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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선거 전술 가이드

대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의회와 선거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관점과 전술을 명료하게 설명한 글을 소개한다.

최근 치러진 이집트 대선 결선투표에서 최고군사위원회(SCAF)와 반동 진영의 후보인 샤피크에 맞서 무슬림형제단 후보인 무르시에게 투표하기로 한 이집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의 결정(내 생각에는 완전히 옳다)은 이집트 현지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국제 좌파 진영 내에서도 격렬한 논쟁(과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 글에서 나의 주된 목적은 이 결정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일반적인 문제, 즉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선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내가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이집트 현지 논쟁의 많은 부분이 청년들 특유의 초좌파주의(완전히 이해할 만한) 때문에 격렬해진 반면 국제적 비판(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다)의 상당수는 무지와 이슬람에 대한 은근한 편견이 맞물린 데서 비롯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일랜드의 한 베테랑 좌파 활동가는 나와 논쟁할 때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 러시아의 ‘검은 백인단’(제정 러시아에서 유대인 학살 만행을 자행한 원조 파시스트 집단)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고, 무슬림형제단을 전혀 모르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나 할 법한 주장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집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나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나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이 무슬림형제단에 투표하라고 권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사회주의노동자당을 비난할 수 있는 이유야 많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파시스트에게 표를 던지라고 선동할 리가 있겠는가!)

다른 고참 좌파 활동가와 논쟁할 때는 무슬림형제단이 ‘반동의 화신’이며 결코 ‘개혁주의 세력’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 동지에게 무슬림형제단의 출판물을 단 하나라도 읽어 봤는지,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이 하는 연설은 들어 봤는지, 그들을 만난 적은 있는지, 아니면 무슬림형제단의 이번 선거 강령을 아는지 물어봤다. 이 모든 질문에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적어도 솔직하긴 했다). 다시 말해 이 두 경우 모두 그 동지들은 사실관계나 현지의 실상 따위는 전혀 모른 채 단지 ‘무슬림형제단’이라는 이름과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언뜻 떠오르는 이미지들, 즉 편견에 따라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일단 제쳐 놓고 나의 본래 주제로 돌아갈까 한다.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선거에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의회를 통해 진정한 개혁을 이루거나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변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좌파가 의회 안에서 다수파 지위를 얻는 한편, 의회 밖에서는 노동계급을 동원해 이를 보조하거나 지원하는 식으로 결합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모호한 공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에서 얻은 결론을 따라, 노동계급은 혁명 과정에서 의회를 포함한 기존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이를 작업장과 노동계급 거주지에서 선출된 노동자 평의회에 기초한 노동자 국가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레닌이 《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에서 주장했듯이, “의회가 아니라 오직 노동자 소비에트만이 프롤레타리아의 목표들을 성취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1

우리는 또, 의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핵심 중추가 아니라는 것, 즉 진정한 권력은 대기업, 은행, 금융기관 등의 이사회실과 국가 관료 기구(군대, 사법부, 경찰 등의 우두머리들)에 있다는 것도 안다. 따라서 의회라는 무대는 계급투쟁이나 사회주의 활동의 중심이 아니다. 레닌을 다시 인용하면, “대중행동(예컨대 대규모 파업)이 의회 활동보다 언제나 — 혁명 때나 혁명적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 더 중요하다.”2

11월 11일 전국노동자대회 이러한 대중행동이 선거나 의회 활동보다 언제나 더 중요하다. ⓒ이미진

그렇다면 혁명가들은 왜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해야 할까?

첫째, 선거가 결정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곧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선거와 선거 결과가 사회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은 명백한 과장이자 일종의 기계적 경제결정론이다. 엥겔스는 (다른 모든 지도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태도를 분명히 배격한 바 있다.

