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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이란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경제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거품이 꺼질 조짐이 보일 때마다 주류 개혁주의자들의 설명은 거의 판박이다. 탐욕스러운 금융자본, 완화된 규제, 무분별한 투기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2008년에도 그랬고, 유로존 위기 때도 그랬고, 지금 AI 투자 거품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그렇다. 이런 설명의 공통점은 위기를 체제의 정상 작동에서 벗어난 ‘일탈’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규제 강화와 더 현명한 정책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좌파 개혁주의 세력 안에서 유력한 설명도 논리 구조가 비슷하다. 위기의 원인이 임금 억제에 따른 소비 수요 부족에 있고, 따라서 해법은 재분배와 정부 지출 확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이런 논리의 일부를 이용했다. 물론 김유선의 조사에 따르면 2017~2021년 노동계급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2.17퍼센트로,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낮았다.

그러나 경제 위기의 뿌리는 훨씬 깊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압력의 핵심은 기술 혁신을 통한 자본 간 경쟁이 낳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다. 다만 실제 위기는 이윤율이라는 한 요인이 떨어져서 기계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윤율 저하가 과잉생산과 투자 축소를 낳고, 생산과 소비의 괴리와 부문 간 불비례, 신용의 팽창과 붕괴가 서로 맞물리며 위기가 구체화된다.

기술 혁신이 이윤율을 떨어뜨린다

자본주의는 두 개의 분할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하나는 자본가들 사이의 분할이다. 마르크스가 “서로 싸우는 형제들”이라고 부른 자본가들은 시장과 이윤을 놓고 서로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자본가계급과 노동력을 팔아야 사는 노동계급 사이의 분할이다. 노동자는 임금으로 받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고, 이 잉여가치가 이윤의 원천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핵심 수단은 신기술 도입이다.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기업은 한동안 비용 우위와 초과이윤을 누린다. 그래서 각 자본은 노동자 한 명이 다루는 기계·설비를 늘리려 한다. 그러나 경쟁자들이 같은 기술을 채택하면 선도 기업의 초과이윤은 사라지고, 경제 전체에는 노동력에 대한 투자보다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늘어난 결과가 남는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서 새 가치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살아 있는 노동이다. 따라서 자본 투자가 노동보다 더 빨리 늘면 이윤의 원천보다 투하자본이 더 빨리 커져 평균 이윤율에 하방 압력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다. 이윤의 총량은 늘면서도 이윤율은 떨어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경향’이다.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로 착취율을 높이거나, 생산성이 올라 값이 싸진 기계·원료를 쓰거나, 위기 때 파산 기업의 설비를 헐값에 사들이는 등의 ‘상쇄’ 요인이 있다. 그래서 이윤율은 해마다 일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축적 자체가 장기적인 이윤율 압력을 낳고, 위기가 그 압력을 파괴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통계가 보여 주다

크리스 하먼이 인용한 뒤메닐과 브레너의 미국·독일(서독)·일본 경제 이윤율 수치는 이 법칙을 지지하는 중요한 경험적 근거다. 그들에 따르면, 선진 자본주의 핵심부의 이윤율은 1960년대 후반부터 2008년 경제 공황 때까지 대략적인 하향 곡선을 그렸다.

그림 1 미국 이윤율 추계(실선)와 금융의 영향을 배제한 추계(점선)
그림 2 미국·독일·일본의 제조업 순이윤율 * 독일의 이윤율은 1950~90년은 구 서독, 1991~2000년은 독일의 수치.

마이클 로버츠가 올해 4월 5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은 최근 시기까지의 세계 이윤율 추세를 보여 준다.

