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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 이론: 자본주의 분석으로부터 도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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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 이론을 다룰 때 맨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제국주의를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제국주의라고 하면 강대국의 침략 정책, 식민지 지배, 군사 확장, 외교적 강압 등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이것들은 제국주의가 현실에서 드러나는 일부 양상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제국주의는 단순히 그런 표면적 현상들의 총합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가 세계적 규모로 형성되고 확장되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 각 지역 사이의 발전 격차와 지배·종속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하려는 더 넓은 이론적 시도다. 여기서 ‘종속’이란 한 경제의 자본 축적이 글로벌 노스의 요구와 역동성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적 조건을 뜻한다. 자본주의의 형성, 세계적 확장, 지역 간 불균등 발전,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를 억압하게 되는 과정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이 전체 역사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개별 이론도 그 전체적 시야 속에서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이 출발점은 매우 중요하다. 제국주의를 단지 강대국의 약소국 침략 문제로만 보면, 결국 어느 국가가 더 호전적인가, 어느 국가가 더 온건한가 하는 문제로 축소되기 쉽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는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국경을 넘어 확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이전과 구별되는 자본주의 발전 단계다. 자본은 멈춰 설 수 없고, 축적은 계속돼야 하며, 그 축적에는 새 시장, 새 원료 공급지, 새 투자처, 새 노동력 원천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본성상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문제는 그 국제화가 결코 평등하고 조화로운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과정은 기존 사회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강제하며, 어떤 지역은 글로벌 노스로, 다른 지역은 글로벌 사우스로 만들면서 발전과 ‘저발전’을 동시에 낳는다. 여기서 ‘저발전’은 단지 발전 수준이 낮다는 뜻이 아니라, 발전 자체가 왜곡되고 억제된 상태까지 포함한다. 제국주의는 바로 자본의 이 모순된 세계적 운동이 집약된 정치적·경제적 국면이다.
제국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형성돼 특정 지역에서는 산업화와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다른 지역에서는 종속과 저발전, 기아와 빈곤을 낳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발전시켜 온 개념들을 살펴본다.
이 문제들에 접근하려면 먼저 자본주의의 본질과 운동 방식, 세계 시장과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모든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론은 경제 체제의 진화가 중심적이며,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발전 과정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1 이 방법론적 출발점은 역사유물론이다. 역사유물론은 생산이 언제나 사회적 과정이라고 본다. 인간은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생산하지만, 동시에 서로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생산한다. 따라서 유물론적 사회 분석은 개인의 동기나 선택이 아닌 생산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산력 증대를 전제로 생산수단 접근과 생산물 배분, 잉여 생산물 취득을 규정하는 사회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이 방법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마르크스가 강조했듯, “역사적으로 특수하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한 범주를 모든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특수한” 생산양식을 분석하려면, 그 개념도 그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제국주의를 고대 제국과 같은 일반적인 강대국 정치로 봐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라는 특수한 생산양식이 세계사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생산양식 개념은 또 하나의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현실 사회, 특히 글로벌 사우스는 단일한 순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생산양식 요소가 결합한 사회구성체가 일반적이다. 그중 하나가 지배적 생산양식으로서 나머지 요소의 지위를 규정한다. 이 관점은 제국주의 분석에 매우 중요하다. 제국주의는 처음부터 자본주의 사회들 사이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계가 아직 우세하지 않은 사회들을 세계 시장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기존 공동체적 관계가 급속히 파괴되고 임노동 관계가 확산되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전통적 토지 관계와 시장 관계가 오랫동안 뒤얽힌 형태로 공존한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자본주의가 비자본주의 세계를 만나 일거에 그것을 동일한 모습으로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회관계들이 충돌하고 결합하며 재편되는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국가 문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는 흔히 국가를 지배계급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자본가 계급 내부에도 분파와 이해관계의 충돌이 존재한다. 국가 정책은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자본주의적 정치 세력의 충돌 속에서 결정된다. 국가는 개별 자본들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다. 때로는 특정 자본가 집단의 이익을 거스르는 정책을 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이익이라는 넓은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크리스 하먼은 이를 가리켜 국가와 자본이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고 표현했다. 2 제국주의 분석에서 국가의 역할은 필수적이지만, 그것을 단순히 “자본 일반”의 지시를 집행하는 장치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많은 제국주의론이 이 점에서 미흡하다. 그럼에도 경제 문제는 제국주의 이해의 필수 요소다. 좋은 제국주의 이론은 국가 정책을 자본주의 축적과 연관지어 설명하려 한다.
자본주의의 일반 이론에서 출발해 제국주의 문제를 다룬다
마르크스는 후대의 레닌처럼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단계’로 정식화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의 주된 관심은 자본주의 일반의 운동 법칙이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을 자본·임노동 관계와 경쟁적 자본 축적으로 봤다. 이 간명한 명제는 매우 중요하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의 출발점은 자본주의의 이 운동 법칙이 국경 안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상품 생산이 사회 전체로 일반화된 체제다. 생산은 시장을 위해 이뤄진다. 자본가의 생산수단 통제는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며,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판매해야 한다. 각 자본가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싸게,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축적 압력을 낳고,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도록 강제한다. 이 체제는 본질상 정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본의 자기증식 운동은 더 큰 시장과 더 많은 원료, 더 넓은 투자 기회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세계 시장은 자본주의 바깥에 주어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자본주의 스스로가 변화시키며 만들어 가는 체계다. 마르크스가 제국주의 자체를 따로 이론화하지 않았더라도, 자본주의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장해 나아가는지에 대한 근본적 설명은 바로 그에게서 나온다.