유물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역사에서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요인은 실제 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입니다. 마르크스나 내가 주장한 것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를 왜곡해 경제적 요인이 유일한 결정 요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 명제를 아무 의미 없는 추상적 공문구로 바꿔 놓는 것입니다. 경제적 상황이 토대이지만, 상부구조의 다양한 요소들(계급투쟁의 정치적 형태와 그 결과, 예컨대 전투에서 승리한 계급이 제정한 헌법 등등의 법률 형태, 심지어 이 모든 실제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반영된 것들, 즉 정치적·법률적·철학적 이론들, 종교적 견해들 그리고 이것들이 더 발전한 교조 체계들까지)도 역사적 투쟁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고 많은 경우 그런 투쟁의 형태를 결정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3

프랑스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가 사르코지를 이겼다고 해서 프랑스 사회가 변혁되거나 그 기본 궤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향은 있다. 그리스 총선에서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승리했어도 그리스를 변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노동계급이 치러야 하는 전투의 여건을 상당히 바꿔 놓았을 수는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실질적 차이에 무관심해선 안 된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사소한 개혁들(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퇴직 연령 등)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거에 참여하는 둘째 이유는 선거가 노동계급의 의식을 둘러싼 전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혁명가들은 의회에 대한 신뢰나 환상이 없겠지만 수많은 노동 대중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진정한 권력이 의회나 국회의원들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수많은 노동 대중은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선거 시기에는 정치적 관심이 커지면서 정치적 논쟁이 주목을 받는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이런 시기를 사회주의자의 개입 없이 흘러가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이런 정치 활동 영역을 개혁주의자,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파시스트가 차지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특히 파시스트는 언제나 의회 투쟁과 의회 밖 투쟁을 결합해 왔고, 흔히 매우 효과적으로 그렇게 했다).

셋째, 혁명가들이 실제로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으로 선출된다면, 그들은 ‘민중의 호민관’이나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확성기’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은 노동 대중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운동으로 대중을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직 이런 단계의 투쟁에 이른 적이 없다 보니 흔히 잊어버리지만) 레닌은 “소비에트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의회 안에” 들여보내는 것이 의회에 맞선 투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정치인들은 “의회주의를 내부에서 와해”시키려 노력하면서 “장차 소비에트가 의회 해산이라는 과제를 이룰 수 있도록” 활동한다.4

일반적으로 말해, 어떤 식으로든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 옳다. 이것이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리프크네히트, 루카치, 그람시, 클리프, 만델, 하먼 등 거의 모든 진지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관점이었다.

그러나 선거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옳은 특정 상황들이 있다. 언제일까? 그런 질문은 그 성격상 전술적인 것이고 늘 구체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답할 수 있다. 즉, 어떤 절대적 규범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역사에 근거해 볼 때, ‘적극적’ 보이콧이 정당한 예외적 상황은 주로 임박한 무장봉기를 준비할 때라고 말할 수는 있다. 따라서 선거 보이콧은 의회를 해산하고 전복하는 조처로 곧장 이어지는 행동이라고 봐야 한다.5

십중팔구 이 문제에 관한 역사적 사례로는 1905~06년에 레닌이 제정 두마에 대해 취했던 태도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유익할 것이다. 이것은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 1: 당 건설을 향해》(London 1986) 248~252쪽에 자세히 나오는데, 요점은 다음과 같다.

제정 두마는 지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노동자·농민에게 불리한 선거제도를 통해 선출된 대단히 비민주적인 의회 기구였다. 1905년 8~9월에 레닌이 주창해서 볼셰비키는 무장봉기 준비의 일환으로 두마 선거 보이콧을 결의했다. 1905년 12월 봉기가 패배한 후에도 볼셰비키는 봉기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며 계속 보이콧을 지지했다. 그러나 더는 봉기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지자(1906년 8월쯤) 레닌은 태도를 바꿔 선거 참여를 지지했고, 심지어 1907년 7월 당 협의회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볼셰비키에 반대해 멘셰비키를 지지하는 투표를 하기도 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적극적 보이콧은 … 혁명이 온 세상을 휩쓸고 각계각층으로 확산되고 급격하게 고조돼서 무장봉기로 발전하는 경우에만 … 올바른 전술이다. … 이런 조건들이 없으면 올바른 전술은 선거 참여를 호소하는 것이다.6

이와 비슷한 사례는 1917년 8~9월의 공화국평의회, 즉 예비의회(제헌의회 수립 전까지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구 구실을 하도록 돼 있었다)와 관련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공화국평의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볼셰비키에게 곧바로 첨예한 전술적 문제가 됐다. 참여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아나키스트들과 반쯤 아나키스트인 사람들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의회 제도를 보이콧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그들만의 소극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보존한다.

