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국가의 힘은 쇠퇴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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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대기업 때리기’는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보여 준다.
최근에 터진 영포 게이트뿐 아니라 정치 위기에 직면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포퓰리즘적 ‘친서민’ 정책들은 한국에서 국가의 힘이 쇠퇴했다는 주장에 대한 명백한 반박인 것으로 보인다.
정권을 장악하자 이명박 정부는 한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기업들을 전리품으로 챙겼을 뿐 아니라 ‘외국 자본의 수중에 넘어갔다’는 KB금융과 포스코 등의 회장 선임에 개입했고 이들과 다달이 모임도 했다고 한다. 또, 온갖 금융회사들에도 제 사람들을 앉혔다.
공장을 세우는 데 오랜 시간을 들여 갖은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이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산업자본은 말할 것도 없고, 이보다는 자금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가 훨씬 쉬운 은행 같은 금융자본들조차 정부의 협조(그들과 친밀한 관계에 기반을 둔)가 사업 성공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 사례들은 국가가 자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힘도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명박의 한마디에 금융회사들은 이자율을 낮춘다고 호들갑이고, 삼성·현대자동차처럼 다국적기업이 된 재벌들도 부랴부랴 협력업체 지원 방안을 내놓고 고용을 늘리겠다고 나서고 있다. 전경련 회장이 대놓고 정부를 비판하며 불만을 드러냈지만 말이다.
개입
이번 위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화의 시대에는 국가의 힘이 쇠퇴했다는 논의가 무성했다.
‘국경 없는 자본’들이 어디든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각국 정부들은 자본의 편의를 봐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었다.
신자유주의의 원조라는 미국 정부조차 1980∼90년대 위기에 거듭거듭 개입해 국가의 힘을 보여 줬음에도 이런 주장은 계속됐다.
국가가 덜 중요해졌다는 주장은 경제 위기로 분명 큰 타격을 받았다. 위기가 심각해지자 각국 정부들은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으로 자국의 은행·기업 들을 살리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있다. GM은 파산 위기에 처하자 유럽 자회사인 오펠을 매각하려고 했다. 독일 정부는 보조금 지급을 약속하며 오펠을 캐나다와 러시아 컨소시엄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이는 다른 EU 국가들의 반발을 샀는데, 오펠을 인수하면 독일을 제외한 다른 유럽 지역 공장들을 폐쇄하겠다고 이 컨소시엄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GM은 결국 ‘미국 자본’이었다. 러시아로 자동차 기술이 넘어갈 것을 우려한 미국 정부의 압력이 한몫해 성사 직전까지 갔던 협상은 결렬됐고 GM은 매각을 포기했다. 독일 정부는 보조금 지급 약속을 철회하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부도 위기에 처한 GM대우가 보조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한국에서 공장을 계속 운영하고 더 투자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라며 보조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경제 위기로 큰 타격을 받은 해운·건설회사 들을 선제적으로 지원한 것과 대조된다. 한국 정부도 GM의 국적이 어디인지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국가가 자본의 이해관계를 근본에서 거스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세계화 시대 이전인 국가자본주의 시대에도 그런 힘은 없었다.
자본에 대한 통제가 요즘보다 훨씬 강했던 때에도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은 자본의 해외 이탈이나 투자 철회(혹은 그 위협)에 굴복해야 했다. 한국에서 박정희 정권이 급속한 공업화를 위해 노동자들을 쥐어짜며 수출에 목맨 것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이다. 박정희 정권 말기의 엄청난 중공업 투자가 충분한 이윤을 내지 못하자 한국 경제는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다.
굴복
1980년대부터 많은 국가들은 국내 경제를 통제하는 방식에서 해외 자본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자본 축적 방식을 변경했다. 왜냐하면 1970년대 위기에서 드러났듯이 국내 경제를 통제하는 방식은 세계 최대 해외 기업들의 수중에 있는 신기술·자금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해 비용이 많이 드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들어서는 분명하게 이 방향으로 나갔다.
그러나 국가는 여전히 구조조정을 지휘·감독하고, 노동자 운동을 공격하고, 규제·금리·재정 정책을 행사해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쳐 왔다.(특히 한국처럼 오랜 기간 정부가 경제를 강력하게 통제해 온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여전히 국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 위기에서 자신들의 삶을 보호하는 데 국가가 나서라고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결국에는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 논리에 따라 복지나 임금을 공격하게 되므로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를 뛰어넘는 대안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