마르크스는 경쟁적 자본 축적의 역학을 통해 생산력 발전을 설명했다. 경쟁은 단지 시장의 표면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필연적 강제다. 더 생산적인 기업은 살아남고 덜 생산적인 기업은 도태된다. 이 과정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낳고, 생산 규모의 확대와 기술 혁신을 촉진한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사적 체제였다. 그는 자본주의를 도덕적으로 옹호하지 않았으나 이전 사회보다 진보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자본주의는 잔혹하지만, 동시에 사회주의의 물질적 전제를 준비하는 체제이기도 했다. 이 양면성은 식민주의와 이후 제국주의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도 거듭 주목받는 지점이다.
자본주의의 기원
자본주의의 기원은 비자본주의 세계로의 확장과 맞물려 제국주의 문제와도 깊이 관련된다.
자본주의의 기원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심대한 변화 중 하나였다. 10세기 유럽은 인구 대부분이 농촌에서 자급자족하던 봉건제 사회였다. 이런 사회가 대도시와 화폐 경제 중심의 자본주의로 어떻게 전환됐는지가 핵심이다.
16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은 인도나 중국보다 특별히 더 부유하거나 더 선진적인 지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 유럽 국가는 무기와 조선 기술의 우위를 바탕으로 외부로 진출할 의지와 동기를 갖췄다. 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해양 제국을 형성하는 기초가 됐다. 해양 제국은 바다를 통제해 패권을 유지하며, 자원 수탈에 집중하는 대륙 제국과 구별된다.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중상주의 시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우위를 점했다. 스페인 제국은 중앙아메리카와 안데스의 금·은 채굴과 강제노동 체제를 토대로 세워졌고, 포르투갈 제국은 향신료와 노예무역을 장악하는 교역 거점을 토대로 세워졌다. 설탕 플랜테이션, 대서양 삼각무역, 아프리카 노예무역, 아시아 교역 거점이 결합되면서 유럽 상업은 세계를 지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 사회는 파괴됐고 아프리카는 노예무역에 휘말렸으며 인도와 아시아는 약탈 대상이 됐다.
이 시기의 세계 시장을 이미 자본주의로 볼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이 시기에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형성됐다고 보았다. 반면 다른 이들은 자본주의 싹이 튼 사회들이 전 자본주의 사회를 연결한 상업 네트워크에 불과했다고 보았다. 논쟁의 핵심은 자본주의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있다. 만약 자본주의를 단순히 시장 교환과 상업 확장으로 본다면, 이미 16세기부터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자유 임노동, 착취 관계, 생산수단 소유 보편화, 경쟁에 따른 축적이 지배하는 생산양식으로 본다면 당시 세계 시장은 아직 자본주의가 아니었다.
상업과 무역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상업화나 무역로 개척, 아메리카 대륙 정복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자본주의의 근본적 동력이었던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기원은 봉건제 내부의 생산력 증대와 계급관계 변화, 사회·정치·이데올로기적 갈등과 혁명적 격변이 결합한 과정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제의 모순 속에서 자라난 내부적 산물이며, 전환(이행移行)의 돌파구는 경제적 잠재력, 계급적 조직, 정치적 지도력이 특별히 결합되면서 마련됐다.
시장 관계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면 자본주의 전환이 왜 5세기나 9세기가 아닌 14~15세기에 시작됐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대안적 설명은 이렇다. 3 먼저 봉건 시대가 경제적으로 정체돼 있었다는 통념을 버려야 한다. 서기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중세 유럽에서는 농업과 수공업 분야에서 지속적 경제 성장이 있었다. 씨앗 한 알에서 나오는 곡식의 양이 늘어났고, 새로운 윤작법이 도입됐으며, 비료 사용이 확대됐다. 소 대신 말을 사용하게 됐고, 수력 방앗간과 수레바퀴가 등장했으며, 철제 쟁기도 개발됐다. 이런 기술 진보와 생산성 증가는 14세기에 이르러 유럽 사회를 크게 변모시켰다. 이 성장은 외부 자극이 아니라 봉건제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났다.
생산력 발전은 미세한 수준에서 새로운 생산 방식을 낳았다. 마르크스 역사유물론에 따르면 인간이 함께 일해 생계를 꾸리는 방식이 생산관계를 형성한다. 지배계급은 이를 통해 착취해 정치·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구축한다. 마르크스는 미세한 수준의 새로운 생산 방식이 기존 체제와 모순되는 관계를 창출한다고 지적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아야 한다. 봉건제 내부에서 농민층 분화가 진행됐다. 일부 농민은 타인의 임노동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자유 임노동의 생산성을 깨달은 이들은 잉여 추출을 위해 임노동을 사용했다. 도시에서는 상업에 종사하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했다. 일부 봉건 영주조차 상업에 관심을 가졌다. 이것이 봉건제 내부에서 발전한 자본주의의 싹이었다. 신흥 상인층 활동은 봉건제와 모순을 일으켰다. 이 모순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돌파구가 됐다.
