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불안정을 키우는 ‘가공자본’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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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식시장이 급등락을 반복하며 하락세를 이어가자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고 있다. 이들은 극심한 변동성에 손사래를 치면서 손실을 감수하고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허가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탓하며 금융 규제 강화를 촉구한다. 물론 정부가 주식 투자를 활성하기 위해 허가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등의 금융 상품이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한동안 실물 자본과 괴리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자본의 금융 순환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모든 이윤의 원천은 실물 부문에서 노동자를 착취해 얻는 잉여가치인데, 금융은 한동안 이와 동떨어진 움직임을 보이며 거품을 키우고, 결국 이 거품이 커지면 터지면서 금융 공황을 촉발할 수 있다.
이 점을 인식하려면 자본주의에서 금융의 구실과 마르크스가 말한 ‘가공자본’의 확대를 살펴봐야 한다.
이자 낳는 자본
자본주의 금융이 실물 부문의 생산적 자본에 그저 기생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본가는 이윤이 남아돌아도 당장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할 수 있다. 다른 자본가는 좋은 투자처가 있어도 당장 돈이 없을 수 있다. 은행과 주식 시장 같은 금융 시스템은 이 두 자본가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준다. 즉, 금융은 유휴 화폐를 유통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 확대를 더욱 촉진한다.
그런데 대출해 줄 돈을 마련하려면 은행은 자본가나 다른 사람들의 돈을 차입해야 한다. 은행에 돈을 맡길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은행은 예금에 이자를 붙여 준다. 그래서 직접 생산에 투자하지 않아도 돈을 빌려 준 것만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 과정은 체제의 본질을 은폐한다. 왜냐하면 이 과정이 마치 화폐 자체가 이자(잉여가치의 일부)를 취득할 권리를 자동으로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 주는 사람의 처지에서 볼 때, 생산에 직접 참여하거나 상품을 판매하지 않아도 잉여가치의 일부를 청구할 권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를 취하는 화폐는 경제의 여러 영역과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축적 경쟁 속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돈을 빌려 주기 위해 돈을 빌리면서 신용과 부채의 사슬이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거대한 부채의 사슬은 생산 확대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부문의 거품 붕괴가 경제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대되는 기반이 된다.
금융의 성장에는 또 다른 측면도 있다. 마르크스는 이자 낳는 자본을 “모든 정신 나간 것들의 어머니”라고 평했다. 이자 낳는 자본이 보편화되고 이에 따라 화폐 자체가 자연스럽게 이자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면 규칙적인 소득의 흐름이 죄다 이자와 비슷하게 여겨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발행한 채권의 소유자는 국가의 세금 수입 가운데 일정분에 대한 청구권을 가진다. 만약 시중 금리가 5퍼센트고 국채 소유자가 연간 5만 원을 받는다면, 그는 자신이 100만 원짜리 이자 낳는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논리가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에도 적용된다. 주식은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채권과 다르다. 그럼에도 주식도 그 소유자에게 이윤의 일부를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하는 자본주의적 자산으로 취급된다.
가공자본
그런데 실물 자본에 대한 청구권 증서가 발행되면 이 자본은 ‘이중’으로 등장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주식을 새로 발행하고 그 주식 판매금으로 투자할 때, 기계나 노동력에 투자된 돈은 ‘실물’ 자본이다. 판매된 주식은 앞으로 생겨날 이윤 일부에 대한 청구권을 주지만, 그 증서 자체가 실물 자본인 것은 아니다. 자본은 두 번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채권이나 주식 같은 부에 대한 청구권 증서들을 ‘가공자본’이라고 불렀다.
이런 점은 국채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부가 국채 판매로 거둔 돈을 모두 사용해 버렸더라도 국채 소유자는 자신이 이자 낳는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가공자본은 실물 자본과 분리돼 자체의 운동 법칙에 따라 거래된다. 예컨대 실물 자본의 가격은 전혀 변화가 없는데도 주식의 가격은 예상되는 배당 수입과 이자율의 변화에 따라 오르내린다. 만약 금리가 낮고 이윤(따라서 배당)이 높거나 높아지고 있다면, 주식 가격은 오를 것이다.
주식 시장의 역사는 시장이 언제나 이윤 증가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치솟음을 보여 준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더 많은 이윤을 기대해 주가가 오르면, 투기꾼들은 그저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베팅하며 주식을 사들이고 이는 가격을 더욱 끌어올린다. 이 때문에 가공자본은 투기의 이상적인 수단이 되며 거품을 형성한다.
현재 AI 투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도 바로 이런 것이다. AI가 미래에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에 투자자들이 도박을 걸면서 매우 높은 주식 가격이 형성됐다. 빅테크들이 선도하는 AI 투자가 망할 리 없다는 (대마불사) 믿음이 미래에 이윤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을 압도했다.
마르크스는 이런 일이 실물 경제의 이윤율이 낮아지는 시기에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윤율이 저하하면 … 어떤 종류든 상관없이 특별이윤을 얻기 위해 새로운 생산 방법, 새로운 자본 투자와 새로운 모험 등을 앞뒤 가리지 않고 시도하기 때문에 투기와 일반적 투기 촉진이 나타난다.”
즉, 실물 경제의 이윤율이 낮아지면 더 나은 수익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동산, 원자재, 주식 같은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리고, 최근 사례처럼 미래에 큰 이윤을 보장할 것 같은 AI 산업으로 돈이 쏠리는 것이다.
이런 가공자본의 확대와 금융의 성장은 1980년대 후 잇따라 거품을 낳았다. 1990년대 후반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IT 기업의 닷컴 거품, 2008년 금융 공황 직전에 발생한 전 세계적인 부동산 거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빅테크들의 막대한 AI 투자에 돈을 대고 있는 ‘사모 신용’과 이와 연관된 파생상품이라는 새로운 형태도 등장했다.
신용의 팽창은 자본주의의 문제들을 감추거나 유예시키는 데 일조하지만, 결국 새로운 위기를 촉발시킬 터무니없이 비대해진 금융 시스템을 창출한다.
경제 위기가 흔히 금융 부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평론가들과 개혁주의자들은 위기의 원인을 단지 금융의 문제로만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위기의 촉발 요인과 위기의 근본적이고 진정한 원인을 혼동하는 오류다.
이런 오류는 생산 부문의 자본가들이 투기도 하고 투기꾼들이 생산에도 투자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낮아지는 실물 부문의 이윤율(“이윤율 저하 경향”)이 금융 거품을 키우는 진정한 원인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본지에 실린 기사 ‘반도체·AI, 성장의 새로운 견인차인가 거품인가?’를 참고하시오.)
최근의 주식시장 급락은 AI 거품 붕괴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거품 붕괴로 발생하는 거대한 침체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하고 생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첨예해지고 있는 지금 고통 전가에 맞서는 저항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