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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국제 정세와 반자본주의자들의 과제

다음은 12월 12일에 있었던 국제사회주의경향 주요 단체 대변자들 사이의 대담이다. 녹취와 번역에 전문통역자들이자 다함께 회원들인 박준규와 천경록이 수고해 줬다. 한국 관련한 최일붕 동지의 말은 〈레프트21〉 독자들이 비교적 잘 알고 있을 듯해 상당 부분 생략했다. [ ] 부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레프트21〉이 삽입한 구절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 먼저 아일랜드, 그리스, 영국 상황에 대해 보고하자.

키어런 앨런(아일랜드 SWP): 아일랜드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2년째 극심한 긴축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그 결과로 경제가 더욱 침체됐고, 그래서 심지어 아일랜드 국채를 보유한 국제 투자자들도 아일랜드 지배계급에게 어떤 전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몇 달 사이 대대적인 자본 이탈이 일어났다. 이제는 IMF가 EU와 함께 아일랜드를 사실상 통치하려고 들어왔다.

12월 14일 로마에서 벌어진 베를루스코니 반대 시위 유럽 전역에서 계급투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노동자들이 좌경화하고 있다. 그들은 좌파적 언사를 사용하는 좌파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 당으로, 일부는 더 나아가 신생 좌파연합으로 기울고 있다.[아일랜드 사회주의노동자당(SWP.IE)은 이 연합체에 참여하고 있다.] 1월에 열릴 좌파연합 대의원대회에 최대 1천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선거에서 20명의 후보를 내고 국회의원 5~10명을 당선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정치 상황이 변하고 있다.

계급투쟁 상황에 관해 말하면, 아일랜드 노동조합 지도부들은 정부한테서 막대한 보조금을 받을 정도로 ‘사회적 합의’에 깊이 연루돼 있다. 이는 여러 모로 안 좋은 상황이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부들은 이번 시위를 평가절하했고, 노동자들이 더한층의 임금 삭감을 피하기 위해 공공지출 삭감을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퍼뜨렸고, 최소한의 생색내기용 시위만 조직했다. 비록 이번에는 노조 지도자들이 10만 명 규모의 행진을 조직하기는 했지만, 운동을 전진시킬 전략이 없었으므로 행진 참가자들한테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학생들에 관해 말하면, 아일랜드 학생들은 ‘켈트 호랑이’[경제가 잘 나가던 시절의 아일랜드를 가리키는 말] 호황 중에 사실상 탈정치화했다가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아마 그 변화 속도는 영국보다는 느릴 것이다. 학생들이 변하고 있다는 첫 조짐은 약 4만 명 규모의 학생 집회에서, 그리고 학생운동 내 좌파들이 연합해 주도한 2천~3천 명 규모의 점거 투쟁에서 나타났다. 좌파 학생 운동은 대학 내에서 이제 막 결집되기 시작했다.

파노스 가르가나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SEK): 그리스 상황은 아일랜드 상황의 영향을 받았다. 여름 동안 잠잠한 듯했던 그리스 국채 시장이 요동치면서 그리스 위기는 더 악화됐다. 이 때문에 정부는 노동계급에 대한 각개격파 전술을 포기해야 했다. 정부는 이제 공기업 노동자들부터 시작해서 전체 민간부문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임금 대폭 삭감 등 다시 일반화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예상대로 이는 반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지방선거에서 선방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는 정치적으로 더 취약해졌다. 그래서 정부는 공격에 나서자마자 강력한 파업 물결에 직면하고 있다. 12월 15일 수요일에 총파업이 있었고, 그 직후 선원들과 지방정부 노동자들의 전면 파업이 있었다. 운수 노동자들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고, 언론 노동자들도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즉, 그리스는 어떤 면에서 IMF가 들어왔던 지난 5월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IMF와 EU가 나서서 정부에게 공격을 일반화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 결과로 올해 상반기에 나타났던 것과 비슷한 반격이 일어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많은 부문들이 총파업 외에도 독자적으로 전면 파업에 나설 태세가 돼 있다는 것이다.

