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 불협화음:
‘자주파’ 비난 속에 호르무즈 파병 촉구 주장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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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계에서 잇달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이종석 국정원장 등 정부 내 소위 ‘자주파’ 인사들이 갈등의 주된 원인 제공자로 찍혀 있다.
지난 3월 정동영은 국회에서 북한 평안북도 구성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그것이 기밀 누출이라며 한국군과의 대북 정보 공유를 중단했다.
그렇지만 구성에 북한 핵시설이 있다는 점은 10여 년 전부터 몇몇 미국 연구소의 보고서에서 언급돼 왔다. ‘기밀 같지 않은 기밀’을 두고 벌어진 설화가 이재명 정부를 압박하는 미국의 카드가 돼 버렸다.
국정원도 트럼프 정부의 표적이 됐다. 미국에서 열린 ‘북한 사이버 위협 한·미·일 실무그룹’ 회의에서 국정원이 배제됐다. 미국의 요구였다.
한미 간 불협화음의 표면적 이유는 정보 관리 문제이지만 이면에 훨씬 중요한 쟁점들이 있다.
트럼프 정부 인사들은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바라며 한국이 대중국 견제에 적극 가담하기를 원한다. 그에 비춰 한미동맹을 기본축으로 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고자 하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를 트럼프와 그 참모들이 불신하는 듯하다.
한국의 더딘 대미 투자도 불만이다. 지난해 한미 간 무역·투자 합의를 했지만, 한국의 투자는 텍사스 가스복합발전소 외에 구체화된 것이 별로 없다. 트럼프가 한국이 알래스카 LNG에도 투자한다고 말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검토 중”이라며 신중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다시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위협했다.
무엇보다 호르무즈해협 파병 문제가 있다. 트럼프 정부는 노골적으로 한국의 이란 전쟁 참전을 요구해 왔다. 지난 8월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고, 한미연합훈련 축소로 이재명 정부를 압박했다.
이재명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전쟁 개입 파병은 없다”는 기만적인 말을 하면서도 “상선, 원유 수송로, 국민 보호”를 위한 파병을 기정사실화했다. 호르무즈해협에서 미국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재명 정부는 이란과의 충돌에 걷잡을 수 없이 휘말리는 것은 피하고 싶은 듯하다.
그래서 파병의 형식과 규모 등을 조율하는 비밀 외교가 진행중일 공산이 크다. 트럼프 정부로서는 자신들이 만족할 만한 파병안을 이재명 정부가 내놓을 때까지 한국을 계속 압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미 갈등이 불거지면서 중요 현안을 둘러싼 한미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당장 핵추진 잠수함과 우라늄 농축 문제 논의가 사실상 중단돼 있다. “한국 정부 실무진이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 논의를 재개할 것을 미국 측에 요청하고 있지만 미국이 반응하지 않고 있다.”(〈매일경제〉 10월 12일 자)
이 밖에도 마스가를 비롯한 대미 투자 프로젝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한미 간에 풀어야 할 현안들이 더 있다. 이것들은 모두 한국 자본주의 전체의 이익이 걸린 쟁점들이고, 한국이 하위 제국주의로 도약하려면 꼭 해결돼야 한다. 한국 지배자들이 보기에, 그 문제들을 제때 풀려면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는 지난 몇 달 새 미국과의 관계 강화로 더 기울어 왔고, 그와 맞물려 정부·여당 내에서 ‘자주파’ 인사들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커졌다. 국정원장을 지낸 민주당 의원 박지원은 정동영의 장관직 교체를 포함한 “외교안보 라인 쇄신”을 요구했다.
트럼프 정부가 정동영과 이종석 등을 겨냥하자, 국내 우파의 공격도 거세졌다. 국힘은 정동영, 이종석을 “종북파”라는 터무니없는 말로 공격하며 그들을 경질하라고 성화다. 한미 관계가 틈이 보이자 ‘친북·친중 좌파 정부 때문에 한미 관계가 파탄 나고 국익이 저해됐다’는 익숙한 논리를 들이대는 것이다.
그런 공세로 우파는 정국 주도권을 쥐고 외교·안보에서 이재명 정부가 처한 곤경에서 득을 보려 한다.
보수 언론들도 가세하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한미 현안을 해결하려면 트럼프 정부의 불신을 빨리 풀어야 한다. 보수 언론의 주요 논자들은 이재명 정부가 파병을 제때 결단하지 않아 한미 관계를 회복할 절호의 시기를 놓쳤다고 비판한다. 지금이라도 빨리 파병을 공식화해 미국의 신뢰를 회복하라고 주장한다.
우파가 공격하는 정부 내 ‘자주파’ 인사들도 사실 한미동맹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지난해 정동영은 “정부의 외교안보팀 모두 자주적 동맹파”라고 말했다. 최근에 그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기대하며 누구보다 트럼프 지지파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이종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이라크 파병 등 미국의 요구에 협력했던 인사다. 다만 “자주적”이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자주파’들은 유동적인 국제 정세 속에 국익을 위해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볼 뿐이다.
정동영은 자신을 향한 비난에 항변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방적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100퍼센트 수용할 수는 없다. 우리의 국익이, 자율성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그러나 우파는 바로 그 국익,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미국에 더 밀착해야 한다고 이재명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이번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이종석은 자기 자리를 지킬지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와중에 한국의 이란 전쟁 참전을 정당화하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점이다. 파병 반대 운동의 경계를 한시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우파의 안보 공세에 극초음속미사일 시험 발사로 화답한 이재명
10월 8일 정부가 극초음속 활공 비행체(극초음속미사일)의 첫 시험 발사를 진행하고 이 사실을 공개했다. 이재명이 시험 발사를 직접 참관했다.
극초음속미사일은 일반 탄도미사일보다 요격이 대단히 어려운 최첨단 무기 체계다. 그만큼 개발이 어려워서 지금까지 실전 배치에 성공한 나라가 중국, 러시아 등 몇 안 된다. 미국도 아직 실전 배치하지 못했다.(북한은 최근까지 6~7차례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
이재명 정부의 극초음속미사일 시험 공개는 우파의 압박을 의식한 측면이 다분하다. 우파는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 이송 문제, DMZ 지뢰 폭발 사건 등으로 정부에 안보 공세를 펴고 있다. 국힘은 이재명 정부가 “김정은 심기 보좌”를 하고 북한에 “저자세”라며 맹공을 펴는 중이다.
이처럼 공식 정치권의 안보 공방 속에 군비 증강이 정당화되고 있다. 그로 인한 군국주의 강화는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동안 이재명 정부는 “자주 국방”이란 미명 하에 군사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군비 증강은 무기산업 육성과 직결됐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와 마찬가지로 무기산업을 한국의 새로운 주력 제조업으로 키우려 하며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재명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주거, 복지, 기후 위기 대응 등 보통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에 투입할 재원을 잠식한다.
첨단 무기 도입은 주변국의 반발을 부르고 군비 경쟁과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다. 지금 동아시아는 미사일 경쟁중이다. 당장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오키나와와 필리핀 등지로 이어지는 제1도련선에 육상 기반 미사일 전력을 잇달아 배치하고 있다. 한국의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은 이런 추세의 악화에 일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