경제적 변화에 따른 사회 변모 과정은 3단계로 전개된다. 첫째, 생산력의 변화가 미세한 수준에서 생산관계를 변화시킨다. 둘째, 이 미세한 변화가 더 넓은 생산관계, 정치적 상부구조, 구질서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한다. 셋째, 이 도전은 혁명적 격변을 부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마르크스가 말한 ‘혁명의 시대’를 불러올 잠재력을 만든다. 그러나 경제적 변화가 자동으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새 세력의 돌파구 마련은 필연이 아니다. 계급 조직 수준과 지도력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 요소가 유럽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굴 인도나 송·명 시대 중국 같은 다른 지역에도 자유 노동의 출현이나 상인 계급의 성장 같은, 자본주의의 싹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를 향한 가능성은 있었지만, 유럽에서만 그것이 현실화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유럽에서처럼 매우 작은 수준의 변화가 이데올로기의 변화, 기존 질서와의 물리적 충돌, 혁명으로 이어질 만큼의 추진력을 얻지 못했다. 반면 유럽에서는 봉건제 내부의 생산력 발전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계몽주의 같은 이데올로기 변화와 결합하고, 독일 종교전쟁, 30년 전쟁, 영국 혁명, 프랑스 혁명 같은 정치적 격변과 맞물리면서 비로소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 양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단순한 경제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투쟁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부르주아 혁명은 자본 축적의 논리를 가로막는 봉건적 국가 기구와 법적 장애물을 제거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16~17세기 혁명, 특히 네덜란드와 영국의 혁명은 기존 봉건 영주들이 쥐고 있던 국가 권력을 해체해, 상업과 초기 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 자본가가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사회를 재편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 즉, 혁명은 자본주의가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전제 조건이었다.
여기에 더해,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전개된 영국 산업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확보된 공간에서 자본주의를 돌이킬 수 없는 사회 체제로 만든 동력이었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자본 간 경쟁이 강제하는 자본 축적인데, 산업혁명은 기계화와 대량 생산을 통해 그 강제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단순히 유통의 차원을 넘어 생산의 심장부까지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
산업혁명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당시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시장 생산이 보편화됐다. 기업 간 경쟁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며 영국 기업은 세계를 앞서기 시작했다. 영국은 원료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하는 ‘세계의 공장’이 됐다. 제국에서 얻은 이윤은 자본 축적에 기여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비전은 산업화가 창출한 생산력에 기초했다. 산업혁명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빈곤과 고된 노동의 폐지를 상상하게 한 역사적 조건이었다. 동시에,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불균등한 분업 구조를 확립했다. 글로벌 노스가 공산품을 수출하고 글로벌 사우스가 원료를 공급하는 구조가 이때 본격화됐다.
정치적 돌파구인 부르주아 혁명이 산업혁명보다 더 결정적이었다. 18세기 이전 중국과 인도 등지에도 원시적 자본주의 요소는 존재했다. 하지만 서유럽이 자본주의 승리를 거둔 이유는 혁명으로 봉건적 구속을 타파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돌파구가 없었다면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배계급의 수탈로 자본 축적은 중단됐을 것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이탈리아가 대표적 사례다.
부르주아 혁명이 자본주의를 확립했고, 산업혁명이 물질적 위력을 부여했다. 자본주의는 17세기 혁명을 거쳐 18~19세기 산업혁명으로 완결됐다.
그리고 1848년 혁명을 겪은 이후인 19세기 하반기에는 위로부터의 자본주의적 개혁이 일반적인 자본주의 발전의 길이 된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형성과 비자본주의 세계로의 자본주의 확장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말까지 세계를 변모시킨 세 가지 상호 연관된 발전을 짚어 본다. 첫째, 생산력의 엄청난 증대다. 둘째, 세계 각 지역의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전례 없이 확대됐다. 셋째, 자본주의가 지배적 생산양식으로 부상했다. 이 세 가지를 따로 떼어 볼 수는 없다. 생산력의 도약, 불평등의 심화, 자본주의의 지배적 확산은 하나의 동일한 역사적 과정의 서로 다른 측면이다. 다시 말해, 세계의 부유함과 세계의 빈곤은 서로 분리된 현상이 아니라 같은 체제의 두 얼굴이다.
