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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왜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지속되는가?
서방의 이스라엘 후원이 본질적인 문제다

이 기사는 8월 9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이스라엘의 제닌 난민촌 대규모 공격: 왜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계속되는가?’(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얼마 전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제닌 난민촌을 비롯해 팔레스타인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끔찍하게 야만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자신이 명목상 자치를 인정한 서안지구를 폭격한 것은 2000년도 이후 처음입니다. 올해 희생된 팔레스타인인 사상자 수도 2000년도 이래 가장 많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정치는 위기 상황입니다. 지난달 네타냐후 총리는 사법개혁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결정을 견제할 권한을 축소시키는 게 골자입니다. 법 개정을 통해 네타냐후 총리 등 극우파들은 팔레스타인 영토 병합을 더 공격적으로 추진하려 합니다.

법 개악에 반발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몇 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위대는 네타냐후 정부가 이스라엘의 기본 가치인 민주주의를 거스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의 언론들도 이스라엘 시위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운동으로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의 반정부 시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또, 그 운동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며 현 국면을 어떻게 볼지 짚어 보려 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이 끝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얘기하려 합니다.

이스라엘, 서방 제국주의의 경비견

이스라엘의 반정부 시위는 네타냐후 총리 등 극우파들이 이스라엘의 가치에서 일탈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재 네타냐후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은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 자체에 아로새겨진 본질적 성격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알려면 먼저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을 살펴봐야겠지요?

이스라엘 국가는 시온주의의 산물입니다. 시온주의는 유대인의 단일 민족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정치 운동입니다. 시온주의자들은 19세기 유럽, 특히 러시아 등 동유럽에서 벌어진 유대인 대량학살을 경험하고는 유대인만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국가를 세우고자 한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후원을 받아 자신들의 염원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먼저 영국에 지지를 구했습니다. 영국은 강대국이었을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영국 지배하의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을 집단 이주시키고, 영국과 협력해 아랍인들의 저항을 억압하는 선봉대 구실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영토와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확보해 갔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은 중동에서의 지배적인 지위에서 밀려났습니다. 대신에 미국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습니다. 그러자 시온주의자들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때마침 미국은 풍부한 석유 자원을 확보하려고 중동에 적극 진출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이 무장시킨 시온주의 조직들은 이제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했습니다. 그리고는 인종청소를 자행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 약 70만 명이 학살을 피해 고향을 등져야 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부터 1970년대까지 거세게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은 중동에서도 미국과 서방의 이익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서방의 소유나 다름없었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고, 이란의 모사데크는 석유 시설을 국유화했습니다.

미국 등 서방은 중동에서 이런 민족주의 운동의 확산을 막는 데에 이스라엘이 중요한 동맹국이 돼, 자기네의 이익을 지키는 보루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1956년 이스라엘은 나세르의 이집트 군대를 수세로 몰아 미국에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1967년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에서 나세르를 상대로 확실한 군사적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래서 아랍 민족주의 운동 전체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미국의 대이스라엘 군사 원조는 수직 상승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 지배를 유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구실을 했습니다. 현지의 다른 친미 독재 정권들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저항에 취약했습니다. 반면, 식민 정착자들로 이뤄진 이스라엘 국가는 내부 저항에 의해 붕괴될 위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방의 이익을 충실히 지키는 경비견 노릇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인티파다와 ‘두 국가 방안’

물론 미국의 개입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은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을 불렀습니다. 주변 아랍 대중도 팔레스타인 억압에 분개했습니다.

아랍 지배자들은 대중의 비위를 맞추고자 그럴싸한 말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나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문제는 그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문제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서방에 대한 아랍 지배자들의 협력과 무대응을 드러내는 문제입니다.

게다가 난민으로 입국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열악한 처지와 저항은 아랍 국가 내 대중의 투쟁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극심한 억압과 거듭된 패배에도 끈질기게 저항을 벌여 왔습니다. 특히, 1987년 인티파다, 즉 팔레스타인 대중 봉기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굴복하지 않음을 보여 줬습니다. 1987년 인티파다는 중동 전역에서 저항의 상징이 돼 중동 곳곳에서 연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중동의 친서방 지배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 제1차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 대중 저항이 기존의 중동 지배 질서를 위협하는 주요 변수의 하나이고, 이스라엘이 저항을 완전히 제압하기는 쉽지 않음을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 지배자들은 유화책을 모색했습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두 국가 방안’입니다. 이 안은 1993년 오슬로협정에서 합의됐는데, 이스라엘이 1948년 유엔 분할안과 1967년 전쟁을 통해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립한다는 안입니다. 나머지 지역이 바로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미국도, 이스라엘도 진정한 독립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허용할 의사는 없습니다. ‘두 국가 방안’을 통해 그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일부를 포섭하고 주변 아랍국 지배자들을 만족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이끌던 PLO, 즉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한때 팔레스타인에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단일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오슬로협정이 체결될 무렵에는 이미 제국주의에 타협적이 돼, ‘두 국가 방안’을 받아들이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약속한 자치는 실질적 권한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점령과 억압은 지속됐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인사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에 협력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들을 불신하는 것은 이미 오래됐습니다.

