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제국주의와 동아시아의 불안정:
방공식별구역 갈등으로 더 불안해진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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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중국 정부가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ADIZ, 에이디즈)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동아시아에서 긴장이 급격히 높아졌다. ADIZ는 한 국가가 ‘안보’를 위해 일방으로 자국 영공 외곽에 설정하는 공중 구역이다. 이 일대에는 1950년대에 미국이 대소련 견제를 위해 설정한 한국·일본·대만의 ADIZ만이 있었다.
중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ADIZ를 지나는 타국 항공기가 중국 관리기구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중국은 무력을 동원해 “긴급 방어 조처”를 취할 수 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선포한 동중국해 ADIZ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상공을 포함해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과 상당히 겹친다는 것이다. 중국이 설정한 ADIZ를 보면 동중국해 상공을 거의 다 포괄하고 있다.
당연히 일본과 미국은 중국의 조처에 반발하고 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일대에서 미국과 일본의 군용기·군함들과 중국의 군용기·군함들이 서로 견제하며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12월 4일 미국 부통령 조 바이든이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을 만나 ADIZ 문제를 협의하자,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 문제를 두고 확전을 자제하는 쪽으로 태도를 정한 것 아니냐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바이든과 시진핑의 회동 직후, 백악관 대변인 제이 카니는 중국의 이번 행동을 “일방적 도발 행위”로 규정하며 “[중국의 ADIZ 설정은] 용납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미국은] 명확하게 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못을 박았다.
따라서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강대국 간 갈등이 어느 수준으로 높아질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그만큼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 준다.
미국의 새로운 패권 전략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1970년대 이래 장기적인 이윤율 저하 위기를 겪고 있고, 그런 와중에 국가 간 상대적인 경제력 비중에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것은 중대한 지정학적 함의가 있다. 즉, 경제 위기는 협력적인 경제 정책 운용을 어렵게 하는데다, 경제력의 상대적 변동은 정치 권력의 변동을 수반하고, 이것도 국가 간 지속적 협력의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가 레닌도 세계경제의 불균등성과 모순을 강조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역동적 발전 과정 자체가 이러한 불균등성의 분포를 바꿔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끊임없이 바꿔 놓는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열강 간의 안정적 질서를 구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국가 간 세력균형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전만 해도 중국 경제는 규모 면에서 네덜란드 경제보다 작았다. 그러나 30년 동안 연평균 8~10퍼센트씩 폭발적으로 성장해, 오늘날 중국 경제는 일본마저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랐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지만)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해 왔다. 일본 경제도 계속 정체해 일본 자본가들은 자국이 ‘청일전쟁 후 처음으로 중국에 밀렸다’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런 변화는 제국주의 질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 오고 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세계에서 군비 증가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특히 해군력을 증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이를 인도양과 서태평양에서 자국의 제해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다.
그리고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에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 됐다. 이 때문에 미국의 동맹국인 아시아 국가들의 대외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됐다.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는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간 갈등과 경쟁을 격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자 헨리크 그로스만은 경제 위기가 깊어질수록 “세계시장에서 경쟁자를 배제하고 가치의 이전을 독차지하려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가 위기에 처한 후 미국과 중국은 무역과 환율 등을 둘러싸고 큰 갈등을 벌이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의 대외 무역적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퍼센트나 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국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조정 비용을 중국에 전가시키려 압력을 가했다. 예컨대 2009~11년 미국과 중국은 위안화 환율을 놓고 빈번하게 갈등을 빚었다. 그때 미국 지배자들은 위안화가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며, 중국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이처럼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경제적 경쟁과 갈등이 커지게 되면, 이는 지정학적 갈등에 큰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2010년을 전후로 오바마 정부는 중국의 경제적·지정학적 부상에 맞서 제국주의 서열의 꼭대기 자리를 지키려고 동아시아에서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아시아 재균형(또는 아시아 귀환)” 전략을 천명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군사력을 늘리고, 동맹 관계를 확대·강화했다.
또한 미국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을 추진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자국에 유리한 경제권을 형성하려고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아시아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해 왔다.
미국의 새로운 패권 전략에서 일본의 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일본은 동맹국들로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의 구상에서 핵심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오바마는 일본이 지역적 위상을 강화하기를 바랐다. 이미 2012년 4월 30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몰고올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으로 미일동맹의 성격을 다시 규정했다.
이 때문에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중국의 커다란 반발을 불렀다. 미국의 중국 포위 노력과 중국의 맞대응이 맞물리면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졌다.
영유권 분쟁
2010년 이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낳은 긴장으로 동아시아에서 영유권 분쟁이 격화돼 왔다. 미국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일대에서 중국의 해양 팽창을 견제하려고 일본·베트남·필리핀처럼 그동안 중국과 도서 영유권 분쟁을 겪어 온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오키나와를 포함한 일본 남서 제도에서 중국을 포위할 군사적 조처들을 중요하게 여겼다.