먼저, 식민 제국의 실상부터 본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세계적 군사·정치적 우위는 경제적 우위에 기초하고 있었다. 더 발달한 기술은 더 우수한 무기와 수송 능력을 낳았고, 더 강한 경제력은 먼 곳까지 군대를 보내고 유지할 비용을 감당하게 했다. 제국 확장의 동기도 근본적으로 경제적이었다. 동인도회사 사람들, 스페인 정복자들, 남아프리카 광산 투자자들, 노예상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들이 원한 것은 부였다. 식민지는 값싼 원료 공급지였고, 값싼 노동력의 원천이었으며, 독점된 시장이었다. 제국의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을 경제적 원인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제국 확장의 추동력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19세기 전체는 이런 제국들이 확장되는 시기였다. 라틴아메리카는 형식상 독립했지만 영국의 비공식적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인도는 영국 제국의 가장 중요한 식민지로 편입됐다. 중국은 무력으로 개항을 강요받았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차지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 특히 인도네시아 지역을 장악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로 확장했다. 북미와 오스트랄라시아도 자본주의 세계 경제로 편입됐다. 이 시기에 세계는 분명하게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로 갈라졌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세계 경제의 기본 골격이 세워졌다.
마르크스가 주목했듯, 자본주의의 발전은 파괴와 발전을 동시에 수반한다. 비자본주의 사회 진출은 단순한 외부 약탈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생산관계와 계급관계를 뒤흔드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잔혹하고 폭력적이다. 기존 생산관계와 사회관계, 생활양식을 무너뜨린다. 동시에 새로운 생산 방식과 계급관계의 가능성도 연다. 이 지점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훗날의 ‘종속이론’을 가르는 핵심 차이다. 마르크스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확장을 정체와 봉쇄만 낳는 체제로 보지 않았다. 4 자본주의는 폭력적이고 예속적이지만 그 속에서도 발전 조건을 확산시킨다고 봤다.
자본주의는 교역과 시장 확대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생산력 증대와 함께 생산수단에서 생산자를 분리하고, 노동력 판매에 의존하게 만드는 생산관계 변화가 필요하다. 유럽 자본주의 성립 과정은 이런 재편의 역사였다. 자본주의가 외부로 확장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역 확대가 아니다. 생산관계가 어떻게 변하고 비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변모시키는지가 핵심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의 인도 논의는 중요하다. 5 인도론을 보면 그의 태도가 단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영국의 인도 지배가 전통 공동체와 생산관계를 파괴하고 시장 통합을 강제한다고 보았다. 인도에서의 파괴는 단순한 정치 지배가 아닌 경제·사회 구조의 파괴였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영국은 이전 지배자의 재정과 전쟁 기능은 넘겨받았으나 공공사업은 방치했다. 인도 전통 사회는 국가가 세금을 거두는 한편 관개, 치수, 도로 등 공동체 재생산 장치를 유지했다. 그러나 영국 지배는 그 위에 기생하며 마을 공동체와 관개 시설, 수공업 등의 유지 조건을 파괴했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인도 지배는 철저히 파괴적이었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이 파괴가 전통 사회의 정체를 깨고 새로운 역사적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봤다.
제국주의 시대의 개막
19세기 말은 다시 한번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기업 규모는 급격히 커졌다. 카르텔과 트러스트 같은 독점 형태가 확산됐고 자본 수출도 증가했다. 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돼 가면서 이후의 확장은 다른 열강의 몫을 빼앗는 방식으로만 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독점의 성장, 자본 수출, 열강의 경쟁과 전쟁 사이의 연관을 설명하는 이론이 필요해졌다. 이것이 바로 부하린과 레닌의 고전적 제국주의론이 다루려 했던 핵심 과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확장을 세계적 규모의 발전 과정으로 이해했다. 임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핵심이다. 경쟁은 축적과 기술 진보를 강제한다.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 사회로 확장하며 그 사회들을 변화시킨다. 여기서 식민주의는 자본주의 확장의 폭력적 형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식민 지배만이 제국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단일 국기와 단일 정치 권위 아래의 직접적 식민 통치는 제국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형식적 독립은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떤 나라는 공식적으로 병합된 적이 없더라도 무역, 투자, 외채, 군사적 압력, 외교적 지배를 통해 식민지에 준하는 예속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가 좋은 사례다. 그들은 오랫동안 법적으로는 독립국이었지만, 세계적 불평등과 지배 체계 속에 식민지 못지않게 깊숙이 통합돼 있었다. 이 점은 제국주의를 단순한 영토 병합의 역사로 볼 수 없게 만든다. 제국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의 서열과 위계 체제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단지 정체와 약탈의 체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의 입장에서는 자본주의 침투가 잔혹한 방식으로 이뤄지더라도, 결국 세계 전반에 자본주의 발전의 모순된 조건을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점은 이후 부하린과 레닌에게도 일정하게 이어진다.
마르크스의 한계와 이후 이론의 필요성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만으로는 제국주의를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 탓에 독점, 금융자본, 자본 수출, 열강의 분할 경쟁 등은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이는 이론적 한계가 아닌 시대적 차이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기에는 자유경쟁 자본주의가 지배적이었고, 독점과 금융자본의 시대는 아직 전개되지 않게 됐다. 따라서 후대의 제국주의론은 마르크스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반 이론을 새로운 역사적 국면에 맞게 구체화하는 작업이 돼야 했다. 이 점에서 부하린과 레닌의 의의가 있다.
