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갈등: 국제주의 관점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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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재명 정부는 미국 정부 관리들에게서 여러 차례 “모범 동맹”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동맹 간 협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미 관계의 불협화음도 거듭되고 있다. 최근에도 대미 투자, 이란 전쟁 파병 문제 등을 놓고 한미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관련 기사: 본지 602호, ‘한미 관계 불협화음을 빌미로 이란 전쟁 파병을 재촉하는 우파’)
원인은 트럼프 정부의 점증하는 압력이다. 특히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언사를 잇달아 내놓으며 한국을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깊숙이 끌어들이려는 의사를 숨기지 않고 있다.
최근 브런슨은 안보 환경과 군사 계획이 바뀌었으므로 전작권 전환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정부의 전작권 조기 전환 방침에 또다시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전작권이 전환되더라도 미군기지의 존재와 특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때문에 한국이 미국의 전쟁에 휘말릴 위험은 남는다.
그렇지만 브런슨의 전작권 발언은 한국을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의 장기짝으로 여기는 관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가장 최근에 브런슨은 남측 DMZ가 한국 영토가 아니라는 발언도 했다. “유엔군사령부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그 남쪽 철책선에서 시작된다.”
물론 정전협정에 따라 남측 DMZ의 관리 권한은 유엔사에 있다. 그러나 브런슨의 DMZ 발언은 한반도에서 제국주의적 통제력을 놓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그런 점에서 여권이 지난 9월 DMZ 지뢰 폭발 때는 유엔사의 DMZ 관리 권한을 인정했다가 지금은 “영토 주권”을 말하는 것은, 그들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데서 전혀 못 믿을 세력임을 보여 준다.)
이번에 브런슨은 한국에 다영역특임부대(MDTF)를 배치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MDTF는 최근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등 경쟁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해 새로 창설한 부대다.
브런슨의 이번 발언들은 뒤집힌 동아시아 지도를 놓고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강조하고, 한국을 중국을 겨냥하는 불침항모, 단검에 비유한 것의 연장선이다.
한국을 대중국 전초기지로 보는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은 한국인들 대부분을 엄청난 위험에 몰아넣는 짓을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이재명 정부 압박은 이재명 정부의 위기를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지 기반이 급속히 약화되고 심지어 여권 내에서도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재명 정부를 압박해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대미 투자 등을 얻어 내려 한다.
미국과 긴장을 빚는 이재명 정부는 반제국주의적인가?
우파는 한미동맹이 위태롭다며 이재명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이 “굴종, 사대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민족주의적 언사가 늘고 있다.
반미 자주파를 비롯한 좌파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듯한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재명이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전쟁 개입 파병 없다”고 한 것을 미국에 맞서 자주적 목소리를 낸 것으로 보기도 한다.(그러나 이재명의 그 기자회견은 기만이다. 관련 기사: 본지 599호, ‘호르무즈 파병은 이란전쟁 참전이 아니라는 거짓말’)
지난해 이맘때 이재명이 활짝 미소를 띤 채 트럼프에게 왕관을 선물하던 것을 생각하면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좌파 민족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재명 정부가 트럼프에 맞서 자주적 행보를 확대해 갈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트럼프와 긴장을 빚는다는 이유로 이재명 정부가 반제국주의로 나아가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이재명의 “굴종, 사대 지양” 발언은 미국과의 동맹을 거부하겠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는 같은 국무회의에서 한미동맹을 외교의 핵심 축으로 삼아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는 한국 지배계급이 자신의 경제적·군사적 역량에 걸맞은 독자적인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이제 세계적 대기업들을 보유하고 있고, 군사력은 세계 5위권으로 올라섰다. 그런 성장의 주요 무대는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고 있는 아시아와 유럽 지역이다. 그러나 그 질서가 약화되고 있으니 미국으로만 ‘몰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자주적 실용외교’는 그런 이해관계의 표현이다. 한미동맹의 현대화 틀 안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늘리고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 동시에, 그보다는 덜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과의 관계도 위험 요인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독자적 이익과 운신의 폭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적 국익 외교’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요컨대, 이재명 정부는 제국주의 질서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며 그 속에서 하위제국주의 국가로 도약하려 한다.(본지 586호, ‘[긴 글] 한국은 하위제국주의 국가인가? ─ 잠재태와 현실태’)
한국의 독자적 영향력 확대가 오히려 미국과의 협력을 재촉한다
그런데 제국주의 간 경쟁 격화 속에서 이재명의 줄타기는 점점 난도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이 대중국 견제에 더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약속한 대미 투자를 이행하고, 이란 전쟁에도 파병으로 정치적·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기를 바란다.
