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1년:
모자라고 보수적인 정치적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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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의 장점은 불확실성 속에서 학습·수정·숙의를 거치는 데 있다. 그러나 이재명식 실용주의는 숙의와 민주적 참여가 부족하며, ‘국익·성장·안정’으로 수렴된다고 이 기사는 지적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를 표방했다. 국가 재정을 마중물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하며, 민생·경제·안보·평화·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비상경제대응 TF(특별대책위원회) 가동을 약속했다.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유용하다면 구별 없이 쓰겠다”는 발언은 이재명 정부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는 이념보다 결과, 진영보다 효용, 원칙보다 문제 해결을 앞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사전적 의미의 실용주의는 문제를 추상적 원칙보다 실제적 방식으로 다루는 태도다. 이론이나 교리보다 당장의 결과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실용주의에는 정치적 매력이 있다. 경제가 어렵고 대중이 진영 논리에 피로감을 느낄 때, 또 기존 제도가 해결 능력을 상실했을 때 “쓸모 있는 것은 무엇이든 쓰겠다”는 선언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타임(TIME)〉지의 2026년 정치적 실용주의론도 미국 유권자들이 이념 전쟁에 지쳐 ‘실현 가능한 개혁’과 결과 중심 정치를 선호하는 흐름을 짚어낸다.
‘실용’이라는 말의 매력과 함정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실용주의의 문제는 시작된다.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언제나 “무엇을 위한 효과인가”, “누구에게 효과가 있는가”, “그 효과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라는 질문을 동반한다. 실용주의가 이 질문을 회피하면, 그것은 원칙을 초월한 현실주의에서 더 나아가 아예 기존 권력관계를 자연스러운 전제로 삼는 기술관료적 처방이 된다. 실제로 20세기 실용주의는 종종 자유주의적 기술관료의 철학, 즉 사회적으로 승인된 협소한 목표를 유연하게 달성하는 데는 능하나 그 목표 자체를 비판할 자원은 빈약한 철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재명식 실용주의의 핵심 문제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원칙이 없는 정치라기보다 원칙을 ‘국익’, ‘성장’, ‘안정’, ‘통합’, ‘기업 활력’, ‘동맹 관리’로 이미 정해 놓고 그 목표 안에서 수단만 유연하게 바꾸는 정치다. 즉, 이재명 정부는 반이념을 표방하지만 실은 매우 뚜렷한 이념을 지닌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 회복, 국가기구의 안정적 재건, 제국주의 질서 내 전략적 지위 상승, 사회 갈등의 제도적 관리라는 이념이 그 실체다.
좌파적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이재명이 너무 실용적이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그의 실용주의가 충분히 민주적이지도, 계급적으로 중립적이지도, 국제주의적이지도 않다는 데 있다. 그의 실용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필요를 추구하는 민주적 실험이 아니라, 위로부터 국가와 자본의 위기를 관리하는 통치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용주의는 원래 그렇게 협소한가?
실용주의를 단순히 ‘원칙 없는 현실주의’로 이해하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현대 정치철학에서 실용주의는 논쟁적 개념이지만, 몇 가지 핵심 요소를 포함한다. 오류 가능성, 반회의주의, 실천의 우선성,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의 인식적 단절 거부가 그것이다. 즉, 실용주의는 단순히 ‘당장 통하는 것’을 찾는 태도가 아니다. 모든 신념과 정책이 비판과 수정에 열려 있어야 하며, 실천 속에서 결과를 검토해야 한다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정치적 위기 관리 관점에서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위기 상황에서 정치적 실용주의의 요소는 반이분법, 오류 가능성 인정, 실험주의, 숙의로 요약된다. 바람직한 실용주의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기존 믿음을 바꿀 태세를 갖추고, 결정을 가설처럼 다루며, 이해관계자와 회의적인 목소리를 숙의 과정에 포함한다. 반면 실패한 위기 관리는 단 하나의 해법만 고집하고, 법과 원칙을 좁게 해석하며, 비판자를 배제하고, 결정을 확실성의 언어로 포장한다.