이렇게 보면 마르크스와 후대 제국주의론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일반 논리를 분석했다. 부하린과 레닌은 독점과 금융자본 시대의 구체적 형태를 분석했다. 연속성과 단절이 동시에 존재한다. 연속성은 자본주의가 세계 시장을 창출한다는 점, 그 확장을 자본주의의 생산력 증대가 매개한다는 점, 그리고 그 확장이 비자본주의 사회를 해체해 변형한다는 점에서 보여 준다. 단절은 20세기 초 자본주의가 독점과 국가 간 경쟁, 자본 수출 중심으로 변모했다는 점에 있다.
카를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과 평화주의 환상
부하린과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살펴보기 전 카를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 개전 한 달 만에 그는 자본의 국제화가 열강의 경쟁을 넘어서는 안정적 공동 지배 체제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세계화가 심화할수록 국가 간 전쟁은 불합리해져 사라진다’는 논리다. 부하린과 레닌은 이 주장에 강하게 맞섰다. 자본의 국제적 통합이 발전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국민국가와 결합한 자본 블록들의 국제적 결합이며, 세계 시장의 재분할과 패권 재편을 둘러싼 경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통찰은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자본의 지구적 통합이 곧 평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자본의 지구적 통합이 심화할수록 세계 경제 규칙과 이권 분배를 둘러싼 경쟁은 더 첨예해진다. 부하린과 레닌은 전쟁을 외교적 오판이 아닌 체제적 산물로 보았다. 지구적 통합 중인 자본주의가 경쟁적 국민국가 체제를 통해 매개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이들의 통찰에 상당한 역사적 설득력을 부여했다.
부하린: 세계 경제와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
부하린은 힐퍼딩의 금융자본 분석과 마르크스·룩셈부르크의 자본주의 국제화 분석을 결합해 독점적 자본 블록이 국민적 기초 위에서 형성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하나의 세계 경제로 보면서도, 이것이 국민국가와 결합한 거대 자본 블록 간 경쟁으로 조직된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자본주의에 두 가지 경향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봤다. 하나는 자본의 집중과 독점의 강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지리적 확장과 세계 경제의 통합이다. 그러나 이 두 경향은 조화롭게 통합되지 않는다. 독점적 자본 블록이 여전히 각 국민국가와 긴밀히 결합해 있는 까닭이다.
부하린이 보기에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형식이 바뀔 뿐이다. 자유경쟁 시대에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가격과 생산성을 겨뤘으나, 독점 시대에는 금융자본 블록이 국가 지원을 받아 더 높은 수준에서 경쟁한다. 그래서 경쟁은 개별 기업 사이의 경쟁에서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들’ 사이의 경쟁으로 옮겨 간다. 바로 이것이 부하린 이론의 핵심이다. 제국주의는 단순한 침략 정책이 아니다. 자본의 국제화와 자본의 국가적 조직화 사이의 모순이 정치·군사적으로 폭발한 형태다. 이 틀 안에서 보호무역, 이권 확보, 식민지 경쟁, 군비 확장, 전쟁은 모두 자본 축적의 구조적 연장으로 이해된다.
부하린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자본이 세계적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국가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국가를 통해 매개된다. 자본은 세계적인 동시에 국민국가적이다. 바로 이 이중성이 제국주의를 낳는다. 세계 시장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지배하려는 자본 블록들은 국가라는 정치적 장치를 통해 조직된다. 따라서 자본의 지구적 통합과 국가의 경쟁적 조직화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의 모순된 통일이다. 부하린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이 구조적 모순을 정확히 포착했기 때문이다.
레닌, 독점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레닌은 이 고전적 제국주의론을 더 널리 알려진 형태로 정식화했다. 그의 이론의 가장 큰 장점은 제국주의를 정책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한 단계로 파악했다는 데 있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로 규정하면서 다섯 가지 특징을 제시했다. 첫째, 생산과 자본의 집중이 독점을 낳았다. 둘째,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에 따라 금융 과두 체제가 형성됐다. 셋째, 상품 수출과 구별되는 자본 수출이 특히 중요해졌다. 넷째, 국제적 독점 자본가 결합이 형성됐다. 다섯째,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한 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됐다.
이 규정은 중요하다. 그것은 제국주의를 몇몇 호전적 국가들의 대외정책으로 축소하지 않고, 자본주의 구조 자체의 변화와 연결하기 때문이다. 레닌은 식민지 보유 여부보다 자본의 집중과 독점, 금융자본 형성, 자본 수출 확대, 국가 간 세계 분할 경쟁이 지배적 구조가 됐는지에 주목했다. 이렇게 보면 제국주의는 국제 정치의 현상인 동시에 자본주의 경제 구조의 특정 단계다. 식민지 보유는 그 한 표현일 뿐이며, 제국주의의 본질은 독점, 금융자본, 자본 수출, 국가 간 경쟁의 결합에 있다.
