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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서해를 “피와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는가

11월 22일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이하 사제단)이 연 박근혜 사퇴 촉구 미사에서 박창신 신부는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상호 포격 사건을 낳았다고 설명하며 평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와 우익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이 자들은 박창신 신부의 발언이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적에 동조하는 행위”라며 북한 지지로 둔갑시키고 진의를 왜곡했다.

우익이 박창신 신부를 “종북” 신부로 매도하는 것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박창신 신부는 북한의 행동을 옹호한 적이 없고, 단지 남한 정부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위험하고 호전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했을 뿐이다.

박근혜는 틈만 나면 NLL이 “수많은 젊은이가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사실 NLL은 그렇게 지켜서는 안 되는 선이었다. NLL은 적법한 해상경계선이 아니다. NLL은 유엔사령부가 한국전쟁 이후 남한과 미군 함정들이 “이 선[NLL] 이북으로 항해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포한 것일 뿐이었다.

1974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조차 내부 보고서에서 “북방한계선은 국제법상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일부분에서는 영해의 분리에 관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북한은 단 한 번도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남한이 합리적 근거 없이 NLL이 해상경계선이라고 우기며 호전적 정책을 펼치고, 이에 북한이 맞대응하면서 지난 15여 년 동안 서해는 화약고가 됐다. 이 과정에서 남북의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대북 압박이 서해에서 남북한의 충돌을 악화시켰다. 미국이 핵 개발 등을 빌미로 북한을 압박할 때마다 서해상의 긴장과 충돌로 이어졌다.

오바마·이명박의 강경 대북 정책이 낳은 비극 2010년 침몰됐다 인양된 천안함의 모습. ⓒ사진 〈레프트21〉 자료사진

2010년 천안함 사건도 미국의 대북 압박과 이명박의 호전적 대북 정책이 맞물리는 시점에 터진 일이었다. 2008년에 집권한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은 전임 부시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과 무시를 계속하자, 북한은 크게 반발했다.

이명박 정부도 대북 강경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남북 관계를 긴장으로 몰아갔다. 2009년 서해상의 교전수칙을 단순화해, 더 공세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바꿔 놨다. 서해상의 군사력도 증강 배치돼, 작은 고속정이 방어하던 바다가 이제는 천안함 같은 대형 군함이 전진 배치된 곳이 됐다.

천안함 사건은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일어났다. 설사 그것이 북한의 소행이었다 할지라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낳은 결과라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당시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은 “나는 만일 북한이 그랬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며 이명박의 강경한 대북 정책이 “북한의 보복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연합훈련

미국은 천안함 사건을 동아시아에서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측의 소행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줌으로써, 오키나와의 후텐마 공군기지를 오키나와 현 밖으로 이전하려던 일본 하토야마 정부의 시도를 좌절시킬 수 있었다.

중국과 북한은 천안함 사건으로 높아진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6자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미국과 남한은 북한을 상대로 커다란 무력 시위를 벌였다. 핵 항공모함과 F-22 전투기 등 첨단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계속 열렸고, 남한은 전과 달리 NLL에 매우 근접한 해역에서 훈련을 했다.

그래서 2010년 8월에 NLL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 간 포격 신경전이 벌어졌고, 그해 11월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연결됐다.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과 남한의 호전적 정책이 빚어낸 귀결이었다.

연평도 상호 포격 사건이 일어난 날에도 남한 당국은 북한의 사전 경고를 무시한 채 “물방울이 튀는 것까지 다 보이는 [북한의] 코앞”에서 사격 훈련을 강행했다.

미국은 연평도 사태도 자국의 패권을 강화하는 데 이용했다. 연평도 사태가 벌어지자 미국은 즉시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호를 서해에서 열린 한미군사훈련에 투입했다. 중국의 코앞인 서해에 미군 항공모함이 들어와 중국의 주요 연안도시들을 모두 사정권 안에 뒀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서해는 남북한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더 위험한 곳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서해에서 이명박을 능가하는 호전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는 서해 교전에 대비해 “선 조치, 후 보고”와 “도발 원점과 함께 지원부대에 대한 타격” 등 강경한 정책을 강조해 왔다. 미국과 ‘공동 국지도발 대비 계획’에도 합의해, 이제 서해 교전이 벌어지면 미군이 자동 개입할 근거가 마련돼 있다.

만약 서해에서 남북한 간의 군사 충돌이 또다시 벌어진다면, 전보다 더 격렬한 무력 충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연평도 사태 당시 북한의 군사적 대응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북 압박과 남한 정부의 협력이 바로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낳은 일차적 원인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 다시는 서해에서 남북한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지 않게 군사적 경쟁을 끝내도록 해야 한다는 사제단의 호소는 지극히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