좌파들은 지방선거 후 더 강력해졌다. 공산당의 득표는 약 7만 표가 올랐다. 원내 좌파 중 [공산당 소속 의원들을 뺀] 나머지 절반은 세 곳으로 분열한 탓에 득표수가 낮아졌지만, 셋을 합치면 오히려 분열 전보다 득표수가 늘었다. 특히 반자본주의 좌파들[안타르시아라는 연합체로 조직돼 있다]은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득표수가 2만 5천 표에서 10만 표로 뛰었고, 지방의원 7명과 시의원 15명을 당선시켰다.

파업 운동에서는 파업 지원을 위한 기층 조직을 구축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지금까지 모든 파업이 CUT[그리스 노동조합총연맹] 주도로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번에 달라진 점은 현장조합원들의 활동 수위가 훨씬 높아졌다는 것이고, 실제로 이들이 일부 파업을 이끌기도 했다. 특히 노조 지도부가 매우 우파적이고 타협적이었던 언론 노조에서 그랬다. 다음 주에 벌어질 파업도 그렇지만, 지금껏 벌어진 더 소규모의 산발적 파업들도 아래로부터 세우진 파업 조율 위원회가 주도한 것들이다.

그리스 노동자 투쟁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위기가 그리스로 번지면서 노동자 투쟁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기세가 높아진 반자본주의 좌파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기층 노동자들의 운동에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쉽지는 않다. 대부분의 반자본주의 좌파들이 새로운 상황에 너무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반자본주의 좌파들이 추구해야 할 과제다.

학생들의 경우, 새로운 점거 물결이 한 차례 일었다. 영국의 학생 운동이 그리스 학생들의 전투성 부활에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대체로 말해 지금의 그리스 상황은 6개월 전보다 더 진일보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영국 상황은 12월 10일의 첫 학생 시위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정말 의미심장한 것은 여러 모로 전형적인 학생 운동, 즉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여러 차례 봐 왔던 학생 시위나 점거(공식 학생회를 일부 우회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는) 운동이 훨씬 더 원초적이고 거의 봉기에 가까운 운동과 결합돼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입 준비 학교와 직업학교 학생들은 대학생보다 훨씬 노동계급적이다. 이들은 현재 의결 중인 등록금 인상안으로 타격을 받게 될 뿐 아니라 16세 이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 폐지로도 타격을 받게 된다. 이들의 운동에는 어떤 원초적인 성격이 있다.

영국 학생 시위 영국 학생 투쟁은 영국 정치 지형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대학생들에게는 경찰이 악당이라는 사실이 새로운 발견이지만 많은 중고등학생들은 동네에서 일상적으로 경찰과 부딪힌다. 어떤 점에서 이 운동은 학생들에게 경찰들과 맞장 뜰 수 있는 더 크고 유리한 무대를 마련해준 셈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학생들 시위가, 특히 12월 9일 시위가 그토록 폭발적이었던 것이다. 이번 시위는 첫 시위와 별개였고 비공인 시위여서 전국학생회(NUS)를 우회했다. 그래서 전국학생회는 그 날 완전히 주변화됐다. 전국학생회가 2백명 규모의 촛불집회를 하는 동안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는 3만 명이 경찰과 충돌하고 있었다. 찰스 왕자 부부에 대한 공격은 상징적이었지만 왕정을 거부한다는 명백한 뜻이어서 지배계급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크리스마스 이후에도 운동이 유지될 것인지 여부다.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사태가 종료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운동의 전투성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고등교육에 대한 공격과 관련한 쟁점들이 계속 제기될 것이다. 정부의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자유민주당은 정부가 원내 다수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동맹인데, 자유민주당 의원 중 소수만이 정부안을 지지했고 이들은 대부분 정부 각료들이었다. 집권 연합의 취약성이 드러난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과연 학생 운동이 노동자 운동으로 번질 것이냐는 문제인데, 이는 미지수다. TUC[노동조합총연맹]는 3월 말에 대규모 행진을 하겠다고 하는데,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이것이 중요한 초점이 되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한참 남았다. 공공부문의 거의 모든 좌파 노조들이 연금 문제를 놓고 하루 파업 등의 공동 행동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한 개 노조가 거기서 후퇴하고 있다. 따라서 이 대단히 강력한 학생 운동과 노동자 운동 사이의 간극은 큰 문제다.