실용주의적 탐색은 다양한 관점과 근거에 열려 있어야 하며, 방법과 결론이 도전과 수정에 노출돼야 한다. 실용주의, 특히 존 듀이의 민주주의론은 이를 단순한 정부 형태를 넘어 평등주의와 열린 소통의 이상으로 정의한다. 듀이에게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와 일터, 학교에서도 실현돼야 할 생활양식이다. 그는 1930년대 대불황 시기에 사회화된 경제를 지지하며 미국식 고전적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비판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는 부분적 실용주의에 그친다. 예산, 세제, 외교, 노동 정책에서 일정한 유연성과 조정 능력(가령 삼성전자 노동쟁의 등)을 보여 주었다.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긴축·감세·대결 노선과는 차별화했고, 노란봉투법 같은 일부 노동권 개선 조치도 시행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서민·사회운동이 정책 형성의 공동 주체가 되는 듀이식 민주주의적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는 대체로 국가 엘리트와 관료, 기업, 전문가가 위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을 그 목표를 수용하거나 보완하는 ‘이해관계자’로 초대하는 방식이다.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비판이 제기된다. 실용주의가 현실 데이터와 제도적 미세 조정을 통해 당면 과제를 관리하려는 기술적 접근에 매몰되면 상상력과 정의감, 정신적 깊이를 잃고 미온적인 대응에 그치기 쉽다. 특히 실용주의가 계급 지배와 제국주의 질서를 ‘현실’로 수용하는 순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실효성 없는 정치가 된다.
‘내란 청산’과 민주주의: 정치 안정 실용주의의 한계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의 친위 군사 쿠데타 미수와 탄핵 이후 출범했다. 민주주의 회복과 내란 청산은 이 정부 정당성의 핵심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 주권을 찬탈하는 내란은 결코 재발해서는 안 된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 재발 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내란 특검은 불충분한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 조은석 특검은 윤석열, 김용현 등 총 24명을 기소했다. 또한 윤석열이 2023년 10월 이전부터 비상계엄을 준비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공수처·국수본 수사로 드러나지 않았던 내란 범죄의 진상을 어느 정도 규명했으나 한계도 명확하다. 대법원의 계엄 동조 의혹 등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이에 따라 2차 특검이 진행 중이지만 1차 특검의 한계를 답습하고 있다.
이처럼 이재명 정부의 내란 청산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이는 국가와 자본의 구조적 상호의존 탓에 대중적 민주주의 확장보다 사법적·제도적 절차를 통한 질서 회복에 치중한 결과다. 내란 세력 척결은 단순히 일부 장성이나 정치인, 관료를 기소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군, 경찰, 검찰, 정보기관, 법원, 보수 언론, 재벌, 극우 네트워크가 민주적 권리를 어떻게 위협했는지 명확히 드러내고 처단해야 한다. 나아가 아래로부터의 감시와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민주주의 회복을 국가기구 정상화와 국정 안정이라는 틀 안에 가둬 왔다.
검찰 개혁에서도 같은 모순이 드러난다. 2026년 3월 공소청과 중수청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검찰청 폐지와 함께 공소청 및 중대범죄수사청이 신설되는 법적 절차가 10월 2일 마무리된다고 보도됐다. 법안은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라 공소청이 공소 제기와 유지 기능을 맡고, 중수청이 중대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검찰권 축소는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는 개혁이지만, 검찰 권한을 경찰이나 행정안전부 산하 수사기구로 이전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본지가 지적했듯이 1987년 이후 민주적 권리의 확대는 검찰과 경찰 중 어느 억압 기구가 더 강했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 특히 노동계급의 투쟁에 힘입은 결과였다. 검찰과 경찰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판 중심주의 강화, 참심제·배심제 등 평범한 시민의 사법 참여 확대가 진정한 개혁의 방향이다.