레닌 이론의 공헌은 크지만 구체적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그는 제국주의 구성 요소를 효과적으로 제시했으나 요소 간 필연적 연관을 완전히 해명하지는 못했다. 왜 독점이 반드시 자본 수출과 연결되는가, 왜 자본 수출이 영토 분할 경쟁과 연결되는가, 왜 국제 독점 결합은 평화적 협정보다 갈등과 전쟁으로 이어지는가 같은 문제에서 그의 논의는 충분히 엄밀하지 않다.
그럼에도 레닌의 강점은 뚜렷하다. 그는 몇몇 거대 제국들이 경쟁하며 분할한 세계와 지구 전역으로 확산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묘사했다. 또한 금융자본 블록과 기생적 금리 생활자층으로 권력과 부가 집중되는 현실을 강렬하게 묘사해 냈다. 여기서 금리 생활자층이란 생산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해외 투자 수익, 이자, 배당으로 살아가는 자산 소유자층을 말한다. 레닌은 완결된 이론 체계를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라도, 20세기 초 세계 자본주의의 현실을 가장 집약된 형태로 포착했다. 독점, 금융자본, 자본 수출, 국가 간 경쟁과 전쟁이 하나의 시대적 총체를 이룬다는 점을 그는 누구보다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
자본 수출과 발전 문제
특히 주목할 점은 부하린과 레닌 모두 자본 수출이 미발전 지역의 발전을 가속시키는 측면을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제국주의를 단순히 ‘발전을 가로막는 구조’로 이해하는 입장과 다르다. 레닌의 텍스트에는 자본 수출이 세계 전반에 걸쳐 자본주의 발전을 확장하고 심화시킨다는 생각이 분명히 담겨 있다. 종속이론가들이 레닌을 자신의 선구자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실제 텍스트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점은 마르크스에서 레닌으로 이어지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연속성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은 잔혹하고 예속적이지만, 그것이 단지 정체만 낳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사우스에 산업화, 도시화, 교통 인프라, 계급 형성, 국가 형성 같은 변화를 강제한다. 물론 그 발전은 자율적이고 균형 잡힌 발전이 아니라 글로벌 노스의 필요에 규정된 왜곡된 발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발전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제국주의의 문제는 발전의 부재가 아니라 불균등하고 왜곡된 발전이다. 발전과 저발전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체제 속에서 함께 일어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뉜다. 하나는 자본주의의 진보적 역할에, 다른 하나는 미발전 지역의 ‘저발전’과 ‘종속’에 주목한다. 후자는 훗날 ‘종속이론’이나 ‘저발전 이론’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입장은 자본주의 확장이 생산력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동시에 이를 극도로 불균등하고 불평등한 방식으로 수행한다는 점이다.(오늘날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 같은 일부 지역의 미발전은 자본 수출의 결과가 아니라 그 지역으로 자본이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귀족론과 글로벌 노스 노동운동의 문제
레닌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노동귀족론이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라는 정치적 충격 속에서 제기되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은 국제주의를 포기하고 자국 정부를 지지했다. 볼셰비키는 거의 유일한 예외였다. 부하린과 레닌은 노동운동의 일부가 왜 자국 국가와 타협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 설명이 바로 노동귀족론이다. 이들은 타협의 물질적 토대를 제국주의의 식민지 초과이윤에서 찾으려 했다. 이윤의 일부가 지배국 노동계급 상층에 배분될 수 있고, 그러면 노동계급 일부가 자국 제국주의의 성공에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는 주장이다.
레닌은 ‘노동귀족’ 개념을 제국주의 시대에 맞게 발전시켰다. 그는 제국주의의 초과이윤이 노동귀족층을 경제적으로 매수하는 기반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계층을 ‘제2인터내셔널의 주요 지지 세력’이자 ‘부르주아지의 진정한 대리인’으로 규정했다. 레닌은 1914년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전쟁 지지라는 ‘배신’을 이 이론으로 설명했다.
이 노동귀족론은 후대에 오·남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글로벌 노스 노동자의 생활수준 상승을 모두 식민지 초과이윤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며, 노동계급 전체를 제국주의의 수혜자로 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게다가 레닌의 노동귀족 개념은 일관되지 않았다. 때로는 극소수 지도부를, 때로는 영국과 독일 노동조합의 전체 조합원을 포괄하는 식으로 사용됐다. 이런 모호함은 지노비예프 같은 자신의 동지들에게도 혼란을 낳았다. 지노비예프는 군수 노동자를 노동귀족으로 지목했으나, 그들은 러시아와 독일 혁명을 이끄는 전위가 됐다.
무엇보다 이 노동귀족론에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첫째, 경험적 오류다. 제국주의적 착취에서 나온 초과이윤이 노동계급 내부의 임금 격차를 설명할 만큼 크지 않다. 예컨대 오늘날 미국 기업이 글로벌 사우스에서 벌어들이는 이윤은 미국 전체 노동자 임금 총액에 비해 아주 미미한 수준인 약 1~2퍼센트에 불과하다. 이 정도 금액으로는 노동자들 사이의 큰 임금 격차, 이를테면 청소 노동자와 자동차 노동자 사이의 64퍼센트 격차를 설명할 수 없다. 임금 차이는 ‘독점’ 때문이 아니라 ‘자본 간 경쟁’과 ‘자동화 정도’, 곧 생산성의 차이에서 온다. 자동화 수준이 높은 산업은 단위 비용이 낮아 고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생길 뿐이다. 타인의 것을 빼앗아 나누기 때문이 아니다.
