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논란:
한·미 정부는 왜 갈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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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당인 공화당 의원 54명이 4월 21일 한국 정부에 쿠팡 제재와 수사에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일주일 뒤 민주당 의원 상당수와 진보당·조국혁신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96명이 주한 미국대사관에 맞불 항의 서한을 제출했다.
이들은 미국 의원들이 쿠팡 임원 신변 보장 문제를 안보 협상과 연계하겠다고 압박한 것에 특별히 항의했고, 한국의 사법 주권을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항의한 시점은 마침 미국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국회 발언을 기밀 유출이라며 압박해 한미 간 갈등설이 가시화된 때였다.
이 틈을 타 우익은 이재명 정부의 반미·친중·반기업 행보가 사달을 냈다고 색깔론을 폈다. 국민의힘은 4월 2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 정부가 대미 관계에서 조금만 틈을 보여도 ‘반미좌파 정부 때문에 한미관계가 악화돼 국익이 저해된다’고 비난하는 것은 우파의 오랜 수법이다.
쿠팡 건에 대해서도 국민의힘 장동혁은 진작에 “[이재명] 정권이 쿠팡 사태 초기부터 여론을 선동하고 언론을 압박해 반미 프레임을 짜는 데만 몰두했다”며 정부를 비난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미 관계 갈등은 이재명 정부가 반미·친중 노선을 편 탓이 아니다.
대미 투자 약속, 한·미·일 군사 훈련, 한일 외교 긴장 완화, 트럼프의 가자 점령 계획 지지, 주한미군 전력의 대이란 전쟁 이동(전략적 유연성) 인정 등이 정부가 한 일이다. 비록 이란 전쟁 파병은 하지 않았지만, 참전이 낳을 부담 때문에 미국의 동맹국들이 모두 그랬고, 국민의힘도 파병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진 않았다.
정부의 쿠팡 제재는 알고리즘 조작 혐의, 퇴직금 미지급 혐의, 잇따른 산업재해(와 은폐 의혹), 3,370만 명에 달하는 고객 정보 유출 등 범법 행위에 대한 당연한 절차다.
한국 기업의 부패와 반노동 행위를 감싸 온 우익은 미국 기업의 범죄도 감싼다. 우익의 친제국주의는 이처럼 계급적이다.
우익이 반미 좌파 정부 운운하는 것은 정치 지형을 우경화시키고, 경제 침체의 지속이나 안보 위기의 대가를 중도 이재명 정부에 떠넘겨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왜 갔는지 알 수 없는 미국 방문 직후 장동혁은 “모든 경제 지표의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한미 관계 악화가 경제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쿠팡 규제는 한국 기업들을 위한 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위성락은 미국의 추가 관세 압박이 가해진 2월 초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쿠팡, 디지털 무역 장벽, 온라인플랫폼법, 손현보 목사 등[이] ... 핵잠, 농축·재처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극우 인사인 손현보에 대해 트럼프와 마가(MAGA) 인사들이 구명 운동을 펼쳤다. 서방의 극우 정치 세력들을 지원하는 그들이 친미 극우 정부의 중도 퇴진 후 등장한 중도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최근의 한미 간 갈등 요소들이 다 설명되진 않는다. 친미 보수 언론 대부분도 정부 제재에 반발하는 쿠팡을 꾸짖는다. 물론 한미관계가 손상돼서는 안 되고 재벌 규제는 폐지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면서 말이다.
정부의 쿠팡 규제가 한국 기업들을 위한 조치이기 때문에 그렇다. 윤석열 정부도 알고리즘 조작 혐의로 쿠팡 한국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기소했다.
쿠팡은 일본계 자본으로 시작한 형식상 미국 국적 기업이지만,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이익의 90퍼센트 이상을 한국에서 얻는다. 그런데도 쿠팡은 경쟁하는 한국 대기업들이 적용받는 규제를 피해 왔다.
역차별?
