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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 방글라데시인 수천 명이 자국 정부의 시위 학생들 학살에 항의하다

“다운 다운 하시나” 7월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 모인 재한 방글라데시인들이 자국 총리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이랑

최근 방글라데시 정부가 대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탄압하고 100여 명을 학살하자, 재한 방글라데시인 수천 명이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이 있는 서울 용산에 모여 자국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7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 모인 방글라데시인들의 분노와 열기는 숨 막히는 더위와 습도를 뛰어넘었다. 참가자는 신고된 500명을 훌쩍 넘었다. 경찰의 제지로 집회 장소로 들어가지 못한 많은 참가자들이 전쟁기념관 공원을 가득 메웠다.

집회에 참가한 방글라데시인들은 여당 아와미연맹(AL)과 총리 셰이크 하시나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며, “다운 다운 하시나”(하시나 물러나라)를 외쳤다. 재한 방글라데시인 유학생들은 “학생들 목숨은 소중하다”는 팻말을 들고 방글라데시 경찰의 폭력에 항의했다.

방글라데시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는 정부가 공무원직의 30퍼센트를 독립 전쟁 유공자 후손들에게 보장하는 제도를 부활시키려 하면서 분출했다.

방글라데시에서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와 안정성, 연금 등으로 선망받는 일자리다. 심각한 취업난과 청년 실업 탓이다. 방글라데시의 대졸 실업률은 40퍼센트에 이른다.

총리 하시나는 2018년 학생들의 전국적 시위에 밀려 독립 유공자 후손 공직 할당제를 폐지한 바 있다. 그런데 고등법원이 지난달에 할당제 폐지를 무효라고 판결하자 이를 다시 부활시키려 한 것이다.

정부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학생들 목숨도 소중하다” 7월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방글라데시 유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이랑

하시나는 시위대를 “매국노”라고 부르며 친정부 단체들의 공격을 사주했다. 정부는 공식 통계를 발표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최소 151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의 통신과 인터넷이 차단된 상황에서 실제 사상자 수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21일에 분노한 민심을 달래려고 독립 유공자 후손에게 할당되는 비율을 30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다시 낮추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인들은 너무 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고, 사람들의 분노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고 전한다.


재한 방글라데시인이 말한다

용산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학생 시위 지지 집회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방글라데시 유학생 RZZ 씨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집회와 방글라데시 상황을 기자에게 전했다.

오늘 집회 규모가 상당히 컸습니다.

네, 주최 측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어요. 오늘 방글라데시 학생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퍼져서 한국 곳곳에 있는 방글라데시 커뮤니티와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준비했어요.

제가 들어가 있는 집회 준비 자원봉사자 SNS 단체방에는 200명이 들어와 있고, 이 말고도 참가자 단체방이 3개나 돼요. 출판업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팻말과 출력물들을, 의류업에서 계신 분들은 단체 티셔츠를, 유통업 종사자 분들은 참가자들을 위한 생수를 준비해 왔어요.

가족과 친구들은 무사한가요?

다행히 다들 무사합니다. 오늘 대법원에서 할당제를 사실상 폐기하기로 결정했지만, 통금령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요. 시위도 지속되고 있고요. 다만 학생들의 시위는 일단 소강 상태입니다.

정부가 학생들을 정말 많이 죽였고 탄압이 심해요. 사실 정부가 공무원 할당제를 처음에 공표했을 때 학생들은 평화롭게 도로를 점거하는 정도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학생들의 이런 평화적인 시위를 두고 정부가 친정부 학생 조직을 동원해 탄압했어요. 진짜 학생들로 이뤄진 조직이라기보다 집권당에서 정치를 해 보려고 학교에 등록만 해 두고 이 조직에 가입한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이 친정부 학생들이 정부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공격했어요. 그러다가 너무 나가서 두 명을 살해한 거예요. 여기에 화가 난 학생들이 친정부 학생 조직의 사무실로 몰려가 회원들을 끌어내고 구타했어요.

사실 정부가 먼저 폭력을 사용한 것인데, 이 사건을 빌미로 정부가 경찰 병력을 투입하면서 사상자가 크게 늘었어요. 경찰은 섬광탄, 최루탄에 실탄까지 사용했어요. 사망자 수도 공식 통계보다 더 많아요.

왜냐하면 공식 통계는 병원에서 집계된 사망자 수에 기초한 것인데, 실제로 병원으로 옮겨지지 못한 사망자들도 많거든요. 심지어 경찰이 증거를 없애려고 거리에서 살해한 시위자 시신을 불태우기까지 해요. 증거 인멸을 막으려고 시위대가 경찰에 맞서서 지켜낸 시신도 있고요.