SWP의 개입에 관해 말하자면, 내 생각에 우리는 아주 잘 해냈다. 우리는 10월 초의 ‘노동권회의’ 주최 시위에서 중추적 구실을 했다. 현재 투쟁 물결의 시작을 알린 그 시위는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상당수 학생들도 거기에 참가했다. 우리는 그때 이미 거기에 있었고 그런 점에서 이 시위는 이후 사태의 예고편이었다.

학생 운동 내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있다. 그래도 우리는 시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가입시키고 있다. 이 신입 당원들을 간부로 훈련시켜야 하는데, 이는 청소년·대학생들의 경우 특히 어렵다. 왜냐하면 영국에는 1970년대 초 이래로 전투적 학생 운동의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 지형 전체가 바뀌었다. 우리는 실질적인 사회적 저항이 존재하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 그리고 이 사회적 저항은 학생들에게서 시작됐으므로 매우 전투적이어서, 우리가 거기에 영향을 끼치고 일부 투쟁을 주도할 수 있는 여지가 전보다 더 많다. 진정한 돌파구가 열리고 있는 시기다.

슈테판 보르노스트(독일 마르크스21): 분명 저항의 측면에서는 사태가 극적으로 변했다. 특히 지난달 금융 위기 이후로 EU를 둘러싼 저항이 그렇다. 그러나 독일에서 가장 큰 쟁점은 EU의 정치 위기에 관한 것이고, 그 중심에는 독일 지배계급이 국제적으로 추구하는 경제적 어젠다가 있다. 알다시피 독일 경제는 호황이다. 독일 수출 산업의 높은 경쟁력 덕분에 실업률은 15년 만에 가장 낮아졌고, 독일 지배계급은 이 경쟁력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한다. 그들의 국제적 어젠다 전체가 수출 산업을 지원하는 데 맞춰져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첫째, 독일이 EU의 다른 회원국들에 계속 경제적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와 동시에, 독일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투자를 지키려 애쓴다. 독일 은행들이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으므로 독일은 이들 나라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더 높이려고 손을 뻗고 있다. 이들 나라의 예산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감사를 벌일 수 있도록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알다시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실세는 독일과 프랑스다. 그래서 독일 측의 이런 [도가 넘은] 주장은 마찰과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다른 EU 회원국들이 독일 은행들에 진 부채를 갚을 돈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2011년 EU의 모습을 예측하는 데서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모순은 해결될 가망이 없다. 독일 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매우 강경하게 고수할 태세다.

둘째, 독일에서도 긴축이 시행되고 있지만 지난 7~8년 동안 이미 이러한 긴축이 조금씩 진행돼 왔으므로 그 강도는 아일랜드나 그리스와는 다르다. 오랫동안 코포라티즘[사회적 합의]에 길들여진 노동운동은 현재의 과제에 부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독일 전역에서 10만 명이 시위를 벌였는데, 그중 5만 명이 참가한 최대 규모 시위는 실질적으로 정부에 맞서는 시위가 아니었다. 독일 노조들 대부분은 수출 확대 전략에 동참하고 있고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해 왔다. 이것이 문제다. 우리는 그리스 반자본주의 좌파들이 제공하려 애쓰는 것과 같은 대안적 지도력을 제공하려 애쓰고 있다.

셋째, 아일랜드 동지가 말한 개혁주의적 좌파의 부상이 독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나라마다 사태의 수혜를 보는 세력은 다른 듯하다. 독일의 경우 핵 에너지에 반대하는 거대한 운동이 있다. 이로부터 수혜를 본 주된 세력은 침체하고 있는 사민당도, 디링케[좌파당]도 아닌 녹색당이었다. 녹색당은 두 배로 커졌고, 사상 처음으로 주(州) 선거에서 사민당을 앞질렀다. 또한 녹색당은 연방 선거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정당이다. 이는 야당 쪽의 이데올로기를 독점해 온 좌파에게 큰 도전이다. 이제 좌파는 보수적 자유주의 정부에 맞선 공동전선 속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녹색 정치와 관련해 이데올로기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려야 할 것이다.

