기하고 있다. 직무급제는 연공급제를 폐지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제도이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자아낼 만한 위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서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사회적 대화와 다양한 수준의 교섭에 그들을 참여시켜 개악 합의를 이끌어 내어 정당성을 확보하고, 기층의 노동자들이 반발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 인사들이 경제 회복을 위해 노사 평화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장률) 반등을 위해선 노사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부터 줄여야 한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과 김영훈 장관도 노란봉투법이 “극한투쟁의 악순환을 끊는 대화 촉진법”이고 “협력업체 생산성이 동반 개선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 참여로 친노동 개혁을 성취할 수 있을까?

양경수 위원장은 국회 사회적 대화 참여 안건이 중집에서 합의되지 않았는데도 직권으로 중앙위원회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그만큼 사회적 대화 참여 의지가 강한 것이다.

민주노총 노정교섭TF 담당 임원인 이양수 부위원장은 “민주노총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정부와의 교섭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는 이재명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비정규직 처우 개선 같은 개혁을 달성할 것이라고 표방한다. 여러 층위에서 사회적 대화와 노사정 교섭이 진행되면 노동조합 간부들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국회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회의 ⓒ출처 민주노총

그러나 민주노총 내부의 반발도 적지 않기 때문에 양경수 위원장은 경사노위 참여에는 확답을 하지 않은 채, “노정교섭”을 강조했다. 여전히 많은 조합원들은 경사노위 등 사회적 대화가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노동 개악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1일에 열린 민주노총 중집은 노정교섭 추진 계획을 의결했다. “노정교섭 추진에 대해서는 중집에서 큰 이견 없이 의견들이 모아지긴 했”다고 한다. 국회 사회적 대화 참여에 반대한 민주노총 상근 간부들도 모두 ‘노정교섭’은 지지한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정교섭이 성과를 내고 정부와의 신뢰가 쌓이면 경사노위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인 듯하다. 일종의 조건부 참가론인 셈이다.

1998년 이후 민주노총 좌파 상근간부들은 노정교섭이 노사정 사회적 대화와 대단한 차이가 있는 양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민주노총 좌우 지도자 모두 노정교섭을 말하며 자신들의 협상 의제를 제시하거나 각 층위별 협상 기구를 만드는 데에 사용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노정교섭이 제대로 될지는 별도로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노정교섭 추진은 정부의 개악 시도에 맞서 싸우겠다는 것인지, 정부와의 대화에 집중하겠다는 것인지 노동자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한편, 미국의 관세 부과와 지정학적 갈등 격화 속에서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국익’을 지켜야 한다고 보는 것도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하는 요인이었던 듯하다.

예컨대 양경수 위원장은 9월 4일 오찬 회동에서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과 대미투자 관행은 우리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며 “자동차나 조선, 철강과 같은 핵심 산업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면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우리 국민과 노동자를 지키는 당당한 외교에 나서기를 요청 드린다”고 강조했다.

좌파적 “국익”론이 지배계급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 등 서민의 이익을 가리키는데, 트럼프에 맞서 국가의 경제·안보 주권을 방어해야 서민의 일자리, 소득, 한반도 평화 등도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노정교섭이 노사정 대화와 질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출처 민주노총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먼저 나서서 국방비 지출 확대, ‘마스가’ 프로젝트를 통한 미군 해군력 증강 등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정부의 친제국주의 경향을 반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익’ 논리를 받아들이면 트럼프에 맞서 한국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길로 빠지기 쉽고, 따라서 노동자들도 한국 경제(정부와 기업)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한다는 논리에 취약해지기 십상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보장하는 대신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놓고 양보를 얻어 내려 한다. 또, ‘사회적(특히 노·자 계급간) 평화’ 분위기를 만들어서 사회적 대화 바깥에서 벌어지는 전투적 노동자 투쟁을 고립·위축시키고 싶어 한다.

물론 정부의 뜻대로 사회적 대화가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자본가들이 조금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 할 수 있고,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도 벌어질 것이다. 노란봉투법 등에서 자신감을 얻어 투쟁에 나서는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경제 위기와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들의 조건 방어 투쟁도 벌어질 수 있다.

이런 투쟁들 간의 연대를 확대하고 투쟁을 보편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 투쟁만이 정부와 자본가들의 양보를 얻어 낼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주장에 맞서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정부는 정규직을 탓하며 사회적 대화로 정규직의 양보를 끌어내려고 한다. 현재 노동운동 내 주류 경향도 대기업 정규직의 투쟁은 임금 격차만 증대시킬 뿐이라는 회의론을 편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재명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을 방관하면 세력 균형이 노동계급에 불리하게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도 방어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끝으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적 주장들을 하고 그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내놓는 것을 축적해야 한다. ‘진정한 대안’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며 트럼프 정부에 협조하려는 이재명 정부의 노선에 반대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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