그림 3 세계와 미국의 이윤율, 1950~2019년 (마이클 로버츠가 카람박시 논문에서 인용)
그림 4 미국 이윤율, 2023년까지 (로버츠 본인 계산, PWT 11.0, 분모는 불변자본+가변자본)
그림 5 선진국·개발도상국·세계 이윤율 비교

그림 5는 개도국 이윤율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을 크게 웃돌다가 2007년경 정점(13퍼센트대)을 찍고 2019년 9퍼센트까지 떨어지며 격차가 좁혀지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이윤율이 일부 회복된 것은 법칙의 반증인가? 이탈리아 출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굴리엘모 카르케디는 이 시기 착취율 상승이 이윤율 회복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시기 기업들의 수익성 회복이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과 깊이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다만 이윤율 계산법을 놓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 사이에도 논쟁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부분 전후 황금기의 높은 이윤율이 1960년대 후반부터 꺾였고 이후 회복이 있어도 과거와 같은 지속적 고축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역사적 인식을 공유한다.

금융은 근본 원인이 아니지만 위기를 증폭시킨다

생산 부문의 이윤율이 낮아지면 과거에 축적된 자본은 더 높은 수익률(잉여가치의 더 큰 몫)을 찾아 금융·부동산·투기로 몰릴 유인이 커진다. 그러나 금융은 생산과 완전히 떨어져 있는 외부 기생충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설비투자와 긴 생산·유통 사슬은 신용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유휴자금을 투자 자금으로 연결하고 미래의 이윤을 앞당겨 현재의 축적을 확대한다.

바로 그 때문에 신용은 위기를 늦추면서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호황기에는 미래 수익을 낙관해 대출과 투자가 함께 늘고, 주식·채권·주택담보증권 같은 가공자본의 가격도 오른다. 그러나 실제 생산에서 나오는 이윤으로 갚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부채가 늘면, 작은 수익성 악화나 자산가격 하락이 연쇄적인 디폴트와 신용경색을 부를 수 있다.

2008년이 전형적이다. 서브프라임 대출(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확대와 그 증권화는 위기의 중요한 방아쇠이자 전파 경로였다. 하지만 크리스 하먼이 강조하듯, 금융화는 장기 호황 뒤 낮아진 이윤율과 둔화한 생산적 축적에서 자라났다. 금융화의 성장은 불안정을 크게 키웠지만, 불안정과 위기를 처음 만들어 낸 근본 원인은 아니었다. 원인과 결과는 일방향이 아니라 서로 되먹임했다.

1997년 동아시아 위기도 단순히 ‘정실 자본주의’나 외국 투기자본 탓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경제 급성장기에 축적된 거대한 설비와 경쟁적 과잉투자, 이윤율 압력, 단기 외화차입이 결합했고 자본유출과 환율 붕괴가 그 취약성을 폭발시켰다.

소비 위축으로 위기를 설명하는 건 불충분하다

일반적인 과소소비론은 임금이 억제돼 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되살 수 없다는 데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찾는다. 분배가 문제의 뿌리라는 진단이다. 이 진단이 옳다면 처방도 분명하다.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확대해 구매력을 회복하면 자본주의는 다시 작동할 수 있다.

과소소비론이 주목하는 모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잉여가치는 상품이 실제로 팔려야만 실현되며, 노동자 소비의 제약은 가치 실현을 가로막는 실질적 압력이다. 기업이 임금을 억제해 이윤율을 방어하면 소비재 시장이 위축돼 위기를 앞당길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이 지점에서 과소소비론의 한계가 드러난다. 임금 억제는 착취율을 높여 이윤율을 방어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과소소비론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한 요인은 이윤율 저하를 막는 상쇄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자본가가 임금을 억제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탐욕 때문이 아니라 이윤율 압박에 대응하는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이 분배에 있다면 분배 구조를 고쳐 해결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자본에 임금 억제를 강제하는 압력은 분배 이전의 층위에서 발생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의 소비가 총수요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자본가의 기계, 공장, 원료 구매가 거대한 수요를 형성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2권의 재생산표식에서 보여 준 바가 바로 이 점이다. 생산수단 부문과 소비재 부문 사이의 균형이 유지되면, 노동자의 몫이 아무리 작아도 총생산물은 원리적으로 모두 실현될 수 있다. 임금이 낮다는 사실 자체에서 판매 불능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호황기에는 투자가 투자를 부르며 자본 축적이 스스로를 지탱한다.