특히 파병 문제에서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운 처지다. 핵잠수함 등 핵무장 제한 해제, 대미 투자를 통한 미국 시장 진출 확대, 전작권 환수 등 한국 자본주의가 하위제국주의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일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한국이 파병의 대가로 미국에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파병은 이란과의 충돌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에도 한국의 요구는 많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의 “전쟁 파병 없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는 청해부대 활동 강화는 불가피하다고도 동시에 밝혔다. 10월 15일 이재명 정부가 청해부대 작전 구역을 오만만까지 넓히고 해상초계기 1대를 추가하는 파병 연장 동의안을 준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재명 정부가 고민하는 것은 파병을 어떻게 거부할 것인지가 아니라 파병의 형태와 명분이다. 호르무즈해협 목전인 오만만에 이란군으로부터의 선박 안전을 빌미로 군함과 초계기를 보내는 것은 명백히 미국의 이란 전쟁을 군사적·정치적으로 돕는 행위다.
요컨대 현재 미국과 한국은 동맹으로서 협력도 하지만, 동맹 관계 속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도 하기 때문에 갈등과 긴장도 빚는 것이다.
한국 지배계급은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패권에 의존하면서도 그 안에서 더 큰 이익과 권력과 자율성을 확보하려 한다. 미국은 성장한 한국이 더 많이 안보 부담을 나눠 지길 바라지만, 한국의 독자성이 미국 패권의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려 한다.
그래서 통일부장관 정동영이 이렇게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다. “지난 73년간의 일방·수혜적 한미동맹에서 쌍방·호혜의 한미동맹으로 가는 과정에서 긴장은 발생할 수 있다. 이걸 동맹이 파탄 난 것처럼 몰아가는 건 과도하다.”(〈한겨레〉 10월 19일 자 인터뷰)
한미동맹 강화와 한국의 독자적 역량 확대가 언제나 반대 방향인 것은 아니다. 지금은 나란히 가고 있다. 가령 핵추진 잠수함 도입과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 전작권 환수 등 한국의 군사적 역량을 확대하는 데 미국의 협력이 핵심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급속히 무기화하는 AI에 대한 미국의 기술 패권에 한국이 적극 협력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따라서 한국의 독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이 종종 오히려 미국의 요구에 협력하도록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이란 전쟁 파병을 추진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미 갈등을 단순히 미국에 굴종하느냐, 자주적으로 행동하느냐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극우와 국민의힘 등 우파는 미국 제국주의에 더 확고히 밀착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을 지키는 길이라며 이재명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여당 내에서도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위성락과 김정관 등).
‘국익’의 구체적 내용과 추구 방식에 대해서는 종종 지배계급 내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무엇이 국익이냐를 놓고 정치적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기 일쑤인 이유다.
그러나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삼고,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정학적 경쟁에 참여한다는 점에서는 정부와 국힘, ‘자주파’와 ‘동맹파’ 사이에 근본적 이견이 없다. 차이는 그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과 방법에 있다.
국제주의적 반제국주의 투쟁이 필요하다
그런데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진정한 국익’이나 ‘진정한 자주국방’을 요구해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 추구 방식에 대해 훈수를 두는 셈이고, 기본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 지지를 전제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자주국방’은 전혀 평화 애호적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이익을 거스른다.
이재명은 우파의 안보 공세에 응수하듯 10월 8일 한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직접 참관했다. 그러자 며칠 뒤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로 대응했다. 게다가 이재명의 핵잠수함 도입 시도는 동아시아 핵 경쟁의 일부다.
이재명 정부는 동아시아의 살벌한 군비 경쟁을 격화시키는 한 당사자이고, 세계 곳곳으로 무기를 수출하는 등 세계적 군비 경쟁에 일조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런 군비 증강은 한국 자본주의의 국제적 위상(“국격”)을 높이고 무기 기업들과 대기업들에 새로운 이윤 기회를 제공하는 등 지배계급에게는 필수적 이익이 되는 일이다. 반면 주거와 복지 등 보통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에 투입할 재원을 잠식하고, 주변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키운다.
