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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봄 노동자가 말한다:
아동학대 막으려면 돌봄 조건 개선돼야

한 아이돌보미의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최근 여성가족부가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아이돌보미에 대한 인·적성 검사 도입, 근태·활동이력 공개, CCTV 설치에 사전 동의한 돌보미 우선 파견,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대책에는 큰 구멍이 있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돌봄의 질을 개선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돌봄 노동자 처우 개선이나 공공 관리체계 강화는 뚜렷한 기약 없이 뒷전으로 미뤄졌다. 결국 돈 들어가는 대책들은 빠져, 정부의 공공서비스 투자 책임은 방기한 것이다. 

여가부의 대책 발표 직전인 4월 25일 오후, 아이돌봄 노동자이자 서울에서 노조를 주도적으로 결성한 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분과 배민주 사무국장을 만났다. 

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분과 배민주 사무국장 ⓒ최미진

배민주 사무국장은 이번 아동학대 사건은 정부의 무책임으로 인해 “예견된 사고”라고 지적했다.(본지 관련 기사: ‘정부의 아이돌보미 아동학대 대책 — 개별 노동자에게 책임전가 말고 공공복지 지출을 늘려야’)

“전국의 아이돌봄 선생님들은 이번 학대 사건을 접하고 놀랐어요. 그간 대부분의 아이돌봄 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며 일해 왔어요. ‘아이 볼래? 밭일 할래? 물으면 차라리 밭일 한다’는 옛말도 있듯이 아이 돌보기가 힘든 건 사실이에요.

사실 많은 보수만 바라면 이 일을 못 해요. 저희는 최저임금 수준만 받으며 일해요. 게다가 일할수록 거꾸로 처우가 나빠지고 있어요.

제가 입사할 때는 교통비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노동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여전히 주휴·연차 수당도 못 받는 사람이 40퍼센트나 돼요. 경력수당도 원래 임금의 10퍼센트를 줬지만, 줄 돈이 늘어나니까 10만 원으로 상한선을 제한해 버렸어요. 어떻게 신입사원과 10년 넘은 선생님을 똑같이 대우할 수 있나요?

센터[아이돌보미 파견 기관]가 필요해서 교육도 받고 각종 건강검진 결과도 의무적으로 떼서 내는데, 안 그래도 박봉인 노동자들이 일할 시간을 빼서 자기 돈 들여 해요. 정말 노동자로서 기본 처우 보장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성 인정과 체불 임금 보전을 위해 소송도 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 갑자기 월례회의가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월례회의를 꼭 참가시켰어요. 그런데 이게 사라지다 보니 선생님들끼리 사례를 공유하고 일하면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떤 게 아동학대이고 이런 일을 줄이려면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등을 얘기할 곳이 사라졌어요.

이용자들에게 민원이 들어온다는데, 월례회의에서 공유가 안 되니 정작 그게 어떤 내용인지, 뭘 대비해야 할지 선생님들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소속감도 사라지고 개별적으로 흩어져 일하게 되는 거예요.

정부는 노조 가입이 확산되면 큰일이고 근로자성 소송이 진행되면 비용도 많이 들어가니, 우리 소속감을 없애고 고용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한 거죠. 자기들은 그냥 연계만 해 준다는 점을 어필한 거죠.”

CCTV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배민주 사무국장은 CCTV 설치가 아동학대 예방의 능사가 아님을 조목조목 짚었다.

“아이들 인권이 중요하지만 선생님들도 인권이 있어요. 그간 CCTV가 있어도 아동학대는 벌어졌어요. 예방은 안 되는 거예요. 온 집안에 CCTV를 달아놓고 부부 모두와 시부모, 친정부모까지 다 공유해서 감시하는 이용자도 있어요.

그런데 만약 기자님이 근무하는 10시간 동안 상사가 지켜보고 있다면 근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저희는 식사하는 것까지 다 노출돼요. 간단한 도시락 싸서 허겁지겁 먹기 일쑤인데 그 모습까지 보여 준다면 저희가 너무 초라해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미리 이용자들께 이렇게 말씀 드려요. ‘아이가 3살이면 저도 3살로 돌아가서 놀아줘야 하는데, 누군가가 제 행동을 보고 있으면 행동에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걸 원하신다면 CCTV 달고, 그렇지 않으면 믿고 맡겨 달라’고요.

나중에 아이의 반응을 보면 답이 나와요. 아이가 ‘선생님’ 하면서 달려오며 제 목을 끌어안아요. 학대를 했다면 이게 가능할까요? 아이가 ‘선생님과 엄마는 친하다’고 생각하면 선생님을 믿게 돼요. 이렇게 되면 CCTV가 필요 없게 돼요. 이용자와 아이들, 저희가 신뢰를 쌓아 가는 걸 방해해선 안돼요.

불안한 이용자들의 마음은 이해해요. 그렇다면 아이와 노는 공간에 국한해 달 수는 있어요. 하지만 나머지 공간까지 다 허용하면 선생님이 숨쉴 공간이 없어요. 숨통을 틔어 줘야 해요.”

정부의 탁상공론식 정책이 얼마나 현실과 맞지 않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무조건 8시간 일하면 1시간 휴게시간을 가져야 한대요. 그런데 저희 실정에는 이게 맞지 않아요.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8시간 일하면 출퇴근 시간 포함 10시간 이상 돌봄을 맡겨야 해요. 그런데 정부는 ‘법을 지켜야 하니 8시간 이상 이용할 거면 돌보미들을 두 명 이상 쓰거나, 그게 싫으면 친인척 불러 돌보게 하라’는 거예요.

영유아는 3개월 정도 애착형성 기간이 필요한데 선생님이 바뀌면 아이들에게 혼란이 와요. 일종의 정신적 학대가 될 수 있어요. 게다가 돌봐 줄 친인척이 있다면 애초에 돌봄서비스를 신청했겠어요? 완전히 비현실적인 발상이죠.

