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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과 생계비 위기

이 기사는 8월 25일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의 발제문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노동계급과 서민층의 고통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지배자들이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그 고통을 더 가중시킬 금리 인상뿐이다. 오늘 발제에서는 인플레이션과 생계비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 큰 타격을 입고 있는 노동계급을 보호할 대안은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7월 한국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6.3퍼센트나 올라, 물가가 6.8퍼센트 오른 1998년 11월 이후 2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6월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퍼센트를 넘겼으니, 두 달 연속으로 소비자 물가가 고공행진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실질임금은 삭감되고 있다. 올해 1~5월 대기업의 임금은 10퍼센트(56만 4000원) 올라 물가 인상을 겨우 따라잡았지만, 중소기업 임금은 고작 4.5퍼센트(14만 7000원) 오르는 데 그쳐 실질임금이 삭감됐다.(고용노동부가 발표한 6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

특히 지난달 신선식품 물가가 13퍼센트나 오르는 등 식품 물가가 크게 올라,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빈곤층과 서민층일수록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 KBS는 유통기한이 임박해 싸게 파는 우유와 햄으로 한 주를 버티거나, 몇 달간 고기와 과일을 한 번도 사 먹지 못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구를 보도했다. 또, 고기를 사달라는 아이들에게 삼겹살 한 근도 사 주지 못해, 대패 삼겹살을 사서 조금씩 꺼내 주는 사연도 소개했다.

추석 이후 라면 가격이 10퍼센트 이상 오르고 먹거리 가격 인상이 이어질 거라고 하니,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런 생계비 위기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밥 지을 연료도 구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생계비 위기가 결정적 이유로 작용해 반란이 일어났다. 시위대가 대통령궁으로 쳐들어가 대통령 일가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스리랑카 같은 가난한 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도 급등하는 물가 때문에 노동자들이 심각한 생계비 위기를 겪고 있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7월 소비자 물가가 1년 전보다 10.1퍼센트 올라 40년 만에 처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내년 1월에는 물가 상승률이 무려 18.6퍼센트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영국의 가구당 에너지 요금은 이미 50퍼센트 이상 올랐는데 10월에는 다시 80퍼센트 정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1분기에는 영국 전체 가구의 3분의 1인 약 1050만 가구가 ‘연료 빈곤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연료 빈곤 상태란 에너지 요금을 지불하고 남은 수입이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런던 시장 사디크 칸이 “(영국인) 수천만 명은 난방과 식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거나, 둘 다 얻지 못하는 비극에 놓일 수 있다” 하고 우려했을 정도이다.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세계 곳곳에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물가 상승의 원인

왜 전 세계가 이토록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처한 것일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와 식량 가격을 끌어올리며 최근의 인플레이션 위기를 첨예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 들어서 팬데믹 동안 억눌렸던 수요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공산품, 원자재, 에너지 공급망이 교란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반도체 부족 현상이다.

에너지 가격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인 지난 겨울에 이미 치솟고 있었다. 특히,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나라들이 석탄 대신 탄소를 덜 배출하는 가스를 사용하기 위해 가스 수입을 늘리고 있었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배하는 오펙플러스(OPEC+)와 미국의 셰일 기업들이 생산을 늘리지 않고 가격을 올려 많은 이익을 챙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에 따른 기상 이변 또한 생계비 급등의 한 원인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염과 가뭄은 식품 가격 상승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독일에서는 라인강의 수량이 줄어들면서 운하를 통한 운송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고, 중국에서는 양쯔강 수량이 줄어들어 수력 발전이 급감하면서 쓰촨성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태양광 패널, 자동차 부품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처럼 최근의 인플레이션 위기는 팬데믹 이후 공급망 교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난 제국주의적 갈등 격화, 기후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위기이다. 특히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거나, 물자 부족을 이용해 이윤을 늘리려 하면서 인플레가 추동되고 있음을 봐야 한다.

금리 인상과 노동자 등 서민층 고통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각국 지배자들의 대응은 한심하다. 주요국 정부들의 대응책은 사실상 하나뿐이다. 바로 금리를 올리고 통화 공급을 옥죄는 것이다.

이런 대책의 이론적 배경에는 화폐수량설이 있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화폐수량설은 물가 상승률이 시중에 풀린 통화량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프리드먼은 통화 공급이나 정부 지출의 확대는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물가를 높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임금과 복지를 공격하는 데 이용돼 왔다.

그러나 이런 정설 이론은 현실의 검증을 견디지 못했다. 2008년 세계 금융공황 때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로 통화를 대규모로 공급하자, 강경 신자유주의자들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지난 10여 년간 물가 상승은 미미했다.

이처럼 금리 인상은 엉터리 정설 이론에 기초한 것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노동계급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예를 들어, 3억 원 전세대출이 있는 사람이 금리가 1.6퍼센트포인트 올라, 연이자를 480만 원이나 더 내게 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가만히 앉아 수백만 원을 날리는 셈이다. 지난 몇 년간 집을 사거나 전세를 얻으려고 대출을 받은 수많은 청년들이 지금 바로 이런 처지이다.

