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팔레스타인 제닌 난민촌 공격:
미국은 왜 이스라엘의 테러를 후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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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제닌 난민촌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며 “움직이는 것은 모조리 폭격”해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서안지구 내 불법 정착촌을 건설하고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해 왔는데 그 강도를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런 행위를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은 대놓고 지지하거나 적어도 못 본 체 한다. 서방 국가들이 테러 국가 이스라엘을 80년 가까이 지원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유대인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인 도니 글럭스틴이 이 문제를 다룬다.
이스라엘 국가의 테러와 이에 맞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용감한 저항은 국제적 연대 운동을 고취했다. 수많은 사람이 대중 행진과 대중 집회, ‘보이콧, 투자 철회 및 제재’(BDS)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현재 공격받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서안지구의 제닌 난민촌을 공격하는 동안 영국 국회의원들은 공공기관의 BDS 참여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어떻게 하면 우파의 공격에 맞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을 더욱 진전시킬 수 있을까?
운동을 공격하는 주된 무기로 쓰이는 주장은 ‘이스라엘 반대는 유대인 혐오’라는 주장이다. 여러 이유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어떤 국가나 정부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그 치하에 사는 사람들을 인종차별적으로 천대하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유대인은 이스라엘에 살고 있지 않으며, 많은 유대인이 이스라엘 국가와 그 국가가 저지르는 일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스라엘 비판이 유대인 혐오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이 아무리 사실일지라도 말이다.
일부 활동가들은 서방이 로비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함정을 피하려면 이스라엘의 본질과, 이스라엘과 서방 제국주의의 관계에 대한 폭넓은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 분석이 없으면 서양의 오랜 속담처럼 선의로 깔아 놓은 길이 지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가다 카르미의 최근 저서가 그 중 대표적이다. 이 주제에 관한 가장 빼어난 저술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국가’ 방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의 유일한 민주적 해법”이라는 책의 전반적인 결론[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 역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유대인 혐오적이지 않은 주장이 어떻게 유대인 혐오적이라는 의혹을 살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 문제는 이스라엘이 테러를 벌이게 하는 원동력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카르미는 이스라엘에 적용되는 이중 잣대를 상세히 폭로한다. 그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추방이 어떻게 완전히 딴판으로 취급되는지를 보여 준다. 그녀의 지적대로 러시아가 저지른 불의는 즉각 비난받고 그에 맞서 수많은 무기가 지원된다. 반면 이스라엘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공모하고 지지해 주는 서방 세계라는 혜택”을 누린다. 그녀는 이스라엘이 “서방 국가들, 특히 미국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고, “유럽연합은 이스라엘을 거의 회원국 취급하며 무역과 유럽연합 연구 지원 프로그램 참가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이것이 “시온주의자들의 선전 활동 … 이스라엘을 위한 대대적인 홍보, 설득, 강압 운동을 끊임없이 벌인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는 “특히 (홀로코스트에 대한 집단적 죄책감을 이런 식으로 씻어 내려 한) 미국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특히 미국 유대인 공동체는 열렬한 시온주의 세력임을 스스로 입증해 왔고, 이스라엘에 대한 주요 직접 기부자일 뿐 아니라 미국 사회와 정치권 내의 적극적인 이스라엘 지지 세력이었다”고 카르미는 설명한다. 그녀는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에 이스라엘을 비판하지 말라는 “국무부, 이스라엘, 미국 시온주의자 압력 단체의 강력한 압력”을 받았다는 사례를 든다.
미국과 영국의 권력자들이 유대인을 특별 대우하는 다른 동기로 카르미가 유일하게 제시하는 것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박해받는 유대인들에게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점을 서방의 시온주의 후원자들에게 설득하는 임무가 완수됐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서방에서 이 명제에 진지하게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이러한 설명은 적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일 뿐 아니라 틀렸다. 카르미의 설명은 전적으로 선의에 기초한 것이고 유대인 혐오에 전혀 기대고 있지 않음에도, 그녀가 반대하는 바로 그 유대인 혐오 세력에게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 까닭을 이해하려면 유대인 혐오 세력의 핵심 단골 메뉴가 무엇인지 떠올려 봐야 한다. 그것은 유대인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배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소수 집단이라는 것이다.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카르미의 설명도 바로 그런 식으로 풀이될 수 있다. 역시 카르미의 의도는 아니지만, 홀로코스트의 충격을 이스라엘 지원의 동기로 제시하는 것도 유대인들이 정서적 협박까지 동원해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다.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은 분별력과 신중함을 발휘하지 못하면 단순히 겉보기만이 아니라 실제로 유대인 혐오로 쉽게 빠질 수 있다.
