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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일본 쪽으로 기우는가

동중국해의 제해권을 두고 중국과 미국·일본이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자, 박근혜의 대외 정책도 커다란 시험대에 놓이게 됐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은 경제와 안보 모두 미국과의 관계를 가장 중시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지금 한국 지배자들은 과거와 다른 주변 질서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지난 20년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상호 밀접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2000년에 9.39퍼센트였던 것이 2005년에 18.43퍼센트, 2010년에 21.13퍼센트로 빠르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미 무역의존도는 정반대로 2000년 20.09퍼센트에서 2010년 10.12퍼센트로 크게 낮아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우위는 미국이 쥐고 있다. 한국 지배자들은 ‘안보’ 문제로 계속 미국과 유착해 왔다. 즉, 경제는 중국에 더 의존하면서 미국과의 지정학적 동맹은 계속 유지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지배자들은 이렇게 변화한 질서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민주당이 대변하려 애쓰는 지배계급 내 일부는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며 ‘균형외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아시아 패러독스”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강화를 지지해 온 박근혜도 변화하는 현실을 의식해 왔다. 그래서 “동북아에서는 경제적 상호의존은 증대되고 있지만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오히려 커지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소위 ‘아시아 패러독스’)”며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을 제안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부총리급이 참가하는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를 열 만큼 박근혜는 중국과의 관계에 공을 들였다.

반면에 박근혜는 집권 초부터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일본 아베 정부와는 갈등을 빚으며, 일본과는 거리를 둬 왔다. 올해 2월 외교부 장관 윤병세는 동아시아에서 한국 외교의 우선 순위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로 꼽으며 일본보다 중국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얘기는 분명 한·미·일 삼각 동맹의 강화를 원하는 미국이 좋아할 리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의 충실한 동맹으로 남아 있어야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이득을 얻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중국이 아무리 급속히 부상했어도 여전히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 자본의 투자와 시장을 보호하고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의 손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균형외교를 주장해 온 일부 지배자들조차 한미동맹 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한미동맹과 한중 협력의 조화라는 실현되기 어려운 얘기를 하는 것이다. 실현되기 어려운 까닭은 북핵 위기가 불거지거나 중국·미국 간에 갈등이 커지면 선택의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박근혜는 대체로 한미동맹 강화를 중심축에 놓고 행동했다. 올해 초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후에 열린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박근혜는 오바마를 만나,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자는 이명박 정부 당시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미국의 MD(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협력도 약속하며, 이에 필요한 무기들을 도입하려 해 왔다. 포괄적 전략동맹과 MD 모두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관련 있는데도 말이다.

10월 말에 미국을 방문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장수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여부는 일본 국민이 선택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도 미국이 바라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사실상 받아들인 것이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를 계기로 앞으로 박근혜는 더욱더 한미동맹으로 기울 것 같다. 중국이 ADIZ를 선포하자 박근혜 정부는 바로 미국이 주도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가할 뜻을 밝혔다.

그래서 지금 박근혜 정부는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한미동맹 강화를 선택하는 일종의 도박을 시도하는 셈이다. 앞으로도 박근혜는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건 좋은 베팅이 아니다”는 미국 부통령 바이든의 ‘충고’를 계속 곱씹을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동아시아의 정세가 가장 복잡하고 유동적인 이 시점에 박근혜가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은 이 지역의 불안정을 더욱 키워 나라를 더욱 위험한 지경으로 몰고가는 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 지배자들 내의 논란을 키우며 박근혜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아킬레스건

우선, 한미동맹 강화를 둘러싼 쟁점들은 한국 지배계급의 정치적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촉구해 온 한일 군사협정 같은 사안은 그 자체로 상당히 폭발력이 큰 쟁점이 될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중국과의 교역으로 커다란 이득을 보는 상황에서, 이런 분열은 비단 부르주아 야당과 여당 사이에서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과 가까운 주변국이 대부분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으로 철강 등의 자원 수출로 이득을 많이 얻었다. 이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 전적으로 협력하는 문제를 놓고 일부 정치인과 기업주 들이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표시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도 한미동맹 강화에 나설수록, 이와 비슷한 곤란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박근혜의 친미 행보는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낳으며 또 다른 불씨를 낳게 될 것이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가 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가 예기치 않은 분란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어도 상공까지 ADIZ에 포함시킨 것은 바로 유사시 한반도에서 출격할 미군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동중국해와 가까운 제주 해군기지에 미군 함정이 드나들기 시작하면 “평화의 섬” 제주도는 순식간에 중미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다.(따라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 측의 주장이 옳았음이 이번에 입증된 것이다.)

박근혜의 행보는 한반도 긴장에도 악영향을 줄 게 분명하다. 북한이 한미동맹의 강화에 자극받아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갈수록 한반도는 중국과 미국 두 제국주의 국가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곳이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8조 원이 넘는 돈을 써서 신형 전투기를 구입하고 이지스함 3척을 더 늘리기로 결정하는 등 동아시아 불안정에 대응해 군비 증강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 전체의 군비 경쟁을 악화시키고, 우리의 복지를 희생시키는 짓이다.

박근혜의 친미 지향 정책은 한반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동아시아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박근혜 정부의 대외 정책과 군비 확충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