물론 금리 인상은 지배자들이 보기에도 우려스러운 점이 있는 정책이다. 너무 가파른 금리 인상 때문에 심각한 경기 하강이 나타나 안 그래도 이미 취약한 세계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처할 이른바 ‘균형 잡힌 해법’을 찾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배자들이 불황이 닥칠 것을 감수하고 금리를 더 올리며 공격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현실적이다. 다시 말해, 저들이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겠다며 취할 조처들은 노동계급에게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인플레이션은 실로 계급투쟁의 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임금 인상과 물가 인상

이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강박적으로 임금-물가 악순환의 위험을 들먹이는 데서도 드러난다. 임금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니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최근 물가 인상 속에서 노동자들에게서 자본가들로 가치가 이전되고 있다는 증거가 많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원자재·에너지 등의 가격이 오르자, 기업들이 이윤을 늘리려고 상품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2020년 2분기부터 2021년 말까지의 물가 상승 요인 중 53.9퍼센트는 기업 이윤 증가에 따른 것이었다. 38.3퍼센트는 원자재, 에너지, 기계 등의 가격 상승 때문이었다.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에 끼친 영향은 7.9퍼센트에 불과했다. 요컨대 이윤 주도 물가 상승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물가가 오르기 시작한 2021년에 기업들의 수익이 크게 늘었다. 2021년 코스피 상장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183조 9668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73.6퍼센트가량 늘었고, 순이익은 156조 5693억 원으로 160.6퍼센트나 증가했다. 2021년 임금 인상률은 3~4퍼센트에 그쳤는데 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을 봐도, 2021년 법인기업의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전년도 5.1퍼센트에서 6.8퍼센트로, 매출액 세전 순이익률은 4.4퍼센트에서 7.7퍼센트로 높아졌다. 올해 1분기에도 이런 추세가 지속됐다.

이런 사실들은 이번 인플레이션이 임금이 아니라 이윤에 의해 추동된 위기임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임금 탓을 하는 기업주, 정부, 기성 언론의 거짓말에 맞서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지지해야 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계비 문제는 광범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저항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촉발한 핵심 계기 하나는 식료품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었다. 최근에도 생계비 위기로 스리랑카와 수단, 아르헨티나 등에서 대중적 저항이 분출했고, 영국 등에서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화물연대, 대우조선 하청노조에 이어 지금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는데, 바로 생계비 위기에 대한 저항이다. 이 투쟁들은 광범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 윤석열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다. 국민의힘 분열 등이 요인으로 꼽히지만, 사실 밑바탕에는 윤석열 정부가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노동자·서민의 고통은 나 몰라라 하고, 취임 초부터 기업과 부유층 지원에만 열심인 것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윤석열의 위기는 세계적 리더십 위기의 일부이다. 지금 주요국 정부들도 생계비 위기 대처에 미온적이고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려 하면서 위기에 빠졌다. 미국 바이든은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공산이 크고, 영국 보리스 존슨은 총리직에서 쫓겨났다. 이탈리아는 연정이 무너졌고, 프랑스 마크롱과 독일 올라프 숄츠는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

중요한 것은 이런 위기와 사회 불안이 계급투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데 일조하려면 노동자·서민의 삶을 방어하는 관점을 확고히 해야 한다.

혁명적 좌파는 ‘물가-임금 악순환’ 같은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반박하고, 기업들의 이윤 추구가 인플레이션을 추동하고 있다는 점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생계비 위기의 대안으로 에너지·식료품 같은 생활필수품 가격 통제, 노동자들의 부채 부담 경감, 임금 인상 등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진보당 같은 좌파들이 유류세 인하에 반대하거나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이지만 말이다. 이런 입장은 상당수 고소득 노동자들도 인플레이션과 기후 위기 등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쉽고, 계급투쟁을 전진시키는 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혁명적 좌파는 노동자·서민의 생활수준을 일관되게 방어하고, 생계비 문제로 벌어지는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며 연대가 확대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노동자 투쟁은 생계비 위기에 맞선 진정한 대안이지만,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투쟁이 성과를 거두려면 노동조합주의와 부문주의로는 불충분하다. 단지 한 부문의 임금 인상일지라도 그 사업장 노동자뿐 아니라 더 넓은 노동계급과 체제의 이윤에 미칠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노동자 투쟁들에 맞서 관계장관회의를 하고 나서는 이유다.

이런 상황은 우리 측에도 더 광범한 연대를 요구한다. 단결을 위한 정치를 제공하고 개방적이고 광범한 연대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적 좌파가 해야 할 일이다.

생계비 위기에 대처하려면 노동자·서민의 삶을 확고히 방어하면서 계급투쟁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미진

윤석열 정부의 긴축: 부자 감세와 노동자 쥐어짜기

윤석열은 내년 예산안을 재정건전성 강화에 맞춰 편성하겠다며 긴축을 예고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국제 신인도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 679조 5000억 원(추경 포함)보다 40조 원 이상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공무원의 실질 임금 삭감과 공공부문 정원 감축 등 노동자 쥐어짜기도 본격화할 태세다. 복지도 공격할 게 뻔하다. 정부는 철도와 전력 민영화, 국유 부동산 매각도 추진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민간 주도 성장’을 해야 한다며 5년간 법인세·소득세·종부세를 60조 2000억 원이나 감면해 주려 한다. 정부는 7월 21일 발표한 ‘2022 세제개편안’에서 과세표준 30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에 적용하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5퍼센트에서 22퍼센트로 낮춘다고 밝혔다. 전체 기업 중 0.01퍼센트인 대기업 103곳이 혜택을 볼 돈만 4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상속세도 인하해, 어지간한 중견기업을 상속 받는 경우에도 상속세를 대폭 삭감해 주기로 했다. 또, 종부세를 대거 낮춰 집을 여러 채 보유한 집 부자들이 막대한 감세 혜택을 받게 됐다.

결국 다가올 경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부자 감세로 대기업·부유층을 지원하고, 재정 긴축과 임금 삭감, 민영화로 그 대가를 노동자·서민이 져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에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무역 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환율이 급등하며 금융 불안정성도 높아지자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짜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때에 부자 감세를 한다 한들 기업들이 투자에 더 나서지 않을 공산이 큰 데다, 임금 삭감과 긴축 정책들은 오히려 수요를 감소시켜 기업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 위기 시기에 기업과 부유층을 지원하고 노동자를 공격하는 정책들은 광범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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