2000년 제2차 인티파다가 분출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국가 방안’이 실패했음을 드러냈습니다. 2021년에는 ‘단결’ 인티파다로 불리는 항쟁이 분출했는데, 그 저항에는 이스라엘의 공식 국경 안에서 사는 팔레스타인인들도 대거 참가했습니다. 이스라엘 인구의 20퍼센트를 차지하며 천대와 차별을 받고 사는 그들의 참가는 이스라엘이 민주 국가라는 신화를 박살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극우파들의 영향력이 커져 왔습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공존은 불가능하고 그저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하고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현재 이스라엘 정부의 요직에 진출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정부 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이스라엘 지배자들의 다수는 여전히 ‘두 국가 방안’을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있어야 팔레스타인 저항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지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서방도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데서 ‘두 국가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의 현 이스라엘 정부는 그런 치장을 이제 거추장스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서방 정부들은 네타냐후 정부의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하고 정복하려는 시도가 팔레스타인인들의 더 격렬한 저항을 낳을 것이 뻔한 데다 그 저항이 주변국들에 영향을 미쳐 중동에서의 제국주의 질서가 흔들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극우파들은 팔레스타인 전체를 정복해서 ‘완전한 이스라엘’을 만들고자 합니다. 가령 재무부 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 같은 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항복하든지 정복당하든지” 선택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합니다.

다른 극우파 각료인 국가안보부 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했습니다. “집을 날려버리고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해야 한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수백 명, 필요하다면 수천 명을 말이다.”

이스라엘 극우파들은 더 공격적으로 서안지구 내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이스라엘 국내 거주자인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치적 권리를 축소하려 합니다. 사법부 권한을 축소하려는 지금의 시도도 그 일에 걸림돌이 될까 봐 우려해서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일들이 지금 이스라엘 반정부 시위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정부에 반발하는 이들은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이 독재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특히 지식인들이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술가인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주주의가 파괴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는 더 나빠질 것이다.” (지난 2월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

이스라엘의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스라엘은 애초에 민주주의 국가였던 적이 없습니다. 시위대가 지키려는 사법부도 팔레스타인인 추방과 가옥 철거를 정당화하는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려 왔습니다. 정착촌 확대에 일부 제동을 가했을 뿐인데, ‘두 국가 방안’을 유지하는 것을 지지해서였습니다.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구타당하고 쫓겨나는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시위의 진정한 성격을 보여 줍니다.

사실 반정부 시위 주도자 일부는 전(前) 총리 베니 간츠처럼 고위 관리 출신입니다. 그들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하고 폭격을 명령했던 자들입니다.

네타냐후 정부든, 반정부 시위 주도자들이든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점령해야 한다는 데서는 의견이 일치합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은 특정 정치인들이나 특정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 자체가 서방 제국주의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내부 갈등은 팔레스타인 지배를 어떻게 유지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권한 축소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헤르초그가 미국 의회 연설에서 팔레스타인의 “테러”가 평화를 파괴한다고 비난했을 때 민주당 의원들을 포함한 미 의회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미국 지배자들에게 이스라엘은 여전히 중요한 동맹국이고, 앞으로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정의보다 이 점을 더 우선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가능한가

그래서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민족 억압에 반대하는 것이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유대인 혐오주의자다’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것은 참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라는 인종차별주의 국가야말로 유대인과 아랍인의 평화 공존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국 전 중동 지역에서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오랫동안 평화롭게 공존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수천년간 적대시해 왔다는 말은 참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인종분리주의를 근거로 건설된 식민 정착자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대체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요?

진정한 해법은, 식민 정착자 국가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서방의 제국주의적 중동 지배에 도전하는 중동 대중의 저항에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그런 저항의 촉매재이자 초점이 될 수 있습니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혁명의 물결은 그런 해법의 실현 가능성을 언뜻 보여 줬습니다. 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 시리아, 예멘, 리비아 등지로 번진 혁명 물결에서 나타난 공통점 하나가 바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였습니다.

당시 이집트 카이로의 시위대가 향했던 첫 타깃 하나가 바로 이스라엘 대사관이었습니다. 시위대가 이스라엘 대사관을 습격해 이스라엘 외교관 수십 명이 긴급 대피해야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당시의 아랍 혁명을 꼽았습니다.

오랫동안 미국, 이스라엘과 협력하며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켜 온 무바라크 이집트 정권이 혁명으로 무너졌을 때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간 국경이 개방됐습니다. 그동안 봉쇄에 시달려 온 가자지구로 구호 물품이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혁명의 패배로 그런 상황은 일시적이었지만, 그래도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 줬습니다.

당시 시리아에서도 대규모 시위대가 이스라엘 국경을 향해 행진을 벌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랍 혁명은 패배했지만, 이스라엘과 아랍의 지배자들은 새로운 혁명이나 반란이 고개를 치켜들까 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건국 이래로 70년 넘게 정말 영웅적으로 투쟁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지만, 지금도 저항의 잠재력은 건재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더 광범한 중동 저항이 연결된다면 이스라엘 국가를 무너뜨리고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세속적 민주 국가를 새로 건설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끝낼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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