하시나 정부에 대한 분노가 거대한 듯합니다.

현 총리 하시나는 독립 운동 지도자의 딸이라는 후광으로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 이후에 하시나는 결코 다시 총리직을 맡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애초에 방글라데시 경제 상황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난이 심해졌어요. 방글라데시는 수출입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입니다. 수입품 가격이 폭등해 식료품 가격이 정말 많이 올랐어요.

중산층조차 물가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됐고, 굶주리는 사람이 정말 많아졌어요. 은행들이 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려 했어요. 파산하는 회사도 많아졌어요. 그래서 유일하게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공무원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어요.

모두가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몇 명 되지도 않는 공무원 채용을 유공자들을 위한 할당제로 한다고 하니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죠. 사실 독립 유공자 후손 할당분인 30퍼센트 중 5~10퍼센트만이 실제 유공자 후손에게 배정될 거예요. 나머지는 집권 세력이 자신들이 아는 사람들을 유공자 명단에 넣는 거예요. 정부 부패 문제가 큽니다.

지금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듯합니다. 노동자들이나 다른 사회 세력들도 참가하고 있나요?

네, 대학생들이 주도하지만 고등학생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릭샤 노동자들도 학생들을 지지하면서 부상자들을 무료로 실어 주고 있어요. 노점상 주인들은 무료로 음식을 나눠 주기도 하고요.

물론 반정부 시위대 중에는 방글라데시국민당(BNP) 지지자도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참가하지 않다가, 시위가 커지는 것을 보고 여기서 이득을 볼 수 있겠다 싶었는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현 집권당이 물러나면 자신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은 정치적 소속이 전혀 없어요. 학생들은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이려고 노력했고요.

대법원이 할당제를 사실상 폐기한다는 발표가 나왔는데, 앞으로 이 운동은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지금 학생들의 시위는 탄압으로 일단 소강 상태입니다. BNP 지지자들은 계속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이들의 목적은 집권이에요. 사실 방글라데시의 문제는 나쁜 짓을 해왔어도 주요 양당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데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이미 할당제에 대한 문제를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100명 이상이 죽었어요. 할당제가 폐기됐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어요.

이 운동은 더는 할당제나 일자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목숨에 대한 문제가 됐어요. 우리 학생들은 나라의 미래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학생들의 목숨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고 느껴져요. 방글라데시가 우리들의 목숨과 성실한 노력을 존중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독재 정부 물러나라” 7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재한 방글라데시인들의 집회에 한국인들이 연대를 표하고 있다
재한 방글라데시인들이 자국 정부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임준형
7월 21일 서울 용산에 모인 재한 방글라데시인들 ⓒ이시헌

배경 체크

방글라데시 시위대가 퇴진을 요구하는 현 집권 세력은 아와미연맹이다. 아와미연맹은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할 때 독립 전쟁을 주도한 세력으로, 현 총리 하시나는 당시 독립 전쟁의 리더이자 초대 대통령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딸이다.

현재까지 21년 동안 권좌를 유지한 하시나는 집권 기간 내내 민영화를 추진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노동자들에게는 초저임금을 강요했고, 이를 토대로 의류 산업을 주요 수출 산업으로 키워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의 최저임금은 15만 원가량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하시나 정부하의 방글라데시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벌어진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생계비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방글라데시 화폐인 타카의 가치는 급락했고 유가와 생필품, 식자재 값이 폭등했다. 2022년에는 연료 부족으로 정전이 길게는 하루 13시간까지 이어졌다.

현 반정부 시위의 배경에는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여러 제3세계 나라들을 강타한 전 세계적 생계비 위기가 있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22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6조 5000억 원 규모의 차관을 들여와 위기를 넘기려 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는 지속됐다. 올해 인플레율은 지난해에 이어 10퍼센트에 육박했다.

지난해 7월 수도 다카에서 의류 산업 노동자 수천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수 주 동안 시위를 벌였다.

집권 세력은 생계비 위기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강경하게 단속했다. 하시나 정부는 반정부 활동가 수만 명을 투옥시켰고, 올해 1월 총선은 부정선거 의혹이 있다. 주요 야당은 선거를 보이콧했다.

대표적 야당이자 우익 정당인 방글라데시국민당(BNP)은 독립 이후 수차례 집권하면서 아와미연맹과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다.

생계비 위기 속 지배 엘리트의 부패와 국가 폭력에 대한 분노가 이번 시위에 아로새겨져 있다.

최근 10여 년 동안만 하더라도, 방글라데시의 의류 노동자들은 2010년, 2013년, 2019년 그리고 2023년 수천 명에서 수십 만 명 규모로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저임금에 항의하고 정부의 폭력 진압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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