유대인 로비가 문제라는 주장을 거부하며 시온주의 로비 내지 친이스라엘 로비가 문제라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하지만 그것으로 서방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유가 설명될까? 모든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로비를 한다. 따라서 친이스라엘 로비의 존재만으로 이스라엘이 누리는 특별 대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 국가의 대의를 지지하는 이스라엘 식민 900만 명이 있다고 해도, 이스라엘을 둘러싼 5억 명의 아랍들을 통치하는 정부들 또한 로비를 할 수 있다. 카르미는 미국 유대인들이 대부분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은 약 800만 명이다. 그러나 미국인의 62퍼센트인 2억 6000만 명이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임신중단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판결]을 폐기하는 것에 반대한다. 미국에는 4200만 명의 흑인이 있지만 이들은 국가 기관의 우대를 받지 못한다. 이 집단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데 실패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만 로비에 성공할 것이라고 가정할 까닭은 무엇인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도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동기가 아니다.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 등, 오늘날 유대인을 혐오하는 주요 정치인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유대인 천대에 분노해서가 아니다. 게다가, 사실 정부는 죄책감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죄책감을 느꼈다면 지중해에서 숱한 난민들이 익사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1930년대에 히틀러를 피해 도망쳐 온 유대인들을 오늘날의 난민들처럼 비인간적으로 내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친이스라엘 로비 때문이라는 설명의 문제점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전체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팔레스타인과의 연대가 이스라엘의 만행에 대한 저항으로 촉발된다는 점에서 이런 약점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설명하면 퍼즐의 중요한 조각을 놓치게 된다.
어떻게 쉽고 명백히 상식적인 문구가 오해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이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이스라엘을 비난한다는 차원에서는 이스라엘을 “종족 중심적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비난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행된 끔찍한 인종 분리 정책을 뜻한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이 용어는 부정확하다. 194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도입한 아프리카너 정부는 보어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보어인들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흑인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데려온 [백인] 농장주들이었다.
반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 시온주의자들이 완전히 분리된 유대인 경제를 구축한 목적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는 정반대로 팔레스타인 노동력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아랍인과 유대인의 약 97퍼센트가 서로 분리된 경제에서 활동했다. 시온주의를 아파르트헤이트와 동일시하면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보어인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놓치게 된다. 이 차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함의가 있다.
잘못된 개념틀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는 다음과 같은 카르미의 주장이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든 방식이 유해했지만 그중 군사화가 가장 유해했다. 아랍 국가들은 자국의 정치·사회 발전에 집중했어야 했지만, 최전방 국가들은 전쟁에 끌려 들어가 군비와 감시 활동에 자원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이 국가들의 2021년 국민총생산(GDP)에서 군사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5.7퍼센트로 전 세계 평균인 2.2퍼센트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카르미는 이집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수단, 튀니지, 모리타니,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여러 거래와 연락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언급한다.
이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에 대항해 무장하면서 이스라엘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이스라엘의 존재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적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며 부정확하기도 하다.
아랍 정부들은 주로 자국민을 억제하려고 군비를 증강한다. 수단과 이집트, 시리아가 그런 사례다. 외부의 적에게 무기를 사용할 때에도 그 적이 반드시 이스라엘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90년대에 이라크가 이란과 쿠웨이트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것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이 참전하고 있는] 예멘 전쟁이 그런 사례다. 이스라엘에 대한 반대가 아랍 군비 지출의 주요 요인이라면,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아랍 국가를 나열한 목록이 그렇게 길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잠재적 혼란은 시온주의에 대한 이해에 있다. 시온주의가 인종차별적이고, 정착민 식민주의라는 등의 비판은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이스라엘 국가는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역사적 숙명에 따라 건국됐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세계 자본주의가 전적으로 공모한 유대인 학살의 산물로 등장했다. 시온주의 지지는 인민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비극의 결과였다.