혁명적 정당은 현 체제를 즉시 전복하는 과제를 스스로 설정했을 때만 의회를 무시할 수 있다.7

그러나 당연히 그때는 무장봉기 직전의 상황이었고 볼셰비키 당내 논쟁에는 이 점이 반영됐다. 볼셰비키 지도부의 다수는 보이콧을 반대했지만 트로츠키는 보이콧을 지지했고 레닌(은신 중이었다)은 트로츠키를 지지했다. 이 시점에서 레닌은 봉기를 실제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를 아직 설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보이콧 문제가 전술적으로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 주지만, 일반적으로 말해 혁명가들은 선거 참여를 지지한다는 것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혁명가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형태(들)을 택할 것인지는 각각의 경우에 구체적 분석을 바탕으로 결정해야 하는 전술적 문제이고 구체적인 선거제도의 성격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은 자기 당 이름으로 후보를 내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최고의 선택이다.

불행히도 지난 수십 년 동안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이 허약해서 이런 선택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웠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 1970년대 말에 깨달았듯이, 보잘것없는 표를 얻을 후보를 출마시켜 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 극좌파 후보들이 서로 대립하며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표를 분산시켜 좌파 전체에 손해를 끼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예컨대 아일랜드에서 2011년에 아일랜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리처드 보이드 바레트가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다’와 통합좌파연맹의 후보로 출마했듯이,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안타르시아[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 연합]의 일부로서 그랬듯이, 또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사회주의연합, 리스펙트, TUSC(노동조합·사회주의자 연합)와 여러 차례 그랬듯이, 보통은 혁명가들이 좌파 연합의 일부로 출마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연합과 동맹은 흔히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고유하고 복잡한 전략·전술 문제들을 야기한다.

그렇지만 이런 선거운동의 일반적 지침을 큰 틀에서 제시할 수는 있다. 첫째, 되도록 승리를 목표로 진지하게 선거운동에 나서야 한다. 둘째, 이런 목표를 위해 추상적인 최대 강령이 아니라 광범한 노동 대중이 납득할 만한 구체적 요구들을 내세워야 한다. 셋째, 그러나 당선에만 목을 맨 기회주의적 타협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포퓰리즘적 법질서 캠페인이나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 성차별 따위와의 타협이 그런 것이다. 넷째, 선거운동은 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투쟁의 (부차적) 일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후보를 낼 수 없는 때는 어떻게 투표할 것인지 하는 문제도 있다. 심지어 우리가 후보로 나설 수 있을 때조차 선호투표는 어떻게 활용할지 또는 1차 투표에서 우리가 떨어지면 결선투표에서는 어떻게 투표할지도 문제가 된다. 확실히 이럴 때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때로는 까다롭고, 때로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때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이 섞이게 된다. 예를 들어 2011년 아일랜드 총선에서 나는 1순위로 통합좌파연맹 후보들에게 투표한 뒤, 2순위와 3순위 투표를 어떻게 할지, 즉 신페인당에 2순위 투표를 하고 노동당에 3순위 투표를 할지 아니면 노동당에 2순위 투표를 하고 신페인당에 3순위 투표를 할지에 대해 여러 차례 동지들과 토론했다. 이 경우에도(후보로 출마하는 경우보다야 훨씬 덜 하지만) 만병통치약 같은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어느 정도 일반적 견해를 내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첫째,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국회의원·대통령이 실제로 사회를 운영한다고 정말로 믿는 사람들이나 자유주의자들과는 다른 근거에 따라 어떻게 투표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선 후보자의 ‘개인적’ 특징은 거의 중요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기 위한 출발점이 결코 될 수 없다. 좌파 진영의 주요 후보가 영국의 조지 갤러웨이, 미국의 랠프 네이더, 이집트의 함딘 사바히라는 이유로, “나는 이런 자에게 투표하지 않을 거야. 믿을 수가 없거든. 그가 3년 전에 저지른 이런저런 못된 짓을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어” 하고 말하는 것은 좋은 주장이 아니다.