둘째,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오히려 잘 버는 노동자들이 더 잘 싸운 사례가 적지 않다. 노동귀족 이론에 따르면 고임금 노동자는 보수적이어야 하지만, 역사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줬다. 러시아 볼셰비키의 핵심 지지층은 고숙련·고임금 금속 노동자들이었다. 고임금 노동자는 대규모 공장에 모여 있어 집단적 힘인 사회적 권력을 발휘하기 유리하다. 반면 저임금 노동자들은 개인적 이직을 통해 조건을 개선하려는 경향이 더 강할 수 있다.
노동자 의식을 단순히 소득 수준으로 판단하는 속류 유물론적 방식은 옳지 않다. 대신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노동자 투쟁은 아무리 전투적일지라도 흔히 타협으로 끝나게 마련이고 누군가는 타협을 이끌 협상을 맡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관료, 곧 고위 전임 상근자층이 형성되며 체제 내적 개혁주의가 자리 잡는다. 둘째,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개별 판매자’로서 서로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 조건은 보수주의의 토양이 된다. 강한 단결이 없으면 노동자들은 일자리나 주거를 두고 인종, 성별, 국적에 따라 서로를 적대한다.
임금을 많이 받는다고 자본가 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귀족 이론은 노동계급 내부 분열을 정당화하거나 고임금 노동자를 ‘적’으로 돌리는 오류를 낳기 쉽다. 노동자 보수화는 ‘매수’가 아니라 노동자 간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서 비롯한다.
마르크스에서 레닌까지: 연속성과 단절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의 핵심 윤곽이 분명해진다. 우선 연속성이 있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자본주의를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는 체제로 보았다. 자본주의 확장이 비자본주의 사회를 해체해 세계 시장에 편입시키고, 새로운 계급과 투쟁 조건을 만든다고 보았다. 또한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이 생산력 발전을 매개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레닌은 마르크스를 버리지 않고 그의 일반 이론을 독점과 전쟁 시대에 맞게 구체화했다.
그러나 단절도 분명하다. 마르크스는 자유경쟁 자본주의 시대를 분석해 자본주의 일반의 운동 법칙에 주목했다. 반면 레닌과 부하린은 독점, 금융자본, 자본 수출, 세계 분할, 제국 간 전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다뤘다. 그들의 제국주의론은 마르크스주의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역사적 변화에 대한 이론적 응답이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을 이해하려면 마르크스의 일반 이론과 레닌·부하린의 특수 역사 분석을 연결해야 한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은 세계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과 국가 간 지배·종속 관계를 설명하는 데 강력한 통찰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각각의 이론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쓰였고, 논리적 비약이나 경험적 한계도 지닌다. 그래서 고전 이론가들이 제국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독점, 금융자본, 자본 수출, 국가 간 경쟁, 왜곡된 발전 같은 범주들은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분석의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교리처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떤 역사적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 보는 일이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세계를 단지 국가들의 병렬적 집합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자본주의적 총체로 파악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 총체가 결코 균등·평등하지 않으며,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 발전과 저발전, 축적과 파괴, 경제와 군사, 국가와 자본의 긴장 속에서 구성돼 있음을 보여 준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제국주의론 변질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반식민지 전략 논의도 중요하다. 1920년대 코민테른은 식민지·반식민지 지역의 민족해방운동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민족운동과의 일시적 동맹을 주장하면서도, 공산주의자들의 독립성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또, 후진 지역이 온전한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공산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을 잠정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8년 스탈린주의화 이후 코민테른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벗어나, 자본 수출과 제국주의가 식민지 발전을 가속하기보다 오히려 방해한다고 일면적으로 주장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 전환은 진지한 경제 분석의 결과라기보다 정치적 기회주의와 전략의 변화에서 나온 것이며, 여기서부터 훗날 제국주의를 전적으로 ‘발전 봉쇄’의 체제로 보는 경향이 강화됐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흔히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을 단일한 전통으로 보지만, 마르크스, 레닌, 후기 코민테른, 전후 종속이론 사이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다. 마르크스부터 레닌까지의 고전적 전통은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기생성을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 확장이 후진 지역의 발전을 촉진한다는 점에서는 일관됐다. 이후 코민테른과 전후 급진 이론은 그 지점을 점점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재해석했다. 따라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할 때 후대의 정식을 소급 적용해서는 안 된다.
결론: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사의 집약된 모습이다
이제 결론을 맺겠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외부적 일탈이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세계 시장으로 확장하며 자신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기적 산물이다. 식민지 지배, 비공식적 예속, 자본 수출, 원료 확보, 세계 분할, 군사 경쟁은 모두 이 과정의 상이한 표현이다.
둘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왜 세계 시장을 형성하며 확장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추동하면서도 비자본주의 세계를 파괴적으로 편입시킨다. 따라서 세계 시장은 자본주의의 외부 배경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산물이다.
