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지도부의 사회적 대화 복귀는 노동자 배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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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이 11월 13일 오후에 사회적 대화에 복귀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11일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김동명 위원장은 “한국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을 인정하고, 노동 정책의 주체로서 한국노총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전제조건도 없다”고 말해, 불길한 조짐을 드러낸 바 있다.
13일 낮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연장 정책은 노조와 논의해 시행하겠다며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를 공개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오랜 시간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를 책임져 왔으며, 노동계를 대표하는 조직이다. 한국노총이 조속히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여 근로시간 등 여러 현안을 노사정이 함께 논의할 것을 기대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서로 화답한 것이다.
한국노총 김동명 집행부는 6만 명(주최측 발표)이나 되는 조합원을 모아서 윤석열 심판 투쟁을 하겠다고 해 놓고, 그 자리에서 사회적 대화 복귀를 암시하더니 이틀 만에 윤석열 정부에 대한 투쟁을 정리해 버린 것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김문수는 11일 양대 노총의 노동자대회를 비난했는데, 그 불과 며칠 전(11월 7일) 한국노총 서울본부는 자신의 행사에 김문수를 초청해 축사를 맡겼다. 여기서 김문수는 김동명 위원장과 만났었다.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부의 부당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압박을 수용하면서 이미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그런 점에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한국노총에 뒤이어 노조 회계 공시를 결정한 것은, 윤석열의 노동개악에 맞선 좌파적 견인력을 약화시킨 꼴이다.)
무엇보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조·3조 개정)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는 양 노총 노동자대회 후 윤석열과의 대화 노선으로 돌아서면서 노조법 개정안 통과 염원에도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배신은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9년 당시 장석춘 집행부는 노조법 개악에 반대하는 역대 최대 규모 집회를 열어 놓고는 며칠 뒤 이명박 정부와 노조법 개악에 합의하며 뒤통수를 쳤다.
장석춘은 그 뒤 총선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지금 국회 환노위에서 개혁 입법 방해꾼 노릇을 하는 임이자도 당시 한국노총 임원으로 장석춘과 함께 국회의원이 됐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복귀의 변으로 “경제 위기 등에 따른 피해가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온건한 개혁주의자들이 노사정 대화에 나설 때 내놓는 전형적인 변명이다. 국가적·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할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말과 달리, 노동자들의 고통 분담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강경 우익화 공세를 늦추며 자세를 낮추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는 그저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제스처일 뿐이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그런 현혹에 포장지를 씌워 준 것이다. 만일 경사노위에서 한국노총 지도부가 개악에 합의하면, 한국노총과 연대해 온 민주당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의문스럽다.
윤석열이 기업주들을 대변해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는 고통 분담에 맞서려면, 위기의 주범인 정부와 기업주들에 맞선 대중적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이런 투쟁의 필요를 배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