그런데도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자주국방’을 지지하고 주요 슬로건으로 내세우기까지 한다. 하위제국주의를 지향하는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군사력 증강을 사실상 응원할 위험에 스스로 빠지는 것이다. 또한 자주국방 지지 같은 일은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의 노동계급 형제자매까지 적대하게 되는 논리를 내포한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이재명 정부가 ‘자주적 국익’을 추구하며 트럼프의 포식성 제국주의에 맞서고 미국과는 다른 독자적 행보를 보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보다 계급을 가로지르는 국민적 단결을 우선하면 이재명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요구를 제출해야 한다는 자기제한성의 유혹과 압력을 받게 된다.
또한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으면 친미 행보에 대한 실망과 독자적 목소리에 대한 희망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되고, 이는 개혁 염원 대중에게 혼란과 방향감각 상실을 안겨 주게 된다. 반제국주의 운동의 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미국 제국주의의 압박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압박의 존재가 한국이 미국의 종속국이거나 제국주의적 억압을 당한다는 뜻은 아니다. 좌파는 이재명 정부의 하위제국주의 지향과 군사주의, 친자본주의에 맞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제국주의는 미국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미국은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이지만, 제국주의는 자본 간 경제적 경쟁과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이 결합된 체제다. 이재명 정부는 그 체제를 거스를 이해관계와 의지와 능력이 없고, 오히려 그 안에서 한국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도모하려 애쓴다.
관련해서 프랑스에 대해 짚을 것이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프랑스 마크롱 정부가 종종 미국과 다른 독자적 행보를 보이는 것을 호평하고, 이재명 정부에게 프랑스 정부처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지어 프랑스를 ‘중견국 연대’ 상대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도 제국주의 열강의 일부다. 프랑스 정부는 미국과 종종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해 그렇게 했다. 지금 프랑스의 학생·노동자 시위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내팽개친 채 전쟁과 무기에 돈을 퍼붓는 것에 항의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외교는 그것이 독자적이라고 해서 진보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독자성, 자주성이 어느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냐이고 그렇게 보면 자본주의 국가의 외교는 자본가들의 이윤 축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다. 게다가 자본주의 외교는 온갖 수상쩍은 일을 밀실 합의와 비밀로 처리하는 전혀 비민주적인 영역이다.
국제주의자들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데서 자국 정부의 외교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진정한 희망은 자국 정부의 친제국주의와 군사주의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국제 연대에 있다. 이재명 정부의 파병 계획을 반대하고, 전쟁 지원과 군비 증강에 반대하는 독립적인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전작권 환수에 대한 국제주의적 입장
진보당 등 반미 자주파는 전작권 환수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작권을 한국이 돌려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중요하다. 첫째, 위에서 말했듯 전작권 환수가 이뤄지더라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같은 문제가 남는다.
둘째, 바로 한국 정부가 일관되게 평화를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호전적일 때도 있(었)다는 점이다.
역사를 보더라도 한국 정부가 미국 제국주의자들 못지않게 호전적일 때가 몇 차례 있었다. 가령 이승만 정권만 하더라도 미국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호전적이었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을 때, 미국은 김영삼 정부의 대북 강경 대응 때문에 군사 충돌이 확대되고 미국이 그에 끌려들어갈 것을 우려해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해 9월 〈뉴욕 타임스〉는 클린턴 정부 인사들이 북한보다 오히려 남한을 문제를 일으키는 쪽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To-hai Liou, “North Korea’s Diplomatic Strategies in the Post-Cold War Era: Fishing in Troubled Waters,” 2001.)
더구나 한국 정부가 하위제국주의로의 도약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전작권 환수가 평화를 담보한다고 보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전작권은 미국에 있는 것보다 환수되는 편이 더 낫다.
이때 혁명적 국제주의의 전작권 환수 지지는 한국 국가의 자주국방을 추구하는 좌파 민족주의적 지지와는 다르다.
국제주의자들이 전작권이 환수돼야 한다고 보는 까닭은, 그것이 반제국주의 전략·전술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작권을 환수하면, 미국 제국주의 군대가 한국군을 지휘·통제할 때보다는, 제한적일지라도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대중 투쟁을 통해 작동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