경찰의 정보 수집 기능 강화 움직임은 민주적 권리 관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본지가 보도했듯이, 경찰청은 2026년 일선 경찰서 정보과 부활을 추진했다. 참여연대와 진보당은 검찰 개혁으로 경찰 수사권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사찰 권한까지 더해지면 거대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민주주의 면에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는 내란 세력 척결을 표방하면서도 국가 억압 기구의 민주적 통제에는 소극적이다. 이재명 정부는 민주주의를 민중(국민의 대중)의 자발적 활동으로 보기보다 정상적인 국가 운영 회복의 문제로 인식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에게 민주주의는 단순한 선거와 사법 절차, 기구 개편의 차원을 넘어선다. 민주주의는 파업·집회·조직의 권리, 전쟁 반대와 일터 내 발언권, 국가 기구 감시권 등을 포괄한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이재명 정부의 내란 청산은 필요하나 제한적이며,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통합의 정치: 갈등 해소인가, 계급투쟁 관리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통합을 강조한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유용한 정책을 쓰겠다”는 말은 그의 정치적 브랜드가 됐다. 이 말은 윤석열 정권의 극단적 대결 정치 이후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통합의 정치는 언제나 계급적 질문을 낳는다. 누구와 누구를 통합하는가? 무엇을 위해 통합하는가? 통합의 비용(대가, 희생, 리스크)은 누가 부담하는가?
이재명 정부의 통합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상화와 한국 경제의 경쟁력 회복을 지향한다. 내란 세력의 핵심은 배제하되 보수 관료, 기업, 군, 외교·안보 엘리트, 온건파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포괄해 갈등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본지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노동부 장관은 노동자 편을, 산업부 장관은 기업 편을 들어 내각 안에서 싸우라”고 했다. 노동부 장관마저 기업 편을 들면 노동자가 현장에서 직접 싸우게 되니 내각이 이를 대신하라는 뜻이다. 결국 노동운동의 개혁주의적 지도자들을 포섭해 갈등을 관리하고 투쟁을 예방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통합은 마치 현실 정치의 성숙함을 보여 주는 듯하다. 그러나 계급사회에서 갈등은 단지 오해나 소통 부족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임금과 이윤, 안전과 비용 절감, 복지와 군비, 노동권과 경영권, 평화와 동맹 전략은 실제로 충돌한다. 이 충돌을 ‘국익’과 ‘통합’의 이름으로 봉합하면 결국 힘이 약한 쪽이 양보를 강요받게 된다. 그것이 ‘사회적 대화’가 반복해 온 역사다.
좌파는 통합의 계급적 성격을 분명히 따져야 한다. 노동자와 서민의 요구를 중심에 두는 통합인지, 노동자에게 고통 분담을 강요하는 통합인지 살펴야 한다. 내란 세력과 타협하지 않는 통합인지, 아니면 국가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보수 권력기관을 온존시키는 통합인지 따져야 한다. 동아시아 민중의 평화를 위한 통합인지,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과 군사력 강화를 위한 통합인지도 물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통합은 이러한 질문 앞에서 대체로 후자에 기울어 있다. 사회 모순을 정직하게 드러내 민주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국가의 조정 능력 안으로 흡수하려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그의 실용주의는 본질적으로 보수적 실용주의다.