둘째, 선거에서 투표한다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 즉 포괄적으로 정치적 지지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비판적 지지라는 개념 — ‘환상을 갖지 말고 투표하기’, ‘투표하고 투쟁을 준비하기’ 또는 심지어 ‘사형수 목에 걸린 밧줄이 사형수의 몸을 지탱하듯이 투표로 지지하기’(레닌)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 이 핵심이다.

좌파끼리 논쟁할 때 좋지 않은 관행 하나는 다른 좌파 조직이 X당 또는 Y후보에게 투표하기로 결정하면 마치 이것이 X당이나 Y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정치적 지지인 양(심지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명명백백할 때조차) 비난하는 것이다(물론 비판적 견해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의무다). 그래서 1997년에 나(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투표했다. 왜냐하면 나(와 우리)는 그 선거에서 영국 노동계급이 18년째 집권 중인 보수당 정부를 몰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노동당에 투표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우리)가 블레어나 노동당이 집권하면 무슨 짓을 할지에 대해 손톱만큼이라도 환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그 투표를 두고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존 몰리뉴가 ‘토니 블레어를 지지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치졸하고 우스꽝스러운 왜곡이다.

레닌은 《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에서 영국 노동당의 초기 지도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헨더슨·클라인스·맥도널드·스노든[1920년대의 노동당 지도자들 — 몰리뉴] 같은 자들은 가망 없을 만큼 반동적이다. … 그리고 그들이 집권하면 틀림없이 샤이데만이나 노스케[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하고 독일 혁명을 배신한 독일 사회민주당원들 — 몰리뉴] 같은 자들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점도 사실이다. 이 모두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그들을 지지하는 것은 혁명에 대한 배반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혁명의 이익을 위해, 노동계급 혁명가들이 의회 선거에서 이 신사 양반들을 어느 정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8

이것을 두고 레닌이 램지 맥도널드나 샤이데만이나 노스케 지지자였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면 멍청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구체적 정치 상황을 전체적으로 고찰해서 투표의 정치적 의미를 판단하는 것이다. 레닌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정 나라에서 활동하는 모든 세력, 집단, 정당, 계급, 대중을 검토해야 한다. 또 투표 방침이 희망 사항이나 견해만으로, 한 집단이나 당 자체만의 계급의식과 전투성 수준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 된다.9

내가 보기에는 이런 평가를 내릴 때 세 가지 요인이 특히 중요하다. 첫째, 정당과 후보의 계급적 성격. 둘째, 대중이 정당과 후보에게 보내는 지지의 계급적·정치적 성격. 셋째, 선거에서 특정 투표 방침이나 선거 결과가 불러올 정치적 파장. 만약 이 모든 질문의 답이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면 문제가 비교적 간단하겠지만, 불행히도 세상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레닌이 설명했듯이, 노동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흔히 단순한 자본가 정당도 단순한 노동자 정당도 아닌 ‘부르주아적 노동자 정당’, 즉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다.10 이들의 특징은 철저하게 친자본주의적인 지도부가 (흔히) 노동조합(특히 노동조합 관료)과 맺고 있는 유기적 연계 덕분에 선거에서 노동계급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레닌은 영국 부르주아지의 주요 정당들(예컨대 보수당과 자유당)에 맞서 노동당을 투표로 지지하라고 주장했다.

블레어, 브라운, 밀리반드는 영국, 올랑드는 프랑스, 파판드레우는 그리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도 있다. 예를 들어, 블레어, 브라운, 밀리반드, 올랑드, 파판드레우*만큼 노골적으로 ‘친자본주의적’이지는 않은 지도부가 이끄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들이 있다. 그리스의 시리자나 프랑스의 좌파전선이 그렇다(시리자가 훨씬 더 급진적이긴 해도 영국 노동당에 견줄 만한 노동조합 기반이 있지는 않다). 흔히 노골적인 부르주아 정당에 맞서 노동당 같은 정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주장은 개혁주의를 대체할 좌파적 대안이나 혁명적 사회주의 대안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기각된다. 때로는, 아일랜드에서 그랬듯이, 선거제도에 따라서는 (선호투표제 등을 이용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도 있다. 다른 경우에는, 영국(단순 다수대표제)에서 그랬듯이, 둘 다 할 수가 없으므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 과거 식민지 나라에서는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유럽이라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차지했을 정치 공간을 이런 나라에서는 반제국주의 언사(때로는 투쟁)로 노동계급, 빈민, 농민의 광범한 지지를 받는 민족주의 정당이나 이슬람주의 정당이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 정당들은 실천에서는 자본주의를 지지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부터 레바논의 헤즈볼라까지, 그리고 과거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오늘날의 하마스도 이런 사례에 포함된다.