파노스 가르가나스: 현재 상황에서 조금 더 앞질러 보자. 슈테판이 제기한 유럽연합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예상되는 한 가지 전망은 유럽 연합 지배자들이 위기에 대응하는 현재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유럽 국가 중 하나가 부도 사태에 빠지는 등 아르헨티나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아마 그리스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아일랜드나 포르투갈일 수도 있다. 만약 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 앞으로 필요할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지배계급들이 고집하고 있는 방침이 사태를 이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리스가 아무리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한다 해도(저항이 워낙 거세서 어차피 강력한 긴축은 어려울 게다) 금리가 오르는 속도가 원체 지속 불가능해 앞으로 1년 혹은 2년 내에 그리스가 국가 부도사태에 이를 가능성이 꽤 있다. 이로 인해 유럽 연합에 엄청난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할 미래 전망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미리 고민해야 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디폴트 사태가 일어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그리스 동지의 질문은 중요하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에서는 이미 이에 관한 논쟁이 진행돼 왔다. 급진 좌파가 디폴트를 요구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이어졌는데, 이때 디폴트는 유로존 탈퇴도 뜻하며 일자리 보호, 공공서비스 보호 등 일련의 진보적 조처의 병행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동지들의 경우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다’ 연합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다’는 이제 광범한 선거 블록인 좌파연합에 참여하고 있고 위기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강령과 조처들을 내놓았다.

다른 한편으로, 더 큰 틀에서의 연대라는 문제가 있다. 즉, 만약 동의된다면 유럽 전역의 좌파들과 노동운동이 뭔가 대응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다. 내 생각에 바로 이 부분이 약점이다. 유럽 TUC의 공식 발의가 있기는 했지만 저항을 건설하려는 진지한 의도가 전혀 읽히지 않는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최근에 열린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영국 SWP와 프랑스 NPA가 공동 주최한]도 아직 연대 행동을 조직할 역량을 갖춘 기구는 못 되는 듯하다(내가 너무 비관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알렉스 캘리니코스: 한반도 사태에 대한 보고를 해달라.

최일붕(다함께 국제연락간사): 남한 정세를 특징짓는 다섯 가지 일이 있다. 하나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포격 사건이다. 둘째는 해군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의 침몰이다. 셋째는 남북한 상호 포격 사건의 정치적 유탄을 맞은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파업이었다. 넷째는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 서점가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차별이 없는 세상과 평등을 갈망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섯째는 장하준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다. 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한국인들이 시장을 깊이 불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 같은 반시장주의 정서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조합원 5백 명이 공장을 점거한 현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했다. 여론이 공장 점거와 같은 행동을 지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의 다연장 로켓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 확대에 맞서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사건 중에서 두 개의 사건이 가장 중요했고 지배적이었다. 하나는 남북한 상호 포격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투쟁이다. 전자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그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한층 더 넓히고 있는 상황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그래서 제국주의 문제가 다시 한 번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상승하고 있어 내년에는 더 많은 투쟁들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의 영향력 때문에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동맹을 맺어 민중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공공연히 개혁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점거파업에 소심한 태도를 보였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매우 소심했고 심지어 기만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그랬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보다 훨씬 더 크고 영향력이 있다. 기층의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 투쟁에 매우 공감했음에도 정규직 지도부는 투쟁을 배신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천안함 침몰사건과 남북한 상호 포격 사건을 볼 때 북한이 실질적인 전쟁 위협을 하는 것이라기보다 미국과 중국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책략을 부리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이 우연히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지만 말이다,