오랫동안 유대인은 모든 유럽 국가에 흩어져 소수 집단으로 살았다. 그래서 분열 지배 전략의 희생양이 됐는데, 이것은 오늘날 이주민들이 당하는 인종차별과 똑같은 것이었고 그 목적 또한 같았다. 바로 계급 체제가 낳은 불행과 고통에서 엉뚱한 데로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폭력과 차별이었다. 19세기 러시아의 산업화 시기에 대규모 유대인 탄압과 학살이 급증했다. 1890년대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과 오스트리아와 폴란드의 유대인 혐오적 정치 운동들은 또 다른 사례다. 히틀러를 1933년 독일 총리에 임명한 것은 집권 군부 세력이었고, 당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나는 유대인에 대해서는 조금치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썼다.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에서 탈출하기 시작하자 유럽 대륙의 모든 정부들은 문을 걸어 잠갔다. 홀로코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서방의 연합국은 아우슈비츠와 같은 학살 시설의 운영을 저지하지 않았고, 유대인을 국내에 들이지 않을 방법을 마련하느라 초조해 했다. 그 후 연합국은 생존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막는 장벽을 세웠다.
1930년대 이전에는 대다수의 유대인이 시온주의자들의 팔레스타인 식민지화에 무관심했고 적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비(非)유대인 사이에서 계속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1881년의 유대인 대학살(포그롬) 이후 60년 동안 유대인 4명 중 1명이 유럽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갔다. 실로, 팔레스타인을 제외한 모든 곳으로 간 것이다. 미국이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 1901~1925년에는 겨우 27명 중 1명 꼴로 팔레스타인행을 택했다.
정치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유대인 분트와 다양한 좌파 정당으로 나타났다)이 시온주의 운동보다 더 인기 있었다. 당시 미국 유대인의 2퍼센트만이 시온주의를 지지했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 군사화된 작은 식민지 정착민 국가에 희망을 걸게 된 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량 학살과 무관심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만행은 모두의 자유와 모두를 위한 정의를 쟁취하려고 싸웠던 수많은 노동계급 유대인들을 배신하는 행위다. 그들의 이름과 대의를 들먹이며 벤그비르나 베냐민 네타냐후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분명 분노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꼬리가 미 제국주의라는 개를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비를 지출하는 나라이며, 세계 군비 지출의 3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군대에 8770억 달러를 지출하며, 이 덕에 미국은 세계 최강 국가다. 이스라엘은 200억 달러를 지출하며 세계 군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9퍼센트에 불과하다. 아랍 국가들의 군비 지출 수준이 높다는 카르미의 지적은 옳다. 아랍 국가들의 지출은 이스라엘의 6배가 넘는 1120억 달러로 이는 미국과 중국에 세 번째로 큰 액수다.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보다 자신을 더 편애하도록 미국을 조종할 수 있다는 식의 얘기는 당치 않은 얘기다.
미국의 군사 원조 금액을 보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이스라엘은 33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원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더 많이 받는 쪽은 아랍 국가들이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아랍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는 47억 달러로 훨씬 많으며, 이는 도널트 트럼프 정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등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아랍 국가들만 합쳐도 이스라엘과 같은 액수를 지원받는다. 시온주의자들의 로비가 결정적 요인이라는 관점으로는 이러한 수치를 설명할 수 없다.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블록의 한 구성 요소로 봐야 한다. 석유 때문에 중동 지역은 미국의 초점이 되고,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세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미국 제국주의의 한 축인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영국, 독일 등의 정부들도 전쟁 동맹 나토가 하는 구실에서 드러나듯이 서방 블록의 하위 구성 요소이지, 이스라엘의 졸이 아니다.
이 권력 관계는 미국으로부터 하향식으로 작동하지만, 그렇다고 위성 국가들이 자국의 독자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자국의 입지를 확보하려고 분투하며, 제닌에서 벌인 만행도 그런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미 제국주의의 돈을 받는 경비견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달려들려고 안달이 나 있는 상태인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를 옹호하려면 이러한 권력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대인의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시온주의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시온주의를 더 큰 맥락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다. 팔레스타인에서 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전 세계적으로 극우가 부상하고 유대인 혐오가 정치적 의제로 돌아오고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지지자들이 유대인 혐오자들의 주장을 분명하게 거부하지 않으면, 그 운동을 유대인 혐오라고 비방하는 자들에게서 운동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없다. 유대인 혐오자들의 주장에 신빙성을 주면 우리의 운동은 비방꾼들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
중동의 상황을 이스라엘의 로비 탓으로 돌리면 중동 전역에 걸친 제국주의와 지배의 체제를 전복한다는 해법을 추구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관점은 미국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배신한 아랍 지배계급에게도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서방과 동맹한 몇몇 아랍 정부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립서비스를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하는 일을 보면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에 무관심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인정할 태세가 돼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영웅적인 저항은 놀랍고 끈질기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연대의 적들에게 불필요하게 총알을 건네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짜로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세력은 다름 아닌 미국 제국주의이고, 중동 지배를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경비견의 테러를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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