때로는 셋째 요인인 투표 결과의 정치적 파장이 첫째·둘째 요인과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예컨대, 2002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우파인 시라크와 파시스트인 르펜이 붙었을 때가 그랬다. 평상시라면 어떤 사회주의자도 시라크에게 투표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르펜의 승리가 재앙일 것이라는 점도 그만큼이나 분명했다. 당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견해가 갈렸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시라크에게 투표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의회 밖 대중 동원을 호소했다. 프랑스의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은 시라크에게 표를 던졌다. 당시 나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방침을 지지했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십중팔구 내가 틀렸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시라크는 79퍼센트 투표율에 82퍼센트 득표라는 압도적 승리를 거뒀는데 이는 계급의식적 부위를 포함한 프랑스 노동자의 압도 다수가 시라크에게 투표했음을 보여 준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혁명가와 선거라는 문제 전반에 관한 가장 훌륭한 일반적 지침은 앞서 인용한 레닌의 《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이다. 당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많은 신생 정당들(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공산당 등) 안에서 상당히 강력했던 ‘좌파’ 공산주의 경향에 맞서 싸우고자 쓴 이 책은 전략·전술의 탁월한 안내서로서 선거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고자 하는 혁명가라면 반드시 탐구해야 마땅하다. 《자본론》을 읽지 않으면 대단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을 읽지 않으면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타협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진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둘째, ‘반동적’ 노동조합을 포함해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무조건 필요하다.11 셋째, 선거에 참여하고 부르주아 의회에 개입하는 것은 의무다. 넷째, 우파에 반대하는 노동자 대중과 한편에 서기 위해, 그리고 개혁주의자들이 집권하게 해서 대중에게 개혁주의를 폭로하기 위해, 믿지 못할 개혁주의 지도자들에게서 현장 노동자들을 떼어 내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골적 자본가 정당에 맞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투표해야 한다. 다섯째, 혁명 지도부의 기예 가운데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위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다수를 설득할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포함된다(“전위만으로는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12). 그리고 이것은 대중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고 한 발짝 앞에서 접점을 유지해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자본론》이 마르크스주의 경제 분석의 전제 조건이라고 해서 오늘날의 경제 분석을 《자본론》으로 대신할 수 없듯이, 선거와 관련해 올바른 결론을 내리려면 그저 레닌의 저작을 읽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여러 계급과 정치 세력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따져 봐야 한다.

다시 이집트 이야기를 한마디만 하겠다. 내가 이집트를 이 글의 주된 초점으로 삼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아일랜드에 있는 탓에) 이집트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평가할 만한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개진한 주장들은 이집트 상황과 관련해서 분명한 함의가 있다.

첫째, 이 주장들은 기권주의적 태도나 보이콧 방침의 근거로 제시되는 수많은 이유들이 총선에서건 대선에서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무슬림형제단은 극단적 반동 세력이므로 샤피크에 맞서 무슬림형제단에 투표할 수는 없다는 주장만 잘못된(사실이 아니므로) 것이 아니라 무슬림형제단은 혁명을 배신했다거나 배신할 것이므로(비록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또는 무슬림형제단은 종교적이며 여성에 대한 태도 등에서 후진적이므로 샤피크에 맞서 무슬림형제단에 투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잘못이다. 역사는 많은 경우에 진지한 혁명가들이 노골적인 반동과 반혁명에 맞서 그런 배신자와 후진적 집단에게 투표해야만 했음을 보여 준다(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지지받아 마땅한 아일랜드 공화당이 여성의 권리나 노동자 권력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1914년 이래로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고 인종차별적 이주 규제를 비롯해 숱한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사회민주당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또, 이집트에서 정치활동규제법13이 지켜지지 않으면 좌파는 선거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잘못이었다. 그런 주장이 절대적 또는 ‘도덕적’ 원칙으로서 잘못된 이유는 모든 부르주아 선거,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모두 결함이 있고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이 ‘위협용’이나 협상 수단으로서 무의미한 이유는 최고군사위원회가 좌파의 선거 보이콧에 콧방귀도 안 뀔 것이기 때문이다.