최일붕: 그렇다.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 아래로부터 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할 전망은 사실 그리 밝지 않다. 그럼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운동을 건설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파노스 가르가나스: 남한 [김하영] 동지가 쓴 성명서[〈레프트21〉 지난 호에 논설로 실림]를 보면 이런 전쟁 시도에 맞서 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로 끝맺는데 운동의 요구로 내세울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최일붕: 우리는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제국주의적 영향력 확장 노력을 멈추는 것과 북한을 악마화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려 한다. 물론 미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 확대 반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소위 ‘반제국주의 투쟁’ 전술에 대해서도 더 적은 비중이지만 비판을 가하고 있다. 북한 관료의 행동을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볼 수는 없다. 포격이나 핵무기 개발은 미국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과 대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게다가 군사 행동이나 핵무기 개발은 남한 노동계급을 소원케 하는 짓이고, 남한 노동계급의 투쟁에 해로운 효과를 낸다. 이번 현대차 파업 사태에서 보듯이 말이다.

남북 상호 포격을 9·11 테러 사태에 유비할 수 있다. 즉, [압박을 가하는] 미국이라는 매우 큰 악과 그보다 훨씬 작은 악[북한 측의 연평도 포격]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당시 테러에 비판적이면서도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에 대해 비할 데 없이 훨씬 더 비판적이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짐작컨대 한국의 많은 좌파들이 북한의 입장에 더 친화적이지 않은가?

최일붕: 이번 경우 그렇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국회에서 대북규탄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였다. NGO들은 양비론 입장이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에 대해 보고하겠다. 10월 말에 열린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는 NPA가 발의했지만 NPA는 SWP와 NPA가 공동으로 주최하자는 식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이것이 실천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여전히 NPA가 사실상 조직했고 파리에서 열렸다. 대체로 FI[제4인터내셔널]과 IST[국제사회주의경향] 소속 유럽 단체들과 그 유관단체들이 참가했는데, 내 생각에 독일 측에서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FI나 IST가 아닌 몇몇 중요한 단체들도 참가했다. 포르투갈의 좌파블록에서도 왔고, 덴마크의 적녹연합도 왔고, 노르웨이 적색당 당원들이기도 한 IST 동지 두 명이 업서버로 참석했다. 노르웨이 적색당은 마오주의 단체들이 만든 제법 크고 광범하고 비교적 성공적인 정당이다.

참가자 구성이 IST와 FI에 국한되지 않은 것은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NPA는 비록 [LCR 시절보다] 저변을 크게 확대하긴 했지만 선거에서 좋은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프랑스 공산당과 좌파당이 참여하는 좌파전선에게 어느 정도 밀려난 셈이다. 내 생각에 좌파당 지도자 멜랑숑은 자신과 좌파전선을 프랑스 급진좌파 진영의 단결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내세우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고, 그 때문에 NPA는 주변화돼서 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것이 유럽 수준에서 낳은 결과는, 유럽 좌파당과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강경 좌파 사이의 갈등이다. 포르투갈 좌파블록의 참여가 중요했던 이유는 FI 세력이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좌파블록은 NPA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SWP와도 마찬가지다. 10월 3일 좌파블록 회원 한 사람이 버밍엄 집회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그 날처럼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행진하는 모습을 생전 처음 봤다고 했다. 포르투갈에서는 그런 행진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좌파블록은 유럽 좌파당에 속해 있기도 해, 그 성향이 강경 좌파들보다야 조금 오른쪽이다. 이처럼 IST와 FI 보다 더 광범한 스펙트럼의 단체들이 참가한 것은 유용했다. NPA는 상설 협의체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는데 좌파블록은 이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자 NPA는 제안을 철회했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를 예전의 유럽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처럼 6개월 주기로 계속 개최하자는 데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예전의 유럽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는 2000년대 초에 시작됐다가 NPA 프로젝트가 떠오르면서 흐지부지됐다. 우리는 다음 번 대회를 내년 5월 또는 6월 중에 런던에서 주최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내년 1월 SWP 당대회 직후 파리에서 SWP와 NPA 지도부 대표들 간의 공동 회의를 열 계획이다. 그러니까 둘 사이에 협력은 지속될 것 같다. 그리스 급진좌파 중 기회주의적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세력인 시나스피스모스가 분열하고 반자본주의 좌파 연합인 안타르시아가 지방 선거에서 약진한 것은 유럽 전체 수준에서 긍정적인 소식이다. 그래서 내가 볼 때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는 상당히 유용했다. NPA 지도부는 특히 SWP와 협력할 의향을 밝혔다.