외교·안보 실용주의: 자주가 아닌 제국주의 질서 내 능동적 적응
이재명 정부의 외교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로 요약된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 실용주의라는 미사여구의 힘은 강력하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와 달리 노골적인 이념 외교를 내세우지 않는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는 한편, 일본과는 셔틀 외교를 복원하고 미국과의 관계는 유지·강화한다. 겉보기에는 균형과 실용을 두루 갖춘 외교로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향점은 ‘한미동맹 현대화’와 한국 자본주의의 전략적 지위 상승이다. 2025년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자료는 한국의 대미 투자 분야로 조선, 에너지, 반도체, 의약품, 핵심광물, AI·양자컴퓨팅 등 경제·국가안보 이익 증진 분야를 제시했다. 합의안에는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 분야 투자와 추가 2000억 달러 규모의 전략투자 양해각서(MOU)가 포함됐다. 또한 미국은 한국산 상품에 대해 최혜국 관세율 또는 15퍼센트 중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합의는 단순히 트럼프 정부에 끌려간 결과가 아니다. 본지가 강조했듯, 이재명 정부는 조선, 에너지, 반도체, 핵심광물, AI·양자컴퓨팅 등 한국 자본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분야에서 미국과의 전략적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제고하려 했다. 핵잠수함 도입,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 마스가 프로젝트, 국방비 GDP 3.5퍼센트 확대, 전작권 환수 등은 이재명 정부가 능동적으로 추진해 온 핵심 의제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는 ‘미국에 끌려가는 굴욕외교’라는 민족주의적 비판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는 한국 지배계급이 제국주의 질서 내에서 더 큰 지분과 군사·산업적 역할을 확보하려는 능동적 적응이다. 좌파가 진정으로 비판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단순히 굴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자체가 제국주의적 경쟁 질서 속에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아류 제국주의가 되려) 애쓰기 때문이다.
이 점은 국방예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재명 정부의 2026년 예산안에 따르면 국방예산은 66조 2947억 원 규모로 편성됐으며, 이는 전년 대비 5조 원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수준의 증가폭이다. 본지는 이재명 정부가 2026년 국방비를 2025년 대비 8.2퍼센트 증액해 2019년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미국과 합의한 GDP 대비 3.5퍼센트 수준의 국방비 목표를 달성하려면 향후에도 대규모 증액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자주 국방’, ‘스마트 정예 강군’, ‘첨단 국방’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한다. 그러나 군비 증강은 복지와 노동자 안전, 공공의료, 돌봄, 주거 등에 투입할 자원을 잠식한다. 또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격화시키고,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전략에 한국을 더 깊숙이 끌어들인다. 핵잠수함 도입과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는 ‘자주’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지만, 실상은 한미동맹의 전략적 기능을 강화하는 조치와 맞닿아 있다.
한중 관계 개선도 이러한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완화하고 경제 협력을 모색하지만, 이는 평화주의적 정책이라기보다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실용 외교에 불과하다. 본지는 이재명 정부가 대중 관계 개선에 주력하면서도, 미중 사이에서 ‘실용 외교’를 앞세워 자국 자본의 이익을 도모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좌파의 외교 기준은 ‘한국의 국익’이 아니라 반제국주의와 노동자 국제주의여야 한다. 한국 자본의 수출 시장 개척이나 조선업 수주, 방산 수출, 핵추진 잠수함 확보가 노동자 등 민중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 노동자는 군비 증강 비용을 세금 인상과 복지 삭감으로 부담한다. 동아시아 노동자들도 군사적 긴장의 위험을 함께 떠안는다. 이재명식 실용 외교는 윤석열식 이념 외교보다 세련됐으나 어쩌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노골적인 친미가 아니라 ‘자주적 국익’을 내세워 한미 동맹과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 실용주의: 확장 재정인가, 성장 국가의 복원인가