1919~20년 독일에서 선거 기권을 옹호한 혁명가들(레닌은 《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에서 이들을 논박했다)과 오늘날 이집트에서 선거 불참을 옹호한 혁명가들이 서로 매우 닮았다(물론 똑같지는 않다)는 점도 흥미롭다. 두 경우 모두 그들은 흔히(꼭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대체로) 아직 젊고 혁명가가 된 지 얼마 안 된 노동자와 거리 투사들이었다. 이들은 혁명에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혁명 전략과 전술 분야에서 경험과 훈련이 부족하고, 결정적으로, 그들 자신의 용기와 의지력만으로는 혁명(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고 심지어 최고군사위원회를 타도할 수도 없다.

혁명을 승리로 이끌려면 영웅적인 혁명적 전위가 대중, 즉 작업장의 노동자들, 도시와 농촌의 빈민들, 농민의 상당 부문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고작 수십만 규모가 아니라 수천만 규모의 대중을 말이다. 그러려면 가두 투쟁만이 아니라 정치 전략이 필요하고 그런 전략의 일부는 선거 전략이어야 한다. 그래야 함딘 사바히와 무함마드 무르시에게 투표한 수백만의 노동 대중과 연관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전략의 정식화는 앞으로 이집트 좌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많은 나라들(그리스,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등)에서 그랬듯이, 이집트에서도 혁명가들과 다양한 좌파 개혁주의 세력 간의 선거 연합 또는 공동전선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많은 경우에 이것은 효과적 선거 개입을 위해 확실히 필요하지만, 경험이 보여 주듯이(특히 영국의 경험) 그것은 또한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지면이 부족하므로 여기서 이 문제에 대한 일반적 논의를 다룰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이집트의 ‘좌파’와 급진 세력들을 잘 알고 있지도 못하므로 이집트 상황에 대해 뭔가 구체적으로 말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집트 혁명가들이 분명 어느 단계에선가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야 할 것이다.

2012.7.23


  1. 레닌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구제 불능의 반동분자들이다. 심지어 그들이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 노련한 정치인, 가장 신실한 사회주의자, 가장 박식한 마르크스주의자, 가장 정직한 시민,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Left Wing Communism: an Infantile Disorder, Peking 1965, p.80.

  2. 같은 책, p.55.

  3. 엥겔스가 블로흐에게 쓴 편지, 1890, 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90/letters/90_09_21.htm

  4. 앞의책, p.81.

  5. 예외의 예외도 있다. 레닌이 Left Wing Communism (같은 책 p.53-54)에서 지적했듯이, 볼셰비키는 1917년 9~11월, 즉 무장봉기를 전후한 시기와 제헌의회를 해산하기 전에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 참여했다.

  6. Lenin, Collected Works, Vol.13, p.60. 클리프의 책 p.251에서 인용.

  7. Trotsky, The History of the Russian Revolution, London 1977, p.541.

  8. Lenin, Left Wing Communism, 같은 책 p.81.

  9. 같은 책, p.81.

  10. “하나의 정치 현상으로서 ‘부르주아적 노동자 정당들’은 모든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 이미 형성돼 있고 이런 정당들(또는 그룹들, 경향들 등 모두 마찬가지다)에 반대하는 노선에 따라 단호하고 가차 없는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반反제국주의 투쟁이나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적 노동자 운동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Lenin, ‘Imperialism and the Split in Socialism’,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6/oct/x01.htm

  11. 나는 이 문제를 내 글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 Irish Marxist Review 1, 2012에서 상세히 다룬 바 있다.

  12. Lenin, Left Wing Communism, 같은 책 p.97.

  13. 무바라크의 국민민주당(NDP)과 그 밖의 구체제 잔당들이 입후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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