결국 4월 말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의 ‘동일인’으로 회장 김범석을 지정했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은 재벌 총수를 뜻한다. 즉, 쿠팡의 동일인으로 회장 김범석이 지정된 것은, 쿠팡도 김범석 일가의 지배를 받는 기업이므로 삼성, 현대차, SK, LG 등 한국 대기업집단과 같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도 이 규제를 피하려고 (위험을 감수하고) 지분 구조를 분산시켜 놓았지만 결국 이해진, 김범수 등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앞으로 쿠팡이 한국 정부의 대기업 규제를 적용받으면, 한국 시장에서 지분을 더 확대하려는 구글, 넷플릭스, 애플 등 미국의 핵심 빅테크 기업들도 불편해진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지난해 무역·안보 협상에서 한국의 망사용료 요구, 온라인플랫폼법 시행 움직임 등을 비관세 장벽이라며 문제 삼았던 것이다. 당시 한미 당국은 미국 기업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기로 합의했다.
즉, 미국 정부와 의회는 한국 시장을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 더 친화적인 시장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한국 정부는 시장을 개방하면서도 ‘공정 경쟁’이라는 명분 하에 한국 기업들도 보호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쿠팡을 화두로 한 한미 공방의 본질이다.
가령 구글(유튜브), 넷플릭스 등은 이중 규제라며 통신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반면 KT, SKT, LG유플러스 등 한국 통신 기업들은 인프라 사용에 대한 대가를 내라고 불평해 왔고, 망사용료를 내고 있는 네이버, 카카오는 역차별을 호소해 왔다.
아직 입법도 되지 않은 온라인플랫폼법도 사정이 비슷하다. 승자 독식 특성이 큰 플랫폼 산업의 특성 때문에 구글(유튜브), 넷플릭스, 쿠팡, 네이버, 배달의민족 같은 시장 지배적(과점) 기업들의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등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 법안의 취지다. 심판(플랫폼)이 선수(상품 판매 기업)로 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이 아직 입법되지 않은 것은 네이버 같은 한국 대기업들도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쿠팡을 둘러싼 한미 정부 간 공방은 이런 거대 기업 간 경쟁에 양국 정부가 참전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쿠팡과 경쟁하는 신세계 이마트, 롯데마트 등의 새벽 배송 규제도 해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는 쿠팡이 제재 때문에 주춤한 사이 무료 배송 서비스를 늘렸다.
이것이 미국 기업에 대한 반기업주의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최근 구글과의 AI 협력을 합의하는 등 미국 빅테크 기업과의 기술 협력, 투자 유치 등을 증진시키려 애쓰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다.
트럼프 정부의 신경질
트럼프 정부가 이 문제를 안보 협상과 연계시키는 것에는 다른 계산도 깔려 있다.
지난해 한미 간에 무역 투자 합의를 했지만,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직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불만이 클 것이다. 이란 전쟁에서 전략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유가 인상이 미국 물가 인상으로 전이되는 상황에서, 이를 달랠 방책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란 전쟁 파병 요구에 한국 정부가 즉각 응하지 않은 것도 불만일 것이다. 지금 트럼프 정부는 이란 전쟁을 적극 지원하지 않은 유럽연합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독일에는 주독미군 감축 방침을 발표해 압박 중이다.
미국은 강대국 지위를 이용해,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에 파병하지 않는다 해서 보복을 하려 한다. 또한 자국 기업 지원을 안보 문제와 연계해 상대국을 압박한다. 미국의 패권 질서는 무너지고 있지만, 여전히 경제적·군사적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모순이 위험과 불안정성을 더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한국 기업의 이익을 방어하며 미국과 공방을 벌인다. 한국 자본주의의 독자적 이해관계와 함께 한미 관계도 달라져 왔음을 보여 준다. 물론 한미 자본주의 공통의 이익을 찾아내 미국을 설득하려 한다. 전쟁 지원, 투자 혜택 같은 것들 말이다.
종속 대 자주의 프레임이 아니라 자본주의 찬/반 프레임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