문제는 이 투자가 무엇에 좌우되는가이다. 자본가는 시장의 수요를 예측해서가 아니라 경쟁에 쫓겨 투자한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생산성을 높여 경쟁자보다 싸게 파는 것이고, 그러려면 노동자 한 명당 더 많은 기계와 설비를 투입해야 한다. 그 결과 총투자에서 기계와 원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노동력에 비해 계속 커진다. 마르크스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잉여가치를 낳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노동이다. 각 기업에는 합리적인 선택이 사회 전체 수준에서는 잉여가치의 원천을 상대적으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투하된 자본은 불어나는데 그 자본이 짜낼 수 있는 잉여가치는 그만큼 늘지 않는다. 결국 이윤율이 하락한다.

이로 인해 어제까지 정상 가동되던 설비의 상당 부분이 더는 수익성 있게 가동할 수 없는 설비가 된다. 이것이 바로 자본의 과잉생산이다. 이는 사회적 필요에 비해 과잉된 것이 아니라, 자본의 수익성 기준에 비추어 과잉된 상태를 뜻한다. 굶주린 사람이 넘쳐나는데도 곡물이 폐기되고, 노숙자가 늘어나는데도 아파트가 빈 채로 방치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인과관계의 순서가 결정적이다. 이윤율이 하락하면 자본가는 투자를 중단한다. 투자가 중단되는 순간 투자재 수요도 사라진다. 해고가 뒤따르며 소비재도 판매 부진에 빠진다. 상품 미판매 현상은 과소소비론이 관찰한 그대로지만, 이는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가 표면화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낮은 이윤율과 과잉생산은 별개의 원인이 아니라 동일한 과정의 양면이다.

이러한 구분은 정치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과소소비론이 타당하다면 위기는 분배 정책으로 관리할 수 있는 문제가 되며, 개혁주의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반면 위기의 근원이 경쟁적 축적 자체에서 비롯했다면, 임금 인상은 노동자에게 절실한 요구일지라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한다. 자본주의가 주기적으로 스스로의 존립 조건을 파괴하는 현상은 교정 가능한 결함이 아니라 체제의 작동 방식 자체이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에 무관심해도 된다는 결론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그런 요구를 지지하며 함께 싸워야 한다. 다만 ‘노동자의 소비가 늘면 자본주의도 건강해진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노동자의 몫을 늘리는 투쟁은 자본의 이윤을 압박할 수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계급투쟁이다.

위기는 끝나기는 하는 건가?

자본주의는 위기를 통해 자본 가치를 파괴하고 이윤율을 회복하려 한다. 취약한 기업이 파산하고, 살아남은 기업이 설비와 원료를 헐값에 사들이며, 실업을 이용해 임금과 노동조건을 압박한다. 이 과정이 충분히 진행되면 새 투자가 다시 수익성 있어 보이면서 다음 상승 국면이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이윤율 저하가 위기를 낳는 동시에 위기가 이윤율 저하를 부분적으로 해소한다.

그렇다고 정부 개입이 아무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재정 지출과 유동성(자금) 공급은 수요 붕괴와 연쇄 파산을 완화하고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 경쟁적 축적과 낮은 이윤율 문제를 없애지는 못한다. 국가는 부실 자본을 유지해 자본 파괴를 늦출 수도 있고, 반대로 구조조정을 추진해 그 비용을 노동자와 약한 자본에 전가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장기 호황도 주로 케인스주의나 전쟁의 자본 파괴로 설명할 수 없다. 대불황과 전쟁의 자본 파괴는 높은 전후 이윤율의 출발점을 만들었지만, 그것으로 사반세기에 걸친 호황의 지속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냉전기의 막대한 평시 군비지출, 즉 상시군비경제였다. 군비지출은 잉여가치의 일부를 생산적 재투자에서 빼내어 유기적 구성의 상승 속도를 늦추는 동시에 안정적인 국가 주문을 제공했다. 이 효과가 약해지고 이윤율이 다시 하락하면서 1970년대 초에 위기가 돌아왔다.