그러다 보니 이용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서비스 이용을 중단하고, 종일제 수요가 줄어드니 선생님들이 올해 어린이집으로 너무 많이 떠났어요. 그런데도 센터는 마치 선생님들이 노조 해서 이런 제도가 생겼다는 식으로 이용자들에게 왜곡을 해요.

정부는 자기들이 원하는 매뉴얼만 지키고 자기들이 무시하고 싶은 매뉴얼은 지키지 않아요. 하지만 저희 직종만 예외로 분류하고, 대신 [사용하지 못한] 휴게시간에 대한 가산수당을 지급하는 대안이 있어요.

정부가 학대 예방 교육이랍시고 하는 교육도 현장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요. 현실을 모르는 교육자들이 와서 다 아는 얘기나 하고, 심지어 교육 온 베이비시터 원장이 쉬는 시간에 ‘우리 업체 와서 일할 생각 없냐’고 묻기까지 해요.”

배 사무국장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무엇이 달라졌냐고 반문한다. 박근혜 정부 때 노조가 제기한 근로자성 인정 소송에서 정부 측이 1심에서 패하자,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여가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앞서 말한 열악한 처우도 개선되지 않았다. 박원순의 서울시는 종일제 돌봄 노동자에게 주는 지원금(시비)을 없앴다고 한다.

2018년 아이돌봄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1심 결과에 항소한 여성가족부 ⓒ제공 공공연대노조

“정부는 오로지 공공기관 채용 할당량 채우는 데만 관심 있지, 돌봄의 질에는 관심이 없어요. 예전에 문제가 있어서 떨어뜨린 사람들도 수요 맞추려고 마구잡이로 다시 채용해요. 노동자들이 생계 유지가 가능한지도 무관심해요. 기존의 노동자들은 일이 없어서 쥐꼬리만큼 버는데 그냥 채용량만 늘리기 바빠요. 나라 세금으로 완전히 헛짓하는 거예요.

저희의 답답한 심정을 전하러 지난해 여름 여가부 등 관련부처들 다 초청해 국회 토론회를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 아무도 안 나왔어요. 정말 실망했어요. 노동자들 입장에서 보겠다, 현장의 소리를 듣겠다 해 놓고 왜 듣지 않는 건가요?

제가 노조를 찾아가기 전 어떻게든 참고 일하려고 애쓰다가, 처우가 점점 안 좋아져서 혼자 여가부, 서울시, [제가 있는] 강서구 등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여가부의 어처구니 없는 답만 돌아왔어요. ‘이 사업은 이용자를 위한 것이지 선생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연세 드신 분들 용돈벌이로 하라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해서 선생님들을 모았어요.

강서구 금태섭 국회의원(민주당)도 찾아갔어요. 그토록 전화 연결이 안 되더니, 페이스북에 글 올리니 바로 연락이 왔어요. 메일로 보내라 해서 쓸 줄도 모르는 메일을 만들어서 보냈어요. 그래도 답이 없어요. 저희 강서구 [노동조합] 조장 회의 때까지라도 답을 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조장 다 모인 자리에서 전화하니 아직 못 했다며 또 미뤘어요. 그래서 저는 마음 먹었어요. ‘당신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손 내밀지 않겠다.’”

“노조가 있으니 말할 곳이 생겼어요”

배민주 사무국장은 노조를 결성하며 느낀 조직화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저는 원래 노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었어요. 하지만 정부·센터와 너무 소통이 안 되니까 노조라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제가 혼자서 한 달 넘게 얘기해 봤지만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고 말할 곳이 없었어요.

그 와중에 누군가 ‘우리도 노조가 있대. 광주에서 시작한대’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2017년 9월 어렵사리 현재의 공공연대노조 권현숙 돌봄분과장님과 연락이 됐어요.

2018년 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분과 출범식 ⓒ제공 배민주 사무국장

서울·경기의 선생님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아요. 담당 부처인 여가부도 서울에 있고요. 그런데 정작 서울·경기에는 조합원이 없었어요. 서울에서 움직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간 나만 개인적으로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 게 반성이 됐어요.

그래서 무작정 제가 있는 강서구 아이돌보미 선생님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우리의 처우가 나빠지고 있는데 모여서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호소하고 모임 시간과 장소를 정해 올렸어요. 그런데 무려 30명이 넘게 왔어요. 생각보다 많아 놀랐어요.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는 저의 설득에 그 자리에서 35명이 노조에 가입했어요. 이런 식으로 매일 입이 부르터 가며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고 조직했어요. 선생님들이 일하는 시간도 제각각이고 한 군데 모여 있지 않으니 밤 12시에도 만났고 몇 명이 모이든 갔어요. 결국 강서구에서만 80여 명을 가입시키고 2017년 12월 3일에 출범식을 했어요. 지금은 서울에만 조합원이 400명이에요.

노조를 발판 삼아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해요. 그래야 개선점을 찾고 협상이라도 할 수 있어요.”

배민주 사무국장은 노조의 요구 덕분에 정부가 줄인 아이돌봄 지원 이용시간을 늘린 성과도 소개했다.

“저는 이 사업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때는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일 그만둬야 했어요. 이제는 여성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 나왔는데 아이 낳았다고 직장 그만 두면 아깝잖아요. 제 자식들에게도 직장 그만두기 보다는 자기 일을 계속하며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권유해요.

그런데 아이돌봄 선생님들의 처우가 너무 나쁘다 보니 경력 있고 능력 있는 분들이 점점 떠나고 있다는 게 마음 아파요. 다음 세대에는 더 좋은 조건에서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제도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활동합니다.”