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투표 관련 노동자연대다함께 성명] 박근혜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문재인에게 투표하는 심정에 공감한다:
하지만 아무런 환상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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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 선거 투표와 관련해 노동자연대다함께 운영위원회가 12월 10일 발표한 성명이다.
18대 대선 투표일이 이제 열흘 정도 남았다. 현재 박근혜가 좀더 우세라는 관측이 많지만 과연 누가 당선될지 확실하게 점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확실한 게 있다면 누가 당선하더라도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떠넘기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 한국 경제도 깊은 위기의 골짜기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주류 대선 후보들은 표 떨어질까 봐 그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약속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되더라도 자신만만하고 손쉽게 공격에 착수하지는 못할 것임을 뜻한다. 그럼에도 분명히 새 정부는 조만간 공격을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투쟁 전선은 투표장에서 진정한 승부처인 작업장과 거리로 옮겨갈 것이다.
따라서 관건은 이 진정한 전투에서 우리가 주눅들지 않고 얼마나 자신 있게 저항할 수 있느냐다. 대선 투표 전술은 바로 이것, 즉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무엇이 더 효과적인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
먼저,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박근혜는 한국 역사를 피로 물들여 온 유신 독재의 계승자다. 자그만 민주 개혁조차 “국가 정체성에 어긋난다”며 극렬 반대하는 강경 우익이며, 이 나라의 부와 권력을 독차지해 온 ‘1퍼센트’의 진정한 대표다. 지금 박근혜의 뒤에는 전두환, 이회창, 김종필, 이명박 등 낡고 부패한 우익 정치인들과 탐욕스런 대자본가들이 결집해 있다. 이들이 똘똘 뭉쳐서 ‘보수대연합’을 이루고 있다.
만약 이번에 박근혜가 승리한다면 이런 1퍼센트 세력과 수구 우익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할 것이다. 삼성 이건희와 현대차 정몽구, 막장 검찰, 조·중·동 소유주들이 안도할 것이며 다시 공격을 시작할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다수는 이런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 삶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투표장에 들어갈 것이다. 하늘 높이 올라가 있거나 길거리를 헤매는 현대차, 쌍용차, 강정마을 등의 아픔을 떠올리며 투표장에 들어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정서가 진보 후보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투표로 나타나기는 힘들 것이다. 주류 양강 구도, 진보정당의 분열과 위기 때문에 진보 후보들은 대중의 시야에서 가려져 있다. 그래서 경제 위기 고통 전가와 정리해고, 비정규직, 제주해군기지, 핵발전소 등에 대한 반감은 우리가 좋든 싫든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후보 문재인에 대한 투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광범한 대중뿐 아니라 조직 노동자들 속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존재한다.
11월 22일 현재까지 문재인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노조는 총 1천3백64개이며 소속 조합원 수는 45만 6천여 명이다(〈매일노동뉴스〉 2012년 11월 23일치). 이 중 압도 다수는 한국노총 소속이지만 민주노총 소속도 포함돼 있다. 특히 문재인 캠프는 민주노총의 전현직 간부들을 통해 민주노총의 조직 노동자들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왔다. 진보정당의 분열과 위기 속에 민주노총이 투표 방침도 정하지 못하는 갑갑한 상황이 이런 민주당의 시도를 더 손쉽게 하고 있다.
좌우 양극화
그래서 지금 박근혜 지지자와 박근혜를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분명한 분단선이 그어지고 있다. 정치적 좌우 양극화가 박근혜 대 문재인의 구도로 (치우쳐) 나타나고 있으며, 계급 갈등도 (왜곡되고 굴절된 형태로) 반영돼 있다.
최선의 선택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다수 노동계급 대중이 최악(박근혜)을 막으려고 차악(문재인)을 찍으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민주당 정부 10년의 배신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문재인이 차악이라는 것을 뻔히 알기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근혜에 맞서 문재인이 승리한다고 해서 대중이 환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결과는 막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싸우기가 좀더 수월하다고 느낄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투쟁의 입장에 서 있는 우리 노동자연대다함께도 불가피하게 문재인에 대한 비판적 투표 입장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두고 우리 단체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전술과 강령·원칙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거나 아니면 고의적인 왜곡이다. 우리는 문재인·민주당이 박근혜·새누리당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둘 사이에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진실을 줄기차게 말해 왔다. 민주당은 집권 10년 동안 정리해고를 도입하고 비정규직을 늘려 온 장본인이다.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로 가는 고속도로를 깔아 온 것도 민주당이다.