셋째, 마르크스는 식민주의를 찬양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도덕주의적으로 그것을 단순한 약탈 체제로만 보지도 않았다. 식민주의는 잔혹하고 파괴적이나, 비자본주의 사회를 세계 시장에 편입시켜 새로운 계급과 투쟁의 가능성을 낳는 모순된 과정이었다. 인도에 대한 태도 역시 이런 구체적 역사 분석에서 비롯됐다.
넷째, 부하린과 레닌은 자본주의가 독점, 금융자본, 자본 수출, 열강의 경쟁, 전쟁의 단계로 변모했음을 포착했다. 부하린은 세계 경제의 국제화와 자본의 국가적 조직화 사이의 모순을, 레닌은 이를 독점 단계의 제국주의로 정의했다.
다섯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은 제국주의가 후진 지역의 발전을 완전히 봉쇄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 수출과 자본주의 침투는 그 지역들에도 발전을 가져오지만, 그것은 왜곡되고 불균등한 발전이다. 또, 어떤 지역은 아예 외면당한다. 따라서 제국주의의 핵심 문제는 발전의 부재가 아니라 발전과 저발전의 결합이다.
여섯째, 제국주의는 경제와 정치를 분리할 수 없게 만든다. 자본 축적 운동은 국가, 군사력, 외교, 법, 이데올로기를 통해 매개된다. 그러나 국가를 단순한 자본의 도구로만 볼 수도 없다. 국가와 자본의 관계는 구조적이고 복잡하며, 이 점은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이 여전히 더 발전시켜야 할 영역이다.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 이론은 ‘왜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에만 답하는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더 넓게 자본주의가 세계를 하나의 체제로 통합하면서도 극단적으로 불평등하게 조직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세계적 통합이 왜 세계적 분할을 낳는지, 발전이 왜 저발전을 낳는지, 자본의 지구적 통합이 왜 국가 간 경쟁과 전쟁을 없애지 못하는지를 다룬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일탈이나 편향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세계 규모에서 자기 모순을 드러내는 가장 집약된 형태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의 세계 시장론부터 부하린과 레닌의 고전적 제국주의론까지 하나의 연속된 문제의식으로 읽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제국주의를 단순한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닌 자본주의의 세계사적 운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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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 국제정치학 학파는 제국주의를 국가 간의 보편적인 권력 투쟁으로 이해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고유 현상이 아니라 ‘국익’ 극대화를 위한 외교 정책의 일환일 뿐이다. 경제적 이익은 여러 동기 중 하나일 뿐, 근본적 동기는 언제나 영향력 확대와 안보 확보라는 정치적 차원에 있다.
스탈린주의는 식민지나 후진국에서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가 아닌, 민족 발전을 가로막는 외부 압력으로 상정한다. ‘반제국주의 우선, 이후 반자본주의’라는 2단계 변혁 전략도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에서 분리한 결과다. 1단계인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의 주적은 제국주의와 결탁한 예속 정치 세력이다. 이 단계에서는 ‘민족 자본가’가 혁명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후 2단계인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어진다.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민족 자립을 이룬 뒤에야 자본주의를 타파한다.
핵심은 제국주의를 타도할 외세로, 민족 자본주의를 동맹 대상으로 분리한다는 점이다. 이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속성이 아닌, 타국을 억압하는 ‘정치적 행위’로 한정할 때 가능한 논리다.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유기적 단계라면 일국 자본가도 세계 체제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2단계 혁명론은 자본가를 ‘애국적’인 쪽과 ‘예속적’인 쪽으로 나눌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는 경제적 토대보다 정치적 태도를 우선시해 제국주의를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는 ‘진보적 국가’와 ‘반동적 국가’를 나누는 진영 논리로 이어진다. 자본주의적 착취가 있더라도 미국에 대립한다면 그 체제의 내부 모순은 은폐되거나 옹호된다.
결국 “반제국주의가 우선”이라는 명분은 국내 반자본 노동계급 투쟁을 국민적 혹은 민족적 단결이라는 이름 아래 억제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엔진의 ‘배기가스’가 아니라 단순히 ‘사나운 운전자’들의 문제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 크리스 하먼, ‘오늘날 국가와 자본주의’, 최일붕 편저, 《자본주의 국가: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책갈피, 2015), 29~108쪽. ↩
- 이하 설명은 다음 자료를 참고했다. Chris Harman and Robert Brenner, ‘The origins of capitalism’, International Socialism 111, July 2006. https://isj.org.uk/the-origins-of-capitalism/ ↩
- 반면 스탈린주의(공산당 및 한국의 반미 자주파)와 종속이론은 제국주의를 그저 정체와 봉쇄만 낳는 체제로 여긴다(“내재적 발전의 억압”). 또 다른 한편으로 한때 스탈린주의였다가 뉴라이트가 된 자들은 제국주의의 산업화 효과만을 부각한다(“식민지 근대화”론). ↩
- 케빈 앤더슨, 《마르크스의 주변부 연구: 민족주의, 종족, 비서구사회》(한울아카데미, 2020), 51~11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