이재명 정부의 초기 경제정책은 윤석열 정부와 달리 적극적 재정 기조를 띠었다. 정부는 2026년도 예산안을 약 728조 원 규모로 편성했다. 이는 전년 본예산보다 8.1퍼센트 증가한 규모다. 정부는 이를 인공지능(AI)·연구개발(R&D)·지역 투자와 국민 안전 강화에 집중하는 ‘슈퍼 예산’이라 설명했다. R&D 예산은 35조 3000억 원으로 늘었고, 국민 안전 예산도 확대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경기 침체와 대중 생활비 위기 속에서 재정 역할을 인정했다는 점, 연구개발 예산 복원과 복지 일부 확대를 추진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서민 삶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 수요를 보충하고 사회보장제도를 넓히는 것은 긴축보다 바람직하다. 이런 조치를 단순히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산 기조를 살피면 이재명 정부의 적극 재정은 복지국가 전환보다 성장국가 재편에 가깝다. 정부가 내세운 핵심 분야는 인공지능(AI), 첨단산업, 연구개발(R&D), 전략산업, 방위산업이다. ‘민생’과 ‘미래’라는 수사를 결합했으나 그 중심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산업 경쟁력 제고가 자리 잡았다. 재정 확대도 노동계급의 삶을 직접 개선하는 보편적 사회권 확대보다, 국가가 첨단산업 경쟁의 위험과 비용을 분담해 기업의 축적 조건을 보완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 같은 성격은 국민성장펀드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금융위원회는 5년 동안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첨단전략산업과 공급망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AI와 로봇, 전략산업에 자금을 공급해 산업 전환을 촉진한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산업정책이 공적 자금으로 위험을 사회화하면서 혜택은 대기업과 금융자본에 집중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국가가 기술·인프라·금융 위험을 떠안는 대신 노동자에게 구조조정과 직무 전환, 고용 불안, 숙련 재편 비용을 강요한다면, 이는 대중의 삶 개선과는 무관한 대기업 이윤 창출과 국가 경쟁력 제고 정책에 불과하다.
세제 개편에서도 양면성이 드러난다. 이재명 정부의 2025년 세제 개편안은 5년간 35.6조 원의 세수 증대 효과를 낼 전망이지만, 대선 공약 이행 재원으로는 부족하고 종합부동산세 등 핵심적인 부자 증세는 빠졌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조세 실용주의가 어디서 멈추는지를 보여 준다. 재정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부유층과 자산가에게는 충분히 과세하지 않는다. 복지를 강조하지만 자본시장 활성화와 주주 친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 조세 정의를 외치지만 부동산 자산 불평등을 정면으로 겨냥하지도 않는다. 즉,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식의 노골적인 부자 감세를 일부 되돌리는 데는 실용적이지만,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에 맞서는 데는 매우 비실용적이다.
좌파적 관점에서 실용주의 경제정책은 공적 재정을 투입할 때 그 대가를 공공 소유, 고용 보장, 임금 인상, 산업 안전 강화, 탈탄소 전환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경제 실용주의는 공적 자금과 산업 전략을 동원하면서도 대기업의 지배는 개혁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국민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대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보조하는 정책으로 치우친다.
노동정책: 개혁의 언어와 사회적 타협의 압박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대표적 성과 중 하나는 개정 노동조합법 2·3조, 이른바 ‘노란봉투법’ 시행이다. 하청·특수고용 노동자의 교섭권 보장과 손해배상 남용 제한을 담은 이 법은 노동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핵심 조처다. 이는 긍정적인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노동조합을 적대시하며 손배가압류와 공권력 압박을 방치·조장했던 윤석열 정부와 비교하면, 이재명 정부는 노동권의 제도적 개선을 전향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은 개혁과 포섭이 결합된 양상을 띤다. 2026년 3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 토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고용 유연성’을 의제로 제기했다. 노동시장 양극화와 AI 전환을 이유로 고용 유연성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며 유연성을 확장하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당연히 노동계는 즉각 우려를 표했다.
이런 방식은 익숙하다. 기업에는 유연성을, 노동자에게는 안전망을 약속하는 식이다. 그러나 한국 노동정책사에서 대체로 ‘유연성’은 쉬운 해고, 비정규직 확대, 외주화, 성과주의, 직무급제, 전환배치 압박으로 현실화됐다. 안전망은 사후 보완책에 불과하지만 고용 불안은 즉각적인 현실이다. 노동자에게 고용 유연성은 경제적 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생계와 존엄의 문제다.