AI 거품 문제

마르크스주의 분석을 오늘의 AI 투자에 적용할 때는 ‘AI라는 신기술이 도입돼 자동으로 이윤율이 떨어지고 곧 위기가 온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선도 기업은 큰 초과이윤을 얻을 수 있고, 신기술이 생산수단을 싸게 하거나 새 시장을 만들 수도 있다. 착취율 상승 같은 상쇄 요인도 작동한다.

그러나 경쟁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반도체·전력설비에 거액을 동시에 투자하고 기술이 빠르게 보편화되는데 실제 이윤이 투자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선도자의 초과이윤은 사라지고 기존 설비의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며, 신용과 높은 주가에 의존해 유지되던 투자가 급격히 꺾일 수 있다. 그런 경우 AI 호황은 1990년대 통신·닷컴 붐처럼 생산적 과잉축적과 금융 거품이 결합된 형태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AI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지루한 노동을 없애고 의료와 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이윤 경쟁 아래에서는 일자리·임금·노동강도에 대한 공격과 군사적 이용이 우선될 수 있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어떤 목적을 위해 생산과 투자를 통제하는가이다.

케인스주의 문제: 결론을 대신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서유럽 좌파 개혁주의의 임금주도성장론을 생색내기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정책화한 것이었다. 재정 확대를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NGO는 처음에 일정한 기대를 걸었다.

임금주도성장론은 케인스주의 전통에 속한다. 다만 보수적 경향이 아닌 좌파 케인스주의에 속한다. 핵심 원리는 유효수요와 근본적 불확실성이다. 투자는 계산 가능한 기대가 아니라 좌파 케인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야성적 충동”에 좌우된다. 투자 결정은 흔히 미래 수익에 대한 계산에 근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계산에 필요한 확률 분포를 아무도 알 수 없다. 20년 뒤 어떤 기술이 지배적일지, 그때 이 설비가 얼마를 벌어들일지 확률을 계산할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투자를 감행한다. 케인스는 이 결정이 결국 계산이 아니라 자발적 충동에서 나온다고 봤다. 미래를 알아서가 아니라 낙관적 전망이 우세할 때 뛰어들며, 그 낙관이 꺾이면 (계산 조건이 그대로여도) 투자는 멈춘다. 이처럼 투자가 심리적·관습적 요인에 좌우된다면 저축이 자동으로 투자로 전환될 보장은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완전고용 균형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이는 유효수요 부족이 상시화할 수 있음을 뜻하며, 앞서 언급한 ‘근본적 불확실성’ 개념의 핵심 근거가 된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설명이 멈추는 지점이다. 투자가 꺾이는 이유를 단지 ‘낙관이 사라져서’라고 답하는 것은 현상을 심리 요인으로 환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낙관과 비관이 무엇에 의해 규정되는지는 묻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의 기대는 심리가 아니라 실제 이윤율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낙관이 사라져서 투자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낙관이 사라진다. 인과의 방향이 정반대인 셈이다.

물론 케인스주의 측은 이것이 심리학이 아니라 인식론적 주장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계산 근거가 객관적으로 없는 상황에서는 관습과 집단적 기대가 실제로 독립적인 인과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케인스주의는 위기의 원인을 수요 측면에서 찾는다. 따라서 국가가 수요를 관리하면 자본주의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윤율이 아니라 지출이 문제이므로, 자본과 노동의 관계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이는 앞서 비판한 과소소비론이 적용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위기의 근원이 정책 실패가 아니라 경쟁적 축적과 이윤 중심의 생산에 있다면, 규제와 재분배만으로 위기 없는 자본주의를 건설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규제와 복지, 공공투자를 위한 투쟁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투쟁은 노동자의 삶을 지키고, 자본이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막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투쟁을 자본주의 위기 관리의 수단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요구와 자본의 이윤율은 위기 시기에 특히 날카롭게 대립한다. 위기의 근본적 요인을 제거하려면 이윤이 아닌 필요에 따라 생산하고, 생산 주체들이 경제를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케인스주의를 둘러싼 진정한 쟁점은 단지 경기부양책에 대한 찬반이 아니다. 위기를 체제의 교정 가능한 오류로 볼 것인가, 아니면 체제 자체의 내적 모순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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