만약 이번에 문재인이 당선된다면 자신이 차선도 못 되는 차악으로 취급돼, 즉 박근혜에 대한 대중의 증오와 두려움 덕분에 간신히 살아났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얼마 안 가, 자신을 살려 준 사람들에 대한 배신과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민주당도 지배계급의 일부(비록 소수파이고 경제적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한 부분이지만)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연대다함께는 민주당 정부 10년 동안 이런 민주당에 반대하고 그들의 친시장경제 정책을 저지하려는 투쟁의 선두에 서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문재인과 민주당에 대한 가차없고 날카로운 비판과 폭로를 결코 삼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진보세력이 문재인에게 비판적 투표를 넘어 아예 무비판적 지지를 제공하거나 민주당 정부에 동참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정부에 들어가거나 그 ‘왼쪽 날개’가 된 진보세력은 자본주의 위기라는 조건 하에서 결국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처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치는 민주당으로부터 독자적인 세력화를 추구하며 민주당 정부의 예고되는 노동자 공격에 맞서 투쟁하는 가운데 건설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비판적 투표라는 전술상의 타협을 하는 이유는 박근혜 저지를 염원하는 수백만 노동 대중과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해서다.
사회주의자들의 투표 전술은 정부·의회를 통한 위로부터 개혁으로 사회를 바꾸겠다는 개혁주의자들과 다른 근거에서 나온다. 노동계급이 아래로부터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에 도전한다는 사회주의 원칙에 근거한 투쟁 건설을 위해 무엇이 더 효과적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박근혜만은 막아야 한다는 노동자들 편에 선다. 문재인의 집권이 그나마 차악이라고 생각하는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과 함께 저항을 건설하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소통과 연대
물론 문재인과 민주당 같은 공공연한 친자본주의 세력에게 표를 줄 수는 없다며 진보 독자 후보를 찍겠다는 동지들이 존재한다. 노동자들을 배신해 온 민주당을 찍기 싫다는 이 동지들의 심정은 충분히 공감과 이해가 간다. 노동운동에 기반한 이정희, 김소연, 김순자 등 좌파 후보들은 또한 문재인과 차별되는 급진적 주장과 진정한 노동계급 의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끝까지 완주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운동들이 이번 선거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하기는 힘들 듯하다. 특히, 1997년에 30만 표, 2002년에 96만 표, 2007년에 72만 표를 얻은 권영길 후보가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와 지지에 기초해 출마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일부 진지한 전투적인 투사들이 이 후보들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에게 투표할 조직 노동자만도 적어도 1백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번 대선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계급의 극소수 전위가 아니라 계급의 광범한 대중을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 혁명의 리더 레닌도 “투표 지침이 바람이나 견해들에 의해, 한 집단이나 당 혼자만의 계급의식과 전투성 수준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좌파 공산주의 ― 유아적 혼란》) “계급 전체의, 그리고 바로 모든 근로인민 대중의 의식과 준비 정도의 실제 상태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박근혜만은 막아야 한다는 노동계급 대중의, 심지어 조직 노동자들 다수의 정서를 무시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독자 후보에게 투표하려는 노동자들은 선진적인 반면, 문재인에게 투표하려는 노동자들은 더 후진적인 상황도 아니다. 투쟁 속에서 조직된 선진 노동자들의 다수도 문재인에게 투표하려는 상황이다.
그런 노동자들에게 박근혜와 문재인이 다를 게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4월혁명을 짓밟은 5·16반혁명이 “구국의 혁명”이라고 말하고 유신독재를 미화하는 사람과 그걸 비판하는 사람을 대다수 노동자들이 똑같이 볼 리는 없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단지 자본주의에 대한 원칙적인 반대와 사회주의적 대안을 선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레닌은 “노동계급 다수의 견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대중들의 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문재인 같은 자를 찍을 수 있느냐’는 태도를 취할 수 없다. 그보다는 ‘박근혜 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당신들과 함께 문재인에게 투표하겠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은 저 자를 믿지 않고 우리 스스로 투쟁할 때 가능하다. 투표하고 나서 함께 투쟁을 건설하자’ 하고 말해야 한다.
이것은 타협이지만 불가피한 타협이고, 박근혜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동자 대중과 소통하며 그 속에서 좌파들의 힘과 조직을 키우기 위한 타협이다. 선거주의자들에게는 투표가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만 혁명가들에게 투표는 좀 덜 중요한 것이고 전술일 뿐이므로 이런 타협이 가능하다.
선거주의자와 달리 진정한 좌파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의회나 투표가 아니라 투쟁이고, 투쟁 속에서 노동자가 단결하는 것이며, 누가 당선되든 시작될 공격에 맞설 저항과 연대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두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했는지와 상관 없이 노동자들은 함께 단결해서 새 정부의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의 운명과 미래는 결국 거리와 작업장과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질 이런 투쟁들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