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의 민간인 공격은 비난받을 악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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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인질로 잡자 비난이 들끓는다.(영아들을 참수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로 드러났다. 이번 호에 실린 기사 ‘하마스의 어린아이 참수?: 언론의 이스라엘 전쟁 범죄 옹호 거짓말’을 보시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순전한 악행”이라고 규탄했다. 윤석열 정부도 하마스를 규탄했다.
거짓말임은 물론이고 역겨운 위선이다. 바이든 정부와 윤석열 정부 모두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는 것을 지지한다. 그러므로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인의 폭력은 반대하고 억압하는 이스라엘의 폭력은 편드는 것이다.
한편,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을 지지한다면서도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의당은 아예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을 지지하지 않는 노골적 양비론을 펴고 있다.(이번 호에 실린 기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에 대한 정의당의 양비론’을 보시오.)
대체로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공격이 “규칙,” “국제법”을 지키지 않은 “전쟁 범죄”라는 비난이다.
그러나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페어플레이가 기대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이스라엘이야말로 국제법을 깡그리 무시해 온 국가다. 이스라엘의 점령을 비난하고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수많은 유엔 결의안은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규칙”이니 “국제법”이니 하는 허상이 아니라 차라리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의 노골적인 언사가 팔레스타인의 냉혹한 현실을 소름 끼치게 잘 나타낸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짐승”이라고 말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인간 이하의 것들”이라고 규정하며 학살한 것을 연상케 해 섬뜩하다.
갈란트의 말인즉슨, 인도적 전쟁 규칙 따위는 없으니 이스라엘 병사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말고 팔레스타인인을 죽이라는 것이다. 이들 대다수가 민간인이다!
국가안보부 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도 비슷한 말을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날려버리고 테러리스트를 제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수천 명이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지난 75년 동안 그런 취급을 당해 왔다.
하마스의 이번 군사 작전 전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체계적으로 잔인하게 공격했다. 이번에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살해당한 가자 인근의 유대인 정착촌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추방하고 ‘청소’해 그 자리를 유대인들로 채워넣은 식민화의 산물이다.
이스라엘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야만 행위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은 테러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 측의 전쟁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철저하게 폭력에 의지해 왔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의 무장 투쟁은 식민 지배 체제를 물리치는 데서 불가피하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저자이자 알제리 민족해방 운동의 지도자였던 프란츠 파농(1925~1961)은 이렇게 주장했다: 식민지에서의 무장 투쟁은 식민지 인민을 단결시키고 권능을 부여하며 타협을 추구하는 중간계급 지도자들의 배신을 견제할 수단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의 전례없는 공격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얻었다.(‘팔레스타인인이 말한다: “우리는 역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우리 전사들이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경향신문〉이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으로 네타냐후만 득을 볼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근시안적 시야일 뿐이다.
민간인 공격은 구체적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민간인 공격 문제는 이렇듯 구체적 맥락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 특히, 전투 수단의 정당성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수행하는 전쟁 자체의 정당성과 마찬가지로 오직 투쟁의 역사적·정치적 내용과 목적에 달려 있다.
예컨대, 현재 인질은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으로부터 가자지구를 지키기 위한 수단의 하나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유혈낭자한 확전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극악무도한 만행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방어책을 하마스의 잔인한 악행이라고 간단하게 일축할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폭력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원칙적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관계 없는 가용 방편의 문제다.
마치 살인범이 아이를 죽이려고 칼을 들이대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살인범을 죽여도 되는가 안 되는가 하는 문제와 비슷한 것이다.
인간 생명은 존엄하기 때문에 절대 해치지 말아야 한다면, 제국주의자들과 억압자들에 맞서는 전쟁과 혁명은 절대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생명과 존엄성을 지키려면 핍박하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서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폭력은 부수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정언명령적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피억압자들의 저항을 지지하므로, 억압자들이 피억압자들의 폭력을 비난하는 것에 결코 동조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일단 토 달지 않고 지지한다.
그리고는 토를 달더라도, 그것은 동지적인 것이어야지, 회색지대에 서서 설교하고 훈계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기 나름의 사회주의적 또는 계급투쟁적 전망은 선전의 맥락에서 제시돼야지, 당면한 과제와 대립시켜 제시될 일은 아니다.
물론 팔레스타인인의 투쟁은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방 제국주의, 아랍 지배자들 모두에 맞선 국제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연대와 결합돼야 한다. 그럴 때 팔레스타인이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략 문제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 적절한 전술)와 단순히 대립시킬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추상적 종파주의일 뿐이다.
“국제 사회”의 중재는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지 못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잔혹한 억압에 맞서 팔레스타인인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려고 1987년에 창립한 민족독립 지향 무장 단체다. 근래에 협상에 의한 해결책에 이끌린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하마스는 만만찮은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
1987년과 2000년 인티파다(봉기) 때 하마스의 무장 투쟁은 대중 저항과 결합됐다. 하마스는 네타냐후와 “적대적 공생 관계”(〈경향신문〉의 규정)에 있는 “극단 세력”이 아니다. “극우”는 더더욱 아니다.
하마스의 투쟁 방법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 적잖은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을 통해 해방될 수 없다는 비관론에 빠져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프로세스”의 가동이나 “국제 사회”의 중재에 기대를 건다.
그러나 그 국가의 존재 근거상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 이스라엘 국가는 시온주의 운동이 8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고향에서 쫓아낸 나크바(대재앙이라는 뜻, 1948년)를 통해 건국됐다. 1982년에는 사브라·샤틸라 난민촌 학살이 있었다.
2012년 카나 대학살은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체결된 “평화 프로세스”(두 국가 방안)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줬다.(두 국가 방안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두 개의 독자적 자유민주주의 국가 하에 평화롭게 공존함으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호에 실린 기사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망’을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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