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합의:
미국 제국주의의 쇠퇴와 서아시아의 새로운 세력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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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서아시아에서 굴욕을 당했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평화협정 초안(양해각서) 합의를 “위대한 합의”라고 자평했다. 트럼프는 이번 합의로 미 해군의 대이란 해상 봉쇄가 “즉시” 해제되며, 금요일(19일) 이후 호르무즈해협이 개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초호화판 격투기 경기를 열며 축배를 들었어도 미국의 패배를 가릴 수는 없다. 미국은 전쟁 비용으로 250억 달러를 쓰고도 패배했다. 전쟁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가 1,000억에서 2,000억 달러의 추가 예산을 요구한 점을 고려하면 실제 전쟁 비용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번 합의는 실효성 없는 60일짜리 양해각서에 서명해 사실상 휴전을 연장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사이에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다. 양해각서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번 합의가 미국의 승리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재명 정부의 관리(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합의 이행이 어떻게 되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협상의 핵심 쟁점은 이란 핵 프로그램이다. 부통령 JD 밴스는 “이번 합의는 이란이 결코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가 보도한 합의 내용은 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합의가 아니다. 앞으로 60일 동안 핵 문제를 논의할 절차를 정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예상되는 결과는 2015년 버락 오바마가 이란과 맺은 합의보다 미국에 불리할 전망이다. 당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도를 15년간 3.67퍼센트로 제한하고(비무기용) 저농축 우라늄 보유량을 300킬로그램 이하로 묶었다. 트럼프는 첫 임기 때인 2018년에 이 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번 협상에서도 이란의 농축 우라늄 등 핵물질 처리 방식과 농축 중단 시한이 관건이다. 트럼프는 이 쟁점에 대한 답변을 회피해 왔다.
이스라엘도 패배한 것이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트럼프만 패배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도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을 막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최근 레바논을 폭격한 것도 미국과 이란의 협상을 좌절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의 불장난은 절박감에 쫓기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논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협정을 위태롭게 했던 바로 그 조처, 즉 협정에 반대하는 인물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명령한 베이루트 폭격이 협정 체결을 앞당겼고 이란에 더 유리하게 만들었다.”
네타냐후는 협상 당사자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스라엘이 미국과 이란의 협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 준 것이다.
JD 밴스는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우리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긋나기도 합니다. 제가 총리[네타냐후]를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는 자국의 이익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이는 때로는 우리가 뜻을 같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지역 강국 수준이다. 그러나 이란이 이번에 새로 확보한 영향력은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역내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공군력에 의존하는 이스라엘의 공세를 견뎌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미국 측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 무기고를 파괴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이란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아이언 돔을 뚫고 이스라엘을 타격했다.
이란은 지난 7일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북부를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외교 정책 싱크탱크 퀸시 책임국가운영연구소 부소장 트리타 파르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란이 이스라엘의 제3국 영토 공격을 이유로 이스라엘을 타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전선이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 반드시 보복이 따를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란의 억제력은 이미 회복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도 대응할 것임을 입증했다. 지역 강국이 제3국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기동이나 침략에 맞서 하드 파워를 투입할 수 있는 수단·역량·의지를 보여 준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 안정을 보장할 지역 강국으로 보고 수십 년 동안 후한 지원을 해 왔다. 이 때문에 1973년 이집트·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 이후 어떤 중동 국가도 이스라엘에 직접 도전하지 못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정착자 식민 국가이므로 영토 강탈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네타냐후는 이란 국가를 파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의 무기와 방공망에 의존한다.
헤즈볼라 분쇄와 이란 정권 붕괴라는 이스라엘의 핵심 목표를 기준으로 보면 미국-이란 합의는 이스라엘의 굴욕적인 패배다.
물론 이스라엘은 어떻게든 미국과 이란의 합의를 파탄 내려 할 것이고 실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는 위기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서아시아의 세력 균형
서아시아 지역의 세력 균형은 근본적으로 재편됐다. 이란은 2월 28일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으로 지역 강대국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서아시아의 변화된 세력 균형을 보여 주는 의미심장한 사례를 보도했다. 아랍에미리트가 자신을 향한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 중단을 조건으로 이란에 총 100억 달러(약 15조 2,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으며, 이 가운데 30억 달러(약 4조 6,000억 원) 이상이 이미 전달됐다는 내용이다.
2월 28일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란이 더 강력하게 부상할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그렇게 됐다. 이란은 걸프 지역 국가들을 분열시켜 오만·카타르와 사실상 동맹을 맺었으며,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강화했다.
미국의 이란 전쟁 배경에는 중국 등과 벌이는 제국주의적 경쟁이 있다. 이 경쟁은 인도-태평양과 서반구뿐 아니라 서아시아에서도 전개된다. 서아시아의 화석 연료 생산과 수출 인프라는 아시아를 향해 재조정되는 추세다. 중국은 이란산 석유의 90퍼센트를 사들인다. 미국은 이란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서아시아의 석유·가스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서아시아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과시하려 시작한 이란 전쟁은 오히려 미국의 위기를 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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