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촉진하는 중동의 춘추전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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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과 4월 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독자적으로 이란과 교전한 사실이 드러났다. UAE는 사우디와 카타르 등에게 이 기회에 이란을 짓밟아야 한다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걸프 국가들이 미국의 전쟁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참전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위험천만한 사건이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데 머물렀던 태도가 한층 호전적으로 바뀐 것이다.
걸프 국가들이 40년 전보다 훨씬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서 이란과의 경쟁이 다면적이고 또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아시아(중동) 국가 간 갈등이 이란을 둘러싸고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동맹국들끼리도 서로 반목하고 있다.
이번 전쟁 중 UAE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선언하며 사우디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두 국가는 이미 수년 전부터 경쟁해 왔다.
미국의 또 다른 핵심 동맹 튀르키예는 이란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강도높게 규탄하고 있고(미국을 향해서는 말을 삼간다), 시리아에서 세력권을 놓고 이스라엘과 다투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서아시아에서 오랜 동맹국의 이익을 조율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 보장 능력이 쇠퇴한 탓이 크다.
과거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서아시아 동맹국을 통제하고 중동 질서를 좌지우지했다. 이를 통해 동맹국 지배자들도 경제 발전을 추구할 환경을 보장받았다.
미국은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 개입해 지역 분쟁의 결과를 좌우할 능력을 보여 줬다. 지역의 패자가 되겠다는 이란의 야심을 꺾은 것이다. 한편, 1990년 걸프전에서는 미국의 허락 없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응징했다. 아울러 1차 인티파다로 들썩이던 아랍 민심을 1993년 오슬로 협정이라는 함정으로 진정시켜 서아시아 동맹국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실패와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를 거치며 미국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아시아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 약속의 효용성을 의심하게 만든 결정적 사건은 2011년 ‘아랍의 봄’이었다. 이집트에서 38년 장기 집권한 친미 독재자가 무너지는 데도 미국은 속수무책이었다. 미국은 시리아와 리비아, 예멘에도 개입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친미 정부를 수립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오히려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표방했다. 이는 서아시아 친미 지배자들에게 충격이었다. 이들은 미국 없는 중동을 준비해야 한다며 ‘자강’에 돌입했다. 이때부터 특히 걸프 국가들의 무기 수입이 급증했다.
그러나 서아시아 지배자들의 대응이 방어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이들은 서아시아 도처에서 벌어지는 혁명과 반혁명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국익’과 ‘안보’를 지키려 했다. 미국은 이 과정을 통제하지 못했고, 결국 동맹국 간 반목이 이어졌다.
이집트를 둘러싼 사우디와 튀르키예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튀르키예는 혁명으로 집권한 무슬림형제단을 포섭하려 했다. 제조업 강국인 튀르키예에게 이집트는 거대한 시장이자 아프리카로 향하는 관문이며, 동지중해 가스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우디에게 무슬림형제단은 서아시아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핵심 정치 세력이자 제거 대상이었다. 결국 사우디는 군부 쿠데타를 지원해 성공시켰다. 이후 수년 동안 튀르키예는 쿠데타로 집권한 엘시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양국은 몇 해 전 화해했다).
사우디와 UAE가 시리아, 예멘 등지의 내전에 개입하며 빚은 갈등도 또 다른 사례다. 두 국가는 종종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했으며, 예멘에서는 사실상 대리전까지 벌였다.
오랫동안 함께하던 사우디와 UAE의 관계가 이렇게 벌어진 것은 두 나라가 1950년대 원유 수출만 하던 1차 산업 후진국에서 오늘날에는 세계 금융계의 큰손이자, 원유 채굴부터 석유화학 제품 생산까지 수직통합을 이뤄 낸 공업 강국으로 부상한 것과 관련이 있다. 두 나라는 걸프 지역의 금융 중심지 지위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며, 전략 상품인 석유화학 가공품을 앞세워 아시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산업 육성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튀르키예와 사우디, UAE의 또 다른 공통점은 대미 경제 의존도가 줄고 그 자리를 중국이 점차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들 국가는 과거보다 미국의 대외 정책에 반작용을 가할 여지가 커졌다.
실제로 2023년 중국은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국교 정상화라는 극적인 화해를 중재했다고 발표하며 서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실력자로 위상을 과시했다.
최근 벌어진 이란 전쟁은 미국의 동맹국 방어 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란과 인접한 걸프 국가들은 물론 이스라엘도 만만찮은 타격을 입었다. 이에 많은 지배자들이 자국 영토 내 미군 기지 주둔의 효용성을 반문하고 있다.
각국은 미국의 대외 정책에 협력할 때 과거보다 더 이해타산적 태도를 취할 것이고, 역내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자국을 지원하라고 미국에 요구할 것이다.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을 상대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 결과는 하위 제국주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끔찍한 춘추전국시대가 될 수 있다.
작금의 서아시아 정세는 미국 패권이 약화하는 가운데 중견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자강’을 도모하는 행위가 평화는커녕 지정학적 갈등을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