일본은 2010년 신방위대강에서 “동적 방위”로의 전환을 천명하면서, 평화헌법에 구애받지 않는 “‘싸우는 자위대’로의 변모”를 선포했다.
그러면서 남서 제도의 이시가키, 미야코, 요나구니 섬 등에 자위대를 증강하거나 새로 배치해 왔다. 일본은 대만에서 겨우 1백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요나구니 섬까지 촘촘한 방어선을 치고 있고, 중국 해군이 서태평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미야코 해협 코앞에 미사일 기지를 짓고 있다.
미국도 오키나와에 미 해병대의 신형 수직 이착륙기 오스프리를 배치하고, MD(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인 X밴드 레이더를 일본 남부에 추가 배치하기로 하는 등 이 지역에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지배자들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런 조처들이 자신들의 자유로운 해상 활동(특히 태평양 진출)을 가로막으려고 “만리장성”을 쌓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자극을 받아 맞대응을 시도하면서, 이 지역에서 기존의 영유권 분쟁이 격화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2012년 4월 남중국해 황옌다오(스카보러 섬)에서 필리핀과 중국이 장기간의 해상 대치를 벌였다. 이 사태가 사실상 미국이 필리핀을 뒤에서 지원하는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이때 이미 나왔다.
몇 달 뒤인 2012년 여름에는 일본 정부가 동중국해 댜오위다오(센카쿠)를 국유화하기로 한 결정 때문에 일본과 중국이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다.
일본의 댜오위다오 국유화 결정은 이 지역 질서가 급격히 변했음을 보여 준 상징적 사례이기도 하다. 1970년대 미국이 대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탕트”에 나서자 일본은 미국의 데탕트에 부응하면서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때 일본은 댜오위다오를 기존 상태로 유지하되, 일본의 영유권을 강화하는 추가적 조처는 하지 않기로 중국에 밀약을 해 준 바 있다(소위 ‘미해결 보류’).
따라서 일본이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하고 이에 중국이 반발해 갈등을 빚게 된 것은, 1970년대 이래 자본주의 열강의 갈등이 최소화되며 유지돼 온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집단적 자위권
이번에 중국이 ADIZ를 설정하며 강경하게 나선 것도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하고 나서 미국·일본이 중국 견제의 수위를 대폭 높인 것에 반발하는 데서 비롯한다.
일본 아베 정부는 미국의 지지를 받아 노골적인 중국 견제와 군사대국화에 나서고 있었다. 예컨대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10월 26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국가가 일본이 중국에 대해 이런 우려를 강하게 표명하기를 기대한다”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은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도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도 했다.
최근 아베 정부가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려고 내놓는 조처들을 봐도, 일본이 얼마나 공세적으로 나가는지 알 수 있다. 예컨대 MD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SM-3 미사일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며, 일본 방위성은 군비 지출 계획을 조정해 중국을 겨냥한 낙도 방위와 MD 향상에 쓰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0월, ‘영공을 침범한 무인기가 퇴거 요청 등 경고에 따르지 않을 경우 격추를 포함한 강제 조처를 취한다’는 방위성 방침을 승인했다. 댜오위다오 상공에서 중국 공군기의 접근을 막으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에 커다란 재난이 일어나자, 일본은 재빨리 준항공모항급 호위함을 포함한 자위대를 파견해 미군 함대와 함께 구조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일본 자위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군사 역량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또한 일본 총리 자문기구인 안보법제간담회는 11월 13일 회의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때 자위대 활동의 지리적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사태의 내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는 아베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일본은 남중국해에서도 미국을 도와 중국을 직접 견제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일본이 핵심 파트너로 나서면서, 중일 갈등의 수위가 크게 높아져 온 것이다.
사실, 11월 24일 미국이 이란과의 핵 협상에서 합의를 본 이유 중에는, 중동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더 커지지 않게 막아 놓고 아시아에서 중국의 도전에 제대로 대처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신형 대국 관계
중국은 미국이 일본과의 군사 협조를 강화하고, 북한 핵 ‘위협’을 명분으로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데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 왔다. 시진핑이 줄기차게 중미 관계는 “신형 대국 관계”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자국의 핵심 이익(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영유권 등)을 미국이 존중하고 이를 침해하지 말라는 불만 섞인 요구였다.