본지의 비판대로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노총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하며 고용 유연성을 재차 강조한 것은 사회적 대화의 주요 의제가 기업 측에 유리하게 설정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국익’ 논리를 수용하면 노동자도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위해 희생과 양보를 감수해야 한다는 압박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이재명식 실용주의는 비판자와 회의론자를 포용해 노동자의 경험을 정책 형성의 핵심 자료로 삼는 것이 아니다. 경사노위식 사회적 대화는 정부가 정한 성장·경쟁력·고용 유연성 의제를 노동운동 지도부가 수용 가능한 형태로 관리하는 장치로 전락하기 일쑤다. 노동자는 모색의 주체라기보다 양보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좌파는 개혁 입법을 지지하되, 그것이 사회적 대화를 빌미로 노동운동을 제약하는 장치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기업의 비용 계산에 맞춰 노동자를 통제하는 행태에 반대하고, 노동자의 생존권과 건강권, 집단적 힘을 중심으로 경제 재편을 지향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 노동정책은 계급 갈등을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좌파적 대안
이재명식 실용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좌파가 추상적 원칙만 고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좌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자본가에게 현실이 투자수익률, 관세, 환율, 수출시장, 인건비, 규제 비용이라면, 국가 관료에게 현실은 재정건전성, 성장률, 안보 환경, 국제신용도, 동맹 관리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현실은 임금, 노동시간, 해고, 산재,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돌봄, 전쟁 위험이다.
이러한 현실 사이에 중립적 조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좌파적 대안은 첫째, 노동자의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실업과 구조조정이 문제라면 해고 유연성이 아니라 해고 금지, 노동시간 단축, 동일임금, 공공일자리, 산업 전환 과정의 노동자 통제가 현실적 대안이다. 둘째, 재정 우선순위를 재설정해야 한다. 국방비와 방산 지원이 아니라 공공의료, 공공주택, 돌봄, 기후 대응, 산업안전에 투자해야 한다. 셋째, 대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산업정책이 아니라 공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가 중요하다. 넷째, 외교는 ‘한국 국익’이 아니라 반제국주의와 노동자 국제 연대의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다섯째, 민주주의는 검찰·경찰 권한 재배분을 넘어 국가 억압기구에 대한 대중적 통제, 집회·파업의 자유, 배심·참심 확대, 정보기관 해체 수준의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대안은 기후·전쟁 위기와 불평등, 저성장, 인공지능(AI) 전환, 노동시장 불안정 속에서 다수의 삶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 조처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는 기업이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변화만을 다룬다. 반면 좌파적 대안은 노동자 등 서민의 생존 조건을 기준으로 사회·경제 조건들을 개선하자고 제안한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는 ‘무엇이 효과를 내는가’를 묻는다. 좌파는 이에 대해 ‘누구를 위한 효과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그 효과가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을 위한 것인지가 핵심이다. 이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일 때 이재명의 정치적 실용주의는 진보의 언어를 빌린 체제 관리 전략이라는 본질을 드러낸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개혁은 모두 ‘체제 내적 개혁’이다. 이러한 개혁은 노동자와 서민의 숨통을 일부 틔워 줄 수 있으나, 동시에 한국 자본주의의 재건과 안정이라는 더 큰 목표에 종속된다.
그러므로 좌파의 결론은 명확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보다 낫다는 이유만으로 그 실용주의에 정치적으로 예속돼서는 안 된다. 개혁적 조치는 지지하고 옹호하되, 그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내란 세력과 우파의 반동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이재명 정부의 자본주의적 안정화 전략에도 독자적으로 맞서야 한다. 노동자 파업과 사회운동의 거리 투쟁, 반전·반제국주의 운동, 공공서비스 확대, 부자 증세와 군비 삭감 요구 등을 통해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를 왼쪽에서 압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