물론 여기에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SWP와의 협력은 NPA 프로젝트를 구상한 인물인 사바도의 개인적 기획인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NPA 지도부 내의 더 젊은 세대 중 사바도와 의견이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NPA의 젊은 세대 지도부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우리 자매 조직의 회원인 에니나 동지가 NPA 집행위원이고 이번 대회의 조직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건은 비교적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슈테판 보르노스트: 대회에 참가하지 못해 미안하다. 하지만 해당 주말에 전국적 집회가 두 개나 잡혀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파노스 가르가나스: 두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첫째, 프랑스에서는 NPA가 공산당과 좌파당에게 크게 한 방 먹었는데, 문제는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이다. 시나스피스모스가 위기에 빠진 과정이 매우 시사적이다. 위기에 빠지기 전만 해도 여론조사에 나타난 시나스피스모스 지지율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우리 같은[반자본주의 좌파] 정당들이 약진했다가도 급진화 수준이 너무 낮아서 급속히 한계에 봉착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은 유동적이었다. 그리스에서는 이러한 모순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프랑스도 비슷한 것 같다. NPA 동지들도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관점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둘째,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를 정례화한다는 것은 괜찮은 생각이다. 현존하는 세력으로는 유럽 국가 한 곳이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범유럽적인 연대 운동을 벌이기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는 그러한 유형의 행동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런던에서 열리는 다음 번 대회에서는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등의 민중에게 연대하는 운동을 벌일 수 있는 세력을 구축하는 문제, EU의 문제, 위기에 대한 대응 문제 등을 논의하면 좋을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독일 문제’는 우리의 최대 관심사다. 분명 EU 내에서 커다란 균열이 일어나고 있고, 내 생각에 독일 지배계급은 그 과정에서 자국의 수출 기반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이다. 독일은 필요하다면 분명 유로존을 축소시키는 방안도 고려할 것이다.

둘째, NPA의 불분명한 사고에 대한 파노스의 지적은 옳다. 그러한 불명료함은 뿌리가 깊은데, 왜냐하면 급진좌파가 이탈리아에서 그랬듯이 중도좌파와 연합한 것은 완전한 재앙이었다는 사바도의 믿음이 NPA 창립의 기초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한 재앙을 피하려면 비교적 원칙적인 반자본주의 좌파와 더 온건하고 기회주의적인 좌파 사이에 날카로운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떤 수준에서는 이러한 선 긋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것은 NPA 내에 모종의 최대강령주의적 태도를 조장했다. 듣기 좋은 추상적 구호만 내세우면 사람들이 자기들 쪽으로 몰려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런 태도 말이다. 이런 태도는 2005년 말 유럽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때부터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좀더 온건한, 반신자유주의 좌파의 일부를 능동적으로 견인하기 위한 전술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좌파당에게 당한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시나스피스모스를 둘러싼 혼란을 계기로 반자본주의 좌파들의 재결집이 시작된 반면, NPA는 그러한 일을 할 의향을 보이지 않는다.

NPA 쪽에 우리가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NPA의 내분이 워낙 심각하고, 2012년 대선을 어떻게 치를지를 놓고 정말 황당한 내분을 가까스로 피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음 번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는 더 형식적일 가능성이 높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지만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위기가 깊어지면 우리는 여러 수준에서 개입해야 할 듯하다. NPA도 그 대상 중 하나다. 그러나 그밖에도 포르투갈 좌파블록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활용해 비교적 협소한 요구를 기초로 더 광범한 연대 캠페인을 추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포르투갈 좌파블록과 독일 마르크스21은 유럽 급진좌파 내의 상대적으로 좀더 개혁주의적인 세력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며, 우리는 이를 활용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