중국도 호전적으로 대응해 왔다. 11월 11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친강은 “우리는 일본 지도자(아베)가 공공연히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며 소란을 피운 것에 불만을 표시한다”며 “일본이 만약 중국을 적수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 상대를 잘못 선택한 것일 뿐 아니라 오판한 것[이다]”고 아베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중국은 얼마 전에 끝난 공산당 18기 3중전회에서 국가안전위원회(NSC)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이 조처가 일본의 NSC 설립과 집단적 자위권 추진 등 공세 강화에 대비하려는 의도가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또한 중국은 현재의 군구 중심의 군대 구조도 개편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한 중국 군사 전문가는 “7대 군구 체제는 연합작전 역량이 떨어지는데다, 군구 배치가 수세적 작전 위주”인 게 개편의 이유라고 밝혔다. 시진핑이 강조해 온 “싸울 준비가 돼 있고 싸우면 이기는 군대 건설”에 맞춰, 군대 구조를 분쟁에 더 공격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중국 해군은 서태평양에서 북해함대, 동해함대, 남해함대까지 참가한 대규모 원양 훈련을 진행하고, 11월 15~20일 동중국해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하는 등 해군의 훈련 빈도와 수준을 높여 왔다. 11월 17일에는 북한 인근에서 육·해·공군의 대규모 합동 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동중국해 ADIZ 설정은 바로 이런 호전적 대응의 수준을 대폭 높이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ADIZ 설정이 미 공군과 해군 정찰기의 동중국해 출현을 겨냥한 목적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의 ADIZ 설정에 대한 미국의 즉각적인 반응은 군사 행동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ADIZ 선포 이틀 만에 B-52 폭격기를 보내 중국의 ADIZ를 통과하는 훈련 비행을 감행했다. 그리고 연일 군용기를 이 지역에 보내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는 중국의 ADIZ 설정이 “동중국해의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려는 행위로, 지역의 긴장을 높이고 충돌 위험을 높일 뿐이다”며 중국을 비난했고, 국방장관 척 헤이글은 “센카쿠열도가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대상”이라는 언급을 재차 강조했다.
즉, 미국은 중국의 시도를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패권을 위협할 중대한 사태로 규정하며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나서는 데는 동중국해가 갖고 있는 지정학적 위상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동중국해 상공과 해상에서 통제력을 확보하게 된다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군사력 투사에 상당한 제약을 안게 된다. 미국의 지역 패권에 큰 타격이 되는 건 물론이다. 미국 지배자들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또한 동중국해를 통해 석유 같은 주요 자원을 수입하고 상품 교역을 해 온 한국과 일본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도 이것은 큰 문제다. 오래 전부터 일본 지배자들은 타이완과 동중국해를 “일본의 생명선”이라고 주장해 왔다. 만약 중국이 동중국해를 장악하면 미국은 핵심 동맹국들한테서 큰 신뢰를 잃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도 ADIZ 문제에서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치먼은 최근 칼럼에서 “중국과 일본이 충돌로 나아가고 있다”며 세계 2위와 3위의 경제대국인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상당히 위험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우려했다.
미국은 지금의 긴장에 대응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력 증강을 가속화할 것이다. 당장 미국은 첨단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와 해상초계기 P-8A 포세이돈을 동중국해에 집중 배치하려 한다. 또한 중국을 포위할 한·미·일 삼각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그동안 골치가 아팠던 문제들(예컨대, 한일 관계 개선과 한일 군사협정 체결)을 해결하려고 나설 것이다.
일본 지배자들은 더욱 군사대국화와 우경화를 추진할 것이다. 중국이 ADIZ를 선포하자마자 자민당은 중의원에서 미국과의 군사정보 공유에 필요한 특정비밀보호법안을 사실상 날치기 처리해 버렸다. 일본 지배자들은 앞으로 집단적 자위권뿐 아니라 공격 무기 보유, 평화헌법 개헌 등의 문제를 꺼내며 ‘보통국가화’를 향해 한 발 더 내딛으려 할 것이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중국이 천명해 온 “도광양회”는 과거의 얘기가 돼 버렸다. 항공모함의 추가 건조 등 군비 확충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조만간 “서해·남중국해 등에도 방공식별구역을 설치”하는 등 추가 조처들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국면
물론 중국과 미국·일본이 당장 전면적인 군사 충돌(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비록 최근에 군비를 줄여야 할 처지이지만, 미국은 여전히 다른 군사 강국들을 압도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전 세계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고 각 지역의 동맹을 확보하는 능력에서도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
경제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비록 경쟁적 측면이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상호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동중국해 상공으로 매일 군용기를 보내는 미국이 다른 한편으로 “[동중국해의] 사태 악화나 오판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위기관리체계”를 만들자는 얘기를 중국한테 던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주도하는 ‘위기관리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상호의존만을 보아 미·중 관계를 일면적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지정학적 이해관계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긴장과 적대 요인이 점차 커져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당장 제국주의 간 전면전이 터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한동안 동아시아에서는 제국주의 열강 간의 긴장과 일시적 이완이 갈마들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와중에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로써 최근에 제국주의 간 경쟁의 양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듯하다. 빈국이거나 한때 빈국이었던 “불량국가”를 응징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경쟁 제국주의 국가와 공공연하게 대립하는 수준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만큼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불안정하며, 지금 미국·일본과 중국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 이 불안정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점차 다극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 국가 간의 상호작용은 더욱 유동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이 상태에서 세계경제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거나 한다면, 우리가 미래에도 제국주의 열강의 전면 충돌을 피하는 ‘행운’을 계속 누릴지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추천 소책자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본 오늘의 동아시아 불안정과 한반도
김하영, 김영익